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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194화 (190/351)

194화.  < 버트람 뷰고르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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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릭 벨크리스는 비행선 위에 선 채, 아래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아래, 연구소가 있던 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워어어어어!”

꽈과과과광!

거대 마수의 포효와 함께 충격파가 터졌다.

꽈앙!

그리고 그 충격파를 뚫은 강철 주먹이 거대 마수의 얼굴에 꽂혔다.

흰털 폭음거인이 비틀거리며 주춤 밀려났다.

강철거인이 바짝 붙으며 또 한 차례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또 다른 흰털 폭음거인이 강철거인을 어깨로 들이 받았다.

꽈앙!

강철거인은 별로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로 들이받은 흰털 폭음거인이 살짝 튕겨났다.

강철거인이 손을 뻗어 흰털 폭음거인의 목을 쥐었다. 그리고 냅다 휘둘렀다.

고오오!

꽝!

거대한 몸체가 허공을 가르며 다른 흰털 폭음거인의 몸에 부딪혔다.

두 마리 거대 마수가 뒤엉켜 나동그라졌다.

주변이 부서지고 뭉개지고 무너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다섯 마리의 흰털 폭음거인이 편을 먹고 칼날거인, 강철거인과 싸우는 구도였다.

칼날거인과 강철거인은 딱히 편을 먹은 건 아닌데, 흰털 폭음거인들이 덤벼드니 그쪽을 먼저 상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 모든 싸움구도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반태수였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냐?”

데드릭 벨크리스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놀랄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또 놀랐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저놈들 머리 나쁘더라고요. 교란 좀 했죠."

"교란?”

"적대감 좀 심어주고, 신경 좀 자극했죠.”

더 정확히는 흰털 폭음거인들을 좀 흥분시켰다. 망막에 반태수가 조작한 영상을 띄운 것이다.

강철거인과 칼날거인이 몸짓으로 위협하는 장면을.

흰털 폭음거인이 시각 정보에 약하다는 걸 미리 파악하고 시도한 일이었다.

그 다음 마력으로 강철거인의 반사신경을 건드렸다. 팔을 휘두르도록.

강철거인의 손바닥이 흰털 폭음거인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고, 그 뒤로는 아주 자연스럽게 저 상황이 되었다.

칼날거인은 그냥 싸움에 휘말렸고.

"저렇게 싸우면 결국은 강철거인이랑 칼날거인만 남겠네요.”

"당연하지. 강철거인은 5레벨 거대 마수야. 칼날거인은 4레벨 거대 마수고.”

흰털 폭음거인은 3레벨 거대 마수다.

그러니 아무리 수가 많아도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강철거인 아니겠는가.

"그럼 지금 칼날거인을 좀 건드려봐야겠네요.”

반태수는 거대 마수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저들을 마력으로 조절할 방법을 계속해서 찾았다.

흰털 폭음거인이 충격파를 터트리게 할 방법도 찾았고, 칼날거인이 칼날을 날리게 할 방법도 찾았다.

둘 다 마력으로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된다.

반태수는 그걸 동시에 시도했다.

꽈과과과광!

다섯 마리의 흰털 폭음거인이 동시에 충격파를 터트렸다. 정확히 강철거인을 노리고서.

강철거인의 온몸에서 충격파가 터졌다. 아무리 강철 같은 육체를 갖고 있더라도 저 정도 충격파가 터지면 외피는 몰라도 내부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칼날 몇 개가 강철거인을 향해 날아갔다.

까가가강!

강철거인의 시선이 칼날거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눈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쿵쿵쿵쿵!

강철 거인이 칼날거인에게 달려들었다.

싸움의 양상이 흰털 폭음거인들과 칼날거인이 강철거인을 상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제 균형이 좀 맞네요.”

강철거인은 놀랍게도 여섯 마리나 되는 거대 마수를 홀로 상대하면서 거의 밀리지 않았다.

