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95화 (191/351)

195화.  < 버트람 뷰고르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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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람 뷰고르는 테이블 모서리를 꽉 쥐었다.

우드드득!

자신도 모르게 마력이 일어나 테이블 모서리를 뭉개 버렸다.

그걸로도 모자라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꽝!

원목 테이블이 그대로 두 동강 났다.

마법까지 가미된 최고급 원목 테이블이었는데, 이렇게 한 방에 가 버렸다.

"이놈들이…… 감히!”

버트람 뷰고르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3 연구소를 결국 찾아낸 것이다.

몽땅 털렸다.

그동안 쌓아뒀던 연구자료, 몇 군데 유적을 불법으로 발굴해서 찾아낸 강철관들, 그리고 그 안에 배양하던 마수들까지.

그뿐 아니라 3 연구소에서 진행한 온갖 불법적인 증거들까지 싹 털렸다.

버트람 뷰고르는 그 증거들 중에서 자신과 연관된 것이 없는지 머리가 터지도록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그런 걸 남겨두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큰 걱정은 없지만, 혹시 모르지 않나.

상대는 그 미친 데드릭 벨크리스다. 일말의 여지도 줘선 안 된다.

3 연구소에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다니.

게다가 거기에 투입한 연구원과 능력자들은 특히나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자들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도 인력을 키워내려면 거기 투자하는 시간이 문제가 된다.

얼마나 오랫동안 공들여 키웠는데.

심지어 그들은 5대 가문의 힘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비밀리에 키웠다.

그래야 저런 연구에 써먹을 수 있을 테니까.

"한데,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3 연구소만 털린 게 아니라, 그 전에 1,2 연구소도 다 털렸다.

오히려 인적 자원에 대한 타격은 1,2 연구소 쪽이 훨씬 심했다.

그쪽에 더 많은 인력을 배치했으니까.

3 연구소는 아직 완공도 안 된 상태였으니 상대적으로 연구원이나 능력자들이 덜 들어갔다.

"이렇게 된 이상, 기업체들이라도 살려야겠어. 아니, 거기 들어간 투자금을 회수해야겠어.”

버트람 뷰고르는 인터폰을 눌러 비서를 불렀다.

비서가 들어와 정중히 인사하고는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부서진 테이블을 치우고 새 테이블을 세팅했다.

테이블을 치우고 다시 놓는 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 비서는 물론이고 일하는 사람들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집무실이 깔끔해지자, 버트람 뷰고르가 비서에게 물었다.

"살라자 샤마쉬와 약속 잡으라고 했던 거, 어떻게 됐지?”

살라자 샤마쉬와의 약속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지시한 건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한꺼번에 만나는 약속이었다.

비서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직 약속을 잡지 못했습니다.”

“뭐?”

버트람 뷰고르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눈에서 나오는 자욱한 살기가 비서를 짓눌렀다.

하지만 이런 일 또한 한두 번이 아닌지라 비서는 능숙하게 압박을 견디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없다면서 연락할 때마다 나중으로 미루고 있습니다.”

"둘 다?”

"예. 살라자 샤마쉬 쪽에는 그래서 아직 연락도 못 했습니다.”

"허, 이것들이 겁을 상실했구나.”

살라자 샤마쉬 집안과 버트람 뷰고르는 제법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버트람 뷰고르가 그 집안사람들을 이끄는 형태였다.

"이번에 위원회에 추가 자리 마련하는 안건, 어떻게 됐지?”

"통과가 유력합니다.”

"총 열 자리 추가되는 건가?”

"에. 각 가문에 두 자리씩 할당하기로 했습니다.”

“샤마쉬 가문에서 이번에 받기로 한 자가 누구지?”

"할칸 샤마쉬와 하스르 샤마쉬입니다.”

"그래? 생각보다 일이 쉬워졌군. 하스르 샤마쉬에게 연락해서 위원회 자리, 나한테 넘기라고 해.”

비서는 의문을 갖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연락해서 약속 잡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위원회 자리가 하나 비었다고 꼭 전하고.”

비서가 깊숙이 허리를 숙인 후, 물러갔다.

버트람 뷰고르는 차가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 벌어진 모든 일의 중심에는 데드릭 벨크리스가 있었다.

'그런데 왜 난 계속 그 반이라는 마법사가 신경 쓰이는 거지?’

자꾸 떠올랐다. 그 때마다 피식 웃고는 얼른 생각을 지웠다. 굳이 신경 쓸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조사는 했다. 혹시 모르지 않나.

‘제법 대단한 놈이긴 한데…… 별 거 없어.’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알겠다. 살라자 샤마쉬가 관심을 둘 만큼 실력과 실적이 뛰어났다.

몇 가지 의뢰를 아주 훌륭하게 처리했다.

그 중 하나가 나서스 가문의 후계자 선정 테스트를 뒤집은 거였다.

현재 나서스 가문의 후계자는 키에라 나서스였다.

