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 글락 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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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네.”
반태수가 잡은 방은 호텔 최상층에 위치한 방이었다.
호텔 최상층에 딱 두 개의 방이 있는데, 그 중 하나였다.
방 내부 시설이야 그냥 그랬다. 최고급으로 쫙 깔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동안 살라자 샤마쉬와 함께 하면서 높아질 대로 높아진 눈이 그걸 평범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반태수가 감탄한 건, 전망이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도시 전체가 눈에 확 들어왔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고, 천장과 바닥까지 교묘한 각도와 재질, 전자장치를 이용해서 전부 투명하게 보였다.
투명도는 또 어찌나 좋은지 시력이 좋은 반태수조차 집중하지 않으면 허공처럼 보일 정도였다.
확인해보니 마력이 가미된 유리였다.
유리에 마력을 담아서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애초에 마력을 품은 유리를 가공해서 만들었다.
반태수는 호텔방 한가운데에 섰다.
위아래좌우를 다 둘러봐도 호텔방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온통 도시만 보일 뿐이다.
천장과 바닥도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굴절과 반사를 적절히 이용해 마치 바닥이나 천장이 없는 것 같은 연출을 한 것이다.
아이디어도 좋지만, 여길 만든 유리나 바닥, 천장의 재질이 굉장히 특별했다.
'셰딤에서 연구한 결과로 이걸 만들어낸 거겠지?’
아까 비행선에 타고 있던 자들의 전투복도 그렇고 이 도시에는 다른 도시에서 쓰지 않는 특별한 재질을 가진 것들이 많은 듯했다.
아마 글락 그룹이 그런 것들을 만들어서 도시에 공급하고 있으리라.
반태수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글락 그룹과 셰딤을 같은 조직으로 묶어 버렸다.
"하여간 보통 놈들이 아니야.”
반태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시의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그때, 도시의 하늘을 가르며 비행선 몇 대가 날아갔다.
뒤쪽에서 앞으로 날아온 걸 보면 글락 그룹 본사 쪽에서 날아온 비행선이었다.
"하, 비행선 운행이 금지되긴 무슨. 이용할 수 있는 놈들이 따로 있었네.”
아마 저 비행선을 탄 놈들이 바로 그 중요한 손님인지 뭔지 일 것이다.
반태수는 가만히 서서 멀어져가는 비행선을 계속 쳐다봤다.
비행선이 날아가는 방향은 에라리스에서 유일하게 있는 산 쪽이었다.
에라리스의 산은 상당히 높고 험준했다.
하지만 등산 코스가 잘 개발되어 있었다.
산은 하나지만 등산 코스는 다섯 개였다.
그 모든 것이 호텔에 비치된 안내책자에 나와 있었다.
방에 들어오기 전에 호텔직원이 건네주었기에 잠깐 훑어봤는데, 거기에 저 산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산 그림에 등산 코스가 그려져 있었는데, 왠지 산의 한쪽 부분만 쓰도록 코스를 만들어 놓은 듯했다.
"산 아래에 그 대저택인가 뭔가가 있는 건가?”
생각해보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래도 이곳 에라리스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 바로 저 산 근처일 테니.
반태수는 비행선이 산에 거의 도착할 무렵 아래로 하강하는 걸 확인하고는 벽에 있는 스위치를 내렸다.
유리창을 제외한 천장과 바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투명도가 사라진 것이다.
이렇게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전망의 호텔이었다.
물론 조금 전과 비교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반태수는 간단히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은 아공간에 넣어두었던 음식으로 대충 때웠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글락 그룹을 파헤칠 것이다.
잠자리는 아주 편안하고 안락했다.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
반태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2층에 호텔 조식을 책임지는 식당이 있었다.
식당은 아주 훌륭했다.
인테리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음식의 종류와 맛, 모두 나무랄 데 없이 뛰어났다.
식사를 하는 환경도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먹었던 호텔 조식 중에 단연 최고였다.
글락 호텔에 대한 좋은 이미지 하나가 또 생겼다.
아마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곳곳에서 글락 그룹에 대한 좋은 경험을 할 것이다.
분명히 이면에는 안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걸 철저히 감추고 포장해왔을 테고.
아무튼 볼수록 보통 놈들이 아니다.
그래도 그놈들이 셰딤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셰딤이 어떤 놈들인가.
인체실험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놈들이다.
겉을 아무리 글락 그룹 같은 걸로 포장하면 뭐하겠나. 속이 셰딤으로 문드러졌는데.
반태수가 한창 맛을 음미하며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막 식당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역화를 주변에 항상 펼쳐놓고 있기에 그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전에 마력부터 파악했다.
반태수의 시선이 그쪽으로 슥 돌아갔다.
'저놈들…… 영감님이랑 마력의 결이 비슷한데?’
