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 패트릭의 마력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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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자리 잡고 앉아 길 건너편에 보이는 빌딩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가 맡은 임무는 위성을 부순 자들에 대해 알아내는 거였다.
한데 계속 이쪽이 신경 쓰였다.
‘반태수.’
저 빌딩의 주인이자 포션 제조 회사인 포션의 실질적인 주인이기도 한 반태수를 떠올릴 때마다 계속 머릿속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위성 제작 단계에서부터 차근차근 모든 과정을 낱낱이 살펴봤다.
하지만 그 어떤 위화감도 발견하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패트릭이 생각하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위성을 제작하고 발사하고 이용해왔다.
그쪽으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릴까 고민하고 있을 때, 포션 제조 회사가 등장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촉이 확 왔다.
그래서 국장에게 다짜고짜 통보를 했다. 그쪽에 가서 한 번 살펴보고 오겠다고.
원래 그쪽에 배정된 요원이 있었는데, 그 요원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해서 반태수를 만났다.
패트릭은 반태수를 본 순간 뭔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뇌리에 콱 꽂혔다.
그때부터 유심히 관찰했다. 이리저리 떠보기도 하고 말로 흔들어 보기도 하고.
한데 그 때마다 반태수는 위성을 부순 조직과는 아무상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니, 솔직히 잘 모르겠다.
반태수를 대상으로 쓴 능력은 언제나 안개처럼 모호했다.
명확히 이거다 하는 답을 주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그날 만남 이후, 이렇게 이 주변을 맴돌면서 계속 저 회사를 살펴봤다.
혹시 반태수가 보이는 날에는 반태수를 열심히 관찰했고.
저 회사의 직원들도 전부 지켜봤다.
CEO인 백진희는 말할 것도 없고.
“하…… 미치겠네.”
패트릭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멍하니 회사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열심히 능력을 썼다.
한데 여기서는 아무리 능력을 써도 대부분 모호한 결론만 나왔다.
가끔 명확한 답이 나오는 건, 위성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뿐이었다.
‘정말로 이 회사를 먹어치우려는 조직들이 관련된 걸까?’
그 조직들은 아직 조사 중이었다.
하지만 조사하면 할수록 답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저 회사를 지켜보다가 얼마 전에는 아주 대단한 광경까지 확인했다.
저 회사의 포션 제작 장비를 탈취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몰래 능력만 써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작업하는 자들에게 들키지는 않았다.
그리고 능력을 쓴 덕분에 그들의 정체도 대충 파악했다.
제닉스 테크놀로지에서 나온 자들이었다.
그것도 탈취만 전문적으로 하는 요원들이었다.
패트릭은 그뿐 아니라 제닉스를 제외한 나머지 열두 조직이 보낸 자들까지 그 사건에 연루되는 과정을 이 근처에서 전부 지켜봤다.
패트릭은 그때 과연 어떻게 할지 고민을 좀 했다.
저대로 내버려두면 저 회사가 망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당장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저 보고하고 국장의 대응을 기다리는 것뿐.
"헉!"
패트릭은 회사 정문을 뚫어져라 보다가 화들짝 놀라 얼른 시선을 피하고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커피를 입에 갖다 대고 곁눈질로 다시 그쪽을 확인했다.
방금 회사 정문에서 반태수가 나오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괜히 여기 자신이 있는 걸 들켜서 좋을 게 없다.
그러니 지금은 최대한 몸을 움츠려 숨어야 한다. 커피잔으로 얼굴도 좀 가리고 말이다.
그렇게 곁눈질을 한 순간, 입에 머금었던 커피를 내뿜었다.
“푸학!”
앞자리에 커피가 잔뜩 튀었지만, 패트릭은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바로 옆에 그렇게 만나고 싶지 않던 반태수가 서 있었으니까.
곁눈질한 순간 바로 눈이 마주친 것이다.
"앞자리에 앉으려고 했는데 거긴 못 앉겠네요.”
반태수의 말에 패트릭이 허둥지둥하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왜요?”
“예?”
"왜 놀랐느냐고요. 저한테 뭐 죄 지은 거 있습니까?”
"아, 아뇨! 맹세코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런데 표정을 보면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닙니까?”
"아니, 그건……."
켕기는 구석? 당연히 있다. 지금 반태수를 의심해서 계속 그 주변을 맴도는 중 아닌가.
“오늘은 능력 안 쓰시네요?”
반태수의 말에 패트릭이 화들짝 놀라 의자 째로 주춤 물러났다.
