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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219화 (215/351)

219화.  < 에라리스를 향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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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비행선 지붕에 의자 하나를 갖다놓고 앉아서 느릿하게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직 퀴무르에 도착하려면 다섯 시간 정도 더 날아가야 한다.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로 광활하고 생명력이 넘친다.

높이 떠서 날고 있지만 시력이 좋아서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수많은 짐승들이 보였다.

풀을 뜯어먹는 소떼부터 시작해 그 소떼를 노리는 맹수들, 그리고 맹수의 사냥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하이에나들.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는 거대한 들판,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숲과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산.

들판과 산 사이에 보이는 넓은 호수까지.

사실 이런 광경은 지구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유독 이면세계의 풍경이 더 야성적으로 느껴진다.

문득 지구가 떠올랐다.

자신이 차리고 이젠 이서영에게 맡긴 카페 위자드, 그리고 포탈을 보관하고 있는 연구실.

거기서 맺은 인연들과 지난번에 갔을 때 싸웠던 재벌들, 그리고 지구에서 활동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조직까지.

이렇게 지구에 대한 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르게 된 계기는 얼마 전에 들었던 벨리온 길드에 대한 얘기였다.

그걸 계기로 그동안 잊고 있던 지구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이렇게 되어 버렸다.

사실 그 전까지는 지구에 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한데 놀랍게도 그 이후부터 계속 지구가 그리워졌다.

조만간 지구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가서 카페 위자드가 잘 있는지, 확장과 분점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확인해 보고, 연구실도 잘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손봐줬던 재벌들은 어쩌고 있는지, 또 지구의 능력자들은 어떤 상황인지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남았다.

셰딤을 치는 게 먼저다. 그걸 마무리한 다음,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구에 다녀올 것이다.

어쨌든 지구 쪽에도 궁금한 것들이 쌓여 있으니 가능하다면 몇 가지 궁금증은 풀고 올 생각이었다.

지구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저 멀리 거대한 도시가 보였다.

드디어 퀴무르에 도착했다.

살라자 샤마쉬와 데드릭 벨크리스가 놀고 있는.

***

반태수는 살라자 샤마쉬와 데드릭 벨크리스를 반가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두 사람은 호텔에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왠지 분위기가 예전과는 좀 달랐다.

훨씬 편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뭔가 묘한 분위기도 있었다.

“얼굴이 좋아진 걸 보니 잘 다녀온 모양이구나.”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에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럭저럭 일은 잘 처리하고 왔습니다.”

이번엔 살라자 샤마쉬가 말했다.

"보내준 정보는 잘 받았네. 워낙 파격적인 정보들인지라 그걸 토대로 일을 하려면 준비가 제법 많이 필요할 듯하네.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면 좀 기다려야 할 듯한데, 괜찮겠나?”

“그럼요. 어차피 금방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서두르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다행이군. 아무튼 잘 돌아왔네. 밥은 먹었나?”

"아직 식전입니다.”

"그럼 일단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도록 하지. 영감님도 괜찮죠?”

"그럼. 나도 마침 슬슬 배가 고파지려던 참인데 잘됐네. 밥이나 먹자.”

살라자 샤마쉬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비서를 보며 눈짓을 하자, 비서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서의 지휘 아래 요리사들과 도우미들이 빠르게 식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식탁에 각종 요리가 빠르게 채워졌다.

세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아 천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았다.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면서 음식을 꼭꼭 씹었다.

“아, 스태플레톤에서 사로잡은 놈들을 데려왔습니다. 5대 가문에서 보낸 놈들로 추정되는데, 심문을 해봐도 딱히 나오는 건 없었습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얼른 그 말에 대꾸했다.

"큰형님이 말씀하셨던 그건가보군.”

5대 가문에서 스태플레톤에 손을 뻗쳤던 놈들이 그쪽으로 병력을 보냈다고 했다.

그 통화내역도 확보했고.

그들이 보냈다던 병력을 반태수가 잡아온 것이다.

“스태플레톤에서 5대 가문과 셰딤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던 보스 다섯 명도 잡아왔습니다. 그것도 살라자님 마음대로 처리하시면 됩니다."

"작은 거라도 좀 얻었으면 좋겠군.”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반태수가 심문했다는 건 점혈을 썼다는 건데, 그렇게 하고도 얻어내지 못했으니 그놈들도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리라.

"그나저나 셰딤의 총본부가 에라리스에 있다고 했지?”

"일단 그놈이 그렇게 말했는데, 거짓은 아닐 겁니다. 좀 이상한 놈이긴 해도 정보 하나는 확실한 것 같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바로 좀 알아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 정보원들 얘기로는 별로 이상한 점이 없다고 하던데.”

