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 암살조직과 셰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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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아침 식사를 한 후, 숲에 들어가 어젯밤 사로잡은 세 사람을 찾아갔다.
가볍게 심문을 했는데, 역시나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들이 가진 유물과 마도구도 살짝 분석했는데, 그냥 그랬다.
혹시나 해서 암살자들의 몸을 정밀스캔 해봤는데, 역시나 자폭 장치가 있었다.
눈과 뇌와 척추가 전자장치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 중 뇌에 응축된 마력이 있었다.
그 응축된 마력을 이용해 뇌에 심어놓은 마법을 발동시키는 장치였다.
스스로 선택하는 건 불가능하고, 외부에서 특정한 신호를 받으면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 이 동굴 안은 신호를 막아뒀다.
그 어떤 전파나 마력 신호도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
아무튼 이들은 좀 특이한 암살 조직이었다.
철저한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시는 망막을 통해서 내린다.
여기에 온 세 사람도 각각 다른 곳에 있다가 명령을 받고 이쪽에서 모인 것이었다.
두 사람은 퀴무르에서 평범한 일을 하며 지냈고, 나머지 한 명은 다른 도시에서 왔다.
그 역시 그 도시에서는 평범한 일을 하며 살아갔다.
애초에 사람을 납치해 암살 기술을 익히게 하고 여러 도시에 쫙 풀어놨다가 필요할 때 불러서 써먹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가장 아래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아무리 사로잡아서 심문을 해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가장 밑에서 움직이는 암살자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들은 위에서 주어지는 현금으로 살고, 의뢰비를 따로 받지도 않는다.
그저 기계적으로 살인을 반복할 뿐이다.
아마 이들은 동굴에서 나가면 폭발해 버릴 것이다.
반태수는 그들을 보며 물었다.
"내가 놔주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그러길 원하니까 그렇게 한다는 건가?”
"예."
"원래 메뉴얼은 어떻게 되는데?”
"다시 암살을 시도합니다.”
“그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저희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판단은 위에서 하고 새로운 지시를 내립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지시를 그대로 따를 뿐입니다."
"그럼 지금 새 지시를 받으면 그렇게 하겠네?”
"지시가 내려오지 않습니다.”
내려올 리가 없다. 지금 모든 신호를 다 차단해 뒀으니까.
"그럼 날 다시 죽이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그렇게 하겠다는 거네?”
암살자들이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일단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지시를 이행하더라도 그 뒤에 하겠습니다.”
암살자들의 눈은 안대로 가렸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두려움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암살 훈련을 받아 고통을 참아내는 훈련도 상당히 많이 받았을 텐데, 그런 이들도 점혈을 버텨내지는 못했다.
지금 풀어준다고 덤볐다가 다시 그 꼴을 당하는 건 생각하기도 싫은 모양이었다.
아마 암살 훈련을 받는 동안 강력한 세뇌도 받았을 텐데, 그런데도 상부의 지시를 바로 이행할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점혈이 얼마나 대단한 고통을 주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놔주면 나에 대한 정보를 위에 전달하겠네?”
"전달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는 받기만 할뿐 뭔가를 위로 올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철저하게 위로 흐르는 모든 것을 막았다.
"정보가 없으면 암살을 할 수 없을 텐데?”
"정보를 수집하는 팀이 따로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는 거네?”
"네. 모릅니다.”
진짜 말 그대로 칼이다. 철저한 도구로 쓰기만 하고 쓰임이 다하면 폐기해서 버리고.
"누가 너희를 부리는지 궁금하지는 않고?”
“안 궁금합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잘 하면 편안히 먹고 살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합니다.”
아마 저렇게 생각하도록 강력하게 세뇌했을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서.
"암살 훈련했던 장소는 기억하고?”
"장소는 기억하지만, 어떻게 가는지, 또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저희는 이동할 때 항상 잠든 채였습니다."
"임무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
"아직 실패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반태수가 빤히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총 37번의 임무를 맡았고, 그 중 합동 임무 21회, 개인 임무 16회, 전부 성공했습니다.”
"다른 암살자들 중에 임무에 실패한 사람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고?”
"제가 만난 사람 중에는 없는데, 얘기는 들어봤습니다.”
반태수가 흥미로운 눈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실패하면 다른 방식으로 재시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을 아예 바꿔서 전혀 다른 방식을 쓴다고 합니다.”
"어떤 식으로?”
"칼로 실패했으면 총이나 독을 쓴다거나, 아니면 여자를 쓴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솔직히 자세히는 모릅니다."
"재미있네.”
과연 어떤 방식을 들고 나올지 궁금해졌다.
반태수는 세 명의 암살자를 슥 둘러봤다.
원래는 이들을 그냥 죽이려 했다. 어차피 자신을 죽이러 왔으니까.
한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그냥 보내주고 따로 감시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단 마킹을 하고, 주변에 위상을 뒤집어 좁은 범위의 영역화를 펼쳤다.
