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233화 (229/351)

233화.  < 밤의 유흥가에서 2 >

===========================

반태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는 여자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이곳에 여자는 총 다섯 명, 각각의 파트너 옆에 앉아 있었다.

반태수는 그 중에서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슬쩍 귓속말을 했다.

"얼른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자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여자가 뭐라고 대꾸하기 전에 얼른 말했다.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되든 좋은 꼴 보긴 힘들 겁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나서지 않았다면 이 여자들은 저 남자들의 하룻밤 놀잇감이 된 다음, 인체 실험실로 직행했을 것이다.

여자의 얼굴에 긴장감과 두려움이 겹쳤다.

과연 자신이 여기서 그냥 나가도록 저들이 내버려둘까? 그런 비밀을 들었는데?

반태수는 망설이는 여자의 팔을 잡고 들어올렸다. 여자가 반태수의 힘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깜짝 놀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보는 여자의 몸이 어느새 식당 한가운데로 이동했다. 반태수가 끌어당겨서 그쪽으로 보낸 것이다.

반태수는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에게 얼른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걸 본 아르잔 가문 사내 한 명이 버럭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아직 다 안 끝났어! 너, 가기만 해!”

여자가 그냥 도망칠까봐 당황해서 소리친 것이다.

당연히 그걸 그냥 두고 볼 데드릭 벨크리스가 아니다.

빠악!

"커억!”

"이 새끼가 지금 자기 죽을 자리에서까지 딴 생각을 하네?”

데드릭 벨크리스에게 뒤통수를 맞은 사내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감히 데드릭 벨크리스에게 반항하거나 그를 노려보는 짓은 할 수 없었다.

반태수는 그걸 보며 여자에게 다시 한 번 손을 휙휙 내저었다. 얼른 나가라고.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인 후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나머지 여자들이 안절부절못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그걸 보고는 버럭 소리쳤다.

"나갈 거면 얼른 나가!”

그 말을 신호로 여자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더니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그것을 제지하지 못했다.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에서 마치 화염이 쏟아지는 것 같았으니까.

“자, 누구부터 죽여줄까?”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에 다섯 사람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죽이겠다는 말이 슬슬 진담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죽인다는 말을 했을 때는 그저 죽을 정도로 괴롭혀 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한데 슬슬 그게 아니라 진짜 죽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그런데 진짜로 저희를 죽이실 겁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피식 웃었다.

"그럼 내가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랑 농담 따먹기나 할 줄 알았어?”

"아니, 그게 아니라…… 저희를 그냥 죽이시면 나중에 큰 문제가……."

"문제? 문제 뭐.”

"벨크리스 가문과 아르잔 가문 사이에 불화가 시작되지 않겠습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왜 가문을 갖다 붙여? 설마 아르잔 가문이 너 같은 놈을 그냥 내버려 둘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예?”

“너 같은 쓰레기는 그냥 죽여도 아르잔 가문에서는 오히려 상을 주면 줬지 가문 사이에 갈등을 일으킬 일은 없다고.”

사내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전 가문에서 촉망받는 인재입니다. 가문의 어르신들이 절 얼마나 아끼시는데 설마 아무 일도 없겠습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사내가 얼른 덧붙였다.

“맞습니다. 가문 사이에 불화가 발생하면 세계가 혼란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죽인 다음 진짜 그렇게 되나 한 번 확인해 보면 되겠네.”

다들 크게 당황했다. 미친개, 미친개 말만 들었지 이렇게 실제로 겪어보니 이건 미친개가 오히려 순화된 호칭이었다.

"그럼 너부터 죽이면 되는 거냐?”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에 사내는 자신이 너무 나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 잠깐!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전화, 전화 한 통만 하겠습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피식 웃었다.

"왜? 벨랑 아르잔한테 일러 바치기라도 하려고?”

벨랑 아르잔은 에라리스에 온, 셰딤과 손잡은 그 다섯 놈 중 하나였다.

아직 명확한 혐의나 증거를 잡지 못해서 내버려 두고 있지만 결국 언젠가는 잡아 족쳐야 할 놈이기도 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사내에게 턱짓을 했다.

“해, 전화.”

“저, 정말입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인상을 팍 쓰자 사내가 얼른 굽실거렸다.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바로 전화하겠습니다.”

사내는 얼른 전화기를 꺼내 벨랑 아르잔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어르신. 제가 지금 좀 곤란한 처지에 빠졌습니다.”

사내는 연신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치를 살피며 대화를 이어갔다.

“글락 쪽 직원이랑 같이 있는데, 데드릭 벨크리스 님을 만났습니다.”

전화기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얼른 전화기를 귀에서 살짝 뗐다.

대충 고함소리를 들어보니 왜 데드릭 벨크리스랑 엮였느냐는 말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러다 죽게 생겼는데.

"어르신, 도와주십시오. 절 죽이겠다고, 아니,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이겠다고 하십니다."