"큼직큼직한 놈들이 저러고 싸우니까 볼 만하긴 하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디서 가져왔는지 의자를 하나 놓고 앉았다.

아까보다 표정이나 눈빛이 많이 좋아졌다.

이제 좀 상황을 받아들였나보다.

"너 진짜 대단하긴 하다. 내가 그동안 봐 왔던 마법사들이랑은 결이 아예 달라.”

"마법사가 다 똑같죠, 뭐.”

"아냐, 아냐. 달라. 사실 커피 얻어 마시기 전에는 살라자 그놈이 왜 이렇게 애지중지하는지 이해가 가면서도 안 가는 애매한 상태였는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

"그냥 평소처럼 하시죠. 낯뜨겁게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고작 이 정도로 낯뜨겁긴 뭐가 낯뜨거워. 아무튼 앞으로 어디 가서 자랑하고 다녀도 된다. 데드릭 벨크리스한테 인정받은 마법사라고."

반태수는 속으로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왜 하고 다니겠냐고 중얼거렸다.

물론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서.

"나도 어디 가서 네 녀석 얘기 자주 하고 다니마. 이 시대 최고의 마법사라고.”

"아니, 영감님. 그건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이놈이 홍보를 해주겠다는데 왜 마다해? 아무튼 네 의견은 필요 없고, 난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다.”

반태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영감이라는 건 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온 영감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거기 왜 자신을 끼워 넣는단 말인가.

"어…… 원치 않는 홍보를 왜 굳이 하십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씨익 웃었다.

"원치 않긴. 내가 이렇게나 원하는데. 아무튼 내가 너 어디 가서 당당히 가슴 펴고 다닐 수 있게 해줄 테니까, 딱 기대하고 있어."

반태수는 머리를 팽팽 굴렸다.

유명해지는 거,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유명해지더라도 이런 식은 싫었다.

데드릭 벨크리스를 통해서 자신에 대한 말이 흘러나가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 필사적으로.

"제가 그렇게 유명해지면 커피가 모자랄 수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뭐? 커피?”

"아무래도 영감님 통해서 인맥이 쌓이면 영감님 체면 문제도 있고 하니 커피라도 선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인맥을 내가 연결해주는데 왜 커피를 그놈들한테 갖다 바쳐? 말이 돼?”

"말이 되죠. 말이 안 돼도 그렇게 할 겁니다. 그것도 영감님이 데려왔으니 영감님 몫에서 내줄 겁니다."

그제야 데드릭 벨크리스가 반태수가 하는 말의 진짜 뜻을 알아차렸다.

"아오! 이건 그냥 밥 떠먹여 주면 얌전히 받아먹기나 하지. 알았어! 안 해! 안 하면 되잖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우, 식겁했습니다. 영감님이 정말로 사고 치실까봐.”

"야! 그게 왜 사고야!”

데드릭 벨크리스와 티격태격하는 사이 거대 마수들의 싸움이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야, 강철거인 정말 대단하네요.”

"대단하지. 5레벨이지만 6레벨에 가까운 5레벨이니까.”

흰털 폭음거인 중 세 마리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머리가 아예 뭉개진 채로.

그리고 남은 두 마리 흰털 폭음거인과 칼날거인이 강철거인을 상대로 분투 중이었다.

하지만 승패는 이미 난 거나 다름없었다.

강철거인은 비교적 멀쩡한 데 비해 흰털 폭음거인들은 몸 곳곳에 큰 상처가 잔뜩 나 있었다.

심지어 한 마리는 팔 하나가 날아간 상태였다. 강철거인이 힘으로 잡아 뜯은 것이다.

칼날거인의 몸에는 원래 칼날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는데, 이젠 듬성듬성 빈 곳이 많았다.

바닥에 부러지거나 휘어진 칼날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잠깐 데드릭 벨크리스와 잡담하는 사이 흰털 폭음거인 한 마리가 또 누웠다.

