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 제닉스 테크놀로지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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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희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출근길을 나섰다.
어제도 정말 즐거웠다.
반태수와 함께 하는 뉴욕 밤거리 산책도 좋았고, 같이 먹은 저녁식사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텔로 돌아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마셨던 커피는 정말로 좋았다.
그 이후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반태수와 밤을 함께 하면 마치 정말로 둘이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떨어져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 어제의 그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반태수가 미리 준비해 놓은 옷이었다.
자신이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는 것이 마음 쓰였는지 미리 새 옷을 준비해 두었다.
지금 입은 옷이 바로 그것이다.
디자인도 재질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약간 특이하면서도 새로운 디자인의 옷이었다. 또한 재질도 특별했다. 어찌나 부드럽고 가벼운지 너무나 편하고 포근했다.
백진희가 입은 옷은 반태수가 허리띠 아공간에 보관하고 있던 옷 중 하나였고, 이면세계에서도 뛰어난 디자이너가 만든 옷이기도 했다.
이면세계에서 인연을 맺은 아네스와의 경험을 통해 밤을 함께 지낸 여자에게 새 옷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옷을 준 것이었다.
물론 그런 자잘한 진실이야 반태수 혼자 알고 있으면 될 일이다.
백진희는 오늘따라 더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했다.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수시로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내 회사에 도착했다.
빌딩 로비로 들어서는데,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백진희에게 꽂혔다.
‘오늘따라 좀 심하네.’
안 그래도 평소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달라붙는다. 한데 오늘은 그게 너무 심했다.
달라진 거라고는 반태수와 밤을 함께 보내고, 아침에 이 옷으로 갈아입은 것뿐인데.
‘설마 옷 때문인가?’
반쯤은 사실이다. 이 옷은 그냥 옷이 아니라 특별한 재질로 이루어진 실을 짜서 만든 옷이니까.
사용자의 매력을 더 높여주고, 옷을 입은 사람이 돋보일 수 있는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는 없다.
나머지 반은 반태수와 마력을 섞으면서 달라졌기 때문이다.
마력을 섞으면, 마력뿐 아니라 육체에도 그 영향을 미친다. 이제 슬슬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옷과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반응이 증폭되었다.
아무튼 백진희는 평소와 좀 다른 느낌을 받으며 보안 검색대를 통화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23층에 내려 연구실로 들어가니, 다들 일찍 출근해서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얘기 중이었다.
기공술사들도 전부 모였다.
한데 그들의 모습이 좀 이상했다. 정확히는 사이먼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그 두 사람은 사이먼을 살짝 경계하고 있었다.
백진희가 그쪽을 바라보자, 가장 먼저 사이먼이 반응을 보였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 백 팀장, 오늘따라 훨씬 매력적인데? 어때? 오늘 끝나고 같이 한 잔?”
백진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어제 한 말과 거의 흡사하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의 친구가 놀러 와서 당분간 시간을 낼 수 없다고까지 말을 했는데 왜 저런단 말인가.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한국에서 놀러온 친구 때문에 당분간 친구하고만 놀 거라고.”
“친구? 그럼 친구까지 같이 보면 되잖아? 클럽 어때? 내 친구들도 데려올 수 있는데. 짝 맞춰서 놀면 좋잖아.”
거기까지 들은 백진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사이먼, 괜찮아요?”
사이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양 팔을 살짝 벌렸다.
"나? 괜찮은데? 보면 알잖아? 아주 멀쩡해. 평소와 다를 거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평소와 좀 다르다는 뜻 아닌가요? 솔직히 말해보세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나 참. 진짜 아니라니까? 안 그래?”
사이먼이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같이 얘기하던 두 명의 기공술사를 보며 물었다.
두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사이먼, 내 생각에는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뭐? 너도 날 정상이 아니라고 보는 거야?”
"당연하잖아, 사이먼. 너 최근 며칠 기억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바로 어제 했던 얘기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잖아."
“뭐라고?”
사이먼이 충격 받은 표정으로 기공술사를 바라봤다.
"내가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 한다고?”
사이먼은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날짜부터 확인했다. 너무 당연해서 굳이 확인하지 않는 것이 바로 날짜와 요일이다.
확인해보니 날짜가 너무 많이 지나 있었다.
"벌써 금요일이라고?”
자신이 어제 출근했을 때가 월요일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화요일인 줄 알았다.
한데 무려 3일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지난 3일 동안 내가 뭘 했지?”
사이먼의 물음에 백진희가 대답해 주었다.
"평소와 똑같았죠. 테스트, 개선, 다시 테스트. 그리고 오늘 저한테 한 말도 똑같이 했어요. 바로 어제."
"어제? 어제까지는 멀쩡했단 말이네?”
