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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168화 (164/351)

168화.  < 나서스의 후계자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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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릭 벨크리스, 키에라 나서스와 함께하는 자리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커피와 쿠키를 먹고 마시며 가벼운 얘기부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얘기까지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잠시 얘기를 나누다보니 밥 때가 되었다.

세 사람은 곧장 식당으로 가서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밥 먹을 때는 가벼운 얘기 위주로 대화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식당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민감한 내용을 말하기는 곤란했다.

더구나 그 민감한 내용이라는 것이 가신 가문인 나서스 가의 치부와 관계된 거였으니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헤어질 법도 했지만, 그들은 다시 키에라 나서스의 방으로 가서 대화를 이어갔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다.

밥을 먹었으면 후식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반태수는 오늘 일도 있으니 흔쾌히 데드릭 벨크리스에게 어울려주었다.

키에라 나서스의 방에 도착하자, 반태수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특히 키에라 나서스는 이번엔 커피와 쿠키를 같이 먹어보겠다고 결심했다.

아까 데드릭 벨크리스가 했던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아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을 함께 먹으면 기절할 수도 있다니. 대체 어느 정도여야 기절할 것 같은 맛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두 사람이 앉아 있고, 반태수가 막 커피를 준비하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어? 올 사람이 없는데?”

굳이 생각해보자면 카간 나서스 정도인데, 그가 여기 올 이유가 없었다.

경합에서 이겼다면 놀릴 의도로 올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니까.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관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얼떨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뒤에 살라자 샤마쉬를 데리고.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반태수가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사실 영역화를 쓰고 있기에 살라자 샤마쉬가 왔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한데 왜 왔는지는 모르겠다.

살라자 샤마쉬는 반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서운하군. 나만 쏙 빼놓고 이런 자리를 만들다니 말일세.”

살라자 샤마쉬는 반태수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 영감님이 나서스 가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나도 나름 힘을 쓸 수 있다네. 커피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을 정도 된다는 얘기지.”

살라자 샤마쉬가 반태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무리했다.

"나도 거기 자리 하나 내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반태수는 바로 일어나서 커피부터 준비했다.

표정을 보니 진짜 서운했던 모양이다. 이럴 때는 커피로 달래주는 것이 최고다.

아니나 다를까, 살라자 샤마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마자 바로 표정이 풀어졌다.

그렇게 몇 모금을 천천히 마시며 충분히 기분이 풀어진 살라자 샤마쉬는 좌중을 한 차례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좀 더 일찍 올 수도 있었네.”

나머지 세 사람의 시선이 살라자 샤마쉬에게 모였다.

"대충…… 영감님이 도착할 때랑 비슷하게 올 수도 있었지.”

그 말은 살라자 샤마쉬도 반태수를 따라다녔다는 뜻이다. 그리고 데드릭 벨크리스의 움직임까지 확인하고 있었고.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데드릭 벨크리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반태수는 설마 하는 눈으로 데드릭 벨크리스를 쳐다봤다.

"설마 영감님도?”

데드릭 벨크리스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좀 어이가 없었다. 그럼 5대 가문 사람들은 서로를 계속 감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는 뜻 아닌가.

살라자 샤마쉬가 차분히 말했다.

"우린 각자 누군가를 살피는 나름의 방법이 있네. 저 영감님의 방법과 내 방법은 다르지. 우리 가문 사람들 역시 개개인이 전부 각자의 방법을 갖고 있네.”

반태수는 좀 질린 기분이 들었다.

"그럼 가문의 사람들을 전부 감시하고 있는 겁니까?”

그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감시가 아니라 관심. 그리고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지. 난 저놈 하나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나 역시 마찬가지일세. 영감님하고 가문에서 내가 관심을 두는 몇몇만 가끔 확인하고 있지.”

