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 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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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글락 그룹. 스케일 보소.”
지금 반태수가 서 있는 곳은 도시 중심부와 변두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공원이었다.
에라리스라는 도시에 이런 공원이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큰 규모의 공원이었다.
중요한 건 이 공원이 사유지라는 점이었다.
글락 그룹이 도시 내 리조트 사업을 위해 조성한 공원이었다.
공원 내에 호수까지 있었다.
리조트는 호수에 인접해서 지을 예정이고, 호수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시민들에게 공개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포탈은 호숫가, 그러니까 리조트 공사가 예정된 부지에 있었다.
공사 예정일은 아직 멀었다. 이제 설계를 하는 단계였는데, 그래서 반태수가 개입하기도 편했다.
반태수는 신임 회장의 힘을 이용해 리조트 공사 설계를 변경시켰다.
적어도 포탈은 자신이 혼자 써야 하지 않겠는가.
리조트를 둘로 분리해서 반태수 개인이 쓰는 별장 같은 곳을 따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 별장에 포탈이 포함되는 것이다.
지금은 저렇게 허허벌판에 포탈만 덩그러니 서 있지만, 아마 다음에 올 때는 저 포탈이 건물 안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저 포탈이 있는 곳에 거대한 비행선 격납고를 만들 예정이다.
비행선 격납고는 반태수의 비행선 한 대만 쓸 수 있는 곳과 손님들을 위해 여러 대의 비행선을 동시에 보관할 수 있는 곳으로 나누어 건설할 예정이었다.
반태수의 비행선 격납고에 포탈이 들어가게 되고 말이다.
한동안 그곳을 둘러보던 반태수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비행선이 대기 중이었다.
이제 진짜 크랙톤으로 출발할 시간이다.
***
반태수는 크랙톤으로 돌아가는 길에 개척도시 아리크에 들렀다.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는 본가에 들렀다 와야 한다면서 5대 가문으로 향했다.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른다는데, 무슨 일인지 좀 궁금하긴 했다.
아무튼 반태수는 아리크에 들러서 도시 건설 진척 상황을 확인했다.
여길 떠난 지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도 않은데 제법 진척이 많이 되었다.
사람도 굉장히 많이 늘었고.
케트라 브리저는 눈코 들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반태수가 도착했는데도 바로 만날 수가 없었으니까.
케트라 브리저가 쓰는 천막에 들어가서 30분쯤 기다리고 있으니 그녀가 다급히 들어왔다.
"반!"
케트라 브리저는 기대 이상으로 반가워하며 반태수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반태수는 빙긋 웃으며 그녀를 안고 등을 가만히 토닥이고 쓰다듬어주었다.
보아하니 제법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굵직한 일은 다 해결했고 가문에서의 태클도 별로 없을 테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힘든 일 있으면 말해요. 알잖아요, 나 능력 있는 거.”
케트라 브리저가 반태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저었다.
"으응, 그런 거 아니에요. 힘든 거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한참동안 반태수를 안고 있던 케트라 브리저가 천천히 떨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반태수를 바라봤다.
이렇게 보니 미모가 확실히 사기적이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예뻐졌다. 아마 이것도 마력을 섞은 영향이겠지.
이 정도면 지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미모다.
"또 떠나실 거죠? 언제 가세요? 오늘은 자고 가는 거죠?”
케트라 브리저의 물음에 반태수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 갈 겁니다. 할 말도 좀 있고.”
"할 말이요?”
"일단 앉죠. 커피 안 마실래요?”
커피라는 말에 케트라 브리저의 입에 침이 쫙 고였다.
그녀는 고인 침을 꿀꺽 삼킨 다음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마셔야죠.”
"가기 전에 넉넉히 줄 테니까 마시고 싶을 때 마셔요.”
"고마워요.”
이런 건 빈말로라도 거절하면 안 된다.
두 사람은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별 얘기 없었다.
각자 무슨 일을 했는지 살짝 곁들여서 그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가 다였다.
나머지는 그저 평범한 얘기들로 채웠다.
그리고 할 말이 거의 떨어졌을 무렵, 반태수가 툭 던지듯 말했다.
"혹시 글락 그룹이라고 아세요?”
"당연하죠.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이잖아요. 문어발 기업. 확실히는 모르지만 지사가 100개도 넘는다던데요?”
"유명한 회사였군요.”
"그럼요. 호텔이랑 리조트도 얼마나 유명한데요. 린치필드 가문이랑 쌍벽을 이룰 정도니까 대단하죠.”
“린치필드? 거기 리조트가 유명합니까?"
처음 듣는 얘기였다.
케트라 브리저는 눈웃음을 치며 반태수의 어깨를 손으로 툭 쳤다.
