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 기공술사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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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는 오충규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반태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난 유정섭이라고 하네. 자네가 카페 위자드 사장인가?”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충 맞습니다. 커피 레시피 개발한 게 나니까.”
유정섭은 묘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자네 뭔가 믿는 구석이 있군? 지나칠 정도로 담담한데?”
“뭐, 대충.”
반태수는 똑바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저 기공술사가 과연 자신의 힘을 꿰뚫어볼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모르는 것 같은데, 좀 더 신경 써서 집중하면 이 정도는 꿰뚫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유정섭은 반태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오충규가 신경 쓰여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오충규를 바라봤다.
오충규가 이때다 싶어서 얼른 물었다.
"저기 어르신. 제가 몸에 뭘 달고 있는 겁니까? 전 아무리 봐도 안 보여서……."
"오 대표. 근래 뭐 특이한 약 같은 거 먹은 적 있습니까? 특이한 약재로 빚은 한약 같은 거 말입니다.”
“아, 아뇨. 최근 약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저야 워낙 건강한 체질이어서……."
오충규는 말을 하다가 대충 얼버무렸다. 건강한 체질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 말을 갖다 붙이기가 뭐했으니까.
지금은 허약한 체질이 되었다. 아니, 허약하다는 말만으로는 모자랄 정도로 몸 상태가 영망진창이었다.
"그렇습니까? 이상하군요. 오 대표 몸에 기력을 갈취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기, 기력을 갈취한다고요? 그럼 무슨 기생충 같은 겁니까?”
유정섭이 고개를 저었다.
“벌레는 아닙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 같으니. 한데 수가 좀 많군요. 나도 그저 희미하게 느껴지는 거라 몇 개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반태수는 그 말에 살짝 실망했다.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솔직히 저 정도만 해도 대단한 능력이었다.
지구의 다른 능력자들을 생각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오충규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유정섭에게 물었다.
"호, 혹시……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 대가는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글쎄요. 해보지 않고는 모르겠군요.”
유정섭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충규의 몸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마력이 몇 차례나 흘렀다.
"이거…… 아무래도 누군가가 일부러 심어놓은 것 같은데…… 혹시 짐작 가는 사람 없습니까?”
유정섭의 질문에 오충규가 입을 다물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짐작 가는 사람?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조차 없다.
자신이 골로 보낸 사람이 대체 몇인가. 세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돈만 쪽 빨아먹고 나면 그 뒤로는 생각도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당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에게 원한을 가졌으리라.
오충규의 생각을 읽었는지 유정섭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기공술사가 엮인 것 같습니다.”
"예? 기공술사 말입니까? 하지만 우리나라에 기공술사는……."
우리나라에 기공술사는 세 명뿐이다. 당연히 오충규는 그 셋의 얼굴을 다 알고 있다.
그 중 유정섭을 빼고는 누구도 만난 적이 없다. 또한 원한을 가진 적도 없다.
"우리나라에 기공술사가 셋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좀 다릅니다. 은거한 채 활동하지 않는 기공술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 기공술사들이 키우는 제자들도 있고.”
오충규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대체 어떤 기공술사가 자신에게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아니지. 나한테만 한 것이 아니지.’
이종필과 최상욱도 당했다. 그리고 회사의 모든 직원이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 최상욱의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어르신, 혹시 저기 있는 애들도 좀 봐주실 수 있습니까?”
유정섭은 마력이 번득이는 눈으로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한 번씩 살펴봤다.
그리고 놀라운 결과를 확인했다.
“저기 앞에 앉은 카페 사장 빼고는 전부 같은 방식으로 당했습니다. 이거 놀랍군요. 이 정도 인원을 건드렸으면 분명히 행적이 드러났을 텐데?”
"사실 더 있습니다. 저희 회사 직원들도 전부 당했습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직원의 친구들도 당했습니다. 원래 손질에 보태려던 친구들이었는데 이렇게 되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유정섭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럼 더 대단하군요. 아무래도 나보다 윗줄의 고수인 듯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 대표의 몸은 내가 한 번 봐드리죠.”
