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 제닉스 테크놀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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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제법 크네.’
반태수는 백진희가 들어가는 빌딩을 보며 살짝 감탄했다.
굉장히 높은 고층 빌딩이었다.
로비로 들어가는 입구 위에 금속으로 만든 제닉스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이 번쩍번쩍 빛났다.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빌딩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다들 바쁜 걸음이었는데, 반태수는 거기 섞여 슬쩍 안으로 들어갔다.
‘글락 그룹보다 더하네.’
일단 로비로 들어가니 무장한 경비원이 곳곳에 서서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당장 총을 갈겨댈 것만 같았다.
그저 아침 출근시간일 뿐인데 경비원들이 뿌려대는 투기와 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로비 안에 사람이 그렇게 많았지만 말소리가 거의 없었다. 아주 조용했다.
다들 이런 분위기가 익숙한지 별로 무서워하거나 긴장하지 않고 그저 서두르기만 했다.
로비 중앙에 보안검색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총 다섯 개의 검색대를 통해 사람들이 지나갔다.
검색대를 지키는 보안요원도 무장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전투복을 입고 허리춤에 총을 찼다. 그리고 가슴 어림에 수류탄도 매달려 있었다.
반태수는 순간 저 전투복을 확인하기로 했다.
백진희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반태수는 빠르게 영역화를 집중해 보안요원이 입은 전투복을 스캔했다.
굳이 스캔한 이유가 있었다.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도구는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마법이 가미된 건 아니었다. 전투복의 재질이 특별했다.
‘오자마자 찾았네. 저렇게 잘 써먹고 있었구나.’
하긴, 이렇게 특별한 재료를 오랫동안 연구했을 텐데, 이 정도도 이용하지 못하면 말이 안 된다.
마력을 내포한 물질에 전기신호를 줘서 다양한 효과를 활성화 하는 방식으로 전투복을 만들었다.
그냥 단순한 전기 신호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마력을 자극할 수 있을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나온 신호가 분명했다.
몇 가지 파장을 절묘한 순서로 보내서 마력을 자극했다.
반태수도 이런 식으로 마력을 자극할 수 있을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어차피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생각할 이유도 없었고.
아무튼 지금은 마력을 자극해 전투복의 방어 능력만 켜져 있었다.
대충 파악해 보니 수류탄이 터져도 충격을 전부 전투복이 흡수해줄 수 있을 정도였다.
‘마력이 흩어진 패턴을 보니 근력 강화 기능도 있는 것 같고 ’
신호만 전기로 하고 실제 기능을 작동하는 건 마력이기 때문에 배터리를 무리해서 장착할 필요도 없었다.
반태수는 거기까지 확인한 다음 얼른 엘리베이터에 탔다.
허공에 뜬 채였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낄 필요는 없었다. 물론 투명한 상태로 부대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반태수는 백진희가 내릴 때 같이 내렸다.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좀 궁금해서였다.
백진희는 현재 지구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진짜 제대로 된 능력자가 되었으니까.
그러니 그녀가 하는 일도 특별하지 않겠는가.
백진희가 내린 곳은 23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벽이 있었고, 벽을 따라 옆으로 조금 걸어가니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층 전체를 쓰는 듯했다.
그곳에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십여 명 있었고, 연구원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세 명 있었다.
반태수는 그 세 명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기공술사들이네.’
좀 더 흥미로워졌다. 백진희가 기공술사들과 일하고 있었다니 말이다.
그녀가 말하기를 기공술사들이 각자의 기공술을 발전시킬 방향을 함께 연구하고 그걸 토대로 회사에서 초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했다.
“오! 백 팀장, 오늘 일찍 나왔네?”
기공술사 중 한 명이 환하게 웃으며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세 명의 기공술사 중에서 마력이 가장 많은 놈이었다. 가진 마력회로도 가장 크고 복잡했고.
나이도 젊어 보였다.
그리고 그놈의 눈과 표정에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저놈, 백진희에게 욕망을 품고 있다.
눈빛에 탐욕과 정욕을 비롯한 추잡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사이먼.”
사이먼이라 불린 사내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늘따라 더 매력적인데? 어때? 오늘 일 끝나고 같이 한 잔?”
백진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안 돼요. 약속이 있어서.”
"약속? 누구랑? 설마 저기 있는 두 놈 중 한 명은 아니겠지?”
"에이, 회사 사람 아니에요.”
"회사 사람이 아니라고? 그동안 한 번도 회사 사람이 아닌 자하고 만난 적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설마 거짓말은 아니지?”
“제가 왜 거짓말을 해요. 한국에서 저 만나려고 친구가 놀러왔어요.”
"오! 한국 친구!”
사이먼의 눈이 번득였다.
