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 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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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은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지금 이곳은 미셸의 연구실이었다.
미셸은 이곳 연구소의 생체공학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사이먼을 비롯한 연구소 출신 기공술사들의 몸에 삽입한 단백질 장치의 최초 개발자이기도 했다.
미셸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이먼의 몸에 장착한 단백질 저장 장치를 총괄하는 조직에 정확히 전극을 꽂아 넣었다.
사이먼은 그걸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일이니 익숙할 만도 했다.
"그럼 시작할게요.”
미셸의 말에 사이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약한 전기 자극이 올 것이다.
“짜릿하네요.”
사실 큰 느낌은 없었다. 그냥 살짝 찌릿하고 마는 정도였다.
사이먼은 미셸의 표정을 보고는 살짝 긴장했다.
"왜 그러죠? 뭔가 잘못됐나요?”
미셸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정밀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예? 제 몸에 문제가 생겼나요?”
미셸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몰라요. 하지만 저장장치에 문제가 생긴 건 확실해요.”
"저장장치에 문제가 생겼다고요? 그럼 내 눈이랑 귀는, 그건 멀쩡합니까?”
"그것도 일단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생긴 것 같지는 않네요."
사이먼은 불안한 표정으로 미셸을 바라봤다.
몸에 생체조직을 강제로 넣었다. 그게 방금 미셸이 말한 저장장치였다.
솔직히 그런 게 몸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한데 거기에 문제가 생겼다니.
“잠시만 기다려요. 검사는 금방 끝나니까.”
미셸은 그렇게 말하고는 태블릿을 조작했다.
잠시 이것저것 시도하던 미셸의 인상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사이먼,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
"왜요? 정말로 뭐가 잘못됐습니까?”
"아무래도 수술이 필요할 것 같아요.”
“수술? 그렇게 심각합니까?”
"생체 저장장치가 망가졌어요. 아예 작동을 하지 않아요. 어떤 신호도 잡히지 않고.”
“그 말은.......”
"망가진 단백질 덩어리가 몸속에 방치되어 있는 거죠. 빨리 수술해서 제거해야 해요.”
사이먼이 멍한 표정으로 미셸을 바라봤다.
“대체…… 대체 왜 그렇게 된 겁니까?’’
"그건 오히려 제가 묻고 싶어요. 생체 저장장치는 웬만한 타격으로는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아요. 가벼운 손상은 자체적으로 복구하고요.”
미셸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삽입보다 제거가 훨씬 간단합니다. 마취는 해야겠지만, 전혀 위험하지 않은 수술입니다.”
사이먼이 고개를 끄덕이자, 미셸이 그를 수술실로 이끌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사이먼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미셸을 따라 수술실로 향했다.
***
수술은 미셸의 말과는 달리 그리 간단치 않았다.
몸 곳곳에 있는 단백질 덩어리를 빼내는 수술이 간단할 리 없지 않은가.
물론 병 때문에 병원에서 하는 수술에 비하면 어렵지는 않다. 애초에 단백질을 심을 때, 제거도 고려해서 위치를 잡기 때문에 위험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수술은 수술이다. 시간도 제법 오래 걸리고, 회복할 시간도 필요했다.
반태수는 처음에는 수술실에 따라 들어가려다가 그런 모든 상황을 고려해 그 시간에 연구 단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정확히 여기가 뭘 하는 곳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반태수는 일단 이곳, 경계가 가장 삼엄하고 들어오는 과정이 굉장히 복잡한 지역부터 돌아봤다.
위치를 보아하니 여기가 이 연구단지의 중심부였다.
수술실에서 시작해 주위를 차근차근 확인했다.
상당히 많은 연구원들이 있었고, 실험체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잘 단련된 걸로 보이는 사람 한 명에게 여러 연구원이 다닥다닥 달라붙어서 열심히 뭔가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전부 영상으로 촬영해 기록으로 남겼다.
한 사람에게 카메라가 여러 대 붙어서 다양한 각도로 촬영했다.
그런 실험을 하는 장소가 여러 군데 있었다.
다들 비슷한 실험 중인 듯했다.
무슨 실험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렇게 보안을 철저히 하는 걸 보면 중요한 실험이리라.
반태수가 할 일은 이 실험에 관한 데이터를 싹 뽑아가는 것이다.
연구실의 벽은 금속으로 되어 있었는데, 입구는 온통 투명한 유리였다.
그래서 복도를 지나가면서 안쪽을 눈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복도가 상당히 넓었기에 어른 대여섯 명이 나란히 지나가도 넉넉할 정도였다.
