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214화 (210/351)

214화.  < 혼란의 스태플레톤 2 >

==============================

온통 새까만 어둠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감각도 무더졌다. 아니, 감각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것이 그 크기만 한 건물에 뛰어들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 뛰어들었을 때는 뒤따라오는 동료들이 있으니 무작정 앞으로 달렸다.

한데 너무 깜깜해서 몇 발 뛰기도 전에 멈춰야 했다.

분명히 뒤이어 동료들이 뛰어들어 왔을 것이다.

한데 아무 기척이나 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이 정도면 달려들어서 자신에게 부딪혔어야 정상이다.

한데 아무 느낌도 없었다. 심지어 옆으로 지나쳤으면 바람이라도 느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자신은 이곳에서 완벽하게 고립되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힘을 쓰거나 무기를 쓸 수도 없었다.

근처에 동료들이 있을 텐데 함부로 무기를 쓰면 동료들이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가만히 서서 기다리거나, 아니면 조금씩 감각을 집중해 더듬어 나아가는 것 외에는 없다.

사내, 푸스탁은 후자를 선택했다.

온 신경을 발끝에 모아 천천히 앞을 휘저었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한 발을 내디뎠다.

처음보다 두 번째는 더 쉬웠다. 발을 내밀어 휘것고 내려놓고.

그걸 반복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걸음이 늘어날수록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한데 백 걸음이 넘었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푸스탁은 여전히 어둠과 고요 속에서 그저 계속 걷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천 걸음 정도 걸었을 때, 결국 멈췄다.

더 이상은 걸어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니, 그걸 깨달은 건 훨씬 전이었다. 그저 미련이 남아서 좀 더 걸었을 뿐.

푸스탁은 제자리에 서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대체 여긴 뭐지?”

***

건물 안에 들어간 모든 사람들이 푸스탁과 같은 상태였다.

그들은 건물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 자리에 데려다 놓기라도 한 것처럼 비슷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으며, 심지어 각 층을 전부 활용해서 균일하게 흩어져 있었다.

다들 그저 건물 안으로 달려들었을 뿐인데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이끌어낸 반태수는 건물 옥상에서 영역화를 통해 그들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반태수 옆에는 드룸윈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드룸윈드가 의문을 가질 만했다.

이 건물은 애초에 텅 비어 있었다.

반태수는 오늘 적들이 몰려오기 전에 속성 종족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속성 종족들이 대놓고 거리를 활보하며 자리를 옮겼는데도, 그 사실이 전혀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았다.

이동 거리가 길지 않기에 반태수가 마법을 통해 그들의 움직임을 감춰 버린 것이다.

드룸윈드도 그때 함께 있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갑자기 눈앞에서 속성 종족들이 사라진 줄 알았으니까.

한데 집중해서 바라보니 그들이 희미하게 보이다 말다 했다.

반태수는 그저 간단한 인식저하 마법이라고 했다.

그로 인해 드룸윈드가 가진 반태수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이 한 층 상승했다.

아무튼 그렇게 속성 종족을 옮기고 건물을 텅 비워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마어마한 수의 적이 몰려왔다.

그걸 보고 드룸윈드는 또 한 번 감탄했다.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속성 종족을 피신시키다니 말이다.

드룸윈드는 속성 종족들로 저들의 뒤를 치게 하려는 줄 알았다.

그야 말로 완벽한 기습 아닌가.

한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비어 있는 건물인데, 그 안에서 공격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진 일은 더 황당했다.

적의 공격을 모조리 요격한 것이다.

무려 5천 명이 쏟아내는 공격을 빈 건물이 요격했다니,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 뒤로 수천 명이나 되는 적들이 전부 건물로 돌진해 안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수백 명의 적이 추가로 들어왔다.

그리고 적막에 휩싸였다.

드룸윈드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음에도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건물에 가둔 겁니다.”

말 그대로 정말로 건물에 가뒀다.

처음 몰려온 적들을 상대로 공격한 건 반태수였다. 직접 마법을 써서 그들의 공격을 요격했다.

굳이 실드를 쓰지 않고 요격한 것은 저들이 건물로 들어가게 하려는 의도였다.

