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47화 (145/351)

147화.  < 오성 연합 >

=====================

사내는 비서실장의 서늘한 눈빛을 오래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저희가 탈취한 물건은 두 개입니다. 그 중 하나를 이리로 가져왔습니다.”

비서실장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리고 눈빛이 사나워졌다.

"지금…… 우리 물건을 빼돌렸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찮아 보였습니까?”

사내가 당황해서 얼른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의뢰는 완벽하게 완수했습니다. 따로 챙긴 물건은 의뢰와 관계없는 물건입니다. 그쪽에 2호점이 생겨서 똑같은 물건을 혹시나 하고 챙겼을 뿐입니다.”

비서실장이 피식 웃었다. 다 말장난이다. 하지만 굳이 더 압박할 필요가 없었다. 알아서 토해낼 테니까.

"참고로 의뢰를 받을 시점에는 2호점이 없었습니다. 2호점 문을 연 건 오늘이고, 저희도 우연히 거기에 같은 물건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변명은 됐고, 그래서 2호점 쪽에 있던 물건이 진짜라는 겁니까? 그걸 가져오겠다는 거고?”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1호점에 있던 걸 2호점으로 옮겼을 가능성도 있으니 확인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이 턱짓을 하자 사내가 얼른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끊은 사내가 안도하며 말했다.

"바로 이리로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아직 멀리 가지 않았으니 금방 올 겁니다.”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번 일, 얼마나 중요한지 제가 여러 번 강조했죠?”

"마, 맞습니다.”

"그런데 일을 이런 식으로 어설프게 처리하시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물건이 두 개 있으면 두 개 전부 이리로 가져와야지 그걸 빼돌려요?”

"아니, 그 물건은 계약에 없던……."

"계약에 없다고요? 계약서 다시 확인시켜 줘요? 야! 가서 계약서 가져와!”

"아니, 실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번 일 책임지고 완벽하게 마무리 하겠습니다.”

계약서에는 분명히 추가되는 마도구도 함께 가져오기로 되어 있었다.

한데 그것이 같은 카페 위자드가 아니라 2호점이라는 걸 핑계로 대충 뭉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새로 가져온 것들도 마도구가 아니면 어쩌시겠습니까?”

"예? 그럴 리가요!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분명히 둘 중 하나는 마도구일 겁니다!”

"그걸 이걸로 확인해 봤습니까?”

비서실장이 마력을 확인하는 마도구를 들어 올리며 묻자, 사내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조사하지는 않았다.

비서실장이 앞으로 성큼 걸어 사내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그 상태로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눈에서 서늘한 한기가 쏘아져 나오는 듯했다.

"제가 왜 우리 정보팀 내버려두고 사장님한테 의뢰를 했는지 아십니까?”

사내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모, 모르겠습니다. 그저 저희 실력을 믿어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실력 좋은 건 알죠. 그래도 우리 정보팀에 비하겠습니까? 장비며 경력이며 훨씬 위에 있는데.”

사내가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비서실장이 말을 이었다.

"잘라내기 편하거든요. 일 터졌을 때.”

사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비서실장이 그런 사내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러니까 오늘 일, 잘 해결되어야 할 겁니다. 잘리기 싫으면.”

저 잘린다는 말은 그냥 계약을 끊는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잘려나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 그 전에 책임은 책임대로 다 져야할 테고.

"무조건 됩니다. 예. 암요. 무조건, 무조건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승합차가 도착했고, 거기에 실었던 드립커피머신과 쿠키 제조기가 13층으로 옮겨졌다.

두 번째 테스트 역시 첫 번째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마력 감지기가 전혀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이, 이럴 리가 없습니다! 이게 왜 이러지? 절대 이럴 리 없다니까요? 실장님도 아시잖습니까! 거기 이거 말고는 마도구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비서실장은 차가운 눈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그 역시 저 물건들이 마도구라고 믿었으니까.

‘정말로 저게 아니었다고?’

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회장에게 다 끝난 것처럼 보고를 했고, 저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들이 마도구라고 보고했다.

한데 아무것도 아니라니.

