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 변두리 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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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윈 프리든은 반태수의 연락을 받고 기쁘게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페일라 린치필드에게 연락을 할까 하다가 말았다.
필요하면 반태수가 알아서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오랜만에 반태수와 독대하는 셈이니 더 좋다.
약속 장소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계곡에 위치한 카페였다.
도착하니 반태수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뭘 하는 건지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오스윈 프리든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반태수가 다시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
굳이 이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중요한 순간인지도 모르지 않은가.
오스윈 프리든은 반태수를 유심히 바라봤다.
표정부터 시작해 앉은 자세라거나 입은 옷, 주변에 흐르는 바람, 그리고 마력의 움직임까지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그래서 반태수의 몸 주위로 굉장히 미세하지만 일정한 규칙을 가지는 마력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마력에 관련된 마법을 펼쳐 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지루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흥미진진했다.
마력의 흐름은 일정해 보이면서도 또 그렇지 않았다.
흐름의 규칙 자체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마저도 규칙이 있다는 건 지켜본 지 한 시간쯤 지난 뒤 발견했다.
그걸 발견한 순간, 갑자기 코어의 마력이 들끓었다. 그리고 지극한 희열감이 정수리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오스윈 프리든은 6서클이 되었다.
***
반태수는 오스윈 프리든을 기다리면서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유물 제작을 시도했다.
사실 거기에는 제법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일단 마법을 부여할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 밑 작업이 되어 있어야 마법을 부여하기 쉽다.
웬만한 마도구를 제작할 때는 굳이 필요 없는 과정인데, 유물은 좀 달랐다.
워낙 많은 마법이 다양한 위상을 채우고, 그게 여럿 겹치다보니, 물건이 마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서질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그러니 그걸 방지하기 위해 미리 밑 작업을 철저히 한 물건이 있어야 한다.
한데 이면세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여기로 달려오는 바람에 그런 물건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마법만 완성해 보기로 했다.
그냥 대충 아공간에 있던 목걸이 하나를 꺼냈고, 거기에 마법을 부여하기로 했다.
일성그룹 회장실 아래에 있던 물건 중 하나였는데, 아마 가치가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반태수는 별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물건이야 얼마든지 있다. 필요하면 또 얼마든지 구할 수도 있고.
그렇게 테이블 위에 목걸이 하나를 내려놓고 유물 제작을 시작했다.
확실히 그동안 실력이 어마어마하게 늘긴 했다.
하긴, 벽을 넘은 것만 해도 대체 몇 번인가. 게다가 넘은 벽 중에 제법 높은 것도 섞여 있었다.
공부도 생각보다 꾸준히 했고, 한 분야를 집중하진 않았지만 마법 연구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예상했던 것보다 유물 제작이 수월하게 이어졌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여러 위상에 마법을 채우고, 그걸 겹치면서 발생하는 일들을 술식으로 정리해서 원하는 쪽으로 이용하고, 그렇게 만든 마법을 물건에 부여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각각의 과정마다 시간은 어찌나 많이 잡아먹는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물론 반태수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한창 진행 중일 때, 오스윈 프리든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다.
오스윈 프리든이 부르면 눈을 뜨고 제작을 중지하려고 했다. 한데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반태수는 약간 부담이 되긴 하지만 계속 제작을 진행했다.
그리고 부여할 마법이 완성되기 직전, 오스윈 프리든의 몸에서 거대한 마력이 움직였다.
서클이 올라가는 순간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반태수는 서둘러 제작을 마무리했다. 목걸이에 마법을 부여했는데, 역시나 밑 작업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목걸이가 그 힘을 버텨내지 못했다.
그래도 아예 실패한 건 아니었다.
목걸이에 금이 쩍 가긴 했지만, 마법 자체를 성공적으로 부여했다.
다만, 목걸이에 금이 갔기에 내구력이 바닥인지라 몇 번 쓰고 나면 목걸이가 부서질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튼 반태수는 유물 제작을 완료하자마자 눈을 뜨고 앞에 앉은 오스윈 프리든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목욕이 필요할 듯했다.
***
오스윈 프리든이 민망한 표정으로 반태수의 시선을 피했다.
설마 거기서 그렇게 갑자기 서클이 오를 줄은 몰랐다.
그 자리에서 깨달음과 마력을 수습하긴 했지만, 온몸에서 쏟아진 노폐물은 어쩔 수 없었다.