그리고 두뇌를 하나 할당해 세 사람을 계속 감시하도록 조치했다.
"이제 가라. 볼일은 다 본 거 같으니까.”
세 사람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 정말로 가도 됩니까?”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가라.”
대신 머릿속에 있는 폭탄이 터지더라도 못 지켜준다. 이 동굴에 계속 있으면 모를까.
아니, 하고자 마음먹으면 할 수 있지만, 굳이 해줄 이유가 없었다.
머릿속 폭탄을 작동시킬 때 어떤 신호가 오는지도 확인해 봐야 하고.
아무튼 세 암살자는 반태수의 눈치를 살피며 쭈뼛쭈뼛 일어나 동굴 밖으로 조심스럽게 나갔다.
그리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향하는 방향은 퀴무르였다.
반태수는 실시간으로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보를 잠시 확인하며 동굴을 나섰다.
이제 다시 원래 일로 돌아갈 시간이다.
***
‘그런데 시도할 만한 다른 방식이 있긴 한가?’
반태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비행선 제작에 열을 올렸다.
사실 이론은 잔뜩 쌓았어도 실제 제작하는 건 처음인지라 초반에는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진행하다보니 가속이 붙어서 지금은 속도가 아주 빨라졌다.
이렇게 비행선을 제작하느라 숲 속 호숫가에서 아예 벗어나질 않았다.
놔주고 마킹과 영역화를 통해 감시 중인 세 명의 암살자는 의외로 폭발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퀴무르에 있는 싸구려 호텔에서 조용히 지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면서도 개인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매일 운동하고 전투훈련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는 사이, 오카리타에서 출발한 비행선들이 호숫가에 도착했다.
엄청난 양의 식량이 쌓였다.
그리고 그 식량을 가지러 속성 종족들이 호숫가에 방문하기로 했다.
반태수는 비행선 만들기를 잠시 쉬면서 영역화에 집중했다.
영역화의 범위가 넓어서 숲으로 들어오는 속성 종족들을 하나하나 잡아낼 수 있었다.
각각의 종족이 50명씩, 총 200명의 속성 종족이 숲으로 들어섰다.
밤이 아니지만 숲에 워낙 그림자가 많이 지기에 어둠 속성 종족의 존재감이 확 낮아졌다.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그들을 잡아낼 수 있었다.
아마 밤이라고 해도, 저들이 더 공들여 숨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또 성장했어.’
영역화가 더 성장했다. 아니, 반태수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에 한 일도 거의 없는데 대체 왜 성장한 걸까?
‘아…… 비행선!’
비행선을 제작하면서 성장한 모양이다.
확실히 비행선 제작이 쉬운 일이 아니긴 했다.
제작하던 비행선을 한쪽으로 치웠다. 부품들을 한데 모으고 특수 제작된 강판들도 차곡차곡 쌓았다.
순식간에 정리하고 나니, 호숫가가 아주 깔끔해졌다.
한쪽에 쌓인 식량을 빼면.
‘그나저나 고작 200명이서 저걸 다 어떻게 가져가려고 그러는 거지?’
아무리 속성 종족이 평범한 인간보다 강하다고 해도, 한 사람이 들고 갈 수 있는 식량의 양은 정해져 있는 법이다.
무려 3천 명이 먹을 식량이다.
고작 200명이서 얼마나 가져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200명의 속성 종족이 호숫가로 들어섰다.
또 보는데도 신기하다.
영역화를 통해서 보면 더 신기하다.
진짜 사람과 속성을 절반씩 섞어 놓은 듯하니까.
각 속성 종족의 대표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반태수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이렇게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빛 속성 종족이 나서서 대표로 말했다.
나머지는 그저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기만 했다.
"데드릭 벨크리스 님이 준비해준 거다. 그나저나…… 얼마나 들고 갈 수 있지?”
“7일 치를 가져가겠습니다. 7일에 한 번씩 방문해서 식량을 가져가려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뭐, 그렇게 해. 나야 보관만 하는 건데. 그런데 3천 명이 먹을 7일 치면 양이 제법 될 텐데, 가능하겠어?”
“가능합니다.”
빛 속성 대표는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저렇게 웃으니 안 그래도 잘 생겼는데, 정말 빛이 나는 것 같다. 아니, 진짜 빛이 나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눈부시다.
그들은 식량이 쌓인 곳으로 가서 각각 짝을 짓기 시작했다.
어둠 속성과 물, 빛 속성과 불, 이런 식으로 100명이 짝을 지었고, 나머지 100명은 살짝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는 반태수에게 빛 속성 대표가 다가와 설명해 주었다.
“100명은 식량을 나르고, 100명은 호위를 하기로 했습니다.”
“100명이라고?”
심지어 저 200명 중에서 절반만 식량을 나르는 건가? 솔직히 좀 놀랐다.
한데 진짜 놀랄 만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각각 짝을 지은 속성 종족들이 속성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어둠과 물, 빛과 불이 교묘한 패턴을 이루며 뒤섞였다.