‘뭐, 그건 내가 벌이는 일이랑은 관계없으니까.’

가신 가문의 후계자 선정에 손을 대려는 자가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가 버트람 뷰고르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한, 굳이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그 역시 버트람 뷰고르 만큼이나 5대 가문 내에서 영향력을 가진 자였으니까.

아무튼 버트람 뷰고르가 보기에 인상적인 것은 키에라 나서스의 의뢰를 성공한 것, 그리고 데드릭 벨크리스와 함께 타노로스를 물리친 것 정도였다.

‘아, 그리고 굳이 하나 더하자면 듀마이어 방패가 있겠군.’

가성비가 워낙 뛰어나서 5대 가문 내에서도 자신의 사병에게 듀마이어 방패를 도입한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살라자 샤마쉬나 데드릭 벨크리스가 싸고 돌 리는 없었다.

그 두 사람이 그 정도 반응을 보이려면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고작 재능 정도로 그 두 사람이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질 리 없으니, 재능이 아니라 아마 관계일 것이다.

‘그 둘이 특별히 관심을 둘 만한 관계라…… 설마 사생아인가?’

살라자 샤마쉬도 데드릭 벨크리스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만일 사생아라면 문제를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몇 차례 공들여 들쑤시기만 해도 두 사람의 입지를 크게 흔들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일을 벌였는데 사생아가 아니라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니 미리 조사해야 한다.

"일단 유전자 검사부터.”

양측의 머리카락 정도를 얻으면 된다. 그거야 사람을 붙여서 구하면 된다.

머리카락이라는 건 자연스럽게 나오기 마련이니까.

"하, 내가 이렇게 초조할 정도로 몰린 것이 대체 얼마만인지.”

그동안은 뭐든 하고자 하면 했다. 그리고 손쉽게 목표를 이뤘고.

그래서 이번엔 일을 좀 크게 벌였다. 당연히 성공할 거라 예상하고서.

당장의 연구 성과만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훨씬 큰 그림을 그리고서 진행하던 일이었다.

그래서 더 뼈아팠다.

돈도 돈이지만, 3 연구소를 털린 것이 문제였다.

다른 건 몰라도 거대 마수를 배양할 수 있는 강철관은 다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아무튼 그쪽으로는 이제 뭔가를 더 하기 힘들어졌으니,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줄기는 똑같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작은 기회라도 잡을 수 있다.

조만간 큰 흐름이 한 번 올 것이다. 그때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자신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가 결정되리라.

"생각할수록 아깝군.”

그리고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데드릭 벨크리스, 그 미친놈은 대체 왜 자신에게만 이리도 가혹하단 말인가.

예전에도 몇 번이나 그놈 때문에 계획하던 일이 뒤틀리곤 했다.

“확, 그냥……!”

기회 봐서 없애버릴까, 하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5대 가문에 소속된 자를, 그것도 데드릭 벨크리스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을 죽이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아마 십중팔구 자신도 똑같이 몰락할 것이다.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갈 수는 없다.

"어떻게 엿을 먹여주지? 대체 어떻게.”

그렇게 중얼거리다보니 또 반태수가 슬그머니 떠올랐다.

‘굳이 그걸 약점으로 이용해야 할까? 사생아가 아닐 확률도 제법 높은데.’

살라자 샤마쉬의 사생아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그리고 데드릭 벨크리스의 사생아라고 한다면, 굳이 흔들어봐야 이쪽에서 얻을 게 별로 없다.

"그럼 차라리 죽여 없애는 게 그쪽에 더 큰 타격 아닐까? 그때 분위기 보니까 멘탈 좀 흔들 수 있을 거 같은데?”

버트람 뷰고르의 눈이 음험하게 번득였다.

***

"너, 나 없는 동안 정신 바짝 차려라.”

데드릭 벨크리스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반태수는 피식 웃었다.

"제 걱정은 안 하는 게 이득입니다. 쓸데없다는 거죠.”

"너 잘하고 대단한 거 아는데, 버트람 뷰고르, 그거 만만한 놈이 아니야. 아마 내가 지금 가야 하는 것도 계속 파보면 그놈이 분명히 관련되어 있을 거다.”

지금 데드릭 벨크리스는 타노로스를 때려잡으러 떠나야 한다.

타노로스에 관한 정보가 도착한 것이다.

반태수는 아직 아리크와의 의뢰가 끝나지 않았다.

먼저 비행선을 제작해 속성 종족들을 스태플레톤에 데려다줘야 한다.

그래야 아리크와의 의뢰가 제대로 마무리 된다.

겸사겸사 속성 종족들과의 약속도 지키게 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반태수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잘 숨어있거나 도망 다니면서 버텨. 내가 정말 빨리 끝내고 바로 돌아올 테니까."

데드릭 벨크리스는 지금 받은 정보가 가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가짜 정보라도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한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타노로스와 관계된 일에 잠시라도 망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데 이번에 처음으로 망설임이 생겼다.