건물에는 미리 다양한 마법을 부여해서 적당한 함정을 파뒀다.

오감을 가리는 마법을 강력하게 부여해서 안으로 들어온 자들의 감각을 빼앗았다.

그 뒤로는 정교한 마력 컨트롤을 이용해 그들의 움직임을 조작했다.

그들은 오감을 빼앗겼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자신이 걷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실제로는 가만히 서 있었다. 또한 자신이 서 있다고 여기겠지만, 실제로는 걷고 있었고.

반태수는 지금도 건물에 갇힌 자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건물에서 나오면 마법이 깨진다.

오직 건물 안에서만 작동하는 꼭두각시 마법이었다.

“안에…… 가뒀다고요?”

드룸윈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계속 반태수와 함께 있었다. 한데 반태수가 딱히 뭔가를 하는 걸 못 봤다.

그런데 마치 지금 태도를 보면 건물에 뭔가 장치를 했고, 그걸 이용해 적들을 모조리 사로잡은 것 같지 않은가.

반태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드룸윈드에게 말했다.

"일단 주변 정리를 좀 하죠. 시체들은 치워야 할 것 같은데. 살아있는 사람도 좀 있고요.”

"아! 알겠습니다. 한데…… 속성 종족을 좀 데려와서 같이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위험한 일이 하나 지나갔으니 당분간은 좀 조용할 테니까요.”

확실히 위험한 일이긴 했다.

만일 오늘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지 마시고요. 피아식별 못하니까.”

그 말에 드룸윈드는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드룸윈드는 건물 옆에 붙어 있는 철제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동료들과 속성 종족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백 명이 넘는 속성 종족과 수십 명의 사람이 나타나 건물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시체는 한데 모으고, 아직 살아있는 자들은 응급처치만 대충 해서 따로 가뒀다.

그렇게 밤의 전투가 마무리 되었다.

***

반태수는 옥상에 서서 건물 안에 잡아놓은 적들을 한 차례 쫙 훑었다.

영역화로 바로바로 파악하고 분석한 다음, 적당한 기준을 세워 적을 분류했다.

그 중에 강력한 마도구로 무장한 자들이 있었다.

수도 많았다. 5백 명이 넘었으니까.

게다가 마력량도 많았다. 마력이 주는 느낌도 섬뜩했다.

아마 무수한 훈련과 실전을 통해 실력을 쌓은 자들이리라.

반태수는 스태플레톤을 암중에서 조종한다는 자들이 5대 가문과 닿아 있을 거라 추측했다.

그와 관련된 얘기를 살라자 샤마쉬와 나눠본 적도 있었다. 살라자 샤마쉬 역시 반태수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아무튼 반태수는 방금 분류한 5백 명이 넘는 자들이 5대 가문과 관련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의 자리를 따로 지정해서 한데 모았다.

이들은 한 번쯤 심문을 시도해 보고 여의치 않으면 싹 정리해 버릴 것이다.

반태수는 조사 과정에서 스태플레톤을 조종한다는 사람들을 뽑아낼 수 있었다.

물론 진짜 그들인지는 모른다. 그저 후보일 뿐이다.

그래서 뽑아낸 사람의 수가 다섯이 아니라 열두 명이었다.

실력과 태도, 그리고 혼잣말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판단해서 뽑았다.

그렇게 그들도 따로 자리를 지정해서 모았다.

나중에 몇 가지 테스트를 통해 걸러내고 진짜 다섯 명만 남길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확인했다.

몸에 뭔가 장치를 달았거나 마법적 처치를 했는지도 확인했다.

다들 몸에 마법진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5천 명이 전부.

“어쩐지 아까 좀 부자연스럽더라니.”

아까 난데없이 5천 명이나 되는 자들이 일제히 건물로 달려들어서 살짝 놀랐다.

바로 이 마법진 때문이었다.

순간적으로 세뇌에 가까운 명령을 이행하게 만드는 마법진이었다.