사이먼의 얼굴에 드리운 혼란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자신은 어제 무슨 일을 당한 것이 분명하다. 직원들의 반응을 보건대, 어제 퇴근 후에 일을 당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이상했지.’
생전 처음 보는 곳에 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확인하니 굉장히 위험한 우범지대였다.
그곳은 자신이 평생 갈 일이 없는 장소였다.
"나 아무래도 몸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오늘 하루 쉴게.”
사이먼은 피곤한 표정으로 백진희를 보며 말했다.
백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쉬세요. 병원에 꼭 가보시고. 제닉스 병원으로 가야 하는 거 아시죠?”
제닉스 병원으로 가면 회사에 남은 개인 데이터와 연동하기에 더 효과적인 치료와 검진이 가능했다.
당연히 비용도 들지 않고.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알았어. 병원, 꼭 가볼게. 백 팀장이 걱정해주는 걸 보니 가끔 아플 때도 있어야겠는데?”
사이먼은 그런 말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백진희를 비롯한 직원들이 잠시 그를 쳐다봤지만, 이내 평소의 일과로 돌아갔다.
사이먼이 있건 없건, 회사 일에는 큰 상관이 없었다. 사이먼에게 붙던 연구원들은 둘로 나뉘어 다른 기공술사들에게 붙었다.
***
반태수는 백진희를 따라 제닉스 테크놀로지에 들어갔다가 사이먼을 따라서 다시 나왔다.
왠지 따라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보통 이런 감은 틀리는 법이 별로 없다.
사이먼은 빠르게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더니 자신의 차에 탔다.
고가의 2인승 스포츠카였는데, 반태수는 지붕에 앉았다.
우르릉!
천둥 같은 배기음과 함께 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주차장을 나서서 빠르게 시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뉴욕을 벗어나려는 것 같았다.
반태수는 차 지붕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차 안에서 사이먼이 뭘 하는지 가만히 지켜봤다.
주변 차량이 확 줄어들자, 사이먼은 전화기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미셸, 접니다. 사이먼.”
사이먼의 어조는 굉장히 정중했다.
반태수는 마킹에 좀 더 마력을 추가해 상대방의 말도 체크했다.
- 이 시간이면 회사에서 얌전히 일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거죠? 배경 소리를 보니 차를 타고 이동 중인 것 같은데?
"일이 생겨서 연락했습니다. 지금 그쪽으로 가는 중이고요.”
- 이리로 온다고요? 심각한 일인가요?
"예. 심각한 일입니다.”
사이먼은 어젯밤에 낯선 곳에서 깨어난 얘기와 자신이 3일간의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차분히, 그리고 아주 상세히 설명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미셸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 그래서 이리로 오는 거로군요. 녹화 영상을 확인하려고.
“예. 이럴 줄 알았으면 온라인으로 연결해 놓을 걸 그랬어요.”
- 그건 안 되죠. 제닉스를 무시하면 큰 코 다쳐요. 거기, 보통 회사가 아니라는 건 사이먼이 더 잘 알잖아요?
"그거야 그렇죠.”
아마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면 무선 신호를 잡아내 바로 추적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까발려졌겠지.
또한 온라인으로 연결하려면 장비가 달라진다. 다른 장비를 차고 제닉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무튼 저장된 영상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영상 정보를 뽑아간다는 건 알지만, 지금은 느낌이 안 좋아요.”
- 알았어요. 그럼 준비해 놓을 테니 천천히 오세요.
"예. 이따 보죠.”
사이먼은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모두 들은 반태수는 역시 따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일 방치했다면 자신이 사이먼에게 한 짓을 고스란히 들켰을 것 아닌가.
한동안 달리던 차는 긴 도로에 접어들었다.
도로변에 차를 세울 만한 곳도 많고 차도 잘 보이지 않는 도로였다.
즉, 반태수가 일을 벌이기 딱 좋은 도로라는 뜻이다.
반태수는 바로 마법부터 펼쳤다. 일단 차를 세우고, 사이먼이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꽈앙!
강한 충격과 함께 차가 크게 흔들렸다.
사이먼은 깜짝 놀라 차를 세웠다. 차량 뒤쪽에서 소리가 났으니 거기 뭔가 문제가 생겼으리라.
얼른 차에서 내려 뒤쪽을 확인했는데, 멀쩡했다.
"바닥이 문제인가?”
바닥을 확인한다기보다는 아래쪽을 확인하려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 순간 반태수가 옆에 나타나 마법을 펼쳤다.
마법진이 나타났다가 빛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 빛가루가 사이먼 위로 쏟아졌다.
사이먼은 허리를 숙인 채 앞으로 슥 고꾸라졌다.
반태수는 그의 뒷덜미를 잡아 머리를 바닥이 처박지 않게 해주었다.
그의 몸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다. 이제부터 그걸 찾아야 한다.