살라자 샤마쉬는 그렇게 말하고는 묘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솔직히 자네에게도 관심이 깊어서 좀 살펴보고 있는데…… 정말 어렵더군. 종적이 묘연해질 때가 잦아. 그래서 아예 비행선만 지켜보고 있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저도 두 분에게 관심을 좀 가져도 되겠군요.”

두 사람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야 고맙지. 안 그래도 요즘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확 줄었어. 내가 사고 친 지가 너무 오래된 모양이야.”

"나도 마찬가지일세.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네.”

감시에 대한 얘기는 거기까지였다.

살라자 샤마쉬는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이었다.

"아무튼 일찍 올 수 있었는데 이렇게 늦은 이유는 좀 알아볼 것이 있어서였네.”

다들 살라자 샤마쉬가 뭘 알아봤는지 궁금해서 눈을 반작였다.

"요즘 가신 가문 중에서 자격이 안 되는 자를 후계자 자리에 앉히는 경우가 좀 있더군.”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데드릭 벨크리스였다.

"뭐? 여기랑 똑같은 일이 다른 가문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건가?”

"맞습니다. 사실 그건 예전부터 알고 있던 거고, 제가 조금 더 깊이 조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뭘 알아냈나?”

"그 후계자 선정에 누군가 개입했고, 개입한 자의 뒤에 5대 가문의 누군가가 있더군요.”

"그게 누군지도 알아냈나?”

데드릭 벨크리스가 알고 싶은 것이 바로 그거였다. 과연 5대 가문의 누가 뒤에서 이런 일을 조장했는지 그를 잡으면 대체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아직 누군지까지는 못 알아냈습니다. 한데 한 명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한 명이 아니라고?”

데드릭 벨크리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예. 아무래도 일이 좀 커질 것 같습니다.”

살라자 샤마쉬가 염려하는 건 그들이 혹시라도 가문을 배신한 건 아닐까, 해서였다.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문제가 진짜 심각해진다.

지금까지 5대 가문의 긴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니까.

"이거……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군. 이걸 자네와 나 둘이서 해결하기에는 좀 버거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살라자 샤마쉬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군요.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5대 가문에 속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문 내부의 일을 살펴블 수 있을 테니까.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없군요.”

"마찬가지일세.”

아무래도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따져가며 탐색을 좀 해봐야 할 듯하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방금까지 끓어올랐던 감정이 단숨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맛과 향의 폭풍이 온몸을 뒤흔드는 행복한 시간이 찾아왔다.

이러니 이 커피를 어떻게 끊겠는가.

키에라 나서스는 그런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며 자신의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러면서 반태수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반태수가 크랙톤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 이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된다.

그 생각만으로도 자신이 불행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오늘 경합에서 우승한 것 때문에 달아오른 흥분이 그 감정에 뒤섞여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있는데,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가 갑자기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커피잔을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자세를 바로 했다.

"왜…… 그러시는지요?”

"너 곧 후계자 승인을 받으러 가겠구나.”

키에라 나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후계자 승인을 위해 언제 5대 가문에 방문할지는 후계자가 결정한다.

대부분 후계자가 되면 한 달쯤 후에 출발한다. 그 전에 준비할 것도 있고, 후계자가 되었으니 인사할 사람도 많으니까.

하지만 키에라 나서스는 좀 서두르고 싶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열흘쯤 후에 출발할 계획입니다.”

살라자 샤마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군. 서두를 수 있을 만큼 서두르는 게 나을 거야. 내 생각에 이번 일에 개입한 사람이 자르칸 나서스 말고 또 있을 것 같으니까.”

키에라 나서스의 눈이 커다래졌다.

"또 있다고요?”

살라자 샤마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 있다는 정황을 파악했는데, 누군지는 모르겠군.”

그 뒤로도 한동안 비슷한 얘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당장 답을 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대화가 계속 반복되었다.

"그럼 이쯤 하지. 우리는 가보겠네.”

살라자 샤마쉬가 적당한 순간 대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를 보며 데드릭 벨크리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왜 자네가 결정하나? 난 아직 더 있고 싶은데?”