"감사합니다!”
오충규는 유정섭의 말에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 인사했다.
“지금 보니 좀 급한 것 같군요. 이리 가까이 오시죠.”
오충규가 얼른 다가갔다.
반태수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과연 정말로 저걸 고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만일 위상을 뒤집어서 마법을 펼쳤다면 저렇게 감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저렇게 감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반태수가 예상했던 것보다 기공술사의 능력이 제법이었다.
유정섭은 정확히 반태수가 심은 코어가 있는 곳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의 마력 회로를 따라 마력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굉장히 느릿느릿 흘렀는데, 유정섭의 의념이 닿으면서 속도가 올라간 것이다.
몸속 마력회로는 상당히 복잡했는데, 마력 흐름 속도가 올라간 것은 그 중 일부였다.
나머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느릿느릿 흘렀다.
‘저게 활성화로구나.’
아마 회로의 특정 부분마다 각각의 효능이 따로 있고, 그 부분이 활성화하면서 효능이 발현하는 모양이다.
‘오오!’
반태수의 눈이 반짝였다.
유정섭의 손바닥으로 반태수가 심은 코어의 마력이 조금씩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코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코어를 없애는 건 그저 마력을 뽑아내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마력을 투사해 코어를 파괴하거나 아니면 마력을 빨아들일 때, 코어 자체를 흡수하도록 마력을 깊숙하게 컨트롤해야 한다.
마력을 투사해 코어를 파괴하는 건 굉장히 정밀한 조절 능력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코어뿐 아니라 코어 주변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코어를 파괴하려면 제법 강력한 마력을 써야 하는데, 그걸로 주변을 공격하면 장기가 터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두 번째 방법을 써야 하는데, 저 기공술사에게는 그 정도 역량은 없는 모양이다. 계속 마력만 빨아들이는 걸 보면.
“후우우.”
유정섭이 길게 숨을 내쉬며 손바닥을 뗐다.
오충규가 다급히 물었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유정섭이 고개를 저었다.
“내 실력으로는 무리입니다. 아무래도 이걸 심은 기공술사를 찾거나 더 실력이 뛰어난 기공술사에게 맡겨야 할 듯합니다.”
“아……!”
오충규의 얼굴에 절망감이 어렸다. 그리고 옆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도 똑같이 변했다.
"대체 왜 우리한테……."
다들 너무나 억울했다. 그 정체불명의 기공술사가 왜 자신들을 노렸겠나.
이게 전부 오충규 때문이다.
유정섭은 냉정하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까지 해준 것만으로도 자신은 충분히 할 만큼 했다. 이제 남은 건 오충규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이놈 봐라?’
유정섭은 반태수의 눈빛을 보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자, 이제 대화를 시작해 보지. 자네 혹시 기공술사라는 말 들어봤나?"
반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내가 바로 기공술사네. 쉽게 설명하면…… 혹시 무협소설 읽어봤나? 거기 나오는 무림인을 생각하면 되네. 내공을 쌓아서 그걸로 힘을 발휘하니까.”
"진짜 내공을 쌓습니까?”
유정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내공을 쌓네. 그걸 이용하면 이런 걸 할 수 있지.”
유정섭이 멀찍이 떨어진 드럼통을 향해 손바닥을 훅 내질렀다.
꽝!
드럼통이 거세게 흔들렸다. 확인해 보니 한가운데가 살짝 우그러지며 들어갔다.
‘위력은 별 거 없네.’
반태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정섭의 마력회로가 방금 움직인 경로를 기억했다.
이 모든 데이터가 나중에 마력회로를 분석하고 그걸 응용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별로 놀라지 않는군.”
“아뇨. 충분히 놀랐습니다.”
진짜 충분히 놀랐다. 위력이 너무 약해서. 최소한 드럼통 정도는 뚫어버릴 줄 알았다.
마력의 유동이 만들어내는 위력이 최소 그 정도는 될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한데 유동한 마력의 양과 흐름에 비해 위력이 현저히 떨어지니 어떻게 안 놀랄 수 있겠는가.
