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 안드로이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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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화려한 방, 거대한 스크린이 벽에 설치되어 있고, 다섯 노인이 그 스크린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은 15개로 나뉘어 있었다.
안드로이드의 눈으로 본 장면이 각 화면에 송출되는 것이다.
이들이 보던 영상은 사실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위성이 송출하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위성과의 교신에 문제가 생겼는지 영상이 끊어져 버렸다.
그래서 한동안 답답함을 견디고 기다려야 했다.
안드로이드가 움직일 때까지.
그들은 위성이 전부 박살 났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안드로이드는 지하에 숨겨뒀다. 혹시 보관시설을 공격할지도 몰라 철저하게 대비했다.
지하에 보관해서 그런지 화면이 온통 깜깜했다.
안드로이드들은 기본적인 목적만 입력해 놓으면 알아서 움직인다.
최신의 전투 인공지능을 탑재했기에 사람이 조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훨씬 잘 싸운다.
그때, 갑자기 화면에 불그스름한 빛이 확 일어났다.
그리고 화면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너무 정신없이 움직여서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이내 상황이 드러났다.
방금 전까지 안드로이드를 보관하던 시설이 녹아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체 뭐로 어떻게 공격하면 저렇게 되는 거지?"
“느낌이…… 지사 빌딩 날려 버리던 그 위성 공격 비슷한 것 같지 않나?”
나머지 노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공격이 들어가는 순간을 못 봐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드러난 모습을 보면 그렇긴 하군.”
그러는 와중에 화면이 휙휙 변했다.
열다섯 안드로이드의 눈을 통해 비추는 화면은 전투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는 데 불편함이 많았다.
안드로이드의 움직임이 빠르면 화면도 빨리 움직이고, 전투 상황이니 너무 자주 움직여서 상황을 얼른 파악하지 않으면 화면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럼에도 다섯 노인은 그럭저럭 화면을 통해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나름 다들 한가락 하는 능력자이기도 했고, 그동안 많은 경험을 통해 단편적인 화면 몇 개로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데 능숙했다.
지금 그들이 집중해서 보는 건 가끔 화면에 등장하는 데드릭 벨크리스의 싸움이었다.
"허, 과연 미친개. 싸움도 아주 지저분하게 하는군.”
"그래도 잘 싸우긴 잘 싸우네.”
잠시 화면을 지켜보던 노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안드로이드들이 전부 저 마법사 놈을 쫓아간 거지?”
“생각보다 크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데……."
“차라리 데드릭 벨크리스를 먼저 처리하는 게 낫지 않나?”
의문은 들었지만 그래도 안드로이드의 선택을 믿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만큼 안드로이드의 전투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투가 이어질수록 다섯 노인의 표정이 굳어갔다.
"저 마법사, 이름이 반이라고 했던가?”
"맞네. 마법사 반. 성을 안 붙이는 특이한 마법사라서 기억에 남는군.”
"제법 잘 싸우는데?”
하늘을 날아다니며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실드로 막아내는 모습을 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안드로이드 열다섯 기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마법사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저 마법사, 혹시라도 살아남으면 우리가 영입하는 건 어떤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찬성하네. 내가 한 번 데려다가 진지하게 키워보고 싶군.”
"무슨, 자네 욕심이 과하군. 다 같이 관리해야지.”
그 정도로 반태수가 보여주는 재능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아무튼 영입은 가능하겠지?”
“저기서 데드릭 벨크리스만 확실히 죽일 수 있다면 가능하겠지.”
그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데드릭 벨크리스가 죽지 않고 살아난다면 영입 시도만 해도 미친개처럼 날뛸 것이다.
자기 것은 결코 놓는 법이 없는 놈이니까.
그들이 그렇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전투가 계속 이어졌다.
이내 반태수가 스파크를 안개처럼 퍼트리는 장면이 나왔다.
안드로이드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마치 작은 스파크들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다.
"저건 뭐지?”
"기발한 마법을 쓰는군.”
"몇 써클이나 되는 거지?”
"저 정도 마법을 하늘을 날면서 무리 없이 쓰려면…… 최소 9서클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실전 경험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8서클도 가능할 것 같긴 한데……."
그 뒤로 안드로이드가 스파크를 지우고 반태수가 다시 그걸 채우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다섯 노인은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저 마법은 왜 계속 고집하는 거지? 처음에야 전격이 통할 거라 착각했다고 쳐도, 이쯤 되면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가끔 미련을 못 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흔히 똥고집이라고 하지. 마법사들한테 자주 보이는 증상일세. 저놈도 마찬가지인 거지. 한계를 못 벗어나는 거 아니겠나?”
"그래도 영입은 할 걸세. 저런 거야 고치면 그만이니까.”
"누가 뭐라고 했나?”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다들 화면에 집중한 것이다.
그들은 이 전투의 결말이 곧 다가올 거라고 예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안드로이드 한 기가 무수한 스파크를 튀기더니 추락했다.
"어?”
"저게 뭐지?”
"대체 왜 전격이 먹힌 거야?”
"이거 무슨 상황이지?”
