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 후계자 경합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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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저 색이 그 둘째인가 그놈 색 아닌가?”
눈에 확 띄는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능력자들이 어딘가로 잔뜩 몰려가고 있었다.
아까 호텔을 에워싸고 있던 놈들도 저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로 반태수가 처리한 무리에도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자들이 있었다.
그때 처리할 때는 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제 다섯 무리 정도 처리하고 나니 조금 여유를 가지고 생각했다.
듣기로 둘째가 가장 많은 능력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후보자들보다 몇 배나 많다고 하니 정말 많긴 많다.
하지만 이제 곧 그렇지 않게 될 것이다.
노란 티를 입은 능력자 무리는 상당히 규모가 컸다.
보아하니 저렇게 잔뜩 몰려다니면서 적을 무너뜨리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위치야 주기적으로 갱신되니 얼마든지 알 수 있다.
아마 이대로 평이하게 상황이 흘러가면 결국 승자는 둘째가 될 것이다.
"아침에 호텔에 있던 무리랑, 내가 처음 없앤 무리랑, 저거랑 이렇게 셋으로 나눈 건가?”
적의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고자 마음먹으면 언제든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반태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그저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적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럼 이번엔 어떻게 처리를 할까?”
화려한 불꽃 마법도 써봤고, 벼락의 비를 내리게 해서 사방을 전격의 바다로 만드는 것도 해봤다. 벼락숲이 떠올라서 써본 마법이었다.
몸싸움도 해봤다.
도망가지 못하게 마법 지뢰로 적을 포위한 다음, 다양한 방식으로 무술과 마법을 병행해 싸워봤다.
솔직히 그게 제일 재미있었다. 진짜로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마 영상은 좀 별로였을 것이다.
몸으로 싸우는 영상은 적절한 편집을 통해 잘 다듬어야 볼만해진다.
역시 좋은 영상을 뽑으려면 대규모 마법이 최고다.
"역시 마법의 꽃은 메테오지.”
반태수의 머리 위에 거대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완성된 마법진이 아니었다. 반태수가 계속해서 술식을 계산하며 마법진을 채워나갔다.
이내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반태수는 아래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노란 티셔츠 무리를 보며 손가락을 튀겼다.
따악!
그 순간 마법진이 빛가루로 부서지며 마법이 펼쳐졌다.
하늘에 검고 어두운 부분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구구구구구!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운석이었다.
다시 하늘이 닫혔고, 남은 건 운석뿐이었다.
어찌나 거대한지 땅에서도 그걸 훤히 볼 수 있었다.
이동하던 능력자들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그리고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자신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니 그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다들 놀라서 멍하니 운석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의 뇌리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세상이 끝장나나?’
저렇게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면 이 도시 하나 부서지고 마는 게 아니다.
아마 그 여파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구구구구구!
운석이 떨어지는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왠지 운석 떨어지는 속도가 그리 빠른 것 같지가 않다.
마치 잘 보라는 듯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능력자들이 순간 저 정도면 도망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망쳐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운석이 떨어지면 이 도시 자체가 박살 날 텐데.
그러는 와중에도 운석은 착실히 떨어졌다.
아주 정확히 능력자들 위에.
꽈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버섯구름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이 전부 흙먼지로 뒤덮였다.
그 뒤로 충격파가 퍼지면서 바닥이 전부 뒤집혔다.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 모습을 드론이 전부 찍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는데, 공중에 떠 있는 드론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흙먼지가 사라지고 나니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딱 하나, 서 있던 능력자들이 전부 쓰러졌다는 것뿐이었다.
반태수는 언제나 그랬듯이 비행선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쓰러진 능력자들 한가운데 서서 말했다.
"항복할 사람 손.”
다들 힘겹게 손을 들었다. 온몸의 체력과 마력이 싹 빠지고, 큰 내상까지 입은 데다, 심한 타박상까지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항복하지 않으면 죽여 달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럼 여기도 전원 항복이고……."
반태수는 고개를 들어 드론을 올려다봤다.
"영상도 잘 찍힌 거 같으니 이만 가볼까?”
반태수는 높이 점프해 다시 비행선 지붕에 탔다.
비행선은 빠르게 다음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이로써, 후계자 경합에 참석한 능력자의 70%가 탈락했다.
반태수가 호텔을 떠난 지 고작 일곱 시간 만의 결과였다.
***
카간 나서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태블릿 화면을 응시했다.