"영감님, 눈치 좀 챙기시죠. 괜히 좋은 자리에 끼어들어 훼방놓지 마시고.”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게 무슨 소린가 잠시 고민하다가 반태수와 키에라 나서스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아! 이런, 내가 눈치가 없었군.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눈치가 사라지지 뭐야. 하하하하.”

데드릭 벨크리스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살라자 샤마쉬의 팔을 붙잡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좋은 시간 보내고! 크하하하!”

마치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간 것 같았다.

반태수는 어이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저 두 사람이 미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아니, 난데없이 왜 저딴 얘기를 쏟아내고 간단 말인가.

이쪽은 아예 그럴 분위기 자체가 없는데.

아무튼 분위기가 싸해졌으니 대충 수습한 다음 방으로 돌아가려고 고개를 돌려 키에라 나서스를 쳐다봤다.

‘어?’

당황했다. 키에라 나서스의 표정을 보니 오히려 모르는 건 자신이었다. 저 두 양반이 자신보다 더 상황을 잘 파악했던 모양이다.

키에라 나서스가 약간의 부끄러움과 흥분이 뒤섞인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경합에서 우승한 것에 더해 커피와 쿠키까지 먹으면서 저렇게 된 모양이었다.

"저기......."

반태수가 뭐라도 말을 꺼내려고 한 순간, 키에라 나서스가 확 다가와 입을 맞췄다.

반태수는, 자신이 마법사라는 자각으로 충동을 이겨내고자 했으나, 결국 충동에 지고 말았다.

지구였으면 이렇게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을 텐데.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반태수는 충동에 몸을 맡겼다.

***

반태수는 해가 중천에 뜬 다음에야 잠에서 깼다.

사실 일찍 일어나고자 했으면 그럴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어제 너무 일도 많고 늦게 자서, 오늘은 그냥 쭉 자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도 너무 늦게 일어났네.”

벌써 점심때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 키에라 나서스는 없었다. 잠도 안자고 그냥 돌아간 듯했다.

아침에 같이 일어나기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아니면 막상 그렇게 되고 나니 자신이 너무 충동적으로 일을 벌인 것 같아서 민망했거나.

‘그나저나…… 나 너무 능숙한 거 아냐?’

어제가 반태수의 첫 경험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했다.

마치 비슷한 일을 수천 번은 해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건 굉장히 기묘한 느낌이었다.

또한 기시감이 들었다.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것 같았다.

기시감의 정체는 마법이었다.

반태수가 처음 마법에 입문했을 때,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마법을 처음 쓰는 건데, 그렇지 않은 듯한 기분.

반태수는 한참동안이나 침대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았다.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모호한 느낌이 계속해서 뇌리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어젯밤의 기억에 전부 쓸려나갔다.

정말 좋았다. 그동안 왜 참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러다보니 예전에 자신에게 신호를 열심히 줬던 백진희가 떠올랐다.

그때 대체 왜 참았을까?

백진희가 떠오르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때 변두리 개발할 때는 분명히 없었지?’

당시 대원 그룹이 그 일에 참여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일 백진희가 그 안에 섞여 있었다면 반태수가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나중에 또 생각나고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태수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지금은 이렇게 딴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 씻고 나갈 준비를 한 다음, 식당으로 가서 밥부터 든든하게 먹었다.

그리고 호텔 옥상으로 가서 비행선을 탔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비행선이 떠올라 크랙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반태수는 비행선 안에서 이번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5대 가문 내에 뭔가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하고, 거기에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가 개입하게 되었다.

반태수는 아무래도 그 일이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 엮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5대 가문이라…….'

대단하다는 건 잘 알겠다. 그러니 어설프게 접근하면 자칫 휩쓸려 떠내려갈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할까?

'힘이지.'

더 강해져야 한다.

반태수는 크랙톤으로 돌아가는 내내 마법에 대해 연구하고 참오하고 공부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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