당연히 정신 쪽에 작용하는데, 이 마법진은 마력으로 정신을 건드리는 것뿐 아니라 특정 호르몬의 양을 늘려서 효율을 높이는 것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런 기능이 어디서 나왔겠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들 전부 셰딤과 손을 잡은 것이 분명하다.

반태수는 솔직히 좀 신기했다.

5대 가문 내에서 셰딤과 손을 잡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게다가 분위기를 보면 5대 가문 내에서도 제법 지위가 있는 자들이 분명하다.

버트람 뷰고르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 자들이 뭐가 아쉬워서 셰딤 같은 놈들이랑 손을 잡는단 말인가.

셰딤은 5대 가문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목적인 놈들인데.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셰딤과 손을 잡았다는 건, 그만큼 셰딤으로부터 얻을 것이 많다는 뜻이다.

아무튼 반태수는 그 마법진을 일단 제거하기로 했다.

평범한 마법진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에 연결된 마법진이기 때문에 제거하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더구나 이렇게 영역화를 통해 원거리에서 제거하려면 훨씬 난이도가 높아진다.

그래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반태수는 마법진 제거를 시작했다.

한 명씩 차분히, 그리고 차근차근.

육체와 정신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마법진만 싹 도려내면 된다.

물론 간단하지는 않다.

첫 번째 사람의 마법진을 도려내는 데 5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두 번째는 약간 더 짧았다.

그리고 열 번째가 되었을 때부터 급격히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중에는 한꺼번에 두 명, 세 명의 마법진을 동시에 제거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남은 모든 사람들의 마법진을 한꺼번에 제거해 버렸다.

반태수는 모든 마법진을 제거한 다음 가만히 서서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마법진을 제거하려면 마법진을 분석해야 한다.

한데 그건 기본이고, 마법진을 반복적으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제거 효율을 더 높이고 속도를 높이기 위해 추가 분석에 들어갔다.

결국 반태수는 마법진의 개선 방향까지 찾아냈다.

마법진을 개발하고 완성한 사람보다 이 마법진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아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지금 정리하는 중이었다.

벽을 넘을 정도는 아니고, 그저 소소한 깨달음이었다.

모든 정리가 끝난 반태수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마법진을 제거한 자들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굳이 이들을 이렇게 살려두고 마법진까지 제거할 정도로 공을 들이는 이유는 저들을 영입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저 중에서도 걸러내야 할 놈들이 제법 많을 것이다.

그래도 걸러낼 거 다 걸러내고 3천 명 정도만 남아도 충분히 이득이다.

이 지역을 얻으면서 기존 조직원들을 전부 죽이지 않고 어느 정도 남겨서 써먹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반태수는 세 개 정도 지역을 하나로 합해서 속성 종족 위주로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려면 손발이 되어줄 능력자가 많이 필요하다.

나중에 더 많은 속성 종족들이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까지 다 받아들이려면 애초에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놔야 한다.

"이놈들 분류하고 영입하고 하려면 그것도 일이네.”

일단 살라자 샤마쉬에게 연락부터 하기로 했다. 5대 가문이 개입한 걸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다고.

***

살라자 샤마쉬는 입을 꾹 다물고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꼭 데드릭 벨크리스가 두 명 있는 것 같았다.

"네가 요즘 우리 막내랑 잘 어울려 준다는 애송이로구나.”

데드릭 벨크리스의 큰형님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는 데드릭 벨크리스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게 싫으면서도 한 마디 항의도 못하고 그저 꾹 눌러 참기만 했다.

경험에 의해 여기선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 말란다고 안 할 큰형님이 아니다. 아마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심하게 할 것이다.

살라자 샤마쉬는 데드릭 벨크리스를 애 취급하는 모습에 더더욱 말을 아꼈다.

"사실 내가 이렇게 밖으로 나돌아 다니면 곤란하긴 한데, 그렇다고 우리 막내가 오랜만에 부탁하는 걸 거절할 수는 없지."

데드릭 벨크리스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하지만 살라자 샤마쉬는 그럴 수 없었다.

“좀 알아보셨습니까?”

“광범위하게 감시망을 몇 바퀴 돌렸지.”

