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 글락 그룹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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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여기 맛있네요.”
"그렇죠? 제가 이 회사 다닌 지 이제 3년이거든요? 그동안 거의 매일 퇴근 후에 맛집을 찾아다녔는데, 여기가 바로 그 중 하나죠.”
반태수는 불판에서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
고기를 어떻게 처리한 건지 씹을 때마다 감칠맛이 쫙쫙 우러났다.
이 정도 맛집은 정말 드물다.
"이 정도 맛집이 또 있단 말입니까?”
반태수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 아네스는 손바닥을 쫙 폈다.
"다섯 군데가 더 있죠. 뭐, 그 중 셋은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아네스는 배시시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세 군데는 제가 사는 곳 근처에서 발견한 맛집들이거든요.”
"거긴 나중에 가보도록 하죠.”
불판 위의 고기가 다 떨어져갈 무렵, 아네스가 슬그머니 물었다.
"그런데 뭐 하시는 분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반태수가 빙긋 웃으며 아네스를 쳐다봤다.
"뭐 하는 사람 같아요?”
"글쎄요. 평일 낮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면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높은데…… 당장 떠오르는 건 작가?"
"하하. 작가는 아니에요. 프리랜서인 건 맞지만.”
아네스가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시는데요? 제가 하는 일은 이제 아시잖아요. 글락 그룹 본사 홍보팀.”
견학 업무도 홍보팀 담당이었고, 아네스는 일주일에 한 번 견학 업무를 맡는다고 했다.
"해결사 비슷한 일을 해요.”
아네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전혀 예상외의 답을 들었기 때문이다.
"해결사요?”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일의 특성 상, 자세히 얘기해줄 수는 없어요. 이해하시죠?”
아네스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분위기를 바꿔 입을 열었다.
"일단 나갈까요? 아까 술 사주신다고 했죠?”
"근처에 괜찮은 술집도 있겠죠? 얼마든지 사겠습니다.”
아네스가 살짝 요염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분위기 좋은 술집이 있어요.”
"기대하죠.”
"만족하실 거예요.”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반태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흘러내리며 옆에 잠들어 있는 아네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술집에서 술을 제법 마시고 바로 반태수가 머무는 곳으로 왔다.
아네스는 하늘에 떠 있는 듯한 야경을 보고는 황홀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은 술보다는 분위기에 취해 격렬한 밤을 보냈다.
반태수는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였다.
아네스가 제대로 잠들었는지 확인한 다음, 확실히 하기 위해 수면 마법을 추가로 걸었다.
아마 아침이 되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제 아네스와 술을 마시면서 다양한 주제로 얘기를 나눴는데, 딱히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튼 아네스 덕분에 알리바이 하나를 챙겼다.
물론 크게 상관은 없지만.
반태수는 옷을 입고 영역화를 통해 주위를 살폈다.
혹시 뭔가 감지하는 장치라도 있으면 더 조심해야 한다.
이 호텔은 글락 호텔이다. 무슨 장치가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었다.
여긴 셰딤이 운영하는 호텔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복도 쪽에 눈에 보이지 않도록 장치한 카메라와 도청장치가 있었다.
기본은 전자장비이지만 마력이 깃든 마도구이기도 했다.
예전 자신의 저택에 잔뜩 설치되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다만, 그때의 것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났다.
저걸 이용해 실시간으로 감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녹화하고 녹음할 뿐이지.
반태수는 일단 마법을 펼쳤다.
그나마 방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이 방에 머무는 사람은 대부분 높은 지위를 가졌거나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괜히 꼬투리 잡힐 여지를 둬서는 안 된다.
하지만 복도는 얘기가 좀 달랐다.
아무튼 반태수는 마법을 펼쳐 카메라와 도청장치를 가렸다.
정확히는 환상마법을 통해 지금 찍고 있는 장면이 계속 이어지도록 해뒀다.
반태수는 왜곡을 걸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장 옥상으로 향했다.
다른 곳으로 가려면 CCTV도 많고 감춰진 카메라도 많아서 그걸 일일이 다 가리면서 지나가야 한다.
하지만 옥상은 그저 한 층 올라가면 그만이다.
옥상에는 별다른 장치가 없었다.
반태수는 옥상 끝에 서서 반대편에 있는 글락 그룹 본사 빌딩을 찬찬히 살펴봤다.
새벽인데도 퇴근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있는지 불이 켜진 방이 여러 개 보였다.
이제부터 저기로 건너가서 한바탕 할 거다.
목표는 지하.
하지만 잠입은 옥상을 통해서 할 예정이다.
그래도 왜곡을 걸었으니 들킬 염려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얼굴을 한 번 변형시켰다.
