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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178화 (174/351)

178화.  < 업그레이드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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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위를 비행선 한 대가 크게 선회하더니 반태수의 비행선 근처에 착륙했다.

반태수가 전화를 건 지 고작 세 시간 만에 도착한 데드릭 벨크리스의 비행선이었다.

비행선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데드릭 벨크리스가 뛰쳐나왔다.

"커피!”

나오자마자 외친 소리에 반태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몸을 날려 반태수 앞에 섰다.

"이렇게 손님이 왔는데 커피 한 잔 대접 안 하고 뭐 하고 있는 거냐.”

너무나도 당당하게 요구하니 다들 그걸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반태수 빼고.

데드릭 벨크리스로부터 은은히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영감님, 내가 새 커피를 만들었는데, 맛 한 번 보시겠습니까?”

"새 커피? 예전 거랑 비슷한 거냐?”

"훨씬 맛있죠.”

데드릭 벨크리스의 입가가 한껏 올라갔다.

"그럼 뭘 망설이느냐. 얼른 가져오지 않고.”

"일단 자리부터 옮기죠. 마수 사체도 구경해야하지 않습니까.”

"아, 맞다. 마수 사체 가지러 온 거였지, 원래.”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 가물치 마수 사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케트라 브리저가 쭈뼛쭈뼛 반태수 쪽으로 다가갔다.

그걸 발견한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응? 넌 누구냐?”

"케트라 브리저입니다.”

"아하. 브리저 가문. 한데 넌 그 음흉한 놈들이랑 좀 분위기가 다른데? 외모도 그렇고.”

"어머니가 일반인 출신입니다.”

"일반인? 그것만으로 그 음흉한 놈들의 분위기가 깎일 리 없는데? 피가 워낙 진한 놈들이라서."

그 분위기를 저렇게까지 죽이려면 그에 상응할 정도로 강력한 혈통이 필요했다.

아마 모계 쪽 혈통이 브리저 가문의 혈통보다 훨씬 강력할 것이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이렇게 호기심을 가질 정도면 분명 뭔가 있긴 있다는 뜻이다.

반태수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케트라 브리저와 데드릭 벨크리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대화를 귀담아 들었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케트라 브리저가 데드릭 벨크리스의 압박에 못 이겨 억눌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도시 밖에서 지내셨어요.”

"호오. 도시 밖 사람이었군.”

그걸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데드릭 벨크리스의 모습에 반태수가 살짝 당황했다.

도시 밖 사람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 말 한 마디로 혈통에 관한 문제를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그 뒤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가물치 마수 사체가 있는 곳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호오. 상당하군. 가물치 모양의 마수는 나도 처음 보는 건데 말이야.”

"그래도 기록은 있을 거 아닙니까.”

"기다려 봐라. 내가 모든 마수에 대해 다 아는 건 아니니까.”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태블릿을 꺼내 이리저리 조작했다.

"없는데?”

"없다고요?”

"그래. 이 거대마수,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개체야. 처음 나온 놈이라고.”

데드릭 벨크리스는 태블릿을 다시 챙겨 넣고는 말을 이었다.

"애초에 물속에서 사는 마수는 굳이 건드리지 않아. 우리한테 피해를 줄 일이 없으니까.”

반태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물속에 있는 거대마수를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잡을 이유가 없었다.

거대마수 사체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라면 모를까.

"어쨌든 이 사체는 값이 제법 나가겠어. 첫 번째로 등장한 놈이기도 하고, 물속에서 사는 놈이기도 하니까.”

물속 마수는 특히 생명력이나 마력이 높아서 좋은 약재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인 제약회사에서 다루는 게 아니라, 특수한 제약 연구조직이 물고기형 거대마수를 연구해서 다양한 약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낸 약은 보통, 귀족들 사이에서만 거래된다. 당연히 가격도 어마어마했고.

"이거 내 아공간에 넣는 것도 간당간당한데?”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가물치 마수 사체를 아공간에 넣었다.

"간신히 들어갔다. 조금만 더 컸어도 못 넣었을 거야.”

데드릭 벨크리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해체는 내가 잘 아는 데가 있으니까, 거기서 하면 되고…… 나중에 정리해서 부속 목록 보내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골라라. 나머지는 경매로 팔면 되고.”

"그러죠.”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그는 손바닥을 비비면서 반태수를 바라봤다.

"자, 이제 커피나 한 잔 하자.”

"커피 마셔야죠. 일단 저쪽에 자리 마련해 놨으니까 가시죠.”

반태수가 가리킨 곳에는 파라솔을 꽂은 원형 테이블이 쭉 늘어서 있었다.

