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 후계자 경합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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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었다.
반태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씻고 밥 먹고, 옥상으로 올라가 비행선에 탑승했다. 아니, 비행선 지붕에 올라탔다.
키에라 나서스에게 간다고 말이라도 할까 하다가 말았다.
어차피 활동 시작하면 드론으로 다 볼 거 아닌가.
그리고 오늘 모든 것이 마무리 된다. 다 끝나고 느긋하게 밥이라도 먹으면서 인사하는 게 낫다.
비행선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도시를 크게 가로지르며 남은 능력자들을 찾아다녔다.
비행선 지붕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전경이 제법 괜찮았다.
“드론이 진짜 많긴 해.”
반태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는 수많은 드론들이 아예 도시의 전경과 어우러져서 없으면 이상할 것 같았다.
그렇게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드론 때문이었다.
평소 대부분의 드론은 고도가 대충 정해져 있었다. 가장 촬영하기 좋으면서도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날아다닌다.
한데 지금은 드론들의 고도가 좀 높았다.
아니,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드론들의 높이가 반태수의 비행선과 비슷해졌다.
몇몇은 오히려 더 높은 곳을 날아다녔다.
반태수는 어제 키에라 나서스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뭔가 수작을 부릴 거라고 했다.
지금 이 드론들의 움직임이 바로 그 수작의 시작 아닐까?
높이 떠올랐던 드론들이 다시 원래대로 내려갔다.
높은 곳에 남은 드론은 두 대뿐이었다.
그 두 대가 비행선을 촬영하는 듯했다.
반태수는 조종실에 연락해 비행선을 멈추게 했다. 그냥 하늘에 떠 있기만 하는 것이다.
드론을 부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저들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야 움직일 테니까.
반태수는 만에 하나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조종사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고도를 높이고 도망치라고 해뒀다.
자신은 언제 어디서든, 또 어떤 상황이든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잠시 후, 능력자들이 나타났다. 한데 티셔츠를 입지 않은 능력자들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드론들이 싹 사라졌다.
곧 일어날 싸움을 촬영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즉, 알려져선 안 될 일이 벌어질 거라는 의미였다.
반태수는 대번에 저들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알려져선 안 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외부에서 후계자 경합에 개입한다는 뜻이다.
등록되지 않은 능력자나 용병이 나설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제대로네.”
반태수는 비행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들은 이 근방에 있는 사람들을 내쫓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하나하나 쫓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굉장히 빠르게 그걸 해내고 있었다.
권력자가 나섰다는 뜻이다.
이곳 오카리타의 권력자가 누구겠는가.
나서스 가문의 높은 사람이 나선 것이다.
적어도 오카리타의 모든 드론을 마음대로 움직일 권한을 가진 자가.
저 아래에 있던 드론들 중에는 키에라 나서스의 드론도 있을 것이고, 다른 후보자들의 드론도 있을 것이다.
한데 그 모든 드론을 싹 다른 데로 보내버렸다.
반태수의 눈에 저 멀리에서 드론들이 질서정연하게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반태수는 시력 강화를 통해 다가오는 드론들을 확대해서 확인했 다.
왠지 드론의 모습이 낯익었다.
"저거 영감이 쓰던 드론 같은데?”
예전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함정에 빠졌을 때, 그 작전에서 썼던 드론과 생김새가 흡사했다.
그 드론들은 폭격이 가능했다.
"뭐야, 지금 이 비행선을 노리는 건가?”
그럼 가만 둘 수 없지.
드론들이 빠르게 날아오다가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크게 선회를 하며 비행선을 포위하듯이 감쌌다.
원이 아니라 구 형태였다. 입체적으로 비행선이 빠져나갈 길이 없게 감싼 것이다.
반태수는 그걸 보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고작 이 정도로 긴장하기에는 반태수의 마법 실력이 너무 높았다.
마법진이 떠올랐다가 빠르게 빛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비행선을 중심으로 커다란 전격의 거미줄이 나타났다.
꽈과과과광!
전격의 거미줄에 걸린 드론들이 그대로 폭발했다.
안 그래도 폭발물을 싣고 있는데, 거기 전격이 쏟아지면서 터져 버린 것이다.
전격의 거미줄은 15초 정도를 유지하다가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비행선을 촬영하던 두 대의 드론도 전격의 거미줄에 휘말려서 박살 났다.
반태수는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모인 능력자들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숫자는 모두 일곱, 하나하나 가진 마력의 양이 엄청났다.
마법사는 없었다.
방금 그 드론들은 반태수를 비행선에서 내리게 할 목적으로 온 것들이 분명했다.
그런데 자신이 왜 굳이 내려가야 하나.
여기서 편히 싸우면 되는데.
한데 그때 능력자들이 모인 곳으로 일반인 용병들이 다가갔다.
