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 기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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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놀랐다.
설마 거대 마수를 사로잡아서 써먹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반태수가 미리 발견했으니 저들로 인한 피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면 재미없지 않은가.
‘배후를 캐야지.’
보아하니 다들 어딘가에서 고용한 용병들이다.
개개인을 고용한 건 아닐 테니, 용병단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어떤 용병단인지 알아낸 다음, 살라자 샤마쉬에게 정보를 넘겨 누가 의뢰했는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굳이 기다릴 이유가 없어서 반태수는 바로 그들에게 날아갔다.
서두르지는 않았지만 날아가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금세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바로 그들 앞에 나서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로 강철관 안에 있는 거대마수를 영역화로 분석했다.
마수의 몸에 있는 마력을 통해 대충 레벨을 추정했다.
‘3레벨쯤 되겠네.’
마력의 양이 예전 2레벨이었던 바늘거인보다는 많았고, 호수에 있던 가물치 마수보다는 적었다.
강철관은 그저 강철로 만들어진 상자가 아니었다.
복잡한 마법이 적용된 마도구였다.
'아니, 저 정도면 유물이겠는데?’
저런 유물까지 있다니, 유물의 다양성이 정말 놀랍다.
관 뚜껑에 길쭉한 가시가 여러 개 달려 있고, 그 가시가 거대 마수를 꿰뚫고 있었다.
분석을 해보니 뚜껑을 열면 가시가 안으로 들어가 안 보이게 되고, 뚜껑을 닫으면 바늘이 삐죽 나와 거대 마수를 꿰뚫는 방식이었다.
그냥 단순한 바늘이 아니라 특정 속성의 마력을 공급하는 바늘이었다.
바늘의 수는 총 36개인데, 그 중 30개가 마비 속성의 마력을 공급했다.
나머지 6개는 거대 마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마력과 생명력을 공급했다.
‘그러니까, 언제든 저 뚜껑만 제거하면 마수가 바로 활동할 수 있도록 상태를 유지해 주는 장치로군.’
저 강철관을 한 번 분해해서 제대로 분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단순히 마비 속성 마력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깊이 있는 생체와 관련된 마법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걸 제대로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생체에 관련된 마법과 지식이 대폭 늘어날 것이다.
아무튼 그러려면 최대한 온전히 강철관을 얻어야 한다.
즉, 저 거대 마수를 관에서 꺼낸 다음에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반태수가 지금 모습을 드러내면 과연 저들이 거대 마수를 꺼낼까?
그럴 리 없다. 아마 자기들 선에서 해결하려고 하겠지.
앞을 가로막은 사람이 고작 한 명인데 거기서 거대 마수를 꺼낼 리가 없다.
게다가 저 강철관에는 자폭 기능까지 있다.
폭발하는 건 아니고, 안으로 뭉개지면서 내부의 거대 마수를 죽이는 기능이었다.
거대 마수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을 때 작동시키는 장치였다.
자칫 반태수가 성급히 나섰다가 자폭 장치를 작동시키면 곤란하다.
‘거대 마수를 지금 꺼내는 게 제일 좋긴 한데.’
일단 관뚜껑이 열리면 더 이상 자폭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자폭할 이유가 사라지니까.
반태수는 자신이 저 강철관을 컨트롤 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마력의 실을 뽑아 쭉 늘려 강철관에 꽂았다.
마치 가지를 치듯 강철관에 꽂힌 마력의 실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일부는 강철관 내부로 들어가고 일부는 바깥쪽으로 뻗어 나갔다.
강철관 내부로 들어간 마력의 실은 강철관의 보안마법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상당한 수준의 유물이라서 보안 마법이 복잡했지만, 반태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강철관의 보안마법을 뚫는다고 해도 반태수가 그걸 바로 이용할 수는 없었다.
그건 기본이고, 원격조종장치를 찾아야 한다.
외부로 뻗어나간 마력의 실이 바로 그걸 확보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미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확인했다.
원격조종장치는 하나가 아니라 세 개였다.
셋 중 누구든 뚜껑을 열 수도, 닫을 수도, 그리고 자폭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동시에 확보해야 가장 안전하다.
세 가닥 마력의 실이 원격조종장치에 파고들었다.
보안 마법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보안마법을 뚫으면 유물을 쓸 수 있게 된다. 저들도 보안을 뚫었으니 이 강철관을 쓰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강철관에는 보안마법이 걸려 있었는데?’
아마 강철관은 원격조종장치의 보안만 풀면 이용하는 데 지장이 없는 모양이다.
문제는 보안이 없지만 외부 마력을 이용해서 원격조종장치를 작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소유자의 마력이 없으면 원격조종장치는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반태수는 고작 그 정도로 포기하지 않았다.