그 순간 전화가 딱 끊어졌다.

"어? 어르신? 여보세요? 어르신, 어르신?”

계속 불러봤지만 이미 끊어진 전화에서 답이 들려올 리 만무하다.

사내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만 가고 받지를 않는다.

"뭐야, 한 통만 한다더니 또 하려고? 이번엔 어디에 하려고? 뷰고르 쪽에 물어보게?”

사내가 사색이 된 얼굴로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나머지 사람들도 분위기가 어떤지 금세 눈치채고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살려주십시오!”

"하, 이놈들 봐라?”

데드릭 벨크리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손절 당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이쪽에 붙은 것이다.

벨랑 아르잔은 이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 별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면 되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그냥 이놈들을 여기서 때려죽일까 잠깐 고민하고 있을 때, 반태수가 나섰다.

"증인으로 세우죠.”

데드릭 벨크리스가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까지 존재감을 죽이고 있어서 전혀 눈길이 가지 않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반태수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대체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지?’

반태수는 그들의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벨랑 아르잔은 못 잡아도 글락 그룹 회장은 잡을 수 있잖습니까.”

그냥 가서 때려죽이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엮는 것이 훨씬 낫다.

반태수의 말을 들은 데드릭 벨크리스가 눈을 반짝였다. 관심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 말을 들은 나머지 사람들은 크게 당황했다.

"즈, 증인이라니요? 저희가 무슨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지사의 그 일이 본사의 명령, 그러니까 글락 그룹 회장인 라그나 달튼의 명령으로 이뤄졌다는 걸 증언하면 됩니다."

반태수의 말에 다들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건 확실치 않은 일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특히 글락 그룹의 직원은 안색이 창백해져서 더욱 격렬하게 반대했다.

"전 그럼 나중에 그냥 죽습니다.”

한동안 다섯 사람이 떠드는 소리로 식당 안이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데드릭 벨크리스가 나섰다.

“그럼 지금 죽으면 되겠네.”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데드릭 벨크리스로부터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다섯 사내의 몸이 경직되었다. 진짜 죽음을 눈앞에 두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 반태수가 나섰다.

"영감님, 죽이지 말죠.”

다섯 사람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반태수와 데드릭 벨크리스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에 희망이 일렁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죗값은 치러야죠.”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걸 본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네.”

데드릭 벨크리스는 다섯 사내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끝까지 참아내면 살려주는 거, 고려해보지.”

다섯 사내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두려움, 억울함, 분노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적으로 어떤 고통이 오든 참아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다들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심지어 글락 그룹 직원조차 그러했다.

그는 글락 그룹 직원이자 셰딤의 조직원이었다.

대기업 직원 생활을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아르잔 가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5대 가문의 일원은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다져진 철저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그 교육은 결코 설렁설렁하지 않다.

또한 가문의 일을 맡아서 하다보면 결국 별의 별 경험을 다 하게 되어 있다.

물론 그런 것들이 반태수의 점혈을 버티게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은 이를 악물고 반태수를 노려봤다.

네가 뭘 하든 우리는 꿈쩍도 하지 않을 거라고 외치는 듯했다.

반태수는 씨익 웃으며 그들의 몸에 손가락을 찔렀다.

***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효과가 진짜 끝내주는구나.”

데드릭 벨크리스가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태수가 점혈을 할 수 있는 마도구를 만들어주긴 했지만, 그건 실제 효과의 절반도 채 내지 못한다.

진짜 점혈은 사람에 따라 맞춰서 술식을 짜야 하는데, 마도구는 정해진 술식을 써야 하기에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아직도 점혈에 미련을 가지고 연습하고 연구하는 살라자 샤마쉬의 심정을 아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르잔 가문에서 온 네 사내와 글락 그룹 본사 직원은 반태수의 점혈을 조금도 버티지 못했다.

첫 점혈은 3분 동안 유지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아는 모든 걸 열심히 떠들고 시키는 대로 증언을 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버렸다.

물론 반태수는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3분이나 5분 정도 점혈을 선물해 주었다.

세 번째 점혈에 당했을 때, 다섯 사람은 제발 죽여 달라고 반태수 앞에 엎드려서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 때마다 이마가 땅에 부딪혔는데, 이마가 찢어져 피가 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조아렸다.

반태수는 하는 거 보고 나중에 추가로 점혈을 할지 결정하겠다는 말로 그날의 일과를 마무리했다.

지금 그들은 근처 모텔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작은 방에 한꺼번에 몰아넣었는데도 전혀 불만스러운 표정이나 눈빛,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걸 봤으니 데드릭 벨크리스가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제 증인을 모았으니 터트리면 되나?”

데드릭 벨크리스의 물음에 반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르잔 쪽만 잘라낼 수는 없죠. 뷰고르 쪽에서도 뭔가 하나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데드릭 벨크리스는 일리가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놈들은 그냥 잡아오면 되겠네.”