그 용병들은 기묘하게 생긴 무기를 들고 있었다.
‘유물인데?’
유물이 분명했다. 지름이 15센티쯤 되는 원통형 무기였는데, 앞뒤가 꽉 막혀 있었다.
용병 중 하나가 그것을 어깨에 메고 비행선을 향해 조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같은 무기를 든 다른 용병들도 비행선을 조준했다.
강력한 마력 반응이 일어났다.
보통 무기가 아니었다.
반태수는 빠르게 마법을 펼쳤다.
수백 개의 마법진이 비행선 주변에 떠올랐다. 그리고 곧장 마법이 펼쳐졌다.
그 순간, 용병들이 자신이 가진 무기를 발사했다.
막힌 원통 출구 앞에 열 개의 마법진이 줄 서듯이 나타났다.
그리고 막힌 원통 출구에 마법진이 나타나 빛났다.
새하얀 빛이 거기서 툭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빛은 빠르게 열 개의 마법진을 차례대로 지나갔다.
마법진을 하나 지나갈 때마다 빛에 색깔이 덧씌워졌다. 그리고 속도도 빨라졌다.
마지막 마법진을 통과할 때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쭉 쏘아져 나갔다.
무지개 색이 일렁이는 빛 덩어리가 비행선을 향해 쭉 나아갔다.
그리고 반태수가 펼친 실드에 작렬했다.
꽈과과과과광!
실드가 단숨에 부서졌다.
빛 덩어리는 수십 개의 실드를 꿰뚫었다.
한데 그 과정에서 궤적이 비틀렸다.
애초에 실드로 공격을 막으려고 한 게 아니라 실드의 각도와 뚫었을 때의 굴절률을 조절해서 경로를 비틀고자 한 것이다.
첫 번째 공격은 그렇게 막았다.
하지만 원통형 무기는 연사가 가능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공격이 연이어 들어왔다.
반태수는 그 공격들을 전부 수백 개의 실드를 동원하는 것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막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행여나 비행선에 저 공격이 스치기라도 하면 아주 곤란했다.
저 무기의 내구도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이 공격이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저들이 또 무슨 수를 준비했는지 모르니, 일단 비행선은 자리를 피하는 게 나았다.
반태수는 조종실에 연락해 일단 도시 밖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다른 두뇌를 이용해 실드를 계속 공급하면서 마법을 추가로 펼쳤다.
저 원통들부터 날려 버릴 것이다.
무기를 든 용병의 숫자만큼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즉시 발동했다.
꽈과과광!
강렬한 충격파가 용병들의 발치에서 터졌다.
용병들은 무기를 든 채 뒤로 휙 날아갔다. 피를 토하면서.
반태수는 그 틈에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자 비행선이 빠르게 이탈했다.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일곱 명의 능력자들이 냅다 달려왔다.
일단 내려온 이상, 아무리 강한 마법사라고 할지라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들의 주먹에 짙은 마력이 맺혔다.
반태수는 일단 가장 익숙한 전격 마법을 쏟아냈다.
꽈르르르릉!
수십 다발의 전격이 능력자들에게 쏟아져 나갔다.
능력자들은 온몸에 힘을 주며 그대로 돌진했다.
꽈르르릉!
놀랍게도 능력자들의 몸에 닿은 전격이 튕겨나듯 되돌아갔다.
‘반탄!’
저 능력자들은 반탄 속성의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자들이었다.
보아하니 반탄뿐 아니라 충격 흘리기까지 가지고 있는 듯했다.
반탄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전격이 그들의 몸을 통과해 뒤로 흘러나갔다.
달리기는 또 어찌나 빠른지 고작 마법 한 번 썼을 뿐인데 다들 지척에 도달했다.
반태수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마치 허공을 유영하듯 포물선을 그리며 물러나는 반태수를 향해 능력자들이 점프해서 급격히 거리를 줄였다.
그들의 눈이 번득였다. 완벽하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능력자들은 마력이 짙게 맺힌 주먹을 그대로 내질렀다.
콰우우우!
관통 속성이 담긴 마력이 회오리치며 반태수에게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반태수가 위로 쭉 올라가 버렸다.
일곱 개의 권격이 반태수가 있던 곳을 헤집고 지나갔다.
위로 올라간 반태수의 머리 위에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일곱 능력자들이 반태수가 있던 곳을 허공에서 지나치는 순간, 마법이 발동했다.
콰우우우우!
무지막지한 압력이 일곱 능력자를 그대로 짓눌러 버렸다.
그들의 몸에서 짓누르는 압력을 반탄으로 튕겨냈지만, 그렇게 튕겨낸 힘이 다시 반사되어 되돌아왔다.
반탄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는 힘이 그들을 짓눌렀다.