살라자 샤마쉬는 저 광범위한 감시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장로들만 쓸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하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살라자 샤마쉬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데드릭 벨크리스의 큰형님을 바라봤다.

그는 손바닥을 쫙 폈다.

"다섯 놈이 수상한 행동을 하더군.”

“다섯 명이나 움직였습니까?”

“그놈들이 각각 백 명이 넘는 능력자를 무장시켜서 어딘가로 보냈어.”

살라자 샤마쉬가 눈을 크게 떴다.

“5대 가문 안에서 외부로 사람을 보냈단 말입니까? 그렇게나 많은 사람을?”

"에이, 아니지. 외부에서 준비한 사람들을 보낸 거지. 난 그놈들이 통화하는 내역을 확인한 것뿐이고."

큰형님은 그렇게 말하며 살라자 샤마쉬에게 USB 하나를 휙 던졌다.

“그게 통화내용.”

살라자 샤마쉬는 살짝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좀 애매하다.

아직 내용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고작 애들 준비시켜서 보내라는 명령 정도일 것이다.

그것만으로 이들이 스태플레톤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살라자 샤마쉬의 표정을 본 큰형님이 피식 웃었다.

"이놈들이 허술하게 증거를 남겼겠어? 어떤 놈인지 알아낸 걸로 만족해. 알아냈으니 앞으로 계속 감시하면서 차근차근 정보를 모으고."

살라자 샤마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버트람 뷰고르를 제대로 잡아내서 그런지 욕심이 생겼나보다.

"스태플레톤 쪽은 어떻게 됐어?”

"그쪽은 무난하게 정리가 끝났습니다.”

살라자 샤마쉬는 손에 든 USB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이들이 보낸 병력은 전부 사로잡았고, 거기서 이들의 지시를 받아 활동하는 자들도 전부 잡았습니다.”

큰형님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제법 쓸 만한 녀석이 가 있는 모양이네?”

"예."

살라자 샤마쉬는 반태수에 대한 말을 최대한 아꼈다. 그러면서 데드릭 벨크리스를 슬쩍 바라봤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입가가 살짝 올라간 걸로 봐서는 그 역시 반태수에 대한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생각이 맞아 떨어져서 다행이다.

'하긴, 최근 같이 나눈 시간이 있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지.’

살라자 샤마쉬는 큰형님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이제 제가 잘 해보겠습니다.”

큰형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그 길로 빠진 놈들은 절대 못 끊어. 아마 스태플레톤에 또 비슷한 짓을 하려고 할 거다.”

그러니 철저히 감시하면서 그걸 잡아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큰형님은 데드릭 벨크리스를 보며 어깨에 팔을 얹으며 확 끌어당겼다.

"우리 막내는 앞으로도 종종 이 형님한테 연락하고. 알았어?”

데드릭 벨크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드드득!

큰형님이 팔에 힘을 더 주자,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따라왔다.

“대답은?”

"할게요. 한다고요!”

큰형님이 귀엽다는 듯한 눈빛으로 데드릭 벨크리스를 바라보며 또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머리에서 힘을 쭉 뺐다. 머리가 더 심하게 흔들렸지만 꾹 참았다.

이내 인내의 시간이 끝났다.

“난 간다. 필요한 일 있으면 또 부르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막내가 부르면 바로 올 테니까.”

큰형님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근처 소파에 털썩 앉은 다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영감님, 괜찮아요?”

"안 괜찮다. 그동안 시달린 걸 생각하면……."

데드릭 벨크리스는 이를 갈았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살라자 샤마쉬를 바라봤다.

"그런데 우리 큰형님이 반 그 녀석한테 관심이 좀 가는 것 같은데, 넌 못 느꼈어?”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은 안 하셨지만…… 관심이 좀 가는 모양입니다.”

“앞으로 좀 더 조심하는 게 좋겠어. 그 녀석한테도 미리 얘기를 해두고."

“알겠습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은근한 표정으로 살라자 샤마쉬를 바라봤다.

"우리 그동안 힘들었는데, 오랜만에 어때?”

살라자 샤마쉬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좋죠.”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 벌떡 일어나더니 얼른 밖으로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