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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186화 (182/351)

186화.  < 다른 종족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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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거 진짜 장난 아니긴 하네.”

반태수는 지금 어둠 속성 종족이 사는 곳에 도착했다.

비행선을 타고 온 것이 아니라 혼자 날아서 왔기에 아직 아무도 반태수가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킹을 통해 미리 정보를 좀 모았는데, 어둠 속성 종족들은 서로간의 대화가 거의 없었다.

마킹을 통해 들어오는 대화의 대부분이 지극히 필수적인 것들뿐이었다.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사는 듯했다. 마킹을 확인하면서 이렇게 답답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정보를 많이 못 모았다.

한데 와서 보니 상황이 정말 심각했다.

어둠 속성 종족은 숲 속에서 작은 마을을 이뤄서 살고 있었다.

숲에는 나무가 빽빽했는데, 하나하나의 크기가 정말로 거대했다.

그 거대한 나무의 속을 파내서 집으로 쓰고 있었다.

나무가 어찌나 큰지 속을 제대로 파내면 대여섯 명이 함께 지내기 어렵지 않을 정도의 넓이가 나온다.

나무를 베어내지 않은 채로 집을 지었기에 하늘에서는 이곳에 마을이 있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원래라면 그랬어야 한다.

한데 나무들이 전부 말라비틀어져 있다.

풍성해야 할 잎이 하나도 달려있지 않았다. 바닥에 모조리 떨어진 잎이 썩어가는 중이었다.

숲 전체에 은은한 독기가 맴돌았다.

그리고 굉장히 건조했다.

대충 스캔을 해보니 지하수가 아예 말라붙어서 물이 한 방울도 없었다.

원래 연못이었을 것 같은 웅덩이도 퍼석퍼석했고.

숲을 가로지르는 강이 하나 있었는데, 그 강 역시 메말랐다. 곳곳에 동물이나 물고기 시체가 부패한 채 벌레들의 먹이가 되고 있었다.

어둠 속성 종족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여길 보고 나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들은 아예 인간들하고는 교류를 하지 않는 건가?’

인간들의 도시와 교류를 하면 상황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반태수는 어둠 속성 종족의 마을로 들어섰다.

숲 밖에서 땅에 내려선 후, 숲을 가로질러 마을로 향했기에 어둠 속성 종족들도 반태수를 발견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숲의 초입에서 마을까지 가는 길의 중간쯤 지날 때, 어둠 속성 종족 몇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태수에게 포로로 잡혔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정중히 반태수를 맞이하고 마을로 안내했다.

반태수는 가면서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인간들, 그러니까 도시하고 교류는 안 하나? 도시와 교류하면 상황을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둠 속성 종족 사내가 대답했다.

"도시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냥 단순히 계약을 통하면 믿을 수 없어도 손해를 크게 보지 않을 수 있지 않나?”

"인간들은 우리 종족을 같은 눈높이로 보지 않습니다.”

반태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보자, 사내가 말을 이었다.

"인간들은 우리를 노예 정도로 취급합니다.”

사내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종족이 인간보다 더 우월합니다.”

반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더 우월한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속성 종족이 신체 조건이나 마력에 관해서는 좀 더 위에 있겠지만, 그들은 속성에 묶여 있다.

인간처럼 자유로운 방향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들은 지금까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실, 오래전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모색했어야 한다. 이렇게 인간들과 동떨어져서 자기들만의 우물에 갇힌 채, 시간만 보내서는 안 되었다.

그 차이 때문에 지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물론 지금 이들이 겪고 있는 상황은 약간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아마 다른 도시와 교류를 하려고 시도했다면, 우리 처지는 밑바닥에서 오물처럼 굴러야 했을 겁니다.”

이건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겠다. 어쩌면 이들이 너무 오랫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서 엉뚱한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르니까.

"인간은 못 믿는데, 난 믿을 수 있고?”

"예. 믿을 수 있습니다.”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너무나도 단호히 대답해서, 반태수는 솔직히 좀 놀랐다.

이 정도로 자신을 신뢰할 줄은 몰랐다.

"우린 그냥 알 수 있습니다. 반 마법사님은 대단하신 분입니다. 반 마법사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대단한 분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너희를 다 버리면?”

"그렇다면 그럴 이유가 있겠지요. 저희는 충분히 수긍하고 상황을 받아들일 겁니다.”