이제 결판이 나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은 듯했다.

"싸움 다 끝나가네요. 강철거인만 남으면 얼른 처리하고 가죠. 그나저나 거대 마수 사체는 어떻게 옮기죠?”

"비행선 불렀으니까 거기에 싣고 가면 돼. 아마 비행선 한 대에 거대 마수 한두 마리 정도 실을 수 있을 거다.”

"아, 그러면 되겠군요. 그런데 강철관을 매달고 거대 마수 사체까지 싣고 비행선이 날아갈 수 있을까요?”

반태수는 문득 떠오른 아리크의 비행선을 생각하며 물었다.

"야, 내가 어설픈 비행선을 불렀겠냐? 5대 가문에서 직접 만든 비행선이니까 걱정은 저 아래에 던져버리고 그냥 구경이나 해."

"기대하겠습니다.”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강철거인이 칼날거인의 팔을 뜯어내고 있었다. 이어서 다리도 뜯어내고 목도 잡아 뽑았다.

"그워어어어어!”

강철거인이 양 팔을 들고 포효했다.

반태수가 그걸 보고 있다가 마법을 펼쳤다.

이미 거대 마수들이 싸우는 동안 열심히 분석해서 각 거대 마수의 약점을 전부 파악해뒀다.

강철거인의 약점은 코어의 방어력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웬만한 충격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것이다.

5레벨 거대 마수 수준에 비해서 약할 뿐이지 실제로는 굉장히 강력한 마력 역장이 주변에 펼쳐져 있었다.

강철거인의 코어는 강철거인이 가진 강력한 육체의 근원이 되는 힘이었다.

강철거인의 몸 곳곳이 파이고 금이 가 있었다.

한데 시간이 지나니 그 상처들이 조금씩 아물어갔다.

반태수는 빠르게 마법을 완성했다.

강철거인의 코어 주변에 펼쳐진 마력 역장을 중화하는 마법이었다.

역장이 가진 파장을 정확히 상쇄할 수 있는 마력 파장을 밀어 넣은 것이다.

강철거인은 그 변화를 알아차렸는지 거칠게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반태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두 번째 마법을 펼쳤다.

마력 역장을 없앴으니 코어에 직접 타격을 줄 차례였다.

몇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충격파를 만드는 마법진, 마력을 압축하는 마법진, 그리고 충격을 증폭하는 마법진 등이었다.

마법진은 나타나자마자 빛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강철거인의 코어가 있는 부위에 작렬했다.

꽈아아아앙!

그 한 방에 코어가 깨졌다.

"그워어어어어!”

강철거인이 괴성을 질렀다. 코어가 깨지는 충격이 온몸을 뒤흔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강철거인은 더 이상 강력한 거대 마수가 아니었다. 강철로 만든 동상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부수기는 좀 아깝나?”

반태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손가락을 딱 튀겼다.

꽈드득!

강철 거인의 머리가 뭉개졌다.

선 채로 목숨을 잃은 강철거인이 앞으로 쓰러졌다.

쿠우우웅!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반태수는 고개를 돌려 데드릭 벨크리스를 쳐다봤다.

"영감님, 비행선 언제쯤 온답니까?”

데드릭 벨크리스는 입을 헤 벌린 채 강철거인이 쓰러지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반태수의 질문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아냈다.

"때 되면 오겠지. 뭘 그리 보채?”

"궁금해 하지도 못합니까?”

"이제 일도 다 끝났는데 우리도 좀 편하게 쉬자. 커피 한 잔 어때?”

"누가 들으면 커피를 영감님이 주는 줄 알겠네요.”

"뭐 그런 사소한 걸 걸고 넘어져? 자자, 여기 의자 있으니까 앉아라. 테이블도 꺼낼까?”

반태수가 그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해보니까 의자가 더 있었으면서 영감님 혼자만 앉아 있었던 겁니까? 와, 나 좀 서운하려고 하네.”