“정보원이 쉽게 알아낼 수 있으면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거야 그렇지.”

살라자 샤마쉬가 그렇게 대꾸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그놈이 말해준 곳, 어디냐 하면, 글락 그룹 본사라네.”

"글락 그룹?”

당연히 반태수는 처음 들어봤다.

“화학, 제약, 전자, 건설, 투자, 제과 등등 여기저기 손을 뻗치고 있는 거대 그룹이지. 지부만 해도 백 군데가 넘고.”

“역사가 천 년이 넘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죠. 연구도 엄청나게 했는데.”

아마 연구에서 나온 기술을 적절하게 써먹었을 것이다.

불법 생체 실험도 거리낌 없이 하는 놈들이다. 그러니 얼마나 획기적인 기술을 많이 개발했겠는가.

당연히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사가 어려운 겁니까?”

"뭐, 5대 가문이 작정하고 나서면 어려울 건 없지. 하지만 확신이 없이 치는 건 좀 곤란하네. 큰 기업이니만큼 여기저기 인맥도 많으니까. 그 중에는 5대 가문 소속도 제법 많고.”

물론 뭔가 문제가 있다면 인맥이 아무리 많아도 해결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건드렸다가 아무것도 안 나오면, 그때부터는 좀 곤란해진다.

"그래서 계속 조용히 알아보고 있는데,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군.”

데드릭 벨크리스가 말을 받았다.

"거 조사 며칠이나 했다고. 좀 진득하게 기다려. 이런 건 시간이 필요한 법이야. 서두르면 오히려 그르친다고.”

살라자 샤마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좀 조급해지네요. 그 케인 메르사이어라는 마법사를 우리가 잡았다는 소식이 분명히 셰딤 쪽으로도 들어갔을 겁니다. 시간을 끌면 그놈들, 증거가 될 만한 걸 전부 감추거나 버릴 게 확실합니다.”

그러니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반태수는 그 부분, 충분히 이해했다.

솔직히 자신도 좀 빨리 처리했으면 하는 생각이니까.

"그럼 그 전에 뭐라도 잡아내야겠네?”

"그래야죠. 물론 글락 그룹에 관한 전반적인 조사는 바로 들어갈 겁니다. 셰딤의 연구소 리스트 중에 글락의 계열사와 관계된 장소도 있었으니 조사하면 수상한 것들을 어느 정도 잡아낼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도 늦다. 계열사 정도야 잡아떼면 그만이다. 딱히 연결되었다는 증거도 없을 테고.

그때 반태수가 씹던 음식을 꿀꺽 삼킨 다음 말했다.

"제가 직접 가보죠.”

"응? 네가 직접?”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의 눈이 커다래졌다.

반태수가 직접 간다면 웬만큼 대단한 정보원보다 훨씬 뛰어난 성과를 얻을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자네가 직접 가면 확실하긴 하겠지만…… 스태플레톤에서 고생하고 이제 돌아왔는데, 쉬지도 못하고 바로 에라리스까지 가서 또…… 그건 너무 미안한데?”

"누가 바로 간답니까. 쉴 겁니다. 충분히 쉬고 즐기고 몸과 마음에 충전을 꽉꽉 한 다음에 움직일 겁니다.”

그 말에 살라자 샤마쉬와 데드릭 벨크리스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역시 자네답군. 그래. 당연히 쉬어야지. 하하하하!”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건, 내가 책임지지. 아, 이참에 에라리스에 나도 같이 갈까? 에라리스의 밤도 제법 괜찮은 구석이 있는데."

"영감님은 날 도와서 연구소 정리해야죠. 어딜 놀러가려고 합니까.”

"끄응. 뭐, 그것도 재미있겠지.”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반태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얼른 자신도 데리고 가겠다고 말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반태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해 살라자 샤마쉬를 쳐다봤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반태수는 그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리크는 요즘 어떻습니까?”

"그럭저럭 괜찮네. 근처에 마수도 싹 토벌해서 안전해졌고, 가문에서 들어오던 그 수많은 태클도 전부 사라졌으니.”

"이제 도시 건설만 하면 되겠군요.”

"쉽지는 않을 걸세. 도시를 새로 건설한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니까.”

"그렇겠죠.”

살라자 샤마쉬가 묘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설마 스태플레톤에 있는 동안 연락을 한 번도 안 한 건가?”

"하긴 했죠. 너무 띄엄띄엄해서 문제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워낙 바쁘지 않았던가.