사람마다 가진 마력의 기질이 미묘하게 조금씩 다르다.
물론 거의 비슷한 기질의 마력을 가진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마력만으로 사람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력 형성 과정이 비슷하면 마력의 기질이 비슷한 흐름을 가진다.
반태수는 그걸 마력의 결이 같다고 표현한다.
아마 웬만큼 마력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아예 구분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보통 마법사나 능력자들에게 마력에 결이 있다고 설명하면 미친 놈 보듯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반태수는 관심을 갖고 그들을 살폈다.
데드릭 벨크리스와 마력의 결이 비슷하다는 건, 벨크리스 가문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벨크리스 가문에서 여길 왜 왔지?’
이 호텔에 묵었다는 건, 어쩌면 그 중요한 손님들의 수행원으로 왔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그럴 것이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따로 사람을 보냈을 리 없다.
여길 반태수에게 맡겼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냥 기다리지 괜히 저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설사 꼭 필요한 일이 있어서 저래야 한다면 미리 연락을 했을 것이다.
'하, 복잡한 예감이 드네.’
반태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식사를 마저 했다.
***
밥을 먹은 반태수는 다시 객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살라자 샤마쉬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 아침부터 전화를 한 걸 보면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군.
살라자 샤마쉬의 말에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아직 일은 시작도 안 했습니다. 그냥 뭐 좀 물어보려고요.”
- 뭔가.
"여기 오니까 도시가 평소랑 다르더라고요. 중요한 손님들 때문에 비행선도 못 띄우게 하던데요?”
- 중요한 손님? 잠시만 기다려보게. 금방 알아보고 내가 연락하겠네.
살라자 샤마쉬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반태수는 영역화로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 마력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같은 결을 갖는 사람들이 또 있네.’
벨크리스 가문은 아닌 것 같고, 5대 가문 중 다른 가문에서 또 나온 모양이다. 살라자 샤마쉬가 가진 마력의 결이랑도 다른 걸 보면 샤마쉬 가문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아직 5대 가문 중에서 세 군데밖에 못 겪어봤다.
어쩌면 나머지 두 가문도 이곳 에라리스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살라자 샤마쉬에게 연락이 왔다.
- 그놈들이네.
"그놈들이요?”
- 5대 가문에서 셰딤이랑 손잡고 스태플레톤에 병력을 보낸 그놈들 말일세.
“그때 다섯 명이라고 하셨죠?”
- 맞네. 철저히 감시하라고 지시 했는데, 그놈들이 교묘하게 감시를 벗어났더군.
"작정을 하고 온 거네요?”
- 그런 셈이지. 어쩌면 뭔가 낌새를 채고 대비하러 간 걸지도 모르네.
"알겠습니다. 이쪽은 제가 알아서 할 게요. 아, 혹시 그 다섯 중에 벨크리스 가문 사람도 있습니까?”
- 벨크리스? 없는데? 뷰고르 가문에서 둘, 아르잔 가문에서 셋, 이렇게 다섯 일세. 한데 왜 그러나?
"여기서 벨크리스 가문 사람들을 본 것 같아서요.”
- 벨크리스 가문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고? 한데 그건 어떻게 알았나?
"같은 호텔에 머물거든요. 식당에서 봤습니다.”
살라자 샤마쉬는 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식당에서 만난 사람이 벨크리스 가문에서 왔는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 벨크리스 가문 사람이 확실한가?
“직접 확인한 건 아니니까 확실치는 않죠. 하지만 벨크리스 가문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마력의 결을 갖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 아마 거의 맞을 겁니다.”
- 이건 좀 알아봐야겠군. 아마 시간이 걸릴 걸세. 나중에 확인하고 알려줄 테니, 이제 자네는 자네 할 일을 하게.
"그러죠.”
- 아, 그리고 셰딤의 연구실은 조만간 일제히 치기로 했네. 일단 치고 거기서 정보를 모아 나머지 연구소의 위치를 알아내는 즉시 바로바로 정리하기로 했고.
"그게 제일 나을 것 같네요.”
- 그럼 조심하게.
살라자 샤마쉬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반태수는 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에 온 셰딤의 앞잡이 다섯 놈은 벨크리스 가문과는 관계가 없다.
그런데 벨크리스 가문 사람이 여기에 머물고 있다.
정황상 중요한 손님들의 수행원 같은데 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가문을 배신하고 저쪽에 붙은 건가?’
아니면 그들 나름대로 셰딤의 앞잡이들을 조사하러 온 걸까?
반태수는 일단 밖으로 나갔다.
여기서 혼자 틀어박혀서 생각만 한다고 뭐가 나오지는 않는다.