만일 정말로 카페 위자드가 이면세계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면, 지금까지 한 일은 대체 뭐란 말인가.

‘카페 주인이 새로운 문을 확보했을 가능성 때문에 너무 서둘렀어.’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비서실장은 결정을 내리고는 다시 사내에게 말했다.

"이봐요, 사장님.”

"예. 말씀하십시오, 비서실장님.”

사내는 침을 튀기며 억울함을 토해내다가 비서실장의 부름에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뭐든 시켜만 달라는 듯한 표정과 눈빛이었다.

"사장님네 애들 몇 명이나 동원 가능합니까?”

"당장 움직이라고 하면 시간도 시간이니 스무 명 정도가 한계지만 시간을 얼마나 주시느냐에 따라 백 명, 이백 명도 동원할 수 있죠."

"어중이떠중이 말고 능력자로만 구하면요?”

"그럼 최대한 애써봐야…… 열다섯?”

"능력자 열다섯에 힘 좀 쓰는 애들로 백 명 정도 동원 가능합니까?”

“예. 뭐, 그 정도야……."

"그럼 그렇게 동원해서 사람 하나만 잡아옵시다.”

"예? 고작 한 명 잡는데 그렇게나?”

"좀 꺼림칙한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사실 상관은 없는 거 같은데…… 시기가 좀 묘하게 겹쳐서요."

“예?”

사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가 상관없고 무슨 시기가 겹친단 말인가.

"아무튼 신중하게 한 사람만 잡아오시면 됩니다. 팔다리 정도는 부러뜨려도 되는데, 죽이면 안 됩니다."

"예, 예. 그래서 누굴 잡아오면 됩니까?”

"오늘 갔던 카페 사장 잡아오세요. 이름은 반태수입니다.”

“예?"

"그 사람에게 직접 들어야겠습니다. 마도구 어디 있는지.”

"아니, 그럼 애초에 도둑질 말고 그걸 시켜주시지……."

사내는 그렇게 투덜거리다가 비서실장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고는 얼른 몸을 움츠리고 입을 다물었다.

"내일 바로 작업하겠습니다. 아니, 오늘부터 준비하겠습니다. 그놈 집에 가서 확인해보고 잠들었으면 바로 업어오겠습니다."

마치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이 말하는 사내의 모습에 비서실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말한 인원 전부 동원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그것 역시 계약이니 반드시 지켜야지요.”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들을 보며 물었다.

"하면 이 물건들은……."

"제가 가져갈 겁니다.”

회사로 가져가 창고에 넣을 것이다.

그냥 창고가 아니라 이면세계와 관계된 물건만 보관하는 특수 창고가 있었다.

왠지 그냥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보세요. 준비 철저히 하시고.”

"예. 맡겨만 주십시오.”

사내는 얼른 인사하고 물러갔다.

비서실장은 그 모습을 보다가 쯧 혀를 찼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경호팀 동원해서 쟤들 감시하세요. 혹시 실패하면 경호팀이 나서서 마무리 하시고.”

사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비서실장은 잠시 서 있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오늘 일을 회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또 얼마나 피를 말릴지 생각만 해도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할 일은 해야지.

"우리도 이만 정리합시다.”

비서실장은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런 비서실장의 뒤를 반태수가 바짝 붙어서 따라갔다.

‘하, 이것들을 진짜. 내가 무슨 동네북이야? 뻑하면 노려?’

반태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비서실장을 따라갔다.

아까 따로 나간 사내들에게는 이미 마킹을 붙였다. 그놈들은 인원이 전부 모인 순간, 싹 쓸어버릴 것이다.

비서실장은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좀 낡은 세단에 올라탔다.

국산차였고, 도로에서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차였다.

‘의외인데?’

반태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차 지붕에 올라가 앉았다.

부우웅.

차가 출발했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도심지를 빠져나간 차는 빌딩이 나란히 서 있는 도로에 도착했다.

차는 그 중 가운데쯤 있는 빌딩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구석에 차를 세웠다.

이 지하주차장에서 유일하게 CCTV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비서실장은 근처에 세워둔 비싼 외제차를 탔다.