"숲 속 호수에 리조트 세우신다는 분이 그런 것도 모르시면 어떡해요. 반 마법사님은 가끔 보면 남들 모르는 건 잘 알고 남들 아는 건 잘 모를 때가 있어요.”
어쩌겠는가. 이면세계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쪽 세상의 상식이 부족한 것을.
“린치필드 가문이 다스리는 도시, 듀스트론은 휴양의 도시라고도 불려요. 거기 있는 호텔과 리조트의 절반 이상이 린치필드 가문의 소유죠.”
케트라 브리저는 반태수가 관심을 보이자 열심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경치 좋은 도시 쪽에는 린치필드 가문의 리조트가 대부분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경쟁적으로 글락 그룹의 리조트도 꼭 같이 있거든요.”
"재미있네요. 그래서 어느 쪽이 더 좋은데요?”
"그거야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죠. 둘 다 훌륭해요.”
글락 그룹이 얼마나 대단한지 좀 더 알겠다.
리조트 사업은 린치필드 가문의 주력 사업일 것이다.
가신 가문의 주력 사업을 고작 계열사 하나가 맞먹는 것이다.
케트라 브리저가 흥미로운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래서, 갑자기 글락 그룹에 대해 물어본 이유가 뭐죠?”
반태수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번에 내가 거기 회장이 됐거든요.”
케트라 브리저의 눈에 혼란이 깃들었다. 그녀는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어…… 그러니까, 뭐라고요?”
"내가 거기 회장이라고요.”
간신히 머릿속을 정리한 케트라 브리저가 웃으며 반태수의 팔을 툭 쳤다.
"에이,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이번 장난은 인정. 와, 말도 안 되는 건데 이렇게 들으니까 진짜 심장이 뚝 떨어지네요.”
반태수는 좀 신기한 눈으로 케트라 브리저를 쳐다봤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반응도 이해가 가긴 한다. 입장 바꿔서 자신이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도 믿지 못했을 테니까.
“진짜예요.”
반태수의 말에 케트라 브리저가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저 놀리지 말라니까요?”
반태수는 빙긋 웃어주고는 에라리스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핵심만 말하면, 5대 가문의 배신자가 엮인 일을 해결해서 그 보상으로 글락 그룹을 받았어요.”
케트라 브리저가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정말요? 정말이라고요? 정말로 글락 그룹 회장이 되었다고요?”
"정확히는 글락 그룹의 모든 지분을 내가 보유하게 되었죠. 되고 보니까 회장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웬만한 업무는 온라인으로 다 해결할 수 있고.”
케트라 브리저가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가 그녀의 반응을 보며 씨익 웃었다.
"왜요? 글락 그룹 회장이 되었다고 하니까 갑자기 더 멋있어 보여요?”
케트라 브리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퀴무르에도 글락 그룹 지사가 있어요. 거긴 우리 가문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요.”
정확히는 브리저 가문과 글락 그룹 지사가 연계하는 사업이 제법 많았다.
"우리 가문이 퀴무르에 온 것보다 글락 그룹 지사가 더 먼저 생겼거든요. 우리 가문이 퀴무르에서 자리 잡을 때, 글락 그룹 지사가 많이 도와줬어요.”
결과적으로 글락 그룹 지사의 영향력이 퀴무르에서는 상당하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글락 그룹의 각 지사들은 나름대로 그 도시에서 큰 힘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퀴무르와 비슷한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지만, 어쨌든 크고 작은 영향력을 100여 개의 도시에 뿌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힘이었다.
케트라 브리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가문이랑 엮여서 불편한거 있으면 퀴무르 지사를 이용하면 되겠네요. 미리 연락해 둘 테니까, 알아서 이용해요."
"정말…… 정말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얼마든지 그래도 돼요.”
케트라 브리저가 갑자기 반태수를 와락 끌어안았다.
속물 같아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기쁜 걸 어쩌란 말인가.
"고마워요.”
반태수가 그녀를 번쩍 안으며 일어났다.
이제 마력을 정화할 시간이다.
***
개척도시 아리크에서 이틀을 보냈다.
케트라 브리저와 붙어 있느라 그랬던 건 아니다. 물론 그 이유도 약간은 있지만, 진짜는 일 때문이다.
숲 속 호숫가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일, 이제 글락 그룹이 맡으면 된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깔짝깔짝 알아보긴 했지만, 아직 초기 단계라서 손을 떼기도 쉬웠다.
반태수는 숲 속 호수의 사진과 영상을 글락 그룹 리조트 개발부에 보내고 그 자리에서 화상 회의를 했다.
신임 회장인 반태수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보니 개발 계획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숲 속 호수 리조트를 이용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이동이었다.