벨크리스 가문 사람들은 차츰 확인해 보기로 하고, 원래 여기에 온 목적, 그러니까 글락 그룹 본사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호텔 로비에 도착했다.
나가기 전에 데스크에 가서 숙박을 연장했다.
얼마나 더 에라리스에 머물게 될지 모르지만, 넉넉하게 일주일 정도 연장했다.
하루 머물러 보니, 이보다 더 훌륭한 숙박시설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숙박을 연장한 반태수는 기분 좋게 호텔을 나섰다.
목적지가 바로 길 건너편이니 멀리 갈 필요도 없고 여러모로 좋았다.
일단 티가 나선 안 되기에 어떻게 저길 조사할지 생각하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그러면서 글락 그룹 본사 건물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글락 그룹 본사를 구경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글락 그룹 본사를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그저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길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네.’
본사 건물이 특별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높다는 것 빼고는 지극히 평범한데 저렇게 구경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참 특이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동안 잘 관찰한 결과, 몇몇 사람들은 글락 그룹의 직원도 아닌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인들을 아예 다 틀어막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신호가 바뀌었고, 반태수가 길을 건넜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정교하게 펼쳐 글락 그룹 본사를 영역화의 범위에 딱 맞춰 넣었다.
‘하, 그럼 그렇지.’
처음부터 잘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역시나 건물 전체에 마력 감지에 대한 보안이 촘촘히 깔려 있었다.
보안을 뚫는 건 일도 아닌데, 그렇게 뚫었다고 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다.
빌딩 곳곳에 마력 차단 물질이 섞여 있었다.
처음 빌딩을 건설할 때부터 마력 차단 물질을 섞어 넣은 건 아니고, 뒤늦게 차단 물질을 곳곳에 박아 넣거나 칠하거나 하는 식으로 조치한 모양새였다.
특히 지하는 더더욱 심했다.
지하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었는데, 무려 지하 10층까지가 주차장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마 거기에 셰딤의 연구소나 자료가 있을 것 같은데, 영역화로 확인할 수 없으니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태수는 일단 저 빌딩의 전체적인 보안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역화가 통하지 않으니까.
빌딩 안으로 들어가는 건 의외로 간단했다.
견학 신청을 하면 즉석에서 안내원을 매칭해서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글락 그룹이 도시의 시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방편 중 하나였다.
본사에는 적당한 이유가 있으면 견학 허가를 내줬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거나 하는 이유 말이다.
아이들이 가장 확실했다.
그 이유로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다만 아이들과 함께 가면 견학 코스가 굉장히 단축된다. 견학 하자고 업무를 방해해선 안 되니 말이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었다.
지불하는 액수에 따라 견학 코스가 달라진다.
반태수는 솔직히 이런 식이면 오히려 시민들이 반발하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 외로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견학 때문에 업무에 어떤 식으로든 방해가 될 테니,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이것도 오랫동안 홍보를 하면서 박아놓은 인식이겠지.’
반태수는 새삼 글락 그룹이, 아니, 셰딤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다.
정말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아무튼 반태수는 가장 긴 코스로 이루어진 견학을 신청했다. 상당히 비쌌지만, 반태수에게는 푼돈조차 안 되는 액수였다.
반태수의 안내원은 상당한 미모의 여직원이었다.
아까 들어간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안내원들이 전부 미남미녀였다.
‘하긴, 이것도 일종의 홍보니까.’
좋은 외모가 좋은 인상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써먹지 않으면 대기업이 아니고.
안내원이 반갑게 인사한 후, 반태수를 빌딩 안으로 안내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려면 저 스캐너를 통과해야 합니다. 통과하는 순간 다양한 정보를 확인해서 혹시 모를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죠.”
반태수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스캐너를 통과했다.
그러자 안내원이 눈을 반짝였다.
"어머, 능력자셨네요. 마력도 상당하고. 우리 글락에는 능력자도 많이 필요한데, 나중에 생각 있으시면 입사 지원 한 번 해보세요. 제가 보기에 이 정도면 충분히 입사가 가능할 것 같은데.”
스캐너가 확인하는 다양한 정보 중에 마력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면세계 마력을 몸에 빙빙 두르고 있어서 마법사가 아닌 능력자로 판단한 모양이다.
"자,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안내원은 그 뒤로 별다른 말 없이 반태수를 안내했다.
혹시나 해서 스캐너를 지날 때, 마도구나 유물을 마법으로 감추길 잘했다.
아마 아공간 유물이 스캐너에서 걸렸으면 좀 시끄러워졌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무사히 빌딩에 들어왔다.
이제부터 보안을 확인할 차례인데, 과연 잘 될지 모르겠다.
‘더럽게 많네.’
마력 차단 물질이 어찌나 많은지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뭐 하나 확인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반태수는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안내원의 뒤를 따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