반태수는 좀 당황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그런 얘기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본 다음에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너 혼자서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사내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부족원의 생각이 저와 똑같을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함께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받은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똑같이 생각할 겁니다.”

"저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반태수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체 저들은 자신에게서 뭘 봤기에 저러는 걸까?

반태수가 대답을 하든 말든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우리 종족만의 일이 아닐 겁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다른 종족들도 반 마법사님을 뵙고 나면 저와 똑같이 확신을 얻게 될 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뒤통수를 쳐도 웃으면서 맞아주게 된다는 얘기인가?”

"맞습니다. 분명히 이유가 있으실 테니까요.”

그렇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찬사를 듣다보니 어느새 어둠 속성 종족의 마을에 도착했다.

예전 포로로 잡혔던 자들 중, 가장 어두웠던 사내가 반태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반태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사내가 인사 후, 반태수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머지 세 종족의 족장들이 지금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혹시 그들도 같이 만나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머지 종족의 족장이 있다는 말에 반태수는 좀 놀랐다.

"내가 오늘 올 줄 어떻게 알고?”

"그게 아니라 미리부터 와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렸다고?”

"예. 다들 흔쾌히 반 마법사님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이건 또 이것대로 놀랄 일이다. 무려 족장들이 자신을 며칠이나 기다리고 있었다니.

"다들 이번 일을 그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안내해.”

어두운 사내가 얼른 반태수를 마을의 중심부로 안내했다.

따라가는 도중 반태수는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다.

"식수는 어떻게 해결하지?”

"매일 멀리 가서 가져옵니다.”

어두운 사내는 반태수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설명을 이었다.

"여기서 5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폭포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물을 떠옵니다.”

50킬로미터라니, 멀기도 하다. 거길 매일 오가며 식수를 떠온다니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겠네.”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 폭포마저 말라버린다면 대책이 없다.

반태수는 걸어가면서 주위를 계속 둘러봤다.

생명력을 갈취하는 것만으로 이런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심지어 여긴 물도 말라비틀어졌다.

반태수는 만일 자신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면 어떤 마법을 쓸지 생각해봤다.

일단 숲의 핵심이 되는 몇 군데 지점에 생명력을 빨아들여 마력으로 변환하는 마법진을 새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마력으로 다른 마법을 작동시키는 것이 두 번째다.

탐색 마법 정도면 되리라.

그렇게 탐색 마법으로 물을 찾고, 찾아낸 물을 빼내면 된다.

‘어디로?’

물을 싹 증발시킬 수도 있지만, 지하수는 그렇게 해도 쉽게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열이 식으면 결국 다시 물로 되돌아갈 테고.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지하수가 있던 곳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따로 물을 빼내기 위해 뚫은 굴이 있었다.

물길을 강 같은 곳으로 이었으면 결국 다 증발시킬 수 있었겠지만, 너무 멀어서 그렇게까지는 못한 모양이다.

지하 깊숙한 곳에 지하수가 호수처럼 모여 있었다.

반태수가 어두운 사내에게 말했다.

"당분간 식수 문제를 해결해주지."

어두운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즉시 반태수에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반태수가 해결한다고 말하면 그대로 이뤄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양이다.

반태수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것고는 마법을 펼쳤다.

간단하다. 지하 깊숙한 곳, 지하수가 모인 곳을 지상과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물을 끌어올리는 건, 어둠 속성 종족들이 쓰던 도구가 있으니 그걸 쓰면 되고.

굳이 파이프를 박을 필요도 없었다. 반태수는 마법으로 그 모든 걸 다 해결해 주었다.

생각해보니 굳이 다른 도구를 쓸 필요도 없었다. 그것도 마법으로 해결하면 되니까.

이내 바닥에서 물이 쫙 솟구쳤다.

차가운 지하수가 주변에 비처럼 흩날리자, 그걸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식량 수급도 어려워 보이는데, 그것도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냥을 통해 해결하나?”

"맞습니다.”

하지만 항상 양이 모자라기 때문에 다들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식량 문제도 당분간 내가 해결해주지.”

어두운 사내의 눈이 커다래졌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의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설마 이 정도로 호의를 베풀어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저 고맙기만 했다.

다른 종족들까지 여기로 모인다면 인원이 3천 명에 육박한다.

그 많은 인원의 식량을 해결해 주겠다고 하는데도 가능성의 여부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반태수는 그의 태도를 보면서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확인했다.