유정섭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기공술사네. 당연히 강한 힘을 내기 위해서는 내공을 많이 쌓아야하지. 한데 내공 쌓는 일이 그리 쉽지가 않다네. 굉장히 느려.”
거기까지 말한 유정섭이 잠시 반태수의 표정을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그때 자네가 만든 커피를 경험했네. 사실 내 제자들이 경험했고, 난 나중에야 접했지.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네. 혹시 뭔지 짐작 하겠나?”
"내가 만든 커피를 마시면 내공이 잘 쌓이기라도 합니까?”
"정확하네. 보통 내공 수련을 하면 평소에는 거의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미미한 양이 쌓인다네. 한데 커피를 마시고 수련하면 그게 느껴질 정도가되네.”
"그럼 커피 사다 마시면 되겠네요.”
"그게 그렇지 않네. 느낄 수 있을 정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양이 미미하거든. 실제로 큰 의미가 없네. 어차피 느리게 쌓이니까.”
반태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됩니까? 별로 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좀 더 근원이 되는 지식을 뽑아내고 싶네. 커피 레시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면 어떤 식으로 내공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알아낼 수 있지 않겠나.”
반태수는 속으로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다.
커피에 있는 마력 때문에 내공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저 기공술사가 말하는 내공이라는 것이 결국은 마력이니까.
하지만 그저 마력만 쑤셔 박는다고 해서 마력 보유량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커피가 그런 효과를 주는 건 레시피에 따라 만드는 과정에서 마력이 몸에 잘 흡수되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력자나 마법사가 커피를 마시면 그렇게 맛있는 거고.
그러니 저 기공술사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보통 노력으로는 안 된다. 제법 공을 들여 연구해야 조금이나마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날 좀 도와주게. 보답은 섭섭지 않게 해주겠네. 돈을 원하면 돈을 주고 다른 걸 원하면 다른 걸 주겠네. 혹시 뭐 원하는 거라도 있나?”
반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알면, 해줄 수 있기는 할까?
"원하는 건 없고, 그것도 안 할 겁니다. 해봐야 소용도 없고.”
“소용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정하네. 자네는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네.”
반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합니다.”
"다시 앉게.”
"싫은데요.”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고는 돌아서서 걸어갔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물론 그냥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온몸에 피로감이 가득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가 나가는 문을 몸으로 막아 버렸다.
"다시 앉으라고 했네.”
이번엔 목소리에 마력이 담겨 있었다. 목소리에 담긴 마력은 상당한 위협을 머금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 들으면 아마 몸을 덜덜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태수에게는 아무 효과도 없었다. 그럼에도 반태수는 걸음을 멈췄다.
유정섭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리로 돌아오게.”
반태수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방향은 문이 있는 쪽이었다.
유정섭이 반태수의 다리를 향해 손을 훅 내질렀다.
그 순간 반태수가 옆으로 한 걸음 이동했다.
퍽!
방금 반태수의 다리가 있던 자리가 움쭉 들어갔다.
유정섭의 눈에 놀람이 어렸다.
그는 연달아 주먹을 내질렀다.
쉬쉬쉬쉬쉭!
똘똘 뭉친 강력한 힘이 반태수를 향해 탄환처럼 우수수 날아갔다.
하지만 반태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틀비틀 상체를 조금씩 흔들고 걸음을 살짝살짝 좌우로 이동하면서 그 모든 공격을 싹 피해냈다.
그제야 유정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유정섭이 빠르게 반태수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몸에 새겨진 마력회로가 맹렬히 돌아갔다.
유정섭의 어깨가 반태수의 등을 노리고 쭉 나아갔다.
반태수가 몸을 부드럽게 회전시키며 그 공격을 흘려냈다.
유정섭의 공격은 끊어지지 않았다.
어깨치기가 실패했지만 그 상태로 몸을 회전시키며 발로 바닥을 크게 쓸었다.
반태수는 한 쪽 발을 슬쩍 올리는 것만으로 그것을 피해냈다. 그리고 살짝 굽혔던 무릎을 쭉 펴면서 발끝을 올려 찼다.