반태수는 살짝 질린 눈으로 데드릭 벨크리스를 쳐다봤다.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그건 아니긴 한데……."

생각해보니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긴 하다.

그리고 어차피 그쪽도 다 엮어야 하는데, 뷰고르 놈들도 아르잔 놈들이랑 똑같은 배신자들이니 그냥 잡아다 점혈로 입을 열게 만들면 그만이긴 하고.

“그놈들 어디 있는지도 아는데, 뭐 망설일 이유가 있어?”

“아뇨. 없죠. 갑시다. 가서 그냥 잡아다가 점혈로 탈탈 털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장에라도 밖으로 나가려는 반태수를 보며 데드릭 벨크리스가 평소와 달리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이제부터 진짜 조심해야 돼.”

반태수가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돌아서서 데드릭 벨크리스를 쳐다봤다.

"벼랑 끝까지 몰았잖아. 글락 그룹도 그 다섯 영감탱이들도.”

“이제 앞뒤 안가리고 덤벼들겠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언제 어떤 식으로 기습할지 모르니까. 암살조직이 살아 있었으면 아마 당장 암살자부터 붙였을 거다.”

반태수는 그 얘기에 오히려 즐겁다는 듯 씨익 웃었다.

"제발 좀 화끈하게 나왔으면 좋겠네요.”

데드릭 벨크리스도 히죽 웃었다.

"나도 그래. 이번엔 좀 기대 중이다. 그 영감탱이들, 5대 가문에서 제법 방귀깨나 뀌거든. 진짜 벼랑 끝에 몰렸으니 제대로 힘 좀 쓸 거다.”

“그거 참 기대되네요.”

"그럼 갈까?”

두 사람은 곧장 뷰고르 가문 사람들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글락 그룹 본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텔에 잡아놓은 글락 그룹 직원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냥 뛰어가거나 날아가는 것이 더 빠르지만 굳이 눈에 띌 생각은 없었다.

존재감을 낮추더라도 전자장비에 의한 물리적 기록은 남는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데드릭 벨크리스가 투덜거렸다.

“찍히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이 도시에 다시 올 것도 아니고. 마법사나 능력자가 날아다니는 게 드문 일도 아니고 말이야.”

“이따가 잡아서 데려갈 때 쓰려고 가져온 겁니다. 아니면 영감님이 그놈들 전부 안고 가실래요?”

"차가 좋지. 편하고. 얼른 가자.”

어느새 뷰고르 가문 사람들이 머무는 호텔에 도착했다.

차는 근처에 대충 세워두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뷰고르 쪽 영감들이 낌새를 눈치채고 그놈들을 딴 곳으로 빼돌리거나 처리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반태수는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반사적으로 영역화를 호텔 내부에 집중해서 펼쳤다.

위치가 딱 잡혔다.

“이놈들 꼭대기 층에 있네요?”

이놈들은 꼭대기 층, 그러니까 펜트하우스에 머물고 있었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표정이 대번에 구겨졌다.

"이놈들이 감히 차별대우를 해?”

물론 글락 호텔의 객실도 굉장히 훌륭하긴 하다. 하지만 펜트하우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더욱 서둘러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문을 부수려고 하기에 반태수가 얼른 말렸다.

“영감님, 나 마법사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문 좀 그만 부수세요.”

데드릭 벨크리스는 머쓱한 표정으로 주먹을 내렸다.

그러자 딸깍 소리와 함께 문의 잠금이 풀렸다.

반태수가 문손잡이를 잡고 부드럽게 당겼다.

"앞으로는 문을 이렇게 열면 됩니다. 주먹으로 열지 말고요.”

"알았으니까 잔소리 좀 그만해.”

데드릭 벨크리스는 반태수를 휙 지나쳐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리고 잠깐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조용해졌다.

“뭐해? 안 들어오고. 이놈들 데려가야지.”

반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

라그나 달튼은 원탁에 둘러앉은 다섯 노인을 보며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려 애쓰고 또 애썼다.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끝장입니다. 글락 그룹은 물론이고 어르신들께서도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겁니다.”

다섯 노인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원흉을 제거해야지.”

라그나 달튼의 눈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그렇게 알고 움직이면 되겠습니까?”

다섯 노인 중 한 명이 물었다.

“에라리스를 버릴 건가?”

“버리지 않습니다. 원흉만 제거하면 얼마든지 예전처럼 살 수 있는데 왜 버리겠습니까.”

"원흉이 하나가 아니라는 건 알지?”

"살라자 샤마쉬. 그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러니 그쪽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어르신들 의중은 어떻습니까?”

"그러지. 솔직히 미친개만 처리해도 충분하긴 해.”

의견이 하나로 모였으니, 이제 실행하는 일만 남았다.

라그나 달튼은 어금니를 으득 갈았다. 데드릭 벨크리스만 생각하면 위장이 뜯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그놈을 죽여 이 답답한 속을 뻥 뚫어버리리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