반태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저렇게 섞인 속성력의 패턴이 마치 마법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복잡한 술식을 계산할 필요도 없이 저들은 그저 본능에 새겨진 감각만으로 저 일을 해낸 것이다.
저들이 완성시킨 마법은 놀랍게도 공간 확장이었다. 아니, 반쯤은 아공간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마법이었다.
두 사람이 마력으로 연결 되어야 하기에, 일정 거리 이상 벗어나지 못한다. 그 사이에 검은 공간이 일렁이고 있었다.
따로 떨어져서 지켜보던 속성 종족들이 빠르게 그곳에 식량을 넣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양의 식량이 들어갔다.
반태수는 그걸 보면서 속성 종족들이 생각보다 정확히 계산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검은 공간에 식량을 어느 정도 채우니 공간 위로 식량들이 넘쳐났다.
딱 그 정도까지 채웠는데, 다 채우고 나니 딱 7일 치였다.
그렇게 식량을 채운 후, 각 속성 종족들의 대표가 반태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7일 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돌아가라.”
인사를 나누고 속성 종족들이 우르르 돌아갔다.
근처 마수도 대부분 토벌했을 테니, 아마 별 일은 없을 것이다.
반태수는 방금 봤던 마력 패턴이 머릿속에 남아, 가만히 서서 그것을 분석했다.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아공간 마법 연구의 돌파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속성 마력이 섞이며 만들어내는 패턴은 다양하면서도 복잡했다.
아까 일어나던 변화를 전부 머릿속에 기억해 뒀기에 분석 자체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반태수는 이것 역시 두뇌 하나를 온전히 할당했다. 그래야 분석이 가능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대충 정리하고 난 다음, 쌓인 식량에 보존 마법을 다시 걸었다.
식량을 옮기느라 주변 마력이 한 번 헤집어졌으니 다시 정돈할 필요가 있었다.
그저 보존 마법만 쓰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마법도 몇 가지 걸어 두었다.
숲에 마수가 거의 살지 않지만, 짐승들은 제법 많았다.
그 짐승들이나 몇 안 되는 작은 마수들로부터 식량을 보호하려면 강력한 충격을 주는 마법이 필요했다.
한 번 쓴 맛을 봐야 다시 얼씬거리지 않을 테니까.
마법까지 다 걸었으니, 오늘 일과가 다 끝났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지만, 굳이 차곡차곡 정리해 놓은 비행선 제작재료들을 다시 헤집기 싫었다.
그냥 남은 시간은 마법 연구를 하거나, 아니면 호수에서 수영이라도 하거나 하면서 보내면 되지 않겠나.
그러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케트라 브리저였다.
생각해보니 이쪽으로 돌아온 뒤로 그녀와 만난 적이 거의 없었다.
아마 많이 서운해 하고 있으리라.
반태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통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제법 재미있었다.
케트라 브리저가 사람들과 이쪽으로 놀러오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개척도시를 건설한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람들이 좀 지쳐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들에게 이곳 호숫가에서 활기를 되찾아주고 싶다는 거였다.
얼마든지 데려오라고 했다.
케트라 브리저는 아리크의 비행선을 이용해 여기로 오겠다고 했다. 희망자를 전부 받아서.
전화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영역화 안으로 비행선이 들어왔다.
아리크의 비행선이었다. 여기저기가 삐걱거리는.
‘저것도 한 번 손을 봐줘야 하는데.’
케트라 브리저가 저 비행선을 타고 다니다가 비행선이 고장 나 추락이라도 하면 곤란하다.
물론 7서클 마법사가 고작 비행선 추락 사고로 크게 다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삐걱거리는 곳들은 이번 기회에 좀 손보기로 했다.
이내 비행선이 호숫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비행선은 적당한 곳에 착륙했다.
그 안에서 수백 명이 내렸다.
멀지 않아서 금방 올 수 있으니 그냥 사람만 무작정 태운 모양이었다.
케트라 브리저가 환하게 웃으며 반태수에게 다가갔다.
"저, 너무 방치하시는 거 아닌가요?”
그녀가 살짝 투정하듯 말하는데, 애초에 외모가 뛰어나니 그것도 좋게 보였다.
“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반 마법사님 바쁜 거야 저도 잘 알죠. 그래도 오늘이랑 내일 정도는 시간 내주실 수 있죠?”
"그럼요.”
안 그래도 온다고 해서 얼마나 기대했는데. 마력도 다시 섞어봐야 하고.
두 사람이 그렇게 반갑게 인사하고 있을 때, 비행선에서 내린 사람들 중 일부가 다가왔다.
남녀가 적당히 섞여 있었는데, 다들 외모가 괜찮았다.
물론 케트라 브리저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이것 봐라?’
반태수는 다가오는 사람들이 전부 능력자라는 걸 확인했다.
어쩌면.......
어쩌면 저들이 그 암살 조직에서 새로 시도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반태수의 입가에 기대감 어린 미소가 살짝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