강철관의 보안을 뚫었으니 원격조종장치가 보내는 마력 신호를 복사해서 강철관을 작동시키면 된다.
그저 뚜껑만 열면 되는 간단한 일 아닌가.
반태수는 빠르게 원격조종장치를 분석해 그 장치가 보내는 마력 신호의 정확한 파장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 파장을 이용해 강철관을 작동시켰다.
그그그그그긍!
굉음과 함께 강철관이 진동했다.
이동 중이던 사람들이 전부 화들짝 놀라 강철관을 바라봤다.
다들 다리와 발에 장착한 마도구를 이용해 이동 중이었는데, 몇몇이 이동을 멈추면서 대형이 꼬여 버렸다.
끼기기기기긱!
쇠 긁히는 소리와 함께 강철관의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뭐 하고 있어! 다시 닫아야지!”
누군가의 외침에 마법사와 능력자 두 명이 허겁지겁 품에서 원격조종장치를 꺼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관뚜껑이 활짝 열려 버렸으니까.
쿵!
뚜껑이 바닥을 치는 소리와 함께 관에 누워 있던 거대마수가 몸을 일으켰다.
"크워어어어어어어!”
새하얀 털로 뒤덮인 인간형 마수였는데, 마력이 가득 담긴 포효 한 방에 근처에 있던 용병들이 전부 주저앉았다.
마법사와 능력자들은 비틀거렸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당장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마수의 포효에 마력이 흔들린 것이다.
쿵! 쿵! 쿵!
거대 마수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관에서 나왔다.
"도망쳐! 일단 도시 쪽으로 유인한다! 얼른얼른 서둘러!”
누군가의 외침에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다리와 발에 장착한 마도구는 짧은 시간 허공에 몸을 살짝 띄운 채 미끄러지듯 이동할 수 있었다.
다들 그걸 작동시켜 빠르게 도시 방향으로 날아갔다.
거대 마수가 두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마구 후려쳤다.
쾅쾅쾅쾅쾅쾅!
"우워어어어어억!”
마력이 담긴 포효가 또 한 차례 튀어나왔다. 한데 이번엔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릴 때마다 마력이 끊겨 기묘한 파장을 이루며 마력이 뻗어 나갔다.
퍼버버버버버벙!
날아가던 마력이 중간에 터지면서 강력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빠른 속도로 도망치던 용병들의 후미를 충격파가 덮쳤다.
"크어억!”
"으악!"
충격파에 휘말린 용병들이 사방으로 나가 떨어졌다.
거대 마수가 달아나는 용병들의 뒤를 쫓아 걸음을 옮겼다.
쿵! 쿵! 쿵! 쿵! 쿵!
그저 걷기만 하는데도 워낙 거대하다보니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그래도 용병들이 도망치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하지만 지금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건 무한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5분이었다.
5분이 지나면 직접 달려야 한다. 물론 마도구의 보조를 받긴 하지만 거대 마수보다 빨리 도망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개척도시 아리크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이대로라면 저 거대 마수를 아리크로 옮기기 전에 따라잡혀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반태수는 과연 저들이 뭘 어떻게 할지 궁금해 계속 지켜봤다.
언제든 마수는 물론이고 도망치는 놈들을 전부 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얼마든지 더 지켜봐도 된다.
거대 마수와 용병들의 거리가 쭉쭉 줄어들었다.
그때, 능력자 중 하나가 거대 마수를 향해 무언가를 힘껏 던졌다.
꽈아앙!
용병들과 마수 중간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과 함께 자욱한 안개가 생겨났다. 그냥 안개가 아니라 검은 안개였다.
안개 속에서 위험한 마력이 마구 요동쳤다.
그 검은 안개가 거대 마수를 덮쳤다.
용병들을 짓이길 때까지 움직일 것 같던 거대 마수가 안개 속에서 걸음을 멈췄다.
모든 감각을 교란시키는 마력이 안개에 깃들어 있었다.
거대 마수는 잠시 멈춰 있다가 온몸에 힘을 빡 주었다.
뻐어어어어엉!
강력한 충격파가 거대 마수를 중심으로 일어나 안개를 싹 날려 버렸다.
안개에 깃들었던 마력도 가닥가닥 끊어져 허공에 흩어졌다.
마수가 다시 용병들을 향해 성큼성큼 움직였다.
반태수는 딱 거기까지 보고 더 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저런 식으로 반복하면 저 거대 마수를 아리크 근처까지 끌어가는 게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반태수는 일단 용병들 틈에 섞여 있는 능력자와 마법사부터 잡기로 했다.
열 명의 능력자와 마법사 한 명, 그리고 용병들 중에서 행동거지가 다른 용병들과 좀 다른 두 명까지 잡고, 나머지는 거대 마수를 잡을 때까지 방치하기로 했다.