그래서 반태수는 지나다니는 사람과 부딪힐 염려 없이 복도를 느긋하게 지나가며 각 연구실을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경계가 심하긴 심하다. 이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실험실 안을 수시로 확인하는 경비원의 수가 무려 열두 명이다.
한 시간에 네 명씩 순차적으로 교대하며 끊임없이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경비원들은 전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고작 세 시간 근무하는 셈이니 그렇게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 경비원들 중에도 기공술사가 섞여 있다는 점이었다.
4명이 한 팀인 모양인데, 각 팀마다 기공술사가 한 명씩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복도에만 기공술사가 세 명이나 있는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가 너무 많았다.
‘전 세계 기공술사들이 여기 대부분 모여 있는 건가? 많아도 너무 많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경비원들과 닿지 않도록 신경 써서 복도를 걸었다.
그러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실험실 중 한 곳에서 마력 유동이 감지된 것이다. 제법 큰 마력이 움직였다.
반태수는 빠르게 그곳으로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유리창 너머 실험실에서는 여전히 실험이 한창이었다.
실험체는 젊은 여자였다.
옷을 전부 벗은 채 몸 곳곳에 전극이 꽂혀 있었고, 몇 군데에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흐르는 투명한 튜브가 꽂혀 있었다.
투명한 튜브에는 왠지 위험해 보이는 새까만 액체가 끊임없이 실험체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반태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력회로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여자의 몸속에서 마력회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몸속에 이미 마력회로를 구성해 놓고 그걸 활성화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력회로의 구조를 보니, 사이먼의 것과는 좀 달랐다.
이곳에서 만난 기공술사의 마력회로는 총 네 가지로 나뉘었는데, 그 중 하나였다.
사이먼의 것보다는 좀 덜 복잡하고, 네 가지 마력회로 중에서는 세 번째로 복잡한 회로였다.
‘하, 이래서 기공술사가 많은 거였어?’
그런데 좀 이상하긴 하다. 저렇게 방법을 만들었는데, 왜 실험을 계속 하는 걸까?
반태수는 그곳에 서서 좀 더 실험실을 지켜봤다.
아무래도 연구원들은 마력회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그건 연구원들뿐 아니라, 실험체인 여자도 모르는 듯했다.
‘아직 마력회로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지 않아서 그런가?’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실험을 지켜봤다.
아까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대충 보면서 넘겼는데, 관심이 생겨서 좀 집중하니 여러 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튜브를 통해 들어가는 검은 액체는 포션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약이었다.
포션 자체가 마력을 품고 있기에 그 마력의 농도를 높이는 작업을 통해 저 액체를 만든 것이다.
반태수는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회로를 만들려면 당연히 마력이 있어야 한다.
기공술사의 수가 적은 것은 그 때문이다. 마력을 제대로 꾸준히 수급해야 하는데,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그나마 이면세계를 오갈 수 있어서 마력에 관한 물품들을 많이 가져오니 가능성이 좀 더 열린 셈이었다.
전극은 제닉스 테크놀로지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역할이었다.
아마 그쪽에서 정보를 가져와서 만든 기술인 모양이다.
마력을 자극하는 특수한 파장의 전기신호를 여러 가지 만들어서 써먹고 있었다.
아마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좀 더 효과적으로 마력회로를 안착시키는 기술이 나올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든 마력회로에 저 약이 쓰였군.’
마력을 포함한 약을 통해 체내에 마력회로를 구성한 것이 분명했다.
계속해서 주입하는 약은 마력회로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방법 자체는 아주 명쾌했다.
반태수가 보기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었다.
한데, 왜 양산하지 않고 이렇게 실험을 통해서 기공술사를 만들까?
보아하니 다른 방에서 진행하는 실험은 별다른 성과가 없는 듯하다.
즉,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반태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력회로가 제대로 몸에 안착했다. 그리고 스스로 활성화해서 자체적인 힘으로 마력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실험체인 여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돼, 됐어요!”
그녀의 외침에 연구원들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부랴부랴 다른 장비들을 가져와 그녀의 몸에 이것저것 꽂았다.
잠시 후, 연구원들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와아아아!”
“브라보!”
실험실이 말 그대로 축제분위기가 되었다.
반태수는 그곳을 떠나 다른 실험실 앞으로 이동했다.
완성되는 과정은 확인했으니 이제 실패하는 과정을 확인할 차례다.
나머지 실험실의 분위기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성공한 것은 다른 실험실이지 이곳이 아니니까. 여기서 기공술사가 만들어져야 환호할 수 있는 것이다.
실험체를 기공술사로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연구를 하고 그걸 토대로 무수한 실험을 한다.
하지만 성공하는 건 극소수에 불과했다.
지금은 실험체 하나 성공하는 데 일희일비하지만,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공률을 대폭 끌어 올리는 것이다.
