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271화 (267/351)

271화.  < 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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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는 제인의 집 근처에서 밤을 새웠다.

보통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보통 3교대로 경호하기 때문에 낮에 일을 했으면 밤에는 쉬게 되어 있다.

오늘 낮에 제인을 찾아다니느라 열심히 뛰어다닌 자들은 전부 쉬러 갔다.

지금 이 근처에 있는 경호팀은 전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앤드류가 굳이 컨디션을 망쳐가면서까지 여기 있는 건, 숙소로 돌아가 봐야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궁금했다.

‘대체 제인은 어제 어디에서 뭘 한 거지?’

당장 집으로 쳐들어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저 집에 들어가려면 그럴 만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절대 해선 안 되는 짓이다.

물론 감시도 병행하기 때문에 특수한 상황이 생기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이라는 건 잘 벌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그저 집 창문만 노려보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빛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직 제인이 출근해야 하는 날이 오려면 닷새 정도 더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인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에 결국 집에서 나올 것이다. 그녀의 가문이 운영하는 스포츠센터로 운동을 하러 갈 테니까.

평소라면 그저 묵묵히 경호임무를 수행하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제인이 집에서 나오면 접근해서 물어볼 것이다. 어제 어디에 가서 뭘 했느냐고.

'아마 대답해주지 않겠지.’

그래도 물어볼 것이다. 설사 대답을 못 듣더라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뭔가가 마음에 자꾸 걸리기 때문이었다.

어제 다시 나타난 제인을 봤을 때, 싸한 느낌이 들었다.

사라지기 전의 제인과 다시 나타난 제인은 같은 사람이지만 왠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할까?

그래서 그 원인을 확인하고 싶었다.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자신은 경호팀장일 뿐이다. 그저 제인을 잘 지키기만 하면 된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보고하고.

그게 전부다.

‘어거지로 우기면 특이사항이라고 할 수 있긴 하지.’

앤드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제인의 집 입구를 쳐다봤다.

그때, 제인이 밖으로 나왔다.

'응? 오늘은 너무 일찍 나왔는데?’

출근하는 날이라면 이해하겠는데, 오늘은 출근일도 아니지 않나.

지금까지 출근일 외의 날에 제인이 이렇게 일찍 집을 나서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앤드류는 마른세수를 몇 차례 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제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제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앤드류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귀찮은 일을 가지고 온다.

"제인, 잠깐 대화 가능합니까?”

앤드류의 물음에 제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회사로 가는 길이니까 가면서 얘기해요."

여기서 회사로 가려면 차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차로 이동하려면 경호팀이 운전을 해야 하고.

앤드류는 빠르게 차량을 불렀다.

금세 차가 도착했고, 제인과 앤드류가 차에 탔다.

부드럽게 차가 출발하자, 앤드류가 제인을 보며 물었다.

"제인, 어제 한바탕 난리가 났었던 건 아시죠?”

제인의 입가가 살짝 비틀렸다.

"그래서, 그게 내 잘못이란 건가요?”

"경우에 따라서는요. 제인, 어린아이가 아니잖아요. 경호팀을 따돌리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제인의 비틀린 입매가 더욱 크게 휘었다.

"그러니까 내가 경호팀을 따돌렸다고 생각한 모양이네요.”

"그럼 아닙니까?”

제인이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걸 본 앤드류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기분이 크게 상했지만, 그걸 지적하지는 않았다.

"어제 내 의지로 움직인 건 스포츠센터에 갈 때까지예요. 이게 뭘 뜻하는 건지 알겠어요?”

앤드류의 표정이 확 굳었다.

"설마 어제 납치 당했던 겁니까?”

"글쎄요. 그걸 납치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그냥 경호팀의 무능을 확인했다고 하죠.”

제인은 그렇게 말하며 앤드류를 똑바로 쳐다봤다.

“실망했어요.”

앤드류는 마치 망치로 심장을 쿵 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뇨. 그 대답은 거부할게요.”

앤드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제인의 태도나 말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가웠다.

‘일이 커질 수도 있겠어.’

아무래도 정이 뚝 떨어진 모양이다. 어떤 식으로든 회사 쪽으로 영향이 미칠 것 같았다.

"오늘 갑자기 회사에 가는 것이…… 어제 일과 관계가 있습니까?”