반태수가 옥상 난간에 올라섰다. 그리고 발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허공을 유유히 날아 글락 그룹 본사 빌딩 옥상에 착지한 반태수는 습관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여긴 옥상정원이 아니었다.
글락 그룹 본사 빌딩 옥상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그 중 옥상정원은 옥상의 80%를 써서 만들었고, 나머지 20%에 실외기를 비롯해 옥상에 둬야 할 장비들을 비치했다.
반태수가 착지한 곳이 바로 그 20%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영역화를 펼치며 옥상 문으로 다가간 반태수는 그 앞에서 멈춰 섰다.
‘하, 옥상 문에도 마력 차단 물질을 덕지덕지 발라놨네.’
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뭐 대단한 걸 해놓지는 않았겠지만, CCTV가 있으면 저절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이 찍힐 것이다.
이 마력 차단 물질에 대해 뭔가 조치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오늘 글락 그룹 본사를 턴다고 해도 셰딤이 박멸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아무튼 대책은 나중에 세우고, 지금은 여길 들어가야 한다.
사실 원래 계획은 며칠에 걸쳐 이곳을 세심히 조사하고 필요한 마도구도 준비한 다음 공략하는 것이었다.
한데 내일 모든 증거를 싹 옮긴다는 말을 들었는데 무작정 계획대로 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급해졌으니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원래라면 이렇게 대비 없이 이런 문을 열 일은 없었겠지만, 지금은 열어야 한다.
반태수는 심호흡을 한 다음 미리 마법을 준비했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CCTV 위치를 파악해 마법을 걸어야 한다.
옥상 문은 당연히 잠겨 있었지만, 그걸 여는 건 아주 간단했다.
특별한 잠금장치도 아니었고, 그저 전자 도어락이었는데, 이건 굳이 비밀번호를 맞추지 않아도 마력을 이용해 열 수 있었다.
찰칵.
잠금이 풀렸다.
반태수는 문을 아주 살짝 열었다. 영역화가 내부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CCTV가 있었다. 미리 준비한 마법을 그 위에 뿌렸다.
그제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반태수는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CCTV에 건 마법을 풀었다.
반태수는 계단을 따라 쭉 내려갔다.
어차피 목표는 지하다. 일단 거기를 확인한 다음, 아무것도 없으면 다시 차근차근 올라가면서 탐색을 하면 된다.
계단 밟는 소리가 나면 안 되니 살짝 허공에 뜬 채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긴장을 놓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마력을 쓰는 일인지라 갑자기 마력 동결 물질이 살포되면 균형을 잃고 계단에서 구를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계단에 누가 마력 동결 물질을 살포하겠는가. 보아하니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딱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마력이 싹 날아가 버렸다.
반태수는 긴장을 풀지 않았기에 빠르게 대처했다. 코어의 마력을 쓴 것이다.
단순히 몸을 띄운 다음 바람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고 방향조절까지 하는 방식으로 이동했기에 그걸 코어의 마력으로 대체하는 것도 굉장히 빨랐다.
전혀 균형을 잃지 않고 이동 역시 끊어지지 않고 쭉 이어서 갈 수 있었다.
심지어 왜곡도 풀리지 않았다.
예전 셰딤의 연구소에서 마력 동결 물질을 겪은 후부터 제법 열심히 이런 마력 스위칭에 대해 고민하고 연습을 해왔다.
그 노력이 지금 빛을 발한 것이다.
‘와, 이 미친놈들. 아무도 없는 계단에 그냥 뿌린 거야? 그걸?’
왜곡이 들켰을 리 없으니 그냥 주기적으로 이런 곳에 마력 동결 물질을 뿌리는 모양이었다.
‘아니, 확신하면 안 되지.’
어쩌면 왜곡이 걸렸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도 열어놔야 한다.
반태수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계속 이동했다. 그러면서 수시로 마력을 다시 모으는 시도를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코어의 마력을 써도 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면세계의 마력을 몸에 두르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이면세계의 마법을 모으는 건, 반태수가 계단으로 지하 10층에 도착할 때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마력 동결 물질을 계단 전체에 살포한 것이다.
한 번 살포하면 한동안 마력이 흩어지는데, 마력 동결 물질의 효능이 사라지기 전에 지하 10층에 도착해버린 것이다.
지하 주차장으로 나가는 문에도 마력 차단 물질이 발라져 있었다.
밖에서 안을 확인하는 것도, 안에서 밖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아까 한 번 해봤다고 요령이 생겼다.
반태수는 문을 살짝 열고 틈을 만든 다음 영역화를 밀어 넣었다.
주차장이 굉장히 넓었지만, 이 문을 찍을 수 있는 CCTV는 몇 개 되지 않았다.