"그, 그런 것도 알 수 있습니까?”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물어본다고 제깍제깍 알려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재미도 없고.
반태수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그렇게 물으며 반태수는 패트릭의 마력회로를 다시 한 번 살펴봤다.
안 그래도 최근 패트릭의 마력회로를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의미 있는 성장을 했다.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다른 방식의 마력회로를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짜 의외였지.’
패트릭의 마력회로를 분석한 반태수는 그 마력회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일단 패트릭의 마력회로가 가진 능력은 두뇌 활성화였다.
두뇌 회전이 빨라져서 순간적으로 강력한 계산 능력이 생긴다.
더 놀라운 건, 인지를 초월한 영역을 건드린다는 점이었다.
주어진 정보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너머의 무언가를 이용해 결과를 뽑아내는 것이다.
반태수는 패트릭의 마력회로를 연구하면서 이 마력회로의 근원이 되는 기본 마력회로를 역으로 도출해냈다.
거기에서 시작해 마력회로를 구성하면서 결과적으로 패트릭의 마력회로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데 그 기본 마력회로를 성장시킬 때, 패트릭의 마력회로가 아닌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아직 모든 결과값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패트릭의 마력회로도 완벽하게 모든 걸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마력회로였다.
그러니 이렇게 틈날 때마다 패트릭의 마력회로를 확인해 봐야 한다.
혹시 모르지 않나. 또 얻을 것이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정말로 얻을 게 있을 줄은 몰랐네.’
패트릭의 마력회로가 살짝 변했다.
그때와 달리 몇 개의 선이 더 생긴 것이다.
반태수는 그 선이 왜 생겼는지 분석해봤다. 물론 따로 두뇌를 할당했다.
패트릭은 반태수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반태수가 다시 물었다.
“혹시 우리 회사에 관심 있으십니까?”
"어…… 관심이야 있지요.”
"계속 지켜본 겁니까?”
패트릭이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반사적으로 마력회로를 돌리고는 있는데, 뭘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맸다.
"그럼 얼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겠군요?”
"예? 무슨 일 말씀이신지……."
“우리 장비 도난당한 거 말입니다. 그거 알고 있었죠?”
패트릭이 입을 꾹 다물었다. 당연히 안다.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했다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었다.
"특수이능관리국은 이럴 때 그냥 방치합니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
"중요한 장비를 도단 당했고, 누가 가져갔는지 뻔히 아는데, 그냥 손 놓고 지켜만 보는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뭐, 그럴 권한이 없는 겁니까?”
"증거가 명확하다면…… 특수이능관리국에서 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럼 손 좀 써주시죠.”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미니 태블릿을 꺼내 테이블에 놓고 패트릭을 향해 슥 밀었다.
자동으로 화면이 켜지며 영상이 플레이되었다.
복면을 쓴 자들이 장비를 탈취하는 장면이었다.
"이 정도면 증거가 됩니까?”
패트릭은 유심히 영상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복면 쓴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니 이 정도로는 어렵습니다.”
"영상을 처음부터 보시죠.”
패트릭은 그제야 영상이 중간부터 플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얼른 영상을 처음으로 돌리니, 복면인들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제닉스 테크놀로지 빌딩에서 당당히 출발했다.
"이런 미친.”
뭐 이런 또라이들이 있단 말인가. 당당히 여기서 출발하다니. 물론 아니라고 우기려면 우길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정도면 특수이능관리국도 충분히 개입할 수 있었다.
패트릭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의 표정은 마치 얼른 대답하지 않고 뭐 하느냐는 듯했다.
묘한 압박감에 패트릭은 결국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말은 꺼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패트릭은 그렇게 말하며 능력을 썼다.
그리고 크게 당황했다.
"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냈을 정도로 놀랐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모호했을 뿐이다.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앞이 잘 보이진 않지만 어떻게든 헤쳐 나가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데 지금은 그런 모호함조차 없었다.
그냥 깨끗했다. 너무 깨끗해서 자신이 능력을 안 쓴 줄 알았다.
하지만 분명히 능력은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평소보다 훨씬 강력했다.
이 정도 강도로 쓰면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마력이 고갈될 것이다.
그런데도 너무나 깨끗했다.
‘읽을 수가 없는 건가? 이게 가능해?’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역시 재미있네요. 패트릭 씨는.”
반태수의 말에 패트릭은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이 지금 능력을 썼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 분명하다.
패트릭은 한껏 긴장해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어…… 그러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다짜고짜 용서해 달라고 할까? 아니면 모든 것은 오해라고 말해야 할까?