"그걸 내가 왜 얘기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저렇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앤드류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제인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원인이 앤드류의 경호팀이 될 테니까.

“어제 일로 인해서 경호 시스템을 손보기로 했습니다. 아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약속드리죠.”

제인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내 차가 회사에 도착했다.

***

제인은 참으로 신기한 기분이었다.

어제 반태수를 만난 이후, 자신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가 확 변했다.

아니, 어쩌면 반태수가 잔뜩 건네준 마도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안전에 대해 과할 정도로 신경을 썼는데, 그 모든 스트레스가 싹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안전에 매몰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기분이었다.

실제로는 어떤지 모른다. 자신의 뒤를 따르는 저 경호팀도 그런 실패를 겪기 전까지는 자신의 안전을 어느 정도 책임져 줄 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마도구도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인은 든든했다. 이 마도구들이 경호팀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건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어제 봤던 백진희처럼 혼자서 100명이 넘는 적과 싸워 이길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몸을 보호하면서 도망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싸울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건 좀 무섭고.’

어제 경험해보고 알았다. 자신은 나대면 안 된다. 겁이 많아서 싸움과 정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싸우겠다고 나서는 순간, 모든 일이 엉망진창으로 꼬여 버릴 것이다.

제인은 어제 주제 파악을 아주 확실히 했다.

‘그리고 그 커피.’

주제파악도 주제파악이지만, 제인은 어제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다.

반태수가 대접한 커피에는 놀라운 효능이 숨어 있었다.

바로 마력회로와 관계된 효능이었다.

원래 새로 능력을 쓰려면 아직도 5일이 더 지나야 한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 능력을 한 번 쥐어짜냈으니 마력포션으로 마력을 보충해야 한다.

당연히 능력을 또 한 번 쥐어짜야 하고.

한데 어제 마신 커피 두 잔이 그녀의 마력회로를 움직였다.

지금 제인의 마력회로는 조금만 더 마력이 보충되면 바로 활성화가 가능한 상태였다.

마치 능력을 쓸 수 있는 날을 하루 앞둔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고작 커피 두 잔에 말이다.

‘만일 세 잔을 마셨으면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을까?’

나중에 꼭 한 번 테스트 해봐야겠다.

제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 회사의 수장인 알렉스의 방으로 향했다.

알렉스의 방으로 들어가려면 비서실을 통과해야 한다.

당연히 여기서 일하는 비서들이 보통 사람일 리 없다. 저 비서들 중 한 명은 기공술사였다.

‘그렇게 희귀하다는 기공술사가 대체 여기에만 몇 명인지.’

비서들이 제인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제인, 오늘 어쩐 일이에요? 출근 안 하는 날 아니었어요?”

비서가 살가운 표정으로 묻자,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출근 안 하는 날이죠. 알렉스를 보러 왔어요. 할 말이 좀 있어서.”

"그렇군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비서는 일단 알렉스에게 제인이 도착했다고 보고를 했다. 잠시 후, 알렉스의 허락이 떨어졌고, 비서가 직접 제인을 알렉스의 방으로 안내했다.

알렉스는 대머리의 중년 남자였다. 그는 묘한 눈으로 제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인, 웬일이야? 출근하는 날이 아닌데도 회사에 오는 것도 놀라운데, 날 찾아오다니.”

제인은 질질 끌 이유가 없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회사, 그만두려고요.”

"뭐?"

알렉스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제인을 바라봤다.

"대체 왜?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그만 둘 이유가 없잖아. 우리 잘 지내고 있던 거 아니었나? 혹시 내가 모르는 힘든 일이라도 있었어?”

"위험한 정보를 너무 많이 접하잖아요. 더 깊숙한 곳까지 가기 전에 그만두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알렉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무 대책 없이 그냥 그만두는 건 아니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누가 접근이라도 했나? 그런 거라면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군. 정말 위험하게 될 거야.”

제인이 피식 웃었다.

"날 위험하게 만든 게 사실 회사라는 거 다 알아요. 솔직히 감추려면 얼마든지 감출 수 있잖아요. 나나 내 능력이 드러날 이유도 없고. 안 그런가요?”

알렉스가 자신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연신 쓸었다. 식은땀이 났다.

그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제인이 왜 갑자기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위험하잖아. 아마 회사를 그만둔 순간부터 더 위험해지지 않을까? 우리 경호팀만큼 제인을 안전하게 지켜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거 같은데 말이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죠.”