빠르게 그 CCTV들을 파악해 환상마법을 건 다음 문을 열고 지하 주차장으로 나갔다.
계단이 더 아래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주차장으로 나온 것이다.
아까 낮에 빌딩 전체를 영역화로 살폈을 때, 지하 10층 아래를 가로막는 마력 차단 물질을 확인했으니까.
반태수는 일단 CCTV부터 처리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CCTV는 찍던 영상만 계속 내보내게 될 것이다. 환상으로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여기 있는 차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몇 대 안 되지만 그래도 꼼꼼하게 블랙박스까지 처리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나오니 그래도 이면세계의 마력을 다시 모을 수 있었다.
반태수는 주차장을 천천히 걸었다.
그러면서 영역화를 집중해 바닥을 확인했다.
여기 분명히 뭔가 있는데,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주차장에서 내려갈 수 있게 해뒀을 것 같은데.’
문이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다.
뭔가 이음새라도 있으면 조사를 해보겠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반태수는 슬슬 시간을 더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감님 식으로 가자.’
데드릭 벨크리스가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 어떤 식으로 나올까?
아마 다 때려 부술 것이다.
반태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데드릭 벨크리스처럼 요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반태수는 일단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그리고 굉장히 복잡한 술식을 담은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이 빛 가루가 되어 흩어지며 마법이 발동했다.
바닥을 이루는 모든 물질의 결합을 끊어버리는 마법이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반태수 앞쪽 바닥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직경 1미터 정도 되는 넓이였는데, 무너져 내리다가 갑자기 아래로 주르륵 쏟아졌다.
‘역시.’
역시 아래에 뭔가가 있었다.
반태수는 뚫린 구멍을 통해 아래를 확인했다.
보이는 모양새만 봐서는 딱 복도처럼 생겼다.
망설임 없이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역시나 복도였다. 좌우를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반태수는 일단 영역화가 되는지 확인해봤다.
‘된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코까지 막았다가 그걸 한꺼번에 풀고 뚫은 기분이었다.
지하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뭐 하는 곳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여긴 연구실이었다. 그리고 서버도 있었다.
반태수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내일 여길 치운다고 했으니 그 전에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영역화에 걸리는 사람은 총 다섯 명. 세 명은 능력자고 두 명은 일반인이다.
어차피 주차장 바닥에 구멍까지 뚫고 들어왔다.
내일이 되면 결국 다 알게 될 테니, 여기 있는 사람들을 처리하고 편안하게 자료를 모으는 것이 나으리라.
반태수는 빠르게 이동해 능력자들이 모인 방으로 들어갔다.
한 명은 정신없이 졸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두런두런 얘기하며 맥주를 마시는 중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열린 문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뭐지?”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곧장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반태수는 쓰러진 두 사람을 지나쳐 졸고 있는 사람에게도 점혈을 걸었다.
마비, 침묵, 그리고 수면까지.
아마 내일 아침까지 푹 자게 되리라.
반태수는 일반인 두 명도 찾아서 똑같이 만들어 주었다. 그들은 한창 게임 중이었는데, 자신들이 뭘 어떻게 당하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 버렸다.
굳이 죽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버려 둬도 결국은 정리될 사람들이니까.
반태수는 빠르게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마침 이사를 가려고 짐을 쌌는지 자료를 한데 모아놔서 찾는 수고를 크게 덜 수 있었다.
자료를 모두 아공간에 넣은 반태수는 이번엔 서버실로 향했다.
이 서버를 연구실에서만 쓰는지 아니면 글락 그룹 본사 전체에서 쓰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반태수는 그런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서버를 통째로 아공간에 담아 버렸다.
이제 다 끝났다. 남은 건 여길 빠져나가서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반태수는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문을 찾았다.
주차장으로 연결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위치를 대충 가늠해보니 근처에 있는 다른 빌딩의 지하로 연결된 듯했다.
‘이러니 못 찾았지.’
반태수는 굳이 저 문으로 나가 다른 건물로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
문에 당연히 마력 차단 물질을 발라놨고, 저 문을 열고 나오는 옆 건물에 무슨 짓을 해놨을지 모르는데 그쪽으로 갈 이유가 없었다.
반태수는 자신이 뚫었던 구멍으로 다시 나갔다. 그리고 비상계단으로 이어진 문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에 CCTV에 걸었던 마법을 해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다음, 비상계단을 따라 쭉 옥상까지 올라갔다.
마력 동결 물질의 효능이 다해서 옥상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층층이 다 뒤지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야.’
아마 그랬다면 정말 직싸게 고생했으리라.
반태수는 훌쩍 날아 호텔 옥상에 내려섰다.
그리고 빠르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네스는 여전히 잠든 채였다. 반태수는 다시 옷을 벗고 아네스 옆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