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270화 (266/351)

270화.  < 마력회로를 구상하다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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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의 호텔방. 네 사람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다들 손에는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들었는데,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커피에만 집중했다.

특히 백진희와 제인은 커피에 대한 집중도가 대단했다.

백진희는 예전 단순한 능력자일 때보다 커피맛에 훨씬 더 빠져들었다.

반태수는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백진희와 제인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커피가 마력회로에 어떤 식으로든 작용하는 게 맞네.’

제인뿐 아니라 백진희까지 커피가 마력회로에 뭔가 영향을 미치는 걸 확인했다.

물론 패트릭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태수는 특히 제인과 패트릭의 마력회로를 유심히 살펴봤다.

물론 기억이야 다 해뒀다.

변형된 것도 따로 기억해뒀고, 지금 한창 그걸 이리저리 분석하며 연구 중이었다.

하지만 왠지 이렇게 직접 확인하는 것과 기억해서 분석하는 것과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마력회로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는 느낌이 다르다는 뜻이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어쩌면 마력회로만의 특징일 수도 있다.

반태수가 그렇게 두 사람의 마력회로를 한창 분석하고 있을 때, 커피를 다 마신 제인이 반짝이는 눈으로 백진희를 바라봤다.

백진희는 그 눈길이 부담스러워서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사실 그녀는 아직 별다른 설명을 못 들었다.

그래서 왜 제인과 패트릭이 여기 있는지, 그리고 제인이 자신을 저런 눈으로 보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백진희 씨처럼 강해질 수 있나요?”

“예?”

제인의 물음이 백진희 입장에서는 너무 뜬금없었는지라 놀란 눈으로 반문했다.

"아까 싸우는 모습 봤어요. 혼자서 100명이 넘는 적을 물리치셨잖아요. 그것도 무장한 자들을.”

"그걸 봤다고요?”

"예. 우리 보스가 보여줘서 봤어요.”

제인이 그렇게 말하며 반태수를 바라봤다.

"보스?”

백진희는 그게 또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개를 돌려 반태수를 바라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달라는 의미로.

하지만 반태수는 아무 설명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심지어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백진희는 좀 어이가 없어서 반태수를 부르려고 했다.

한데 왠지 지금 반태수를 건드리면 안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말을 걸려는 제인을 향해 손을 뻗어 그녀의 말을 막아 버리기까지 했다.

자신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 올린 백진희의 모습에 제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백진희를 바라봤다.

"왜 그러시죠?”

"기다리세요. 왠지…… 지금 태수 씨를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분위기가 좀 묘하지 않나요?”

"분위기가요? 글쎄요?”

제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태수를 살펴봤다. 그런 얘기를 듣고 봐서 그런지 분위기가 묘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백진희가 저렇게까지 해서 말리는데 반태수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제인은 얌전히 있는 쪽을 택했다.

반태수 말고도 지금은 대화할 사람이 있으니까.

"백진희 씨는 한국에서부터 우리 보스를 알고 있었던 거죠? 오래된 친구? 그런 건가요?”

"한국에서부터 알던 사이는 맞고, 오래된 친구는 아니에요.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됐어요.”

"예? 정말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굉장히 친밀해 보이던데.”

"오래 만나야 친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밀도로 만났느냐가 더 중요하죠.”

"아, 그건 동감.”

제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히죽 웃으며 패트릭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 친구, 패트릭은 본 적 있죠? 이 녀석 앞에서는 말이든 행동이든 정말 조심해야 돼요. 방심하면 머릿속을 탈탈 털어버리거든요.”

그 말에 백진희가 흠칫 놀라 경계의 시선으로 패트릭을 쳐다봤다.

패트릭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제인. 과장 좀 하지 마. 백진희 씨,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자리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능력을 쓸 이유가 없는 자리 아닙니까.”

제인이 패트릭의 어깨에 팔을 턱 올려 어깨동무를 했다.

“우리 영입 제안 받았거든요. 난 계약 했고, 이 친구는 아직이지만, 보아하니 머지않았어요. 길어야 한 달 봅니다. 그 안에 계약할 거예요.”

"계약? 설마 우리 포션이랑요? 반태수 씨가 제안한 건가요?”

"네. 맞아요.”