이곳의 규모가 크긴 하지만, 이 리조트 때문에 여기에 공항을 건설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근처 도시의 공항을 이용하고 그곳에서 여기까지 이동하는 비행선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
그 문제로 케트라 브리저와 상의를 했다.
개척도시 아리크의 공항을 이용하면 서로 좋은 일이니까.
다만 아직 아리크에 공항이 없다는 점이 문제인데, 그래서 공항부터 건설하기로 했다.
반태수는 공항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을 상당부분 제공하고 공항의 지분을 획득하기로 했다.
어차피 리조트를 건설하는 시간도 있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공항 건설은 글락 그룹이 맡기로 했다.
글락 건설은 시공 경험이 굉장히 많은 뛰어난 건설 회사였기에 케트라 브리저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아무튼 반태수는 그렇게 개척도시 아리크과 숲 속 호숫가의 개발 문제를 대충 마무리한 다음, 다시 비행선을 띄웠다.
이번엔 중간에 어디 들르지 않고 곧장 크랙톤으로 향했다.
***
"진짜 오랜만이네."
반태수는 비행선 지붕에 서서 크랙톤의 전경을 내려다봤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크랙톤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긴 길어봐야 몇 달인데 그 사이에 변하면 얼마나 변했겠나.
변두리를 통과하는 도중 개발 중인 곳이 보였다. 저기에 지구로 넘어가는 포탈이 있다.
크랙톤에서 활동하는 지구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문득 지구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이쪽에서 지구로 넘어가는 포탈을 장악해도, 지구에서 이쪽으로 오는 포탈을 장악한 건 아니니 지구에서 이면세계로 오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새 포탈을 찾아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하려나?’
에라리스에서 반태수가 포탈을 찾아냈듯이 다른 도시에서도 포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데 그러려면 그 도시에 가야 한다.
‘결국 크랙톤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긴 하네.’
크랙톤은 신분증을 만들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물론 무작정 아무나 신분증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적절한 돈과 인맥이 필요하다. 아니면 수완 좋은 사람을 끼던가. 예를 들어 엄대협 같은.
무작정 신분증을 만들겠다고 이리저리 알아보다가는 큰일 나는 수가 있다.
지구에서 온 능력자들은 분명히 돈은 있다. 지구에서 금괴라도 가져와 판다면 돈을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인맥은 그렇지 않다.
아마 만만치 않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저택에 도착했다.
반태수는 비행선이 저택 정원에 착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훌쩍 뛰어내렸다.
집 안에서 몇 사람이 후다닥 달려 나왔다.
가장 앞에 보이는 사람은 엄 대협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 안드렐라 윌렉스가 있었다.
"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살아있으면 살아있다고 연락을 해야 할 거 아냐!”
엄대협이 투덜거리듯 말하며 다가왔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반가움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뭐, 이런저런 일로 바빴어.”
"뭐가 얼마나 바쁘면 연락할 시간도 없는 거야?”
사실 연락을 안 한 건 아니다. 그저 엄대협에게 연락을 안 했을 뿐이다.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에게는 연락을 했다. 물론 자주한 건 아니고 굉장히 띄엄띄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얘기를 엄대협 앞에서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딴 얘기를 했다. 경험적으로 가장 충격적일 만한 얘기를.
"글락 그룹을 먹으려니 바쁘더라고.”
엄대협의 걸음이 딱 멈췄다. 표정도 확 굳었다.
다른 사람들도 엄대협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다들 몸과 표정이 확 풀어졌다. 반태수의 말을 농담이라고 여긴 것이다.
반태수는 묘한 눈으로 그걸 보다가 말했다.
"글락 그룹이 진짜 유명하긴 한가보네. 너까지 아는 걸 보면.”
엄대협이 피식 웃었다.
"이게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야, 글락 그룹을 어떻게 몰라. 세 살짜리 애도 알아.”
반태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세 살짜리 애도 아는 걸 자신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됐어. 어쩌다보니 글락 그룹 회장이 되어 버렸네.”
엄대협을 비롯한 모두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야…… 너, 진짜야? 진짜 글락 그룹 먹은 거야?”
"내가 이런 걸로 농담할 거 같아?”
"아니.”
엄대협이 갑자기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쫙 풀린 것이다.
"시발, 이게 무슨 일이야. 변두리에서 빌어먹던 놈이 난데없이 글락그룹 회장이라니."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엄대협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스윈 프리든이 가장 먼저 나섰다.
"반 마법사님.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요!”
"축하드려요!”
세 사람의 인사에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오랜만에 같이 커피라도 한 잔 하실까요?”
다들 기쁜 얼굴로 들어갔다.
엄대협만 홀로 정원에 남아 집으로 들어가는 반태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직 풀린 다리에 힘이 돌아오지 않았다.
"시발, 커피 마셔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