영역화를 사이먼의 몸에 집중해서 펼쳤다.
막대한 양의 정보가 반태수의 뇌리에 쏟아져 들어왔다.
사이먼의 옷이나 악세서리에는 아무 장치도 없었다.
전자장치도 없고 마력도 없었다.
사이먼의 몸속을 확인하는데, 몸에도 별다른 전자장치가 보이지 않았다.
한데 분명히 카메라 얘기를 했고, 그 안에 든 데이터를 뽑아낸다고 했으니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어야 한다.
‘하긴, 생각해보니 평범한 카메라였다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지도 못했겠지.’
반태수는 좀 더 집중해서 세심하게 사이먼의 몸을 확인했다.
그리고 뭔가 특이한 부분을 발견했다.
몸 내부에 진짜 육체와 괴리된 듯한 부분이 있었다.
다른 곳에 비해 신경세포가 많이 포함된 단백질 덩어리였는데, 상당한 양의 전기신호가 흐르는 곳이었다.
그런 이상한 부분이 몸 곳곳에 있었다.
그냥 대충 살펴서는 결코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하게 자리 잡은 세포덩어리였다.
‘설마…… 이거였어?’
그 세포덩어리가 몇 가닥의 신경세포에 의해 눈, 귀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과 귀에도 그 비슷한 세포덩어리가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왠지 오싹했다.
아무튼 의심스러운 부분을 발견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한다.
아마 저 단백질 덩어리가 저장공간인 듯했다.
반태수는 아주 가느다란 마력의 실을 만들어 사이먼의 몸에 꽂아 넣었다.
사이먼의 몸으로 들어간 마력의 실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더니 각각 다른 단백질 덩어리에 꽂혔다.
단백질 덩어리에 꽂힌 마력의 실 끝에서 작고 정밀한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중요한 건 정확히 이 단백질 덩어리만 죽여야 한다는 점이다.
반태수는 아주 정밀한 술식을 계산해 마법진을 그렸다.
정확한 감지를 통해 딱 단백질 덩어리만 범위에 포함시킨 다음, 전격을 쏟아냈다.
파지직!
여러 개의 단백질 덩어리가 동시에 전격에 잠겼다.
기능 자체를 박살 내야 하기 때문에 너무 약한 전격을 쓸 수는 없었다. 이 역시 정확한 계산을 통해 술식을 구성했고,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런데 이렇게 방치해도 되나?’
새까맣게 탄 단백질 덩어리가 몸에 박혀 있는데, 과연 아무 부작용도 일으키지 않을까?
뭔가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반태수가 거기까지 신경 써줄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만에 하나의 가능성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 것이니까.
사실 계속 쫓아가서 사이먼을 조사하기도 전에 그곳을 박살 내버려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생체 연구를 통해 제작한 장비들을 확인했으니까.
아마 사이먼의 목적지에 가면 관련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 생체 조직 연구가 지지부진한데, 이런 것이 있으면 나름의 돌파구가 되리라.
아무튼 사이먼의 단백질 저장 장치를 모두 박살 낸 반태수는 가볍게 전격을 튀겨 사이먼을 깨웠다.
왜곡으로 가렸기에 옆에서 깨워도 별 상관없었다.
"끄응.”
사이먼이 앓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하, 진짜. 나 요즘 왜 이러는 거지?”
아까 허리를 숙일 때 살짝 현기증이 오는 것 같더니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젠장. 설마 또 기억이 날아간 건 아니겠지?”
방금 전의 기억으로는 차 뒤에서 뭔가 큰 소리와 충격이 느껴져서 나왔다가 정신을 잃은 걸로 보이는데, 실제는 어떤지 모르겠다.
사이먼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차에 탔다.
굉음과 함께 차가 출발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정신을 잃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사이먼은 그렇게 두 시간을 달린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으리으리하네.’
사이먼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연구단지였다.
연구단지 주변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여긴 딱 연구단지만 조성된 곳이었다.
경계는 지나칠 정도로 삼엄했다.
반태수는 사이먼을 따라 연구단지 안쪽으로 쭉 들어갔다.
어느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지는 곳이 나타났다.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으로 빙 둘러싸인 곳이었는데, 철조망 곳곳에 망루가 설치되어 있고, 그곳에 기관총이 거치되어 있었다.
들어가는 절차도 굉장히 길고 복잡했다.
사이먼은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안으로 들어갔다.
반태수는 그냥 날아서 들어갔고.
안쪽 건물 입구에 늘씬한 금발 여자가 사이먼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셸, 왜 나와서 기다려요? 안에 있지.”
사이먼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셸은 굉장한 미인이었다.
반태수는 미셸을 확인하고는 살짝 놀랐다.
‘기공술사가 또 있네?’
미셸은 기공술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