그게 진짜 비서실장의 차인 것이다.

반태수는 차를 옮겨 타며, 이면세계에서 셰딤의 조직원들을 쫓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놈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복잡한 코스를 짜서 돌아가지 않았던가.

비서실장의 차는 도로를 쭉쭉 달려 다시 도심지로 돌아갔다.

차의 최종 목적지는 일성 그룹 빌딩이었다.

반태수는 비서실장을 따라갔다.

일단 배후 중 하나는 찾았다. 일성 그룹이다.

그리고 일성 그룹은 오성 연합 소속이었다.

오성 연합은 이름에 성자가 들어가는 다섯 그룹이 모여서 만들었다.

일성그룹, 화성그룹, 예성그룹, 성문그룹, 대성그룹.

이렇게 다섯이 모여서 결성한 연합이었다.

그 중 일성그룹은 화성그룹과 함께 재계 1, 2위를 다툰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반태수는 이놈들을 어떻게 박살을 낼지 고민했다.

건물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 애꿎은 사람들이 당한다. 되도록이면, 정확히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려던 사람, 그리고 그와 관계된 자들만 정확히 뽑아내 응징해야 하지 않겠는가.

뭐, 잘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비서실장이 도착할 무렵 경호원으로 보이는 자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들은 비서실장의 차에 실린 네 개의 물건을 꺼내 각각 하나씩 들고 비서실장의 뒤를 따라갔다.

비서실장이 향한 곳은 특수 목적 창고였다.

아무나 열 수 없고, 아무 물건이나 보관하지 않는 특수한 목적의 창고였다.

이 안에 들어가는 건 이면세계와 관계가 있거나, 그럴 거라고 추측되는 물건들이었다.

이걸 여기에 보관하려고 이 새벽에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하긴, 이 시간에 회장이 회사에서 기다릴 리가 없지.’

반태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비서실장을 보며 살짝 짜증이 났다.

오늘은 아무래도 근처 호텔이나 모텔에서 대충 자고 내일 계속해야겠다.

내일 최소한 EMP라도 한 방 먹여주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

반태수는 일성그룹 빌딩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몇 시간 정도 푹 잤다.

자면서도 두뇌를 따로 운용할 수 있었기에 계속해서 마킹을 감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반태수가 가장 신경 썼던 사람은 비서실장이었다.

한데 비서실장은 집으로 돌아간 뒤 죽은 듯 자다가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했다.

출근한 뒤에도 별다른 특별한 일 없이 회사 업무에 집중했다.

어젯밤 그런 일을 한 사람이라는 흔적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반태수는 느긋하게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적당한 곳에서 왜곡을 걸어 모습을 감췄다.

오늘은 진짜 배후를 확실히 확인하고 응징하는 날이다. 아마 앞으로는 다시 무슨 일을 벌일 여력이 없을 것이다.

반태수는 일성그룹 빌딩으로 들어가 회장실로 향했다.

회장실에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도록 입구부터 보안이 아주 철저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사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반태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만한 상황이 오면 환상 마법과 정신계열 마법을 적절히 이용해서 부드럽게 상황을 넘겼다.

그렇게 회장실에 도착하니, 일성그룹 회장이 의자에 앉아 전면유리로 이루어진 곳에서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비서실장이 도착했다.

그는 어제 있었던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고했다.

당연히 회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그래서, 그 카페 사장은 잡아올 수 있겠어?”

"반드시 잡아오겠습니다.”

"그룹 애들은 쓰면 안 되는 거 알지?”

"따로 사람을 썼습니다.”

"연합 애들은?”

"일단 우리가 먼저 선점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건 잘했네. 한데 막상 확보했는데 별 볼일 없는 놈이면 좀 재미없는데. 안 그래?”

"분명히 뭔가 있습니다. 연합 정보팀은 물론이고 그룹 정보팀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문을 확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정말 높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연합 분위기는 어때?”

"문을 하나 더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들 들떠 있습니다.”

