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58화 (154/351)

158화.  < 평범한 일상 2 >

=======================

반태수의 저택에 두 대의 비행선이 착륙했다.

하지만 그 비행선의 주인들은 반태수를 만나지 못했다.

반태수는 여전히 부품 수집 여행 중이었다.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는 정원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는 각자 준비했고, 쿠키도 각자 준비했다.

둘 다 반태수가 선물해준 것들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이 가진 쿠키를 철저히 사수하며 커피를 마셨다.

"그나저나 이놈은 뭐가 그리 바빠?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자네는 알지?”

살라자 샤마쉬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알지만 안다고 말하면 나중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그걸 이용해 반태수에게 뭔가를 얻어갈 게 분명했다.

반태수에게 점혈의 대가로 비행선을 내주긴 했지만, 그 비행선의 위치는 자신이 언제든 알 수 있었다.

비행선과 연동된 태블릿이 있으니까.

사실 이 태블릿도 함께 넘겨줬어야 하지만 그때는 자신이 이걸 챙길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확신이 없었으니까.

기존 승무원과 조종사도 전부 그대로였지만, 왠지 점점 그들로부터 얻는 정보의 양이 줄어들고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어서 그렇다고는 하는데,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기에는 좀 미묘한 선을 타고 있었다.

살라자 샤마쉬가 판단하기에, 그들은 이미 반태수에게 넘어갔다.

커피를 한 모금 후룩 마셨다.

이 맛을 봤다면 넘어가도 할 말이 없긴 하다.

물론 살라자 샤마쉬는 그렇다고 해서 승무원들과 조종사들을 응징하거나 불이익을 줄 생각이 없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괜히 반태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

‘슬슬…… 타블릿을 파기하거나 넘겨주거나 해야겠군.’

아마 반태수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비행선을 추적하고 감시한다는 사실을.

그러니 대놓고 사실을 인정한 다음, 태블릿을 넘기는 것이 아마 가장 깔끔할 것이다.

그래야 정상참작이라도 되지 않겠는가.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나? 머리 굴리는 너구리처럼.”

"별 거 아닙니다. 우리 반 마법사가 뭘 좋아할지 좀 고민해 봤습니다.”

"그걸 왜 자네가 고민하나?”

"당연히 고민해야지요. 자연스러운 인간관계. 영감님은 너무 그런 거에 관심이 없는 거 아닙니까?”

"내가 관심이 없긴 뭐가 없어? 내 인간관계가 얼마나 단단하고 폭넓은지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전부 가문 사람들 아닙니까. 나서스 가문 애들 몇 명하고.”

"그럼 우리가 가문 사람 말고 누굴 만나?”

살라자 샤마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게 편협한 겁니다. 전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사귀죠.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영감님도 이제 슬슬 그 미친놈들 쫓아다니는 건 그만하고 남은 인생을 즐기시죠.”

데드릭 벨크리스가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힘을 주고 살라자 샤마쉬를 노려봤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살라자 샤마쉬는 얼른 수습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선을 넘었군요.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의 사과를 받고는 표정을 풀었다.

"뭐, 나도 언제까지 이러고 다닐 생각은 없어. 딱 한 놈만 찾아 죽이고 나면, 남은 인생은 좀 느슨하게 살 거야. 피도 더 이상 안 볼 거고."

"부디 그 일을 빨리 이루길 바라겠습니다.”

두 사람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비행선 한 대가 다가왔다.

"어? 비행선인데?”

데드릭 벨크리스의 말에 살라자 샤마쉬가 깜짝 놀라 비행선이 날아오는 쪽을 바라봤다.

반태수의 비행선이 분명했다.

살라자 샤마쉬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알기로 저 비행선은 지금 여기 있을 수 없었다.

"이런, 늦었네.”

아무래도 비행선에 연동된 태블릿의 정체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끊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빠르게 날아온 비행선이 바로 저택에 착륙했다.

살라자 샤마쉬는 묘하게 비행선이 예전보다 더 빨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저 느낌일 뿐인지라 그냥 넘어갔다. 뭐, 실제로 그랬다고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하고.

비행선에서 반태수가 내렸다.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를 보자마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요즘 매일 오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반태수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만나기 정말 힘들군. 뭘 하느라 그리 바쁜가?”

"요즘 하는 일이 몇 가지 겹쳐서 좀 바빴습니다.”

"그럼 이제 바쁜 일은 다 끝났나?”

"아뇨.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진짜 바빠질 것 같습니다.”

"아니, 대체 뭘 하기에……."

반태수는 사실대로 말해줄 생각이 없었기에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두 분은 제게 뭔가 볼일이 있어서 오신 겁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이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펐다.

반태수는 그 태도를 보고 바로 알아차렸다. 이 사람들 커피와 쿠키를 받으러 온 거다.