옷이 시커매졌고, 지독한 악취가 주변을 장악했다.
오스윈 프리든은 일단 계곡에 몸을 던져 급한 불부터 껐다.
비서를 시켜 새 옷을 가져오게 했고, 계곡에서 대충 노폐물을 씻어낸 다음 옷을 갈아입었다.
그 다음, 반태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까운 호텔로 향했다.
한 시간에 걸쳐 박박 씻고, 호텔에 올 때까지 입었던 옷을 버리고 또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호텔방을 나섰다.
지금 이곳은 호텔의 로비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반태수도 벽을 여러 번 넘어봤기에 오스윈 프리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 아닌가. 밖에서 벽을 넘었으니.
반태수처럼 호텔에서 그랬다면 더 민망했으리라.
문득 베르캄스테드 마법 연구소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그곳에 있는 호텔에서 벽을 넘었는데, 노폐물까지 싹 쓸어가 용기에 담아 판다는 얘기에 기겁을 했었다.
'그나저나 그 방은 아직도 상품으로 팔고 있으려나?’
반태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스윈 프리든이 민망함을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태수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반태수는 살짝 당황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예? 뭘요?”
"반 마법사님 덕분에 제가 6서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저 때문이라고요?”
반태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예. 반 마법사님 주변에 흐르는 마력을 보다가 영감을 받아서 벽을 넘었습니다.”
반태수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대단하시네요. 그걸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건, 그동안 준비를 정말 많이 했다는 뜻인데. 아마 그게 아니었어도 조만간 벽을 넘었을 겁니다.”
역시 오스윈 프리든은 재능이 뛰어난 마법사였다.
반태수가 애써 감추진 않았지만, 그래도 굉장히 마력이 절제되어 주변에 흐르는 걸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걸 잡아낸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하물며 그걸 토대로 깨달음을 얻다니.
"아무튼 6서클에 오르신 거 축하합니다. 7서클, 8서클도 쭉쭉 가셔야죠.”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5서클에 오른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반태수와 처음 만났을 무렵이 5서클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5서클을 보낸 시간이 가장 짧다.
1서클에서 2서클에 오를 때도 이 정도로 빠르진 않았으니까.
오스윈 프리든은 이것이 모두 반태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반태수와 함께 있으면서 마법적, 마력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아마 그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커피와 쿠키도.’
정확히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커피와 쿠키가 분명히 뭔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저래 반태수 덕분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왠지 반태수와 함께하면 7서클, 8서클에도 금방 도달할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아, 본의 아니게 제가 시간을 끈 셈이 되었군요. 반 마법사님께서 절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따로 있으실 텐데.”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이런 식의 시간 지체는 얼마든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음에도 또 그러셨으면 좋겠네요.”
그 말에 오스윈 프리든이 기분 좋게 웃었다. 다음에 또 벽을 넘어 서클을 올리라는 말 아닌가.
왠지 그 말이 진짜 이뤄질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진중한 표정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혹시 변두리 일부를 개발한다는 소식 들으셨습니까?”
오스윈 프리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들었습니다. 변두리 땅 중에 우리 가문 소유인 곳도 있어서 그곳을 개발하려면 제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윌렉스 가문도 그곳 땅을 제법 갖고 있을 겁니다.”
물론 귀족가문들은 변두리 땅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가치가 한없이 바닥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을 버리거나 내주지는 않는다.
"그럼 그와 비슷한 일을 다른 도시에서도 진행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까?”
“흠, 다른 도시의 변두리 개발 계획에 대해 궁금하신 겁니까?”
“아뇨. 꼭 변두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크랙톤에서는 변두리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다른 장소일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모든 도시에 변두리가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거야 그렇지요. 사실 크랙톤처럼 변두리가 있는 도시가 더 드물기는 합니다.”
오스윈 프리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태수를 바라봤다.
"뭔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군요. 그러니까 도시 내부에서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지 확인하면 됩니까?”
"네. 처음 시작은 시정부에서 주관하겠지만, 그걸 민간으로 이양하는 계획을 세웠을 겁니다.”
"시정부에서 개발한 걸 굳이 민간으로 이양한다고요?”
“변두리 쪽은 지역 활성화를 핑계로 개발을 진행하는 것 같은데, 다른 도시는 어떨지 모르겠군요.”