안절부절못하는 패트릭을 보며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됩니다. 그나저나 패트릭 씨는 기공술을 어떻게 익혔습니까? 혹시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기공술입니까?”
패트릭은 그 질문에 흠칫 했다. 하지만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야 말해줘도 상관없다. 뭐, 중요한 비밀도 아니고.
"맞습니다.”
"재미있네요. 혹시 패트릭 씨와 같은 기공술을 익혔는데 다른 능력을 가진 분도 있습니까?”
패트릭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하지만 그는 얼른 마음을 수습하고 눈 크기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말할 수 없다고 하려다가 잠시 망설이던 패트릭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있습니다.”
반태수의 눈이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능력이 몇 종류나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크게 세 가지고, 드물게 다른 종류도 몇 가지 나타날 것 같은데. 아닙니까?"
패트릭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 가문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하셨군요?”
"가문 이름도 모르는데 조사는 무슨. 그런 거 없고, 그냥 기공술 보고서 짐작한 겁니다.”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믿든 말든 상관없는데요?”
반태수의 당당한 태도에 패트릭은 할 말을 잃었다.
"진짜 우리 가문 조사 안 했습니까?”
"가문은 필요 없고, 기공술에는 좀 관심이 있습니다. 그동안 봤던 기공술들하고는 궤가 많이 달라서 재미있거든요.”
패트릭은 그 말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예전 반태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보인다고 했다. 그때는 그게 반태수가 가진 기공술의 능력이라고 여겼다.
상대가 기공술을 익혔는지 안 익혔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감지 능력 말이다.
한데 지금 보니 상대의 기공술을 완벽하게 읽는 능력이 분명하다.
즉, 마력회로를 읽은 것이다.
갑자기 벌거벗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살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무서웠다.
“제가 가진 마력회로를 읽은 겁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반태수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읽었다기보다는 본 거에 가깝고, 그게 가능한 이유는 자신이 마법사이기 때문이지만, 그런 정보를 패트릭에게 알려줄 이유가 없었다.
패트릭과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달라진 그의 마력회로에 대해 알고 싶어서였다.
한데 그 와중에 그의 마력회로가 또 변했다.
묘하게 튀어나온 선들이 사라지고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간 것이다.
‘마력회로가 변할 수도 있는 건가?’
그 부분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아예 없어서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것 역시 직접 테스트를 해봐야겠다.
당장은 패트릭이 방금 보여준 것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하다보면 뭔가 실마리를 잡지 않겠는가.
반태수는 문득 패트릭의 얼굴이 좀 안 좋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크서클이 확 내려왔고,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자세도 좀 축 늘어졌고.
한데 타이밍이 좀 묘하다.
변형되었던 마력 회로가 원래대로 돌아가자마자 저렇게 되었으니까.
‘마치…… 부스터를 써서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내고 난 뒤의 모습 같네.’
어쩌면 변형되었던 마력회로의 역할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반태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패트릭을 쳐다봤다.
정말 얻을 게 많은 사람이다.
"왜 그런 눈으로 절 보십니까?”
패트릭이 경계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반태수는 빙긋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패트릭 씨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패트릭은 그 말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
패트릭과의 만남은 여러모로 유익했다.
일단 마력회로의 새로운 쓰임새와 가능성을 파악했다.
그걸 토대로 계속 실험과 연구를 반복하다보면 정말 괜찮은 마력회로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제닉스 테크놀로지를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포션 제작 장비는 제닉스 테크놀로지에 가 있다.
그리고 열두 조직 연합, 그러니까 12연합은 약간 삐걱거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힘의 저울이 제닉스 쪽으로 너무 기울어진다.
특수이능관리국이라면 그 기울어진 저울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패트릭이 직접 나서겠지?’
그럴 것이다. 붙여둔 마킹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보아하니 패트릭이 직접 알바레즈를 만나 압박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수이능관리국의 요원들 몇 명을 붙여주고 일을 처리할 모양인데, 왠지 불안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패트릭이 죽거나 다치면 곤란하지.’
반태수는 패트릭에게 좀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그 뒤로 평범한 나날이 지나갔다.
여기저기 뿌려둔 마킹을 확인하면서 마력회로를 연구하고 마력을 섞고, 다시 하루를 시작하고.
그러다가 마킹을 통해 패트릭이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을 확인했다.
당장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멀리서 지켜보는 건 좀 불안해서 직접 나서기로 했다.
반태수는 귀찮음을 털어내고 호텔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