입에서 미친놈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저 미친 마법사가 운석을 소환한 것이다.
하지만 운석이 땅에 충돌한 뒤의 결과를 보고는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저건 운석을 소환한 게 아니라, 운석 소환을 환상으로 만들고 그 안에 다른 마법을 감춰서 쓴 것이다.
"미친 건 미친 거고, 실력이 진짜 말도 안 나올 정도네.”
남은 능력자 수를 확인하니 이제 70명 정도였다.
아침에 키에라 나서스의 마법사를 처리하러 호텔로 보냈던 자들만 딱 남았다.
나머지는 싹 날아갔다. 저 미친 마법사 한 명에게.
마지막 운석에 당한 게 컸다. 그 무리가 가장 규모가 컸으니까.
규모로 적을 뭉개버리는 것이 카간 나서스의 계획이었다.
그건 아주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 무리가 아웃시킨 능력자의 수가 상당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 경합은 하나마나다.
"반이라고 했나? 대체 저런 마법사를 어디서 구해온 거야? 게다가 비행선이라니. 그런 나도 못 구하는 건데, 일개 마법사가 비행선을 타고 다녀?”
뭔가 있는 놈이 분명하다.
사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뛰어난 마법사고, 프리든 가와 린치필드 가의 후계자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 정도.
예전 오카리타에서 대단한 실력을 보여줬다는 것도 안다. 당시의 영상을 보기도 했다.
그것만 봐도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얼마든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카간 나서스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늘 자신의 능력자들이 갈려 나가던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계속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한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매워도 보통 매운 맛이 아니다. 도저히 삼킬 수 없을 정도였다.
"시발, 저걸 어떻게 이겨?”
방금 본 영상 속 운석은 가짜가 분명한데, 왠지 저 마법사는 진짜 운석도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카간 나서스는 앉은 채 다리를 달달 떨며 다시 태블릿을 확인했다.
더 이상 싸우는 능력자들을 찾지 못했다. 위치를 다시 확인해 화면을 확인했지만 다들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되도록 능력자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대로 두 시간만 더 버티면 안전지대에 들어갈 수 있다.
다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초긴장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패색이 짙게 깔려 있었다.
카간 나서스는 자신의 능력자들을 확인했다.
그들은 최대한 숨어서 이쪽으로 오는 중이었다. 아마 되도록 빠르게 안전지대로 돌아오고 싶은 모양이다.
"후우. 이렇게 허무하게……."
카간 나서스가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을 버티면 뭐하나. 그럼 내일 끝날 텐데.
그렇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 안으로 쑥 들어왔다.
카간 나서스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들어온 사람을 확인했다.
분명히 문을 잠갔는데, 대체 어떻게 여길 들어왔단 말인가.
확인해 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수, 숙부님.”
카간 나서스의 숙부인 자르칸 나서스였다.
"못난 놈. 벌써 포기했느냐?”
카간 나서스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아닙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자르칸 나서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그는 카간 나서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다음 말을 이었다.
"내가 본가에 손을 좀 써뒀다.”
"예?”
"그 마법사, 제법이더구나. 마법이 아주 정교해. 마력도 상당하고.”
카간 나서스는 대체 자르칸 나서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라 입을 꾹 다문 채 듣기만 했다.
"게다가 비행선? 하, 나도 정말 하나 갖고 싶었던 건데, 대체 어떻게 구한 건지.”
자르칸 나서스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으냐?”
"전……."
모르겠다. 그걸 알 수 있으면 벌써 했지 이렇게 다리만 달달 떨고 있었겠나.
"아주 간단한 일이다. 더 큰 힘으로 찍어 누르면 끝이야.”
"하지만 그놈은 누구보다 강합니다. 남은 능력자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아마 옷깃도 못 건드릴 겁니다.”
당연하다. 비행선 지붕에 서서 마법을 퍼부으면 대체 그걸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다. 도망치거나.
하지만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비행선으로 쫓아오는 걸 어떻게 따돌리나. 그냥 잡혀야지.
"내가 가문에 손을 써놨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카간 나서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외부에서 영입하시려는 겁니까?”
"뭘 굳이 외부까지 나가? 내가 데리고 있는 능력자가 몇 명인데. 그 녀석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너도 잘 알지?”
"하지만 그놈은 비행선을 타고 있습니다.”
"비행선이라고 무적은 아니야. 얼마든지 날려 버릴 수 있다. 일단 아래로 내려오게만 하면 그때부터는 그놈도 어쩔 수 없을 거다."