제인은 굳이 지금의 경호팀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 건 알렉스가 스스로 알아내야 할 부분이다. 앤드류가 감춘다고 해서 그걸 못 알아내면, 그 역시 무능하다는 뜻이니까.

물론 알렉스가 그리 무능한 사람일 리는 없지만.

이 회사는 겉으로는 회사지만, 사실 CIA의 특별관리 조직이었다.

특수이능관리국이 이면세계 쪽에 중심을 두고 운영한다면, 이곳은 순수하게 능력자와 기공술사에 초점을 맞추고 운영한다.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조직이었다.

그러니 제인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겠는가.

이용할 수 있는 능력 중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진지하게 층고하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제인은 단호히 대답했다.

"다시 한 번 생각했는데, 역시 그만둘게요. 계약이 있으니 이번 일까지는 하고, 그 다음은 없어요. 마침 시기도 딱 맞아 떨어지네요.”

알렉스는 제인의 태도를 보고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뭐, 아쉽고 안타깝지만 할 수 없지. 원하는 대로 처리해줄 테니 남은 일도 잘 부탁하네.”

"물론이죠. 그럼 전 이만 돌아갈게요.”

제인이 냉정히 돌아서자 알렉스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뒤섞인 표정이었지만, 눈빛만은 한없이 차가웠다.

제인이 나가고 잠시 후, 앤드류가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제인에 대한 겁니다. 그만둔다고 하던데 정말입니까?”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그만두기로 했네.”

앤드류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할 겁니까?”

"안 그러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줘야죠.”

알렉스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턱짓을 했다. 계속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공격팀을 준비해서 습격을 하고 위기 상황을 연출한 다음 경호팀에서 막아내는 그림을 그리면 어떻습니까?"

"재미있긴 한데…… 고작 그런 걸로 제인이 마음을 돌릴까?”

"마음을 안 돌리면 경호팀 철수 이후에 사건을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알렉스가 앤드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난 모르는 일이네. 하지만 성공한다면 자네의 공을 잊지 않겠네.”

앤드류가 씨익 웃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

제인은 행복한 표정으로 커피를 음미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일을 그만둔 보람이 있었다.

‘커피를 다 마신 것도 아닌데 활성화가 가능해졌어.’

어느새 마력회로가 살아났다.

원래라면 하루 더 있어야 하는데, 고작 커피 몇 모금 마신 걸로 하루치를 대체한 것이다.

"설마 오늘 바로 때려치우고 나올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꼬리까지 잔뜩 달고서.”

"그건 미안해요.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그동안 하도 그쪽으로는 신경을 안 써 버릇해서. 그냥 없는 사람들 취급하면서 살았거든요."

"뭐,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인데.”

그리고 경호팀은 호텔에 따라 들어오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뒤로 제인의 행적을 놓쳐버렸다.

당연히 반태수가 손을 썼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알려져도 상관없지만, 굳이 감출 수 있는 걸 내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제인은 커피를 모두 마신 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저한테 뭔가 사건이 벌어지겠죠? 저들은 절 쉽게 놔주지 않을 거예요. 솔직히 굉장히 유용한 능력이잖아요? 이걸 어떻게 포기 하겠어요?”

"자기들이 못 가질 바에는 없애는 쪽을 택할 겁니다.”

"제 생각도 같아요.”

제인은 반태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지켜주실 수 있죠?”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스스로 지켜야죠.”

제인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녀의 눈빛이 배신감으로 흔들렸다.

"제가 어떻게 절 지켜요!”

“지킬 도구는 어제 다 줬잖습니까. 아마 괜찮을 겁니다. 상황 봐서 조율하면 되니까.”

제인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후아, 후아.”

그녀는 반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싸우는 게 아니라 막고 도망치는 거니까 아마 제법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계속 도망만 칠 수는 없잖아요. 그놈들이 지쳐서 포기할 때까지 계속 도망 다녀요?"

“도망치다보면 어느새 다 사라져 있을 겁니다.”

제인은 미심쩍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괜찮다니까요? 제가 계속 지켜볼 겁니다. 아시죠? 이 태블릿.”

제인은 그제야 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눈빛에 남은 미심쩍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일을 하기 전까지는 괜찮겠지. 백진희 씨한테 조언도 받고 그래야겠어.’

하지만 제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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