다섯 노인이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한데 이어지는 광경은 그들의 당황을 더욱 증폭시켰다.
나머지 안드로이드들이 전부 추락한 것이다.
화면은 여전이 꺼지지 않았다. 노이즈가 많이 끼긴 했지만.
전자장비가 전격에 의해 다 타버린 것 같은데, 그럼에도 카메라와 정보송신 장치가 끝까지 버텨낸 모양이다.
바닥에 쓰러진 안드로이드들의 자세가 제각각이었기에 다양한 화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늘도 보이고 땅도 보이고 쓰러진 전투원들도 보이고 반태수와 데드릭 벨크리스도 보였다.
이내 반태수가 안드로이드들을 전부 아공간에 담으면서 화면이 꺼졌다.
다섯 노인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얼른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꺼진 화면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하지만 다들 금세 정신을 차렸다.
"왜 갑자기 안드로이드들이 추락한 거지?”
“보기에는 내부에 전격이 스며든 것 같던데.”
“오작동인가?”
"그럴 리가. 테스트를 얼마나 많이 거쳤는데.”
"그리고 오작동이면 한두 기에 그쳐야지 전부 저렇게 되었다는 건 아까 그 스파크에 당했다고밖에 볼 수 없지. 안 그런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다.
아무래도 겉모습에 속아 본질을 놓쳤던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다들 고개를 저었다.
"이거…… 아무래도 경각심을 좀 더 가져야 할 것 같군.”
그 말에 다들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자연스럽게 장내에 침묵이 맴돌았다.
노인 중 하나가 침묵을 깼다.
"지나간 일은 일단 치우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얘기해보세. 아까 화면이 꺼져서 정확히 판단은 못하겠지만, 그 미친개 일당이 쓰러진 놈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던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그제야 다들 눈을 반짝이며 저마다 입을 열었다.
"자네가 제대로 봤네. 확실히 그놈들 안드로이드 말고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었어.”
"그럼 그놈들, 회수해야 하지 않겠나?”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여의치 않다면 모를까, 저렇게 방치했으면 얼른 회수해야 한다.
쓰러진 자들은 어찌 되었건, 셰딤의 전투원이기도 하고 그들이 키운 전투원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잘못 흘러가면 누군가 꼬투리를 잡을 만한 증거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이 알기로 그런 건 없고, 문제가 되더라도 얼마든지 빠져나올 자신이 있긴 하지만.
게다가 저들에게 투자한 것이 만만치 않다.
전투원 한 명당 들어간 돈이 어마어마하다. 돈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장비도 문제다.
그들이 장착한 장비들은 하나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 그런 것들까지 전부 회수해야 한다.
"누굴 보내지?”
“이번에 데려온 애들한테 맡기면 되지 않겠나?”
"그놈들 좀 못미더운데. 몇 놈은 데드릭 벨크리스한테 잡히기도 했고.”
"그럼 어쩔 수 없군. 각자 데리고 있는 경호팀에서 인원 좀 빼보게. 적당히 숫자 맞춰서 보내는 걸로 하지. 어떤가?”
"그렇게 하지. 그게 제일 확실할 것 같으니.”
이들이 데리고 있는 경호팀은 각자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능력자들이었다.
가문의 힘을 한껏 이용해 키운 자들이었기에 충성심, 능력, 뭐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다만, 확실히 전하게. 조심해서 접근하고 혹시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몸을 빼라고.”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
"회수해야 할 놈들이 많으니 알아서 숫자를 채워 보내게. 꼴랑 대여섯 명 보내고 이러면 곤란하네.”
다들 피식 웃었다. 억지로라도 여유를 되찾기 위함이었다.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 하고 있지만 이들의 머릿속에는 반태수가 가져간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하면 회수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짜내는 중이었다.
그렇게 여유로우면서도 심각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
데드릭 벨크리스는 반태수를 따라가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에 뒤를 돌아봤다.
“야, 근데 저기 있는 놈들 중에서 살아있는 놈은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냐? 정보라도 좀 뽑아야지.”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이제 와서 그 얘기를 하십니까? 우리가 저기서 나온 지 벌써 15분이 넘었어요.”
"이제 생각난 걸 어쩌라고. 그러는 넌, 왜 아무생각 없이 그냥 나온 거야? 내가 못하면 너라도 해야지. 평소에는 잘만 하더니.”
"일부러 놓고 온 겁니다. 일부러.”
"응? 일부러 놓고 왔다고?”
데드릭 벨크리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태수를 바라봤다.
"대체 왜?”
"그놈들 가진 장비가 장난 아니었잖습니까.”
"장비, 아주 끝내줬지. 물론 내 장비가 더 좋았지만.”
반태수는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냥 버리긴 아까운 것들이잖아요.”
"그럼 우리가 싹 벗겨올걸 그랬나?”
반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저것들을 투입한 쪽에서 더 아까워할 거라는 얘기예요.”
데드릭 벨크리스의 입가에 벌써부터 기분 좋은, 그러면서도 사나운 미소가 맺혔다.
"아하, 그런 얘기였구나. 그럼 이렇게 계속 가면 안 되겠네?”