그래도 시정부에서 하는 개발이니 뭔가 핑계거리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포탈을 교묘하게 감추고 통제해서 관련된 연합만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할 것이다.
반태수가 걱정하는 건, 이 사업에 5대 가문의 입김이 닿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랬다면 반태수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부디 그러지 않았기를 빌 수밖에.’
당장은 반태수에게도 별 영향을 안 미칠 것이다. 이쪽 크랙톤의 포탈만 손에 쥘 수 있으면.
하지만 장기적으로 고착화 되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그걸 기점으로 지구의 능력자들이 이면세계에서 조금씩 영향력을 키울 테니까.
아니, 이미 시정부와 협의해 개발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영향력이 상당히 올라왔다는 방증이다.
왠지 슬슬 지구와 이면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시기가 금방 닥쳐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럼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확인하면 되겠군요.”
사실 기준이 좀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걸 알아블 사람이 오스윈 프리든 밖에 없는데.
‘내가 직접 각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확인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사실 개발 예정 지역에 가서 포탈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끝인 일이다.
한데 그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런데 갑자기 이 일에는 왜 관심을 가지신 겁니까?”
오스윈 프리든의 질문에 반태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개발하려는 지역에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아서 좀 알아보려는 겁니다.”
"특별한 것?”
오스윈 프리든은 눈을 반짝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확실히 알아보겠습니다. 혹시 페일라에게 도움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좀 더 빠르고 확실하게 조사할 수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오늘은 마음이 급해서 오스윈 프리든만 불렀지만, 조만간 페일라 린치필드와도 만나서 같은 얘기를 할 계획이었다.
안 그러면 마음이 상할 테니까.
아무튼 이제 크랙톤의 포탈 쪽에 집중하면 된다. 외부는 오스윈 프리든에게 맡기고 말이다.
***
엄대협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턱을 한껏 치켜 올렸다.
그 거만한 자세에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어때? 내 실력이.”
저렇게 잘난 척 할만 했다.
아예 시정부와 개발 시작부터 함께 하기로 계약을 끝내고 온 것이다.
개발 위치는 확실히 포탈이 있는 곳이었다.
이제 남은 건 포탈이 위치한 지역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가보자.”
반태수의 말에 엄대협이 눈살을 찌푸렸다.
"가보자고? 설마 개발 예정지에?”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정확히 어떤 부분에 권리를 행사해야 할지 확인해야지.”
"가볼 필요도 없어. 제일 알짜는 쇼핑몰이야. 개발 중심지에 있는 쇼핑몰 하나 먹으면 끝이야."
엄대협은 그렇게 말하며 지도를 쫙 펼쳤다.
개발 예정지인 변두리의 지도였다. 상당히 정교했다.
그리고 그 옆에 개발 예상도를 펼쳤다.
기존 변두리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의 그림이었다.
‘이걸 보니 포탈이 어디 있는지 딱 알겠네.’
개발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치 않았다.
중심에 쇼핑몰을 두고 널찍널찍한 길을 사방으로 뚫어놓고 보기 좋은 형태의 작은 건물들을 포진한 구성이었다.
나무나 화단도 잘 조성해서 마치 공원 같은 분위기였다.
원래 지도에서 포탈이 있는 곳과 예상도에서 포탈이 있는 곳을 비교해보니, 새 포탈은 공원처럼 조성된 거리를 빙 두른 집들 중 하나에 들어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대충 알겠다.
아마 저 집들을 지구의 능력자들에게 분양할 것이다. 자금이야 연합에서 얼마든지 조달 가능할 테니까.
연합의 능력자들의 활동도 보조해 주고 포탈도 관리하고 일석이조 아닌가.
반태수는 정확히 포탈의 위치한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걸 본 엄대협이 흠칫 놀랐다.
"뭐야, 설마 그 집을 노리는 거야? 그건 그냥 손해만 보는 거야. 거기에 집을 왜 그렇게 빙빙 둘렀겠어? 그건 그냥 울타리야. 핵심은 쇼핑몰이고, 최소한 이 도로에 있는 건물은 되어야지.”
반태수는 엄대협을 보며 말했다.
"이거, 설계 바꿀 수도 있나?”
"응?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
아니,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것이다.
누구한테 전화를 걸어야 할지가 고민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