정보를 받은 다음, 한동안 미친 듯이 고민하고 망설였다.

반태수가 그걸 보고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등을 떠밀었기에 결국 이렇게 가게 된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영감님보다 더 강해요. 영감님 다섯이 와도 저 못 이긴다니까요?”

데드릭 벨크리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너 정말 재수 없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더 망설이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얼른 다녀오기로.

아무튼 그렇게 데드릭 벨크리스가 비행선을 타고 떠났다.

장소가 어디라고는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보아하니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 쪽은 신경을 끊고, 본격적으로 할 일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비행선을 제작할 것이다.

재료는 모두 조달했다. 한동안 이 호숫가에서 살게 생겼다.

***

해가 지기 직전, 숲에 차르르 깔린 노을을 가르고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세 명이었는데, 전부 몸에 착 달라붙어 몸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검은 옷을 입었다.

그들은 한참동안 숲을 질주하다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멈췄다.

"이제 곧 호수에 도착한다. 장소 지정 완료했다. 확인하고 그곳에서 대기하도록. 참고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일이다. 그러니 초반에는 최대한 지켜보면서 정보를 수집한다.”

리더로 보이는 사내의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 곧장 흩어졌다.

지금 그들의 망막에 지도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 각자에게 지정된 장소가 표시되었다.

지시를 내렸던 리더의 망막에도 다양한 정보가 떠올랐다.

위에 있는 위성에서 직접 정보를 내려주고 있었다. 위성으로 촬영한 영상도 이런 식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리더는 빠르게 움직여 호숫가를 둘러싼 나무 중 하나를 타고 올라갔다.

입고 있는 옷의 색이 변하더니 주변과 완벽하게 동화했다.

이제부터는 인내력 싸움이다.

그의 시선이 호숫가에서 뭔가를 열심히 조립하고 있는 반태수에게 꽂혔다.

그리고 한쪽에 위성에서 촬영한 영상이 떠올랐다.

두 가지를 동시에 확인하는 것이다.

리더는 반태수를 지켜보면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계획을 세웠다가 부수기를 반복했다.

이제부터 정보가 조금씩 모일 테고, 그 때마다 계획은 점점 더 완성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들은 암살자다.

능력은 확실했다. 그러니 버트람 뷰고르가 의뢰를 넣은 것 아니겠는가.

물론 현장에서 뛰는 이 세 사람은 누가 의뢰를 했는지 모른다.

그저 타겟의 위치와 암살을 끝내야 하는 유효시간을 전달 받았을 뿐이다.

그들은 반태수를 해부라도 하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살피고 또 살폈다.

***

반태수는 비행선을 차근차근 제작했다.

이미 머릿속에 설계도는 다 그렸고, 그대로 조립만 하면 된다.

비행선의 제작이라는 것이 그저 부품만 맞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중간 중간 필요한 곳에 마법을 부여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래서 생각보다 자잘하게 손이 많이 갔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하지만 반태수는 첫 비행선의 제작이라서 그런지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면서 하니 힘이 났다.

그렇게 한창 비행선 제작에 푹 빠져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영역화의 범위 안으로 무언가가 훅 들어왔다.

사람이 분명했다. 세 명인데, 다들 존재감이 너무나 희미했다.

어둠 속성 종족이 떠오를 정도로 희미한 존재감이었다.

그래서 신경이 쓰였다.

신경이 쓰인다고 해서 비행선 제작의 집중력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두뇌를 하나 할당하면 되니까.

두뇌 하나를 온전히 할당 받은 영역화의 능력은 상당하다.

그들의 존재감이 대번에 올라왔다.

‘존재감을 죽인 것이 옷이네. 이것도 유물이구나.’

정말 유물의 다양성은 놀라울 정도다.

저들이 입은 옷은 존재감을 죽이는 기능뿐 아니라,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능까지 있었다.

그리고 은신 기능도 있었다.

반태수처럼 왜곡을 쓰는 건 아니고, 주변 풍경과 동화하는 기능이었다.

그 기능을 금방 볼 수 있었다.

호숫가 근처로 온 놈들이 주변과 동화하면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존재감이 훅 줄어들었다.

하지만 영역화에는 확실히 잡혀 있었다.

‘날 지켜보겠다, 이거지?’

반태수는 저들이 흩어지기 전에 나눈 대화를 확인했다.

지금 당장 가서 잡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일단 오늘은 자고, 내일 잡아야겠다.

굳이 관찰할 시간을 주고 질질 끌 이유가 없지 않은가.

‘혹시 버트람 뷰고르가 여길 위성으로 확인하고 있나?’

이 호숫가에는 강철관 여덟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당분간 여기서 생활할 건데, 굳이 남이 자신의 사생활을 지켜보게 둘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반태수는 고개를 들어 위성을 확인했다.

그동안 몇 번이나 했기에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두 개의 위성이 보였다.

하나는 5대 가문의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빛을 흡수하는 도료를 처바른 위성.

둘 다 부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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