"그냥 친목도모를 위해 오신 거면 가볍게 차나 한 잔 하고 가시죠.”

두 사람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반태수는 두 사람을 저택 안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제일 좋은 응접실로 안내한 후, 직접 커피를 내렸다.

저들이 원하는 건 이 커피일 테니까.

이내 커피와 쿠키가 두 사람에게 제공되었다.

반태수는 함께 커피를 마시며 가벼운 잡담을 했다.

그러다가 슬쩍 궁금했던 걸 물었다.

"제가 요즘 과학이나 기술 쪽에 관심이 생겨서 공부 중입니다.”

그 말에 두 사람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가 과학이나 기술 쪽에 관심을 갖는 건 제법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마법사는 단계를 높이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그 중에 공부가 끼어 있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했다. 마법사만큼 공부와 친한 족속이 흔치는 않으니까.

"한데 공부를 하다 보니 얻기 힘든 자료나 지식들이 있더군요.”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얻기 어려웠던 분야를 차근차근 언급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표정이 좀 묘해졌다.

"그 분야들은 아마 앞으로도 자료를 얻기 어려울 걸세.”

살라자 샤마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부는 내가 구해다 줄 수도 있네. 아마 저 영감도 일부를 구할 수 있을 테고. 하지만 그래봐야 언 발에 오줌 누는 수준일 걸세.”

"그거라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내가 힘을 좀 써보지.”

데드릭 벨크리스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나도 제대로 한 번 애써보지.”

"감사합니다.”

반태수는 정중히 인사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커피와 쿠키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언제나 대가가 중요한 법이다. 저 두 사람에게 줄 대가 중에서는 아마 앞으로도 이 두 가지가 최고이리라.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두 사람의 얼굴에 환희가 떠올랐다. 이젠 아예 표정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는다.

저걸 얻으러 여기에 왔으니 이제 돌아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각각 선물을 챙기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피곤해 보이는데 푹 쉬게. 당분간은 찾지 않을 테니까.”

두 사람은 그 말만 남기고 훌쩍 사라졌다.

반태수는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커피와 쿠키를 제공한 모든 사람들 중에 저 두 사람이 가장 큰 효과를 보는 듯했다.

굳이 비슷한 사람을 찾으라면…… 엄대협 정도?

엄대협의 커피 사랑은 아주 눈물겹다.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와 살라자 샤마쉬의 비행선이 떠나는 모습을 확인한 다음에야 움직였다.

일단 장소가 필요했다.

저택 내에는 적당한 장소가 없었다.

조립하려는 로봇의 크기가 제법 컸다. 최소 높이가 30미터는 되는 장소가 필요했다.

로봇 조립을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바깥에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걸 다 만족시키는 곳은 창고뿐이다.

저택에 마련한 창고는 규모에 비해 높이가 낮다. 게다가 안에 다른 물자가 많아서 로봇 조립에는 적합하지 않다.

반태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럴 때는 변두리에 있는 창고를 찾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다.

반태수는 일단 엄대협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럴 때 쓰기 가장 편한 사람이 바로 엄대협이다.

***

엄대협은 변두리에서 제법 괜찮은 창고를 구했다.

다만 근처에 좀 위험한 조직들이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다.

창고를 쓰는 사람이 반태수인데, 누가 거기에 끼어들 수 있겠는가.

아니, 끼어들 수는 있어도 몸 성히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반태수는 엄대협이 창고의 위치를 알려주자마자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비행선을 타고 가면 눈에 띄니 그냥 왜곡을 걸고 날아가는 것이 나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거대한 창고 하나가 보였다.

높이가 50미터쯤 되고, 그 높이를 버틸 만큼 넓은 창고였다.

그리고 창고 주위에 험상궂은 사람들이 제법 돌아다니고 있었다.

창고를 소유한 조직에서 보낸 사람들도 있고, 근처에 있다는 몇몇 조직에서 나온 자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

반태수는 적당한 곳에 내려선 다음 왜곡을 풀었다. 그리고 창고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시비라도 걸면 진짜 싹 날려 버릴 작정이었는데, 그곳에서 가장 험악하게 생긴 사내가 반태수를 보자마자 허리를 90도로 접었다.

"오셨습니까!”

그동안 마법사 반에 대한 소문이 변두리를 몇 차례나 휩쓸었다.

그 마법사 반에게 시비를 걸 간 큰 사람은 이곳에 한 명도 없었다.

아마 지금 개발 중인 지역도 별다른 잡음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곳이 반태수의 소유라는 소문이 변두리를 한 차례 뒤흔들었으니까.

반태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며 계속 창고로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얼른 창고 문을 열어주었다.

문도 굉장히 컸고, 강철로 만들어졌기에 엄청나게 무거웠다.

문 한 짝에 세 명씩 붙어서 온 힘을 다해 문을 열었다.