성공하지 못한 실험실에서는 성공을 위해 계속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었다.
반태수는 그것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걸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거였네.’
너무나 확실하고 안정적인 방법인데 왜 계속 다른 시도를 하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실패하는지 몰랐는데, 실패 중인 실험을 보니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미리 구성해 놓은 마력회로에 제대로 마력이 흐르지 않아서 그런 거였다.
마력을 머금은 약은 마력회로를 따라 흐르는데, 마력이 줄줄 새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시도해봐야 마력회로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마력회로에 제대로 마력이 흐르지 않으면 결국 미리 구성해 뒀던 마력회로도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체내에 마력회로를 구성하는 건 대단한 기술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인위적으로 구성한 마력회로에 마력이 지속적으로 흐르지 않으면 결국 인체는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리고 마니까.
그러면 왜 저런 문제가 생기는 걸까?
‘아예 정신을 놓고 있네. 저러니 될 리가 있나.’
만일 자신이 직접 노력해서 마력회로를 차근차근 만들고 그걸 토대로 각성해서 기공술사가 되었다면 전혀 생기지 않을 문제였다.
지금 저 실험체는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뿐이다.
자동으로 몸에 들어오는 액체를 맞고 전극으로 통한 전기 자극을 받으면서.
그래선 안 된다.
아니, 그래도 되는 사람이 있긴 하다. 마력에 대한 재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면 저렇게 해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계속해서 의념을 보내야 한다.
몸에 들어오는 마력이 자신의 것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어야 하고, 마력을 느끼려 애써야 하며, 제대로 된 길을 따라 흐르라는 의념을 계속해서 보내야 한다.
그러다보면 조금씩 마력에 의념이 닿게 되고, 비로소 제대로 된 길을 찾아 흐르게 되는 것이다.
이 역시 바로 되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노력해야 한다. 한데 여기서는 좀 안 된다 싶으면 방법을 바꾸고, 또 안 된다 싶으면 다시 바꾸는 걸 반복한다.
성과를 너무 빨리 보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아마 좀 더 진득한 인내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성공률이 조금이나마 오를 것이다.
물론 그런 거 다 필요 없이 그냥 되는 사람도 있다.
그게 바로 재능이다.
즉, 여기서 기공술사가 된 사람들은 다들 마력에 대한 재능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재미있네.’
반태수는 그걸 확인하고는 그곳에서 나갔다.
이 지역의 경계가 이토록 삼엄한 것은 바로 저 기공술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연구 데이터만 싹 빼서 나가면 될 듯하다.
여기 오기 전에는 이곳을 무너뜨리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좀 더 지켜보면서 이들의 배후를 확실히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제닉스 테크놀로지와 마찬가지로 이면세계와 교류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과연 어떤 조직과 교류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왠지 그냥 대충 넘겨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반태수는 데이터를 뽑아내기 위해 움직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어딘가에 있을 서버를 터는 것이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보관되어 있을 테니까.
서버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아마 이 연구 단지의 서버는 이 건물 안에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일 텐데, 가장 경계가 삼엄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당연하다.
반태수는 영역화로 전자 장비를 탐색했다.
연구소답게 무수히 많은 전자 장비가 존재했다.
‘찾았다.’
하나같이 왜 서버는 지하에 두는지 모르겠다.
지하 10미터쯤 되는 곳에 서버가 있었다.
반태수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지하 3층을 통째로 써서 서버를 보관 중이었다.
통로가 하나뿐이라서 여기서 뭘 하다가 걸리면 보통은 도망치기 쉽지 않은 구조였다.
서버의 데이터를 다른 매체에 복사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보통은 필요한 정보만 빼가거나 백도어를 설치하겠지만, 반태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아공간에 서버를 통째로 담아 버렸다.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반태수는 이곳으로 보안요원들이 몰려오기 전에 얼른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계단 쪽으로 도망칠까봐 이쪽으로도 사람이 온 모양이다.
반태수는 허공으로 훌쩍 떠올랐다. 애초에 이곳에 온 이후 발을 바닥에 디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예전에 겪었던 것처럼 바닥으로 가해지는 무게를 감지해 위치를 알아내는 장치가 되어 있을지.
계단 천장에 거의 붙다시피 해서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보안요원들이 반태수를 지나쳐 우르르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층에 도착한 반태수는 건물 자체가 봉쇄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건물 외벽을 전부 강철로 막아버린 것이다.
유사시에 이런 식으로 건물을 봉쇄할 수 있게 준비해둔 모양이다.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로비에 낯익은 사람이 나타났다.
사이먼과 미셸이었다.
그리고 지하에 갔던 보안요원들 중 일부가 1층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