"안 되죠. 다시 돌아가야죠. 그리고 적당한 곳에 숨어 있어야죠. 회수하는 놈들이 나타날 때까지.”
데드릭 벨크리스가 히죽 웃었다.
"그것들이 진짜지.”
어쩌면 진짜로 다섯 배신자의 뒤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 숨지? 들키면 안되잖아.”
회수하러 오는 놈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데드릭 벨크리스를 발견하면 냅다 도망칠 것이다.
그러니 확실히 숨어야 한다.
"잘 숨어야죠.”
사실 반태수는 얼른 돌아가서 안드로이드부터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할 일은 해야 한다.
"이 근처에 숨으면 될 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천천히 걸어왔다. 멀리 가지 않으려고.
느릿하게 걸어서 15분 거리이니, 반태수가 마음먹고 날아가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공터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그나마 여기까지 나오니 몸을 가릴 만한 것들이 좀 있었다.
허름한 건물도 있고, 띄엄띄엄 집도 좀 있고.
그리고 나무도 제법 많았다.
"저 건물 옥상으로 가죠. 지켜보기 편할 것 같은데.”
"그러자.”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와 함께 허름한 건물 옥상으로 갔다.
옥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반태수는 머리 위에 시야를 교란하는 환상 마법을 펼쳤다.
건물 옥상의 모습을 똑같이 재현해 뿌려버렸다.
아마 이 위를 지나가는 사람은 텅 빈 옥상을 볼게 될 것이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반드시 올 테니까.
***
지와프는 벨랑 아르잔의 경호팀에 소속된 능력자였다.
벨랑 아르잔의 경호팀은 일반적인 경호팀과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그들은 경호팀이라기보다는 전투부대에 훨씬 더 가까웠다.
그것도 그냥 전투부대가 아니라 온갖 다양한 일을 다 처리하는 만능 특수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수와 싸우기도 하고, 다른 전투부대와 싸우기도 하고, 요인암살은 물론이고 추적에 호위까지 못 하는 것이 없었다.
지금도 그런 경호 임무와는 전혀 다른 임무를 받아 이동 중이었다.
특이 사항은 지금 벨랑 아르잔의 경호팀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벨랑 아르잔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경호팀과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다른 경호팀도 벨랑 아르잔의 경호팀과 마찬가지로 무슨 일이든 다 하는 특수부대 같은 자들이었다.
아직은 별 문제 없이 이동 중이지만, 아마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약간 시끄러워질 것이다.
아직 총 지휘를 누가 할지 정하지 않았으니까.
지와프는 내심 자신이 이 중에서 제일 낫다고 여겼다.
전투력도 전투력이지만 지휘 능력은 벨랑 아르잔의 경호팀 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그러니 지휘를 자신이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며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
그때부터 다들 감각에 날을 세웠다.
혹시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발을 빼야 한다.
하지만 목적지에 접근하는 내내 신중히 살펴봤지만,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심지어 여긴 인적도 없는 곳인지라 오면서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
이제 이곳에 있는 시체, 혹은 기절한 자들을 회수해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다섯 노인이 각각 열 명씩 보냈기에 총 50명이나 되는 인원이 공터에 들어섰다.
그들은 신중히 사방으로 흩어져 주위를 세심히 살피고는 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쓰러진 자들을 공터 한가운데로 모았다.
숫자가 만만치 않았다.
죽은 자도 많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자가 더 많았다.
지와프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인데 이걸 방치하고 그냥 갔다고?
게다가 이 많은 전리품을 두고서?
아무리 데드릭 벨크리스가 5대 가문에서도 제법 지위가 높다고 해도, 또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이걸 내버려 두고 갔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장비들은 돈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으니까.
'쎄한데?’
감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지와프는 좀 더 세심히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데 그런 지와프를 막아서는 자가 있었다.
"뭐 하는 거지?”
다른 가문의 경호팀이었다.
지와프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주변을 좀 둘러보려고.”
“다른 사람이 일 하는 거 안 보이나? 혼자 농땡이를 부리겠다, 이건가?”
지와프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저놈이 뭘 하려는 건지는 알겠다. 그저 단순한 주도권 다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지금 고작 주도권 다툼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러니 비켜라."
"어이가 없군. 내가 고작 주도권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그게 아니면? 이럴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지와프는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뭔가가 불안했다.
그래서 그냥 상대를 무시하고 옆으로 지나쳐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사내는 지와프를 그냥 그대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가 지와프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이거 놓지?”
"너야말로 그만하지?”
지와프가 결국 버럭 화를 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다!”
그 외침과 동시에 지와프의 팔을 붙들고 있던 사내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지와프는 당황했다. 자신은 가만히 있었으니까.
그때, 약간 떨어진 곳에서 느긋하면서도 나직하게 깔린, 어딘가 두려움을 일으키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이 좋은 놈일세.”
지와프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데드릭…… 벨크리스!”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디서 건방지게 어르신 이름을 함부로 불러?”
데드릭 벨크리스는 지와프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한 놈도 도망칠 생각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