반태수의 비행선 안에는 그런 것도 준비되어 있었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얼른 가서 자리를 잡았다.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 앞에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놓았다.

"새 커피입니다. 아마 기대 이상일 겁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반태수의 말에 더더욱 기대가 되는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데드릭 벨크리스를 바라봤다.

한데 굳어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길었다.

혹시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하는 생각에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커허허허헉!”

갑자기 터져 나온 데드릭 벨크리스의 거친 호흡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데드릭 벨크리스는 주변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든 커피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삐걱거리듯 돌아가 반태수에게로 향했다.

"대체…… 대체 이건 뭐냐.”

"제법 괜찮죠?”

"그런 말로 폄훼할 커피가 아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손에 든 커피를 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영감님, 왜 그러고 있습니까? 커피 별롭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게 아니다. 두려워서 그런다. 이거 한 모금 더 먹고 호흡곤란으로 죽을까봐 두려워서.”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과장이 너무 심한 영감이다.

"죽기 전에 숨통 틔워줄 테니까 그냥 마셔요.”

데드릭 벨크리스가 씨익 웃더니 커피를 또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또 석상이 되었다.

다들 그걸 보며 자신들이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웃었다.

***

케트라 브리저는 데드릭 벨크리스를 신기한 눈으로 힐끔힐끔 훔쳐봤다.

그걸 데드릭 벨크리스가 못 알아차릴 리 없다.

"야, 볼 거면 그냥 대놓고 봐. 얌생이처럼 훔쳐보지 말고.”

"야, 얌생이……!”

케트라 브리저는 난생 처음 지칭당한 단어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5대 가문 분을 처음 봐서......."

“5대 가문이 별 거야? 다 같은 사람이야. 그냥 돈 좀 많고 힘 좀 세고, 권력도 좀 있고, 뭐 그런 것뿐이지."

케트라 브리저가 어색하게 웃었다.

"네에.”

"그나저나 나 여기 온 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예? 그럼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말하면 더 불편하지. 난 도시에 갈 생각도 없다. 여기 있을 거야.”

데드릭 벨크리스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 내가 왔다는 걸 알면, 그놈들이 일을 안 벌일 거 아냐. 그놈들이 잠시 설치게 둬야 싹 박멸하지.”

데드릭 벨크리스의 분위기가 확 변했다. 마치 사나운 맹수를 코앞에 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케트라 브리저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데드릭 벨크리스를 보는 건 처음이지만, 얘기는 많이 들어봤다.

한데 첫인상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듣던 것과 많이 다르다고 여겼다.

‘듣던 것과 다르긴, 개뿔.’

딱 듣던 그대로의 사람일 것 같다. 케트라 브리저는 온몸에 소름이 올올이 돋아났다.

그리고 데드릭 벨크리스가 흘리는 분위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점점 힘들어졌다.

그때,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반태수의 비행선에 타는 승무원들이 다가왔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뿌리던 분위기가 확 사라졌다.

"뭐야, 다들 왜 여기로 오는 거야?”

그의 물음에 승무원 한 명이 대답했다.

"반 마법사님의 지시입니다.”

"그래? 그럼 말을 잘 들어야지. 얼른얼른 안 움직이고 뭐해?”

다들 한데 모이자, 반태수가 다가왔다.

궁금함과 호기심, 기대감이 뒤섞여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들이 일제히 반태수에게 모였다.

반태수는 좌중을 슥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별 거 아닙니다. 오늘 마신 커피, 어땠는지 평가가 궁금해서요.”

그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커피에 대한 평가를 원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반태수가 이렇게 의견을 구하는 건 뭔가 미묘한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커피 다시 준비할까요? 한 잔씩 더 마시겠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다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게 맛있긴 한데, 지금 또 먹긴 그렇지. 아, 예전 커피를 준다면 고맙게 마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전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마시기에는 좀…… 부담스럽긴 하죠.”

"그리고 예전 커피가 강렬함은 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맛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깊이가 있다고 할까? 그냥 개인적인 느낌이에요.”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뒤로도 다들 의견을 말했는데, 내용이 크게 차이 없었다.

반태수는 그 모든 의견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전 커피는 드립커피에 마력을 부여하고 그것을 커피와 섞으면서 활성화 시키는 방식인데, 그 과정에서 맛과 향의 깊이가 생기는 듯 했다.

반면 새 커피는 마력에만 초점을 맞춰서 저런 반응이 나오는 모양이다.

반태수는 그 뒤로도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좀 더 다양한 의견을 받았다.

그리고 왜 부족함을 느꼈는지 확실히 파악했다.