어차피 돌아다니면서 다 잡기는 할 텐데, 마법사와 능력자를 먼저 잡는 건, 그들이 혹시 자결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들어야 할 말이 있으니까.
반태수는 하늘로 쭉 솟아올랐다.
워낙 대놓고 했기에 많은 용병들이 반태수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거대 마수로부터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반태수는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그대로 하강했다.
목표는 용병 무리의 중심, 마법사와 능력자들이 있는 곳이다.
참으로 편리하게도 잡아야 할 놈들이 똘똘 뭉쳐 있었다.
반태수가 땅에 착지했다.
콰아아아!
사방으로 충격파가 일어나 쫙 퍼져 나갔다.
강력하진 않았지만 달리던 용병들을 멈추게 할 정도는 충분했다.
멈추지 않으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테니까.
반태수는 타겟들을 향해 일제히 마법을 펼쳤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마법인 점혈을.
열 명의 능력자와 한 명의 마법사, 그리고 두 명의 용병이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덜컥 멈췄다.
그들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당황한 눈으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반태수는 마력으로 그들의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하늘로 훌찍 날아올랐다.
남겨진 용병들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거대 마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대 마수는 여전히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얼른 뛰어!”
용병들이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
반태수는 좀 떨어진 곳에 방금 잡은 자들을 내려놓았다.
거대 마수와 자신이 싸울 때 휘말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들을 대충 던져놓고 다시 날아올라 거대 마수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저 거대 마수의 능력은 충격파다.
그저 공기만 이용해서 충격파를 만들 수 있고, 거기에 마력을 담아 다양한 효과를 일으키는 것도 가능한 놈이었다.
그리고 그 파동을 자신의 몸에도 적용할 수 있다.
외부의 충격을 몸에서 파동으로 만들어 다시 외부로 방출할 수도 있고, 내부로 아예 피해 없이 흡수해 버릴 수도 있었다.
가죽은 별로 안 질긴데, 온몸을 덮고 있는 털이 워낙 질기고 단단해서 웬만큼 날카로운 공격으로도 상처를 내기 어려운 놈이었다.
상대하기가 까다로워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놈의 능력은 전부 물리력에 기반한 파동이기 때문에 속성 공격에 취약하다.
특히 전격 계열의 마법을 한 방 맞으면 자지러질 것이다.
전격이 온몸 구석구석 잘 파고들 수 있는 몸을 갖고 있으니까.
뜨거운 열기도 온몸 구석구석 잘 전달되고, 냉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든 온몸 구석구석 잘 전달되고, 고스란히 외부로 방출해 버린다.
“크워어어어어!”
자신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반태수를 발견한 거대 마수가 마력이 담긴 포효를 내질렀다.
마치 음파 공격처럼 모든 소리가 한데 모여 정확히 반태수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음속이니 오죽 빠르겠는가. 마력이 담긴 음파가 순식간에 반태수를 덮쳤다.
반태수는 마치 미리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아래로 쑥 가라앉아 음파를 피해 버렸다.
멀리 날아간 음파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퍼어엉!
공교롭게도 도망치던 용병들 머리 위에서 터지는 바람에 용병들이 달려가다가 폭발로 인해 쏟아진 충격파에 휘말려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반태수는 음파 공격이 지나가자마자 바로 마법을 썼다.
꽈르르르릉!
거대한 벼락이 거대 마수의 정수리에 내리꽂혔다.
짜자자자자작!
정수리에서 수천 개로 쪼개진 전격이 거대 마수의 몸을 마치 스캔하듯 훑고 내려갔다.
마수가 걸음을 멈췄다.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지만 죽은 건 아니다. 큰 타격을 입었을 뿐.
‘그러고 보니 내구력 약화도 안 걸었네.’
가물치 마수를 잡을 때도 내구력 약화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월하게 잡았다.
이 거대 마수 역시 마찬가지다. 디버프를 쓰지 않고도 이렇게 쉽게 잡았다.
물론 아직 숨통을 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다 잡은 거나 다름없다.
확실히 거대 마수가 대단하긴 하다. 벌써 몸 속 곳곳이 회복되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방치하면 조만간 멀쩡해질 것이다.
반태수는 벼락을 하나 더 떨어뜨렸다.
꽈르르르릉!
아까보다 더 굵고 강력한 벼락이었다.
강렬한 전격이 마수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것이 끝이었다.
마수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쿠웅!
바닥에 쓰러진 마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것이다.
반태수는 마수를 방치한 채 몸을 돌렸다.
이제 남은 용병들을 잡을 차례다.
"바쁘다 바빠.”
기분 좋게 중얼거린 반태수가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