"아……!”
카간 나서스는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대돼서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니 넌 무슨 수를 써서든 버티기만 해라. 전부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만 잘 다니라고 하면 되겠구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카간 나서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오늘 안전지대로 능력자들이 돌아오면 그들에게 도주에 유용한 마도구와 유물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경합에 참여하는 능력자들에게 마도구는 몰라도 유물을 주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죽으면 유물을 빼앗길 게 뻔하니까.
게다가 누군 주고 누군 안 줄 수도 없는 일이고. 그건 능력자들의 사기에 걸림돌이 된다.
하지만 이번엔 과감하게 지를 때다.
카간 나서스가 결연한 눈빛으로 자르칸 나서스를 바라봤다.
"반드시 버텨내겠습니다. 그러니 잘 부탁드립니다.”
자르칸 나서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넌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내가 다 알아서 하마.”
***
오후 6시가 지났다.
능력자의 수가 확연히 줄어서인지 안전지대로 돌아가는 자들을 기습하는 일은 없었다.
아니, 사실 다들 어떻게든 안전지대로 돌아가려고 전전긍긍하느라 누굴 기습하고 말고 할 정신도 없었다.
그걸 할 사람은 오직 반태수뿐이었는데, 반태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6시가 딱 되자마자 호텔 옥상에 비행선이 착륙했다.
반태수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가서 샤워부터 하고 키에라 나서스의 방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키에라 나서스는 반태수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계속 화면으로 누가 오는지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태수는 그녀를 보자마자 말했다.
"밥 먹으러 갑시다.”
키에라 나서스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나섰다.
두 사람은 식당으로 가서 천천히 식사를 했다.
밥을 먹으면서 반태수가 툭 물었다.
"오늘 어땠습니까? 화면이 제법 괜찮았죠?”
반태수의 물음에 키에라 나서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정체가 뭐예요?”
"알잖습니까. 마법사 반, 크랙톤 출신. 알아볼 만큼 다 알아본 거 아닙니까?”
"비행선은 뭐죠?”
"샀죠.”
틀린 말은 아니다. 점혈을 주고서 대가로 받은 거니까.
"그냥 마법사가 비행선을 샀다고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똑바로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자, 키에라 나서스는 더 이상 비행선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보다 화면 어땠냐니까요? 제법 멋지게 나오지 않았습니까?”
"아주…… 끝내주더군요.”
"그 중에서 뭐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직접 몸으로 싸운 게 최고였는데, 아무래도 그건 화면을 살리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촬영도 드론으로 해서 제약이 심할 텐데.”
키에라 나서스는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긴장감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긴장할 이유가 없지.’
오늘 반태수가 싸우는 걸 보고 확실히 알았다. 이 사람은 수준이 다르다. 모든 능력자가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이 사람과 제대로 싸우려면 지금 오카리타에서 활동하는 능력자들이 아니라, 그보다 위에 있는 확실히 수준이 다른 능력자나 마법사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이 경합이 얼마나 장난 같겠는가.
"녹화한 거 나중에 꼭 주셔야 합니다. 그나저나 뭐가 제일 괜찮았는지 말 안해줄 겁니까?”
키에라 나서스는 잠시 뜸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운석이요.”
"그쪽 취향이셨군. 재난 영화 같은 거 좋아하는 모양이네.”
키에라 나서스는 기가 막혔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런 거 좋아해요. 좀비 영화도 좋아하고.”
그 뒤로는 가벼운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반태수가 또 툭 물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긴장을 하는 겁니까?”
"예?”
"오늘 내가 싸우는 거 봤으면 알 텐데. 이 경합 내일이면 끝나요. 당신이 이길 거고. 그런데 왜 아직도 긴장을 합니까? 그냥 편히 있지."
키에라 나서스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이번 경합은……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네요.”
"이상한 점?”
"애초에 둘째 오라버니를 밀어주려고 작정했어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전부.”
"시작부터면 어제 말입니까?”
키에라 나서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요. 경합 후보자가 선정되었을 때부터. 제 생각에는 그래요.”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그래서 이대로 끝나지는 않고 뭔가 다른 수를 쓸 것 같다, 이겁니까?”
키에라 나서스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반태수는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럼 내일 잘 지켜봐요. 어떤 수작을 부리는지. 그리고 그 수작을 내가 어떻게 부수는지.”
반태수의 자신만만한 말에 키에라 나서스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