백진희는 좀 혼란스러웠다. 저 사람들이 특별하다는 건 그냥 보고 있어도 알겠다. 아마 둘 다 기공술사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계약을 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게다가 패트릭은 특수이능관리국 소속이다. 그리고 제인은 어디 소속인지는 몰라도 패트릭과 관계있는 걸 보면 정부 조직 소속일 것이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아무튼 반태수가 영입제안을 했고 계약까지 했다면 일단은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반태수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우리 능력에 대해 말씀 드려야겠죠? 그래도 CEO이신데.”

제인의 말에 백진희가 반태수를 힐끗 쳐다보고는 대답했다.

"반태수 씨의 허락을 받으면요. 아직 제가 끼어들어도 되는지 몰라서요.”

제인이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휙 내저으며 눈웃음을 쳤다.

"아까 보스한테 허락 받았어요. 백진희 CEO랑 같이 일한다고. 그러니 괜찮아요. 나랑 여기 패트릭이랑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알려드려도요. 그렇지 패트릭?”

“비밀을 지켜주신다면 괜찮습니다.”

안 괜찮으면 어쩔 건가. 어차피 다 알고 있는데. 자신이 거부해도 반태수가 그냥 말해줘 버리면 땡이다.

제인은 신이 나서 자신과 패트릭의 능력을 설명해 주었다.

모든 설명을 들은 백진희가 경악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기공술사의 능력이 다양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과거의 한 지점을 택해서 영상을 찍을 수 있는 능력이라니. 게다가 인지능력을 넘어선 통찰력이라니.

아까 제인이 왜 패트릭 앞에서 방심하면 머릿속이 탈탈 털린다고 말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제인은 백진희와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 기쁘게 웃으며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백진희도 이젠 좀더 신경 써서 대화에 응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반태수에게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

세 사람은 깜짝 놀라 반태수를 바라봤다.

몸 전체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빛만 나오는 게 아니라 모든 땀구멍에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땀인 줄 알았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어? 저거 피 아닙니까?”

가장 눈썰미가 좋은 패트릭이 그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나머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제인과 백진희도 반태수에게 조금 다가가 유심히 살피더니 피라는 걸 확인했다.

신기하게도 얼굴에서는 피가 안 나서 바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얼굴에서는 그저 땀만 흘렀다.

"이거 어쩌죠? 911에 연락해야 하나? 아니면 우리가 들고 응급실까지 달릴까요?”

제인은 그렇게 말하며 백진희를 바라봤다.

"백진희 씨는 할 수 있죠? 우리 보스 들고 병원까지 달려갈 수 있잖아요. 그렇죠?”

“병원 위치나 확인해 봐요. 그리고…… 왠지 지금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두 사람은 안 그런가요?”

패트릭이 답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능력이 제한되는 바람에 알아볼 수가 없군요. 하지만…… 저도 건드리면 안 될 거 같습니다. 논리고 능력이고 없는 그냥 감이에요."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실제 흘러간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는데, 세 사람이 느끼는 체감시간은 한 시간도 더 된 것 같았다.

반태수가 천천히 눈을 떴다.

번쩍!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와 방안을 가득 메웠다가 사라졌다.

다들 깜짝 놀라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딱 튀겼다.

촤아아아!

반태수의 몸을 갑자기 생겨난 물이 감싸더니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몸과 옷에 묻은 피와 이물질을 전부 빼냈다.

그렇게 반태수의 몸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물은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수증기가 되어 안개처럼 쫙 퍼졌다.

놀라운 광경을 지켜본 세 사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괜찮으세요?”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백진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반태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오히려 몸이 더 좋아졌네요.”

마력회로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에 새길 기공술의 바탕을 구상할 수 있었다.

그것은 모든 방면으로 열려 있는 확장형 마력회로였다.

마력회로를 한 번 설치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나중에 추가로 마력회로를 덧붙일 수 있는 방식을 구상한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마력회로를 새기는 작업 자체가 기존의 마력회로에 비해 굉장히 복잡하고 섬세했다.

그래서 삐끗하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마력회로의 각 부분에 대한 연계가 복잡하고 긴밀했다.

아무튼 반태수처럼 마력 컨트롤 능력이 하늘 끝에 닿은 사람이라고 해도 함부로 새길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마력회로였다.

그 작은 깨달음만으로 몸의 구조가 바뀌었다. 마력회로에 좀 더 적합한 형태로.

마력회로가 마법의 상위 개념은 결코 아니다. 그 역도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력회로가 마법보다 훨씬 더 육체의 영향을 많이 받는 건 확실하다.

이번에 그 기초가 닦인 것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어.’

몸도 차츰 바꿔 나가야 한다. 그것도 마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말이다.