"허어. 오늘 자네가 여기 도착하는 건 알고 있나?”

"모를 겁니다. 얘기를 안 해줬으니까.”

살라자 샤마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반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연락하고 아리크로 가보게.”

그러자 데드릭 벨크리스가 얼른 끼어들었다.

"연락은 무슨. 바보냐? 굳이 왜 지금 연락을 해? 이미 이렇게 됐는데. 오늘은 다 잊고 나랑 밤을 찢어보자. 셋이서 아주 재미있게 놀아 보자고.”

그 말에 살라자 샤마쉬가 멍하니 데드릭 벨크리스를 바라봤다. 설마 저런 말을 할 줄이야.

데드릭 벨크리스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연락은 그 다음에 해도 돼. 오늘 진탕 놀고 푹 잔 다음, 아침에 일어나서 밥도 먹고 여유를 찾은 다음에 천천히. 사람은 조급하면 망하거든.”

데드릭 벨크리스가 반태수를 바라보며 눈을 번득였다.

"자, 이제 선택해. 굳이 지금 연락해서 상대방 서운하게 만들고 놀지도 못하는 머저리가 될래? 아니면 나랑 놀래?”

뭔가 선택지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답은 정해졌다.

“놀죠.”

살라자 샤마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얼토당토않은 말인데. 왜 묘하게 설득되는 거 같지? 내가 미친 건가?”

데드릭 벨크리스가 히죽 웃으며 살라자 사마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지극히 정상이지. 왜? 내 말이 옳으니까. 자자, 시간이 아깝다.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밤은 계속 흘러간다고. 얼른얼른 움직여야지!"

데드릭 벨크리스는 두 사람을 호텔 밖으로 내몰았다.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번화가가 나오고, 번화가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유흥가가 쭉 이어져 있었다.

그쪽으로 두 사람을 몰아가는 데드릭 벨크리스의 입가에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가 맺혔다.

***

반태수는 열흘 동안 쉬었다.

원래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으려고 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밤마다 자신을 불러내는 데드릭 벨크리스도 문제였지만, 쉬는 동안 케트라 브리저와도 함께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까.

그래도 그녀와 함께 있는 건 휴식의 범주에 속했다. 나름 힐링도 됐고.

휴식 초반기는 케트라 브리저와 함께 했고, 중반기는 데드릭 벨크리스와 함께 했다.

살라자 샤마쉬도 함께 했으면 좋았겠지만, 너무 바빴다.

셰딤 때문에 갑자기 일이 쏟아져서 어쩔 수가 없었다.

휴식의 후반기, 그러니까 마지막 이틀은 홀로 보냈다.

반태수는 그때 자신의 마법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돌아보고 되새겼다.

그동안 무지막지한 속도로 성장했으니, 한 번쯤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정리를 하다 보니 원래 알던 마법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모르던 걸 알게 되기도 하면서 마법이 갑자기 훅 성장했다.

때 되면 떠오르던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그냥 원래 갖고 있던 것으로부터 새로운 걸 뽑아낸 것이다.

그렇게 열흘의 끝자락에 왔다.

반태수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지금 있는 곳은 숲 속 호숫가.

마지막 이틀은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 보냈다.

백사장에 그냥 앉아 있던 반태수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이거 진짜 될 듯 하면서 결국 안 되네.”

뭔가 뇌 한구석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드는데, 거기에서 더 진척이 되지 않았다.

반태수는 미련을 털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더 붙들고 매달린다고 해서 될 것 같지 않았다.

뭔가 다른 계기가 있거나, 아니면 처음으로 돌아가 찬찬히 고민하면서 술식 설계를 다시 해야 할 듯했다.

'아공간, 진짜 어렵긴 하네.’

반태수가 시도한 것은 아공간의 완성이었다.

이게 참 될 것 같은 느낌이 온 지는 제법 됐는데, 여전히 성과가 없다.

그래도 실패 후 이렇게 간단히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건, 아직 아쉽지 않아서 그렇다.

이미 아공간 유물을 두 개나 들고 있지 않은가.

팔찌와 허리띠.

아직 용량도 충분하다. 거대 비행선이나 강철관 같은 건 못 담지만, 그래도 쓰는 데 별 불편함은 없으니 됐다.

반태수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리고 엉덩이에 물은 모래를 털어내고 비행선으로 향했다.

이제 살라자 샤마쉬와 데드릭 벨크리스를 만나 인사를 하고, 에라리스로 떠날 시간이다.

'아, 케트라 브리저한테도 인사를 하고 와야겠구나.’

어쩌면 인사만 하고 바로 떠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반태수의 비행선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리크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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