"아이고, 뭘 또 그런 걸로 서운해 해? 내가 늙어서 깜빡깜빡 해. 그러니까 이해하고, 우리 이제 일 다 끝났으니까 마무리 하고 나면 퀴무르의 밤 문화에 대해 좀 알아보는 건 어때? 내가 풀코스로 아주 그냥 온몸이 녹아내리게 해줄 수 있는데.”

반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영감의 밤 문화 사랑은 정말 알아줘야 한다.

"어? 야, 너 왜 고개를 그렇게 저어. 표정이랑 눈빛도 불순한데? 꼭 내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과 눈빛이야. 뭐야, 정말 그런 거야?”

"영감님, 도망친 놈들이나 잡아옵시다. 아직 멀리 못 갔으니까요. 들판 돌아다니는 마수들한테 당하게 두지 말고요. 그놈들이 뭘 들고 갔을지 모르잖습니까.”

중요한 자료라도 들고 갔는데, 마수가 그걸 삼켜 버리면 아깝지 않은가.

반태수의 말을 들은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망친 놈들을 잡아오라고? 이 늙은이한테?”

"몇 놈 안 됩니다. 여섯 명이네요. 위치 대충 찍어줄 테니까 세 놈만 잡아오세요. 영감님 셋, 나도 셋. 어때요, 공평하죠?”

데드릭 벨크리스는 투덜거렸지만 반태수의 말을 안 들을 수 없었다.

그랬다가 커피가 날아가면 자기만 손해니까.

"이거 왠지 악덕 업자가 날 굴리는 것 같은 기분인데.”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비행선을 움직여 도망친 놈들을 잡았다.

그리고 그 중 한 놈이 중요한 연구 자료를 들고 있었다.

***

"캬! 어떠냐? 내가 응? 마수가 그놈 집어 삼키기 전에 딱 등장해서 단숨에 마수랑 그놈 둘을 거의 동시에 처리했다는 거 아니냐. 그랬더니 이 자료가 딱!”

데드릭 벨크리스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생색을 냈다.

낼 수 있을 때 최대한 내야 하는 것이 바로 생색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알아줄 거 아닌가.

"알겠습니다. 잘했어요. 자, 여기 커피 드시고 좀 쉬시죠."

몸도 입도.

데드릭 벨크리스는 여유롭게 등을 소파에 기대고 앉아 커피를 음미했다.

"음, 내가 이 맛에 살지. 그나저나 내일 아침은 토스트, 어때?”

"오늘 아침에도 토스트 먹었는데 내일도 또 먹자고요?”

"먹을 수 있을 때 잔뜩 먹어둬야지. 나중에 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내일은 안 먹을 겁니다. 그거 만들 시간에 잘 거예요.”

"아이, 그러지 말고. 내가 찾아온 이 자료. 제일 중요한 거라며. 그럼 토스트 하나 정도는 먹어도 되잖아?”

"그럼 딱 하나만 만들 겁니다.”

"에이, 그건 아니지.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지. 우리 비행선 애들도 토스트 맛은 좀 봐야 할 거 아니냐."

반태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냉장고로 가서 캔 맥주 하나를 꺼내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역시 일을 마친 다음에는 맥주가 진리다.

적당한 안주거리를 찾아 접시에 담아 테이블 위에 놓고서 캔 맥주 몇 개를 더 가져와 따서 마셨다.

맥주를 먹은 다음 캔을 가만히 보던 반태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맥주라……."

이건 좀 어려우려나?

토스트 다음으로 마력을 부여할 음식을 찾았다.

이번엔 맥주다.

아마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

일단 맥주는 만드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

발효 과정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을 거칠 때의 온도에 따라서 결과물도 달라진다.

그 뒤로 숙성 과정까지 있으니 어떤 식으로 마력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아마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래도 재미있지 않겠는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생각에 반태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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