반태수가 그렇게 딴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을 세 사람이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왠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반태수의 표정에 즐거움과 기쁨, 기대감이 담겨 있었는데, 괜히 말을 걸어서 그 표정을 지우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호텔방 안에 한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

제인을 보호 및 감시하는 경호팀의 팀장 앤드류는 신경질적으로 무전기를 내던지려다가 말고 힘을 꽉 주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특수 제작된 무전기가 부서지지는 않았다.

"아오, 진짜! 어디로 간 거야!”

제인의 친척인 패트릭이 찾아와서 거리로 나선 것까지는 분명히 확인했다.

한데 거기서부터 종적이 묘연했다.

제인과 패트릭이 마지막으로 서 있던 곳은 큰 사고가 났던 거리였다.

듣기로 이면세계와 관계된 회사들 간의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하여간 미친놈들. 거리에서 대놓고 총을 갈기면 어쩌자는 거야?”

아무튼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제인이 그걸 구경하다가 사라졌다는 게 문제다.

그냥 경호팀을 따돌리고 자유 시간을 가지려 도망친 건지, 아니면 납치당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제인의 실력으로 몰래 도망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 납치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앤드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직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경호팀 선에서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야 일이 복잡해지지 않는다.

자신의 커리어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고.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 더 이상 보고를 늦출 수는 없었다.

한데 그 순간, 끊어졌던 GPS신호가 잡혔다.

"팀장님! 위치 특정했습니다!”

"뭐해! 다들 움직이지 않고!”

경호팀은 우르르 그쪽으로 이동했다.

신호가 잡힌 위치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뉴욕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기에 각 팀원들도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렇게 신호가 온 위치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신호가 또 사라졌다.

앤드류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젠 어쩌지?”

어쩌긴 뭘 어쩐단 말인가. 보고 해야지.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일단 신호가 잡힌 곳부터 확인한 다음 보고를 하든 말든 결정하기로 했다.

옆에 붙은 팀원이 잡힌 신호를 통해 제인의 움직임을 추측했다.

"아무래도 저 빌딩 옥상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옥상에서 뛰어내린 모양입니다.”

앤드류가 피식 웃었다.

"누가? 제인이? 그럼 저기 가면 제인의 시체가 있겠네?”

"신호를 분석하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아직 우리 장비가 열악해서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러니까. 장비라도 제대로 지급하고 일을 맡겨야 할 거 아냐. 이따위 장비로 뭘 어떻게 지키라는 거야?”

지금까지는 문제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장비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상 일이 터지고 나니 드러난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장비 수준을 올려달라느니 하는 말도 못 하게 생겼다.

아마 높은 확률로 이 자리에서 잘릴 테니까.

"옥상이랑 빌딩 바닥 확인했어?”

"예. 확인했는데…… 좀 이상합니다. 전투 흔적이 있습니다.”

"뭐?”

점점 일이 심각해진다. 설마 제인이 도망치는 중인가? 누군가 그걸 도와주는 중이고?

전투 상황이 있었다는 점이 신경 쓰인다.

제인은 전투와는 백만 광년쯤 떨어진 존재였다.

기공술사이기 때문에 육체는 일반인보다 뛰어나지만, 그걸 운동이나 전투와 연결시킨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전투를 했다면 제인이 아닌 다른 사람일 것이다.

‘패트릭도 아닐 테고.’

패트릭은 앤드류도 잘 아는 사람이다. 특수이능관리국의 요원. 그 역시 전투와는 인연이 없다.

그렇게 다시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전투 흔적을 면밀히 살폈지만, 제인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결국 보고를 하려는데, 다시 신호가 잡혔다.

“이건 뭐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앤드류는 짜증을 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도 적이 유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릴 농락하는 건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는데, 결론은 아주 허무했다.

“제인?”

제인이 저 앞을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앤드류는 득달같이 달려갔다.

"제인!”

제인이 고개를 돌려 앤드류를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휙 돌려 앞을 보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제인 옆에 미끄러지듯 다가가 선 차에 올라탔다.

패트릭의 차였다.

앤드류는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차를 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뭐지? 설마 진짜 그냥 우릴 따돌린 거였어?”

문득 보고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제인이 입을 다물지 않는다면 위에서 엄청나게 깨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납치당해서 보고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테니까.

앤드류는 팀원들에게 철수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차를 타고 방금 패트릭의 차가 간 방향, 그러니까 제인의 집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앞으로 제인을 어떻게 감시하고 지킬지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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