전부 당연히 그렇게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 표정이었다.

‘이건 뭐지? 내가 무슨 교주도 아니고.’

이 정도 믿음이면 거의 종교 수준 아닌가?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두운 사내를 따라갔다. 이내 다른 종족의 족장들이 있다는 곳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본 나무 중에서 가장 큰 나무의 속을 파내 만든 집이 보였다.

그 안에 기묘한 마력 파장이 느껴졌다.

마력만으로도 딱 알겠다. 그만큼 속성력이 강했다.

그냥 빛과 물, 불이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태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눈이 환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보였다. 몸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어서 더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 오른쪽에 불그스름한 피부를 가진 근육질 사내가 있었다.

말 그대로 불같은 사내였다.

빛 속성 여인의 왼쪽에 물 속성 종족이 있었다.

예전 물 속성 종족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물을 줄줄 흘리고 다닌다고 했는데, 보니까 설명이 부족했다.

물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반쯤 물과 섞인 사람이었다.

반태수가 보기에 네 종족 중 물 속성 종족이 가장 신기하고 특이했다.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그런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긴, 저렇게 물을 흘리고 다니면, 그걸 모아서 정화한 다음 식수로 써도 되지 않겠는가.

그때, 화염 속성 사내의 몸에서 불길이 확 뿜어져 나왔다.

적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화염에 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화염 한 방에 집 내부의 온도가 확 올라갔다.

확실히 보통 사람들과 함께 하기에는 위험한 종족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불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니라 상체에서만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온몸에서 나왔다면 벌거벗고 있어야 할 테니까.

지금 화염 종족 사내는 바지만 입고 있었다.

세 사람은 반태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슨 영광씩이나. 반태수는 왠지 저들도 어두운 사내와 비슷한 태도를 보일 것 같아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인사를 하고 반태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 신뢰와 존경이 가득했다.

그냥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감정이었다.

반태수는 이 자리를 빨리 뜨기로 했다.

"비행선을 이용해 스태플레톤으로 네 종족 모두 이주시킬 계획이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어두운 사내는 물 종족 여인 옆에 서 있었다.

그렇게 네 명이 나란히 서서 동시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모습에 반태수는 소름이 돋았다.

역시나 의문 따위는 가지지 않는다.

"비행선을 준비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그동안의 식량은 내가 해결해준다.”

그들이 감사 인사를 또 하기 전에 얼른 다음 말을 이었다.

"그 대가로 너희는 개척도시 아리크 주변의 마수를 모조리 토벌해야 한다.”

"하겠습니다. 종족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서 빠르게 토벌을 끝내겠습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리고 너희에게 접근했던 자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나에게 넘겨라. 대단치 않아도 괜찮다. 사소한 거 하나라도 모두 정리해서 넘겨라."

"모두의 머리를 짜내서 반드시 훌륭한 보고서를 만들겠습니다.”

반태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스태플레톤으로 이주한 후, 가끔 필요할 때 너희를 쓰겠다.”

네 사람이 동시에 허리를 굽혔다.

"영광입니다. 매섭게 부려주십시오.”

반태수는 저들의 태도에 적응하기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곳을 나섰다.

그리고 아공간에 있던 모든 식자재와 음식을 그곳에 쏟아냈다.

아공간이 제법 크기에 굉장한 양이었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는 3천 명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닷새나 버틸까?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아야겠다.

마침 쉬고 있는 잉여 인력이 한 명 있지 않은가.

‘아, 맞다. 비행선 재료 조달하는 중이지? 뭐, 겸사겸사 재료조달 하면서 식량도 조달하면 되겠네.’

반태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둠 속성 종족 마을을 떠났다.

마을에 있던 모든 어둠 속성 종족과 빛, 물, 화염 종족의 족장들이 일제히 밖으로 나와 떠나는 반태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반태수는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걸음을 빨리 했다.

'그나저나…… 하대가 너무 익숙하게 나오는데?’

반태수는 문득 속성 종족들을 상대할 때 자신의 말투가 떠올랐다.

너무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다. 말투뿐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태도도 그랬다. 그리고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존대가 더 어렵고 껄끄러웠다.

머릿속이 좀 복잡해졌다.

반태수는 허공에 떠올라 아리크로 쭉 날아갔다.

그래도 원하는 대로 다 되지 않았나.

반태수는 속도를 높였다.

저 멀리 아리크가 보였다. 비로소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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