"그럼 나도 같이 만나면 안 되나? 몇 명인데? 인원이 많으면 저기 있는 두 놈도 같이 끼어서 만나면 되잖아. 짝 맞춰서 즐겁게 놀자고. 내가 잘 아는 클럽 있으니까 거기에서 신나게. 어때?”
아무래도 사이먼은 백진희의 친구가 여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백진희는 친구가 남자라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저도 오랜만에 보는 친구라 미국에 있을 동안은 둘이서만 놀 거예요.”
"에이, 뭘 그리 빡빡하게 굴어? 친구 의사도 물어보라고. 지금 당장 전화해 봐. 오늘 저녁에 두 명 정도 같이 데리고 가도 되냐고.”
백진희의 말에서 친구가 한 명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사이먼이 얼른 짝을 맞추기 위해 한 명을 끌어들였다.
저쪽에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이 당장에라도 합류하겠다고 소리칠 것만 같았다.
백진희는 단호히 말했다.
"자, 이제 일 시작해야죠.”
짝짝!
손뼉을 두 번 치자, 은은한 마력 파동이 일어나며 연구실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대번에 분위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반태수는 그걸 보고는 살짝 놀랐다.
역시 재능이 있었다. 마력 다루는 솜씨가 상당하지 않은가.
"시작합시다.”
백진희의 말에 연구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할 일은 기공술사들이 기공술을 쓰면 그걸 데이터화 해서 기록하고 개선 방향을 찾는 것이다.
반태수는 그 과정 자체가 흥미로워서 계속해서 관찰했다.
각 기공술사마다 네 명의 연구원이 붙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있었다.
기공술사들은 몸에 전극을 붙이고 움직이기도 하고 연구원이 내주는 금속판에 힘을 투사하기도 했다.
‘나중에 저들이 정리한 데이터를 확보해야겠네.’
원하면 언제든 들어와서 가져갈 수 있으니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아마 보안이 굉장히 철저하겠지만, 방법이야 많았다.
반태수는 기공술사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들이 몸에 새긴 마력회로와 움직일 때마다 활성화되는 부분들도 전부 기억해뒀다.
이 모든 것들이 나중에 반태수가 직접 마력회로를 만들 때 밑거름이 된다.
그렇게 한창 보고 있을 때, 사이먼이 갑자기 하던 행동을 멈췄다.
백진희가 사이먼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시죠?”
사이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기분이 더러워.”
“예?”
백진희는 당황스러웠다.
설마 아까 친구를 같이 만나자는 걸 거절해서 이러는 걸까?
하지만 그녀가 아는 사이먼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좀 느끼하고 가끔 짜증이 날 정도로 들이대고, 인성에도 약간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을 할 때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한데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장난이나 괜한 트집을 잡는 게 아니야. 정말로 기분이 더럽다고.”
백진희는 표정에서 당황을 지우고 차분히 사이먼을 쳐다봤다.
사이먼은 누군가를 찾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휙휙 돌렸다.
“이런 기분, 예전에도 느낀 적이 몇 번 있지.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어.”
다들 하던 일을 중단하고 사이먼을 보고 있었다.
사이먼은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고 가만히 주변을 훑었다.
"이런 더러운 기분을 느낄 때마다 날 몰래 훔쳐보는 놈들이 있더라고.”
반태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사이먼의 마력회로를 면밀히 살펴봤다. 혹시 아까와 달라진 점이 있는지 말이다.
‘마력회로를 따라 흐르는 마력의 속도가 미미하게 빨라졌어.’
아마 사이먼의 기공술에 감각을 높이고 감지와 관계된 효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사이먼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계속 두리번거렸다.
"미치겠군. 보통은 어디쯤에서 날 염탐하는지 느낌이 오는데, 지금은 마치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아. 기분만 더러워지고 느낌이 안 와."
이쯤 되면 사이먼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누군가가 여길 감시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내 느낌에는 그래.”
“도청장치나 카메라 같은 것이 있는지 확인해야겠어요.”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거라면 내가 찾지도 못했지. 누군가가 직접 날 보고 있는 거야. 이 안에 있어.”
연구원 중 하나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계속 있긴 뭐가 있다는 거야? 설마 투명인간이라도 있다는 건가?”
기공술사인 사이먼이 그 말을 못 들었을 리 없다. 그가 손가락을 튀겼다.
따악!
어찌나 소리가 큰지 다들 깜짝 놀라 사이먼을 바라봤다.
"그거야! 투명인간!”
다들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난데없이 투명인간이라니.
하지만 사이먼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사방을 스윽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 안에 투명인간이 있는 게 분명해. 그놈이 날 지켜보고 있다고.”
황당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사이먼은 회사에서 세 명밖에 없는 기공술사였으니까.
게다가 그 세 명 중에서 가장 강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공술사이기도 했다.
제닉스 테크놀로지의 CEO, 혹은 대주주라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사이먼이었다.
"그래서 어쩌려고요? 원하는 게 정확히 뭐죠?”