‘제대로 파악했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어. 반쪽짜리 깨달음이었던 거야.’

반태수는 머릿속으로 새로운 커피의 개선을 연구하가 시작했다.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커피 한 잔 하시죠.”

이번엔 예전 커피를 준비했다.

다들 지극히 만족스럽고 행복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셨다.

그걸 보는 반태수의 표정이 살짝 복잡해졌다.

업그레이드의 길이 왠지 험난할 것 같았다.

***

호숫가의 밤은 운치 있었다.

세 개의 모닥불에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도 하고 멍하니 불만 바라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은박지에 싼 감자나 고구마를 모닥불에 넣어 구워 먹기도 했다.

그리고 반태수가 제공한 커피가 분위기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주었다.

반태수는 당분간 새 커피는 봉인할 생각이었다. 모자라다는 걸 알았으니 그걸 채우기 전까지는 내보이지 않을 것이다.

반태수가 있는 모닥불에는 데드릭 벨크리스와 케트라 브리저만 있었다.

세 사람이 모여 있으니 아무도 근처에 오려고 하지 않았다.

"여기에 휴양 시설을 지으려고 하는데, 영감님 생각 있습니까?”

반태수의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보다 케트라 브리저의 반응이 더 빨랐다.

"여기에 휴양 시설을 만드신 다고요? 어떻게요?”

반태수는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데드릭 벨크리스를 쳐다봤다.

그가 끼어들면 웬만한 일은 다 해결될 테니까.

"왜 날 끼우려고 해? 나 바쁜 사람이다.”

"그냥 사람이나 소개해 달라는 거였는데. 굳이 참여 안 해도 됩니다. 여기 내가 다 개발해도 되니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발끈했다.

"이 배신자! 날 빼놓고 혼자서 여길 다 먹겠다고?”

반태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데드릭 벨크리스를 쳐다봤다.

"그럼 같이 할 겁니까?”

"바쁘다니까?”

아니,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가.

"이게 마지막입니다. 더 안 권할거예요. 나 혼자 할까요?”

“……같이하자.”

그렇게 데드릭 벨크리스와 함께 이곳 호수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

다음날 아침 일찍, 반태수는 다시 비행선을 띄웠다. 이제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

거길 좀 들쑤셔서 뒤에 숨은 놈들이 움직이게 만들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살라자 샤마쉬가 들쑤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호수에 남았다.

원래는 그냥 대충 시간이나 때울까 했는데, 반태수와 손을 잡았으니 개발계획이라도 세우기로 했다.

아무튼 반태수는 케트라 브리저를 비행선에 태우고 다시 개척도시 아리크로 향했다.

그래도 호수에서 하룻밤 즐겨서 그런지 케트라 브리저의 표정이 굉장히 좋아졌다.

전부 떨쳐내지는 못했겠지만, 이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야.’

어느새 아리크에 도착했다.

케트라 브리저는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반태수는 잠시 쉬다가 설렁설렁 마수 토벌에 나섰다.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는데, 마수들이 워낙 빨리 쓸려 나가니 잠깐 했는데 제법 많은 마수 무리를 정리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내일이면 근처 마수 토벌은 완벽하게 끝날 듯했다.

"그나저나 언제쯤 움직이려나……."

한바탕 난리를 피워서 아리크 내의 세작들을 잔뜩 잡아냈다.

아마 저쪽도 몸이 달았을 것이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아리크에 손을 쓸 방법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아리크가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하고 자금만 제대로 확보한다면 도시를 완성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번에 커피를 연구하면서 영역화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

반태수는 그 변화를 만끽하며 영역화를 잔뜩 펼친 채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그 영역화의 끄트머리에 일단의 무리가 걸려들었다.

"이거 아주 본격적인데?”

영역화에 걸려든 놈들의 수만 백 명이 훌쩍 넘었다.

한데 그 뒤에 훨씬 많은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리크를 향해 적당한 속도로 이동 중이었다.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반태수는 대충 그들의 속도와 남은 거리를 계산해봤다.

‘밤에 도착하겠는데?’

그들이 차츰차츰 영역화 안으로 들어왔다.

반태수의 예상보다 수가 적었다.

한데 그들의 뒤에 강철로 만든 거대한 상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상자라기보다는 모양새가 관에 더 가까웠다,

구성원 중에 능력자나 마법사의 수가 턱없이 적었다.

총 인원은 수백 명인데, 능력자는 열 명에 불과했고, 마법사도 달랑 한 명이었다.

심지어 서클도 낮다. 고작 3서클이었으니까.

그러니 메인은 저 강철 관 안에 든 놈이라는 뜻이다.

강철 관 안에는 거대 마수가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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