흘리기로 계속해서 압력을 흘려내고 있지만, 이내 용량이 초과되어 버렸다.
남은 압력이 그들을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콰직!
어찌나 세게 처박혔는지 바닥을 깊이 파고들었다.
반태수는 자신의 몸에 몇 가지 조치를 해서 안전을 확보한 다음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옆으로 손바닥을 뻗었다.
손바닥 앞에 커다란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대로 마법이 발동하며 수십 줄기의 전격이 쏟아져 나갔다.
꽈르르르르릉!
막 일어나서 반태수를 향해 무기를 겨누던 용병들이 전격의 바다에 휩쓸렸다.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경직된 채 옆으로 툭 쓰러졌다. 마치 통나무가 쓰러지는 것처럼.
반태수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드론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이 일을 벌인 자가 상황을 확인하려고 보낸 드론이리라.
꽈릉!
위에서 떨어진 가느다란 벼락이 드론을 박살 냈다.
반태수는 주위를 슥 둘러봤다.
더 처리해야 할 적은 없는 듯했다.
바닥에 처박힌 능력자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땅에 박히는 충격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가 이제 깨어나는 모양이었다.
반태수는 묘한 눈으로 능력자들을 쳐다봤다.
영역화를 펼치고 있기에 저들의 상태를 제법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저들은 땅에 박힐 때,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뼈도 군데군데 부러지고 금 갔고.
한데 그 상처들이 아물고 있었다.
치료 속성의 마력까지 쓰는 것이다.
"능력 좋네.”
아마 지금까지 만난 능력자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하지 않을까 싶었다.
반태수가 상대했으니 이렇게 쉽게 처리했지, 아마 다른 사람이 이들과 싸우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상당히 까다로운 자들이었다.
아무튼 다양한 마력을 쓰는 자들을 제압하려면 마력을 빼앗으면 그만이다.
반태수는 일곱 능력자들에게 점혈을 썼다.
마력의 흐름을 막아버리고 몸을 마비시키는 점혈을 썼다.
그러고 나서야 능력 자들을 땅속에서 꺼내주었다.
굳이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저 상태가 더 괴로울 테니까.
자신에게 저들을 보낸 자도 저걸 보면 조금이라도 두려워하지 않을까?
상황이 끝났으니 이제 슬슬 경합을 끝내러 갈 때가 되었다.
반태수는 비행선을 다시 불렀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사방에서 드론들이 날아왔다.
공격형 드론이 아니라 촬영을 위한 드론들이었다.
이내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 되었다.
잠시 후, 비행선이 도착했고, 반태수는 다시 비행선의 지붕에 서서 그곳을 떠났다.
***
자르칸 나서스가 드론을 보내 확인을 하기 시작한 것은 반태수가 다시 일어난 용병들을 전격으로 쓰러뜨린 순간부터였다.
그 전에 본 것은 자신이 보낸 공격형 드론들이 비행선을 완벽하게 포위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화면이 먹통이 되었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멀리 보냈던 드론 중 하나를 얼른 장악해서 보냈다.
한데 그때는 이미 상황이 다 끝난 뒤였다.
자르칸 나서스가 본 것은 전격이 용병들을 휩쓰는 것, 그리고 바닥에 자신의 능력자들이 박혀 있는 광경이었다.
그걸 미처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또 화면이 새까매졌다. 드론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마 부서졌겠지.
자르칸 나서스는 얼핏 봤던 자신의 능력자들의 상태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설마 죽인 건가?”
저 능력자들을 키우기 위해서 들인 공과 돈은 계산이 어려울 정도로 막대했다.
그러니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선 안 된다.
"이거…… 큰일 났구나.”
이대로 저 마법사를 보내면 결국 키에라 나서스가 경합에서 우승할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자신이 그린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카간 나서스가 우승해야만 한다.
"억지를 부리는 수밖에.”
일단 저 마법사를 잡아두고 드론 파괴와 민간인 공격에 대한 책임을 지게 만들기로 했다.
억지를 부려 자격을 박탈시키면 자연스럽게 카간 나서스가 우승하게 된다.
자르칸 나서스는 서둘러 움직였다.
시간이 없다. 자신이 개입하기 전에 카간 나서스의 능력자들이 전부 탈락해 버리면 상황이 그대로 끝나 버린다.
그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나서스 가에서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힘과 영향력을 동원했다.
이제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자르칸 나서스는 태블릿을 들고 상황을 확인했다.
카간 나서스의 능력자들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서 도망 다니기만 했다.
다른 후보자의 능력자들로부터 도망치는 건 아주 잘했다. 마도구과 유물까지 들고 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문제는 반태수였다.
반태수는 그들을 용게 찾아내 하나하나 탈락시켰다.
유물이고 마도구고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걸 지켜보는 자르칸 나서스의 심장이 시시각각 오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