백진희의 물음에 사이먼이 모두를 이끌고 벽에 붙었다.
“다들 바짝바짝 붙으라고. 아무도 끼어들지 못하게.”
백진희는 사이먼의 요청 때문에 그와 바짝 붙어서 서야 했다.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함부로 몸을 건드리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참고 넘어갔다.
"진심으로 투명인간이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당연히 진심이지. 아직도 그 더러운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어. 아직 남아있다고.”
"그래서 이제 어쩔 거죠?”
"어쩌긴. 여기 빼고 모조리 갈아 엎어버리면 되지.”
사이먼의 마력회로 곳곳이 활성화되었다.
그가 손바닥을 천천히 앞으로 뻗었다.
마력회로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갖가지 속성을 띠며 사이먼의 손바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꽈르르르릉!
강력한 파괴력을 담은 힘이 방 전체를 꽉 채울 기세로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해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파괴적인 힘이 공간을 점령해 나갔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반태수의 눈이 반짝였다.
기공술사의 새로운 능력을 확인했다. 새로운 마력회로의 쓰임새 하나를 또 얻었다.
반태수는 마력을 뽑아내 자신의 몸을 촘촘하게 채웠다.
몸을 전부 채운 마력이 몸 주변도 장악했다. 마치 물방울 모양의 마력 속에 들어간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투과 속성을 가진 마력이었다.
때마침 다가온 힘이 반태수의 마력에 닿았다.
그 파괴적인 힘이 놀라울 정도로 아무 영향도 못 미치고 반태수의 몸을 투과해서 지나가 버렸다.
꽈과과과광!
반대쪽 벽에 부딪힌 파괴적인 힘이 벽을 무너뜨릴 기세로 힘을 폭발시켰다.
실제로 벽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금이 거미줄처럼 쩍쩍 갔다.
이대로 두면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하, 이놈 봐라?”
결과를 확인한 사이먼이 인상을 팍 썼다.
아직도 기분이 더러웠다. 한데 방금 그 일격으로도 그놈을 잡지 못했다.
그저 단순히 파괴력만 담아 힘을 내보낸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사이먼이 익힌 기공술 특유의 감지 능력까지 담겨 있었다.
그러니 그 힘에 닿으면, 설사 파괴력을 견뎌낸다 하더라도 사이먼이 대번에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야 정상이다.
한데 그게 되지 않았다.
솔직히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사이먼, 이제 해명이 필요할 거 같은데요?”
백진희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벽이 부서졌다.
이걸 보고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사이먼의 해명이 필요했다.
사이먼은 백진희의 얼굴에 흐르는 싸늘함을 보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야, 믿어줘. 진짜 여기에 투명한 놈이 있다고. 대체 무슨 수로 몸을 투명하게 만든 거야? 그런 기공술이 있나? 아니면 경쟁사에서 개발한 새 기술인가?”
“하아.”
백진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참는 건 여기까지였다.
"사이먼. 명확한 해명이 필요해요. 전 오늘 벌어진 일에 대해 보고할 의무가 있어요. 명확히 해명하지 않으면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할 수밖에 없어요.”
사이먼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해. 정확히 내가 한 말과 행동 전부 보고해도 돼.”
사이먼의 태도에 백진희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설마 저 능력이 진짜인가? 정말로 투명인간이 이 안에 있는 거야?’
백진희는 겉으로는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이제 일을 시작해도 되나요?”
"안 되지. 투명인간이 지켜보고 있는데 내 기공술을 함부로 보여줄 수는 없지.”
사이먼의 지독한 고집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공술사가 하기 싫다는데.
연구원들이 나머지 두 기공술사의 표정을 확인했는데, 그들 역시 사이먼의 말대로 더 이상 실험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반태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사이먼을 쳐다봤다.
반태수의 왜곡은 그냥 보통 왜곡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뿐 아니라 기척과 소리도 전부 죽여 버린다.
그런데도 사이먼은 반태수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다.
반태수는 존재감을 지워봤다.
먼저 마력의 존재감을 지우고 사이먼의 반응을 확인한 다음, 육체의 존재감도 지워버렸다.
그러자 사이먼의 반응이 달라졌다.
“뭐야, 사라졌는데? 아무래도 나간 모양이야.”
“나갔다고요?”
사이먼이 씨익 웃었다.
"내가 일 안 한다고 하니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사라진 거지.”
사이먼은 백진희를 보며 말했다.
"보고할 때, 투명인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꼭 전해줘. 내가 말했다고 하고.”
백진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그러죠.”
투명인간 해프닝은 그렇게 끝났다.
사이먼은 다시 일을 시작했고, 퇴근할 때까지 성실하게 연구에 협조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반태수는 기공술에 대한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슬슬 단순한 마력회로를 몇 개 정도 만들어볼까,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퇴근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