"젠장, 문을 찾는 건 우리인데, 과실은 연합이랑 나눠야 하니, 원. 게다가 문을 못 찾으면 또 얼마나 원망할 거야? 하여튼 연합인지 뭔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회장이 투덜거리자, 비서가 입을 다물고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연합이 불편한 건 맞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대세가 되었으니까.

아마 연합을 깨면 단숨에 격차가 줄어들고 금세 역전당할 것이다.

일단 이면세계에서의 영향력에서부터 차이가 날 테니까.

"아무튼 문을 하나 더 확보한다는 건 아주 큰 의미가 있으니까 잘 해봐.”

"예. 반드시 확보하겠습니다.”

"좋아. 이제 나가서 일 봐.”

비서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딱 그때 반태수가 나섰다.

비서에게 점혈을 썼다. 비서는 허리를 굽힌 채 그대로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당황해서 뭐라 소리를 내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점혈에 목소리를 빼앗긴 것이다.

비서가 몸을 일으키지 않자 회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는 거야?”

하지만 회장도 금세 비서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점혈에 당해 목소리를 잃고 몸이 마비되었으니까.

반태수는 혹시 마도구가 있는지 확인하고자 영역화로 일성그룹 빌딩 전체를 쫙 훑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이런 게 있어?’

회장실 바닥이 거대한 금고였다. 회장실 중앙에 있는 바닥에 금고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었다.

바닥 아래에 두 층을 써서 만든 거대한 금고가 있었다.

그 안에 마도구와 각종 포션이 잔뜩 있었다.

그리고 다른 물건들도 많았는데, 그건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대충 재질로 파악해 보건데, 현금과 귀금속, 그리고 예술품 같았다.

반태수는 회장 뒤에 있는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을 치웠다. 그곳에 금고를 가린 바닥을 열 수 있는 스위치가 있었다.

스위치를 누르니 회장실 중앙 바닥이 좌우로 부드럽게 열렸다.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소음도 일절 나지 않았다.

바닥이 드러나니 금고 문이 나타났다. 홍채, 지문, 목소리, 이렇게 세 가지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반태수는 마법을 써서 회장의 홍채를 복사했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마력으로 구조물을 형성할 수 있으니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홍채를 만들면 그만이었다.

물리력을 부여할 수 있으니 색도 부여할 수 있고, 환상마법과 적절히 섞으면 똑같은 홍채를 만들 수 있었다.

지문도 마찬가지였다.

목소리는 방금 회장과 비서의 대화를 통해 마법으로 복사해 뒀다.

마력으로 파장을 맞추는 방식이기에 아주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했다.

비서실장은 허리를 굽히고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회장은 눈앞에서 바닥이 열리고 금고가 작동하며 문이 활짝 열리는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저게 갑자기 왜 열린단 말인가.

반태수는 금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안에는 여러 나라의 현금이 금고 절반을 채울 정도로 많이 쌓여 있었다.

다 합하면 조에 가까울 정도의 거액이었다.

이 많은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을까?

일단 현금은 싹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고 한쪽에 차곡차곡 쌓인 금괴도 전부 아공간에 넣었다.

근처에 있던 보석 진열장도 담았고, 각종 예술품들도 싹 담았다.

마도구와 포션은 남겨뒀는데, 가져가 봐야 쓸 일도, 분석할 일도 없는, 수준 낮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것들은 마력 EMP를 터트리면 기능을 잃는다.

마도구뿐 아니라 포션도 마찬가지였다.

반태수는 금고를 연 채 그 안에서 EMP를 터트렸다.

순간적으로 왜곡이 흔들렸지만, EMP가 터지면서 금고 안에 있던 CCTV도 먹통이 되었기에 별로 상관없었다.

EMP는 일성그룹 빌딩의 절반 정도에 영향을 미쳤다.

반태수가 범위를 철저히 조절한 것이다.

금고에서 나온 반태수는 금고 쪽을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회장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어디 고생 좀 해봐라.’

반태수는 EMP 때문에 아수라장이 된 빌딩에서 유유히 나왔다.

이제 타겟이 제대로 정해졌으니 나머지를 정리하러 갈 차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