반태수는 창고로 들어가며 말했다.

"근처에서 얼쩡거리지 마라.”

그 말을 남기고 안으로 들어간 반태수는 마력을 움직여 창고 문을 닫았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창고 문이 닫히자, 밖에 있던 사람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 문을 열고 있던 자들은 능력자다.

능력자 여섯이 달라붙어서 연 창고 문을 혼자 손도 안 대고 닫았으니 얼마나 놀랍겠는가.

"역시 마법사 반.”

보자마자 허리를 숙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그곳에 모였던 자들이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진짜 조용히 물러갔다.

근처에 자리 잡은 조직들도 오늘만큼은 전부 자리를 비웠다. 괜히 여기 있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창고 주변은 이내 적막에 휩싸였다.

***

창고 문을 닫은 반태수는 일단 내부를 한 차례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창고였다.

‘로봇 조립하기 딱 좋은 창고네.’

반태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단 마법부터 펼쳤다.

조립 중에 누군가 방해라도 하면 안 되니 사전에 그걸 방지하는 것이다.

강력한 보안 마법과 강화 마법을 창고 전체에 둘렀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그걸 다섯 번이나 중첩했다.

그리고 창고에 다가오는 자들이 없도록 정신 계열 마법을 걸었다.

가까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불쾌하고 불편해지는 마법이었다.

이것도 제법 강력한 수준으로 걸었기에 무시하고 다가온 자는 정신이 망가질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정도로 정신이 망가질 사람이라면 애초에 다가오지도 못하겠지만.

그렇게 한 다음, 설계도를 출력하는 마법을 펼쳤다.

허공에 3차원 입체 사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로봇이 부품별로 분해되었다.

반태수는 아공간에 보관 중인 부품을 빠르게 꺼냈다.

최근 얼마나 열심히 퍼즐 던전을 클리어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결국 모자란 부품을 전부 구할 수 있었다.

창고 안에 부품들이 쫙 깔렸다.

그것만으로 모자라 그 위쪽 허공에도 부품이 쫙 깔렸다. 반태수가 마법으로 부품을 허공에 띄운 것이다.

그런 식으로 10층이 넘게 부품을 쌓았다.

반태수는 기쁜 마음으로 마력을 움직여 부품을 뽑아냈다.

드디어 조립을 시작하는 것이다.

부품은 그저 갖다 맞추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적당한 마력을 흘려서 부품이 작동해야만 서로 붙게 되어 있었다.

조립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사실 설계도를 띄운 것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모든 설계가 반태수의 머릿속에 다 있었으니까.

반태수는 그저 거기에 맞춰 부품을 뽑아내고 정확한 자리에 갖다 붙이는 일만 반복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노동을 해서는 마법사라고 할 수 없다.

반태수는 부품이 하나하나 끼워 맞춰질 때마다 어떤 변화가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상황을 분석했다.

지금은 이렇게 부품과 설계도를 찾아 조립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이보다 더 멋진 로봇을 자신이 직접 만들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조립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끝났다.”

드디어 마지막 부품이 맞춰졌고, 완성체 로봇이 창고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높이는 20미터가 살짝 넘고, 모양은 투박했다.

하지만 반태수는 그 모습이 그렇게나 멋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서 저 로봇을 움직여 보고 싶었다.

"탑승형이 아닌 게 좀 아쉽긴 하네.”

설사 그런 게 없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꼭 만들어 보리라.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로봇에 마력을 공급했다.

일단 내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로봇에게 각인해야 한다.

- 각인 완료.

로봇이 말했다. 한데 고대어다.

설마 명령도 고대어로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앞에 홀로그램 마법진이 훅 떠올랐다.

로봇과 마력이 이어져 있었다.

‘이걸로 조종하는 거구나.’

반태수는 마법진에 손바닥을 갖다 맸다.

그러자 바로 사용법을 알 수 있었다.

로봇에 인공지능이 내장되어 있고, 이 마법진을 통해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단순한 명령만 수행이 가능하고 복잡한 명령은 미리 프로그램처럼 입력을 해야 한다.

반태수는 일단 움직여봤다.

쿵! 쿵! 쿵!

아주 잘 걷는다. 창고 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로봇을 보고 있자니,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아…… 밖으로 가지고 나갔으면 좋겠는데. 왜곡을 걸까?”

로봇 전체에 왜곡을 거는 건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에 안 보이면 무슨 소용인가.

반태수는 몇 가지 동작을 테스트한 다음 일단 로봇을 아공간에 넣었다.

'이름을 지어줘야지.’

반태수는 자신의 작명 센스가 바닥이라는 걸 알기에 좀 오랫동안 고민하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넌지시 물어보기도 하고.

아공간에 로봇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반태수는 얼른 창고에 건 마법을 전부 흩어버리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도시 밖으로 나가야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