빠악!
유정섭은 턱으로 날아오는 발끝을 간신히 손바닥으로 막아냈다.
한데 그 한 방에 손뼈가 부러졌다.
내공으로 손을 보호했는데도 그랬다.
‘고수!’
유정섭은 크게 경각심을 가지며 뒤로 쭉 물러났다.
반태수는 굳이 쫓아가지 않았다.
"이거 알고 보니 기공술사였군. 그것도 아주 뛰어난. 그럼 그 커피는 영단을 개발하던 와중에 얻어걸린 건가? 설마 영단 제조법까지 있을 줄은 몰랐군.”
반태수는 좀 어이가 없었지만 굳이 정정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저 기공술사도 처리해야 한다.
반태수는 더 이상 유정섭에게 존대를 하지 않았다.
"너, 기공술인지 뭔지 익히면서 사람을 몇이나 죽였지?”
유정섭이 눈을 부릅떴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네가 쓰는 내공인지 뭔지에서 시체 썩는 내가 진동을 해. 넌 못 느꼈나?”
그게 유정섭이 쓰는 마력의 기질이었다.
사람이 가지는 근원적인 마력을 강제로 뽑아서 자신이 취하는 것이다.
아까 오충규의 몸에 심은 코어에서 마력을 뽑아냈던 것도 그런 경험이 많기에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고.
능력자의 마력도 많이 뽑아냈다. 능력자는 마력을 많이 갖고 있어서 더 유용했다.
"애초에 날 보내줄 생각이 없었지?”
반태수의 물음에 유정섭은 대답하지 않았다.
맞다.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 커피를 만들 수 있을 정도면 오랫동안 뽑아먹을 것이 많을 거라 추측했으니까.
"나도 그럴 줄 알았어.”
반태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먹을 내질렀다.
퍽!
유정섭이 허리를 접으며 뒤로 휙 날아갔다.
쿠당탕탕!
바닥을 꼴사납게 구른 유정섭이 급히 일어났다.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 그 공격, 아예 느끼지도 못했다.
유정섭은 복잡하게 움직이며 상대를 공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발을 놀리려는데, 걸음이 꼬였다.
쿠당탕!
또 한 차례 바닥을 굴러야 했다.
"대, 대체 왜……!”
유정섭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내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내공의 흐름이 모두 사라졌다.
그런 유정섭을 향해 반태수가 무심하게 말했다.
"방금 내가 지웠어. 그거 다시 만들려면 고생깨나 해야 할 거야. 뭐, 그럴 시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반태수는 그 말을 남기고 휙 돌아섰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는데 헐레벌떡 달려온 오충규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가 고개를 번쩍 들며 반태수를 올려다봤다.
“절 이렇게 만드신 기공술사가 반태수 님이라는 거 이제 잘 알겠습니다. 제가 하늘을 모르고 건드렸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진짜 착하게 살겠습니다!”
반태수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거 없애면 저거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반태수가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유정섭이 있었다.
그는 경악한 눈으로 자신의 손을 올려서 바라보고 있었다.
유정섭의 손끝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반태수가 쇠약의 저주를 응용해서 만든 부패의 저주를 건 것이다.
오충규가 그걸 보고는 경악해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시발, 저 새끼 때문에 이게 무슨 끌이야. 상대가 기공술사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일을 맡기면 어쩌라는 거야.'
반태수가 오충규를 보며 말했다.
"당분간 지켜보겠어.”
그 말을 남기고 휙 나가버렸다.
오충규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지켜보겠다고? 그럼 앞으로 잘 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건가? 아니면 죽어가는 걸 구경하겠다는 건가?’
사람은 보통 자기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결국 자신이 착실하게 살면 반태수가 용서해줄 거라는 쪽으로 저울추가 넘어갔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착실히 살겠습니다!”
오충규는 몇 번이고 반태수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절을 했다.
“으아아아아!”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공장을 가득 메웠다.
남은 사람들은 그걸 보며 소름이 돋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