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 전투의뢰 4 >
=====================
반태수는 철판 큐브 쪽으로 걸어갔다.
거리가 제법 멀었는지라 그쪽으로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았다.
일단 이제 더 이상 신경을 거슬리는 시선이라든지 느낌은 없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자들이 아마 타노로스가 준비한 전부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대체 이놈들 뭘 하려고 했던 거지?’
설마 정말로 데드릭 벨크리스 한 명 잡자고 이런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과하다.
솔직히 반태수가 없다면 그 철판 큐브와 저격수 한 명이면 충분히 데드릭 벨크리스를 잡을 수 있다.
철판 큐브로 데드릭 벨크리스를 가두고, 저격수로 비행선을 격추시키면 끝이다.
그럼 남은 300명에 가까운 능력자들은 잉여 전력이라는 뜻이다.
한데 그냥 그렇게 넘기기에는 다들 준비가 너무 철저했다.
특히 마지막에 싸웠던 슈트 부대는 보통이 아니었다.
반태수가 적절한 수를 썼기에 잡았지, 아니라면 아마 골치 좀 썩었으리라.
‘일단 영감님부터 구한 다음에 다시 생각하자.’
그놈들의 목적이 뭔지는 심문을 통해 알아보면 된다.
반태수는 이내 아직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 철판 큐브 앞에 도착했다.
일단 영역화를 통해 철판 큐브의 정보부터 확인했다.
영역화가 철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큐브 아래에 있는 비행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태수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땅에 제대로 처박자.’
아래에 있는 비행선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쳐들어가면 되지 않겠는가.
데드릭 벨크리스는 큐브 안에 있으니 나중에 빼내기만 하면 되고.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저 철판이 아무리 단단해도 언젠가는 뚫을 수 있지 않겠나.
반태수는 즉시 마법을 펼쳤다.
무수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수백 개나 되는데, 전부 충격파를 만드는 마법진이었다.
압축 공기가 터질 때, 수백 개의 충격파도 같이 때려 박을 작정이었다.
철판이 단단하니 부서지지 않을 거라 믿고 생각한 방법이었다.
이내 압축공기가 터졌다.
꽈앙!
올라오던 큐브가 다시 쑤욱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수백 개의 충격파가 비처럼 쏟아졌다.
꽈과과과과과과광!
반태수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고 마법진을 계속 만들었다.
꽈과과과과과과광!
충격파가 터지고 또 터지고 연이어 터졌다.
반태수는 충격파 마법을 유지하면서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앞에 커다란 마법진이 나타났다.
상당히 복잡한 술식을 통해 완성된 마법진이었다.
마법이 발현되며 마력이 땅으로 스며들었다.
지반을 물렁하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큐브 위에 또 충격파가 터졌다.
꽈과과과과과광!
이번엔 큐브가 지면 아래로 쭉 내려갔다. 정말 깊이 박힌 것이다.
반태수는 느긋하게 다음 마법을 펼쳤다.
마력이 움직이며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반태수 앞에서 지하 깊은 곳, 큐브 아래까지 이어지는 통로가 빠르게 뚫렸다.
뚫린 구멍에서 흙이 밀려나왔다.
반태수는 마력을 이용해 밀려나온 흙을 양옆으로 밀어 버렸다.
금세 주변에 흙이 쌓였고, 이내 구멍이 끝까지 뚫렸다.
반태수는 구멍으로 들어갔다.
말이 구멍이지 지상에서 지하에 있는 비행선까지 일직선으로 뚫린 동굴이나 다름없었다. 넓이나 높이도 사람 두어 명이 나란히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구멍은 제법 깊은 곳까지 뚫려 있었다.
반태수는 구멍의 끝에 있는 비행선의 일부를 확인했다.
비행선의 크기는 철판 큐브보다 좀 작았다.
하지만 철판 큐브가 제법 크니, 그리 작은 비행선은 아니었다.
비행선의 재질도 큐브의 것과 똑같은 철판이었다.
영역화는 이 철판을 뚫지 못한다.
비행선이 거칠게 진동했다.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것이다.
그 순간 폭발음과 함께 비행선이 크게 진동했다.
꽈앙!
압축 공기가 터진 것이다.
땅을 무르게 한 것 때문인지 비행선이 아까보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반태수는 얼른 비행선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 상태에서 마력을 강제로 밀어 넣었다.
마력이 튕겨 나왔지만 신경 쓰지 않고 더욱 강하게 밀어 넣었다.
그러자 결국 마력이 철판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체로 마력을 걸러내듯 일부 마력만 밀려서 들어갔다.
이 철판을 구성하는 물질이 마력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건 아닌 모양이다.
반태수는 밀어 넣던 마력의 속성을 여러 가지로 바꿔봤다.
특정 속성에 약한지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아까 슈트 부대를 공격할 때, 다양한 속성의 마력탄이 조합되면서 슈트에 의미 있는 힘을 발휘했었다.
이번에도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시험해본 것이다.
몇 가지 속성 조합이 효과적으로 철판을 뚫고 지나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 충분했다.
반태수는 영역화에 조합 속성을 끼얹었다.
영역화가 지금까지 막혀 있던 것이 거짓말이기라도 한 것처럼 부드럽게 비행선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비행선뿐 아니라 비행선이 머리에 이고 있는 철판 큐브의 정보까지 낱낱이 전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이 비행선의 대응이 단순했는지 알아냈다.
"한 명이었어?”
이 비행선에 있는 건 한 명뿐이었다.
그러니 대응이 단순할 수밖에.
그저 조종을 해서 여길 빠져 나가려고 애 쓰는 것 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나노머신은…… 당연히 있고. 양이 많은 것 같네. 이 비행선의 옵션 같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나노머신이 비행선에 수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양이 상당했다.
그동안 타노로스의 조직원들이 갖고 다니던 양의 백 배 정도 되었으니까.
혹시 비행선 안에 마력 반응이 일어나는 곳이 있는지 확인해봤다.
하나도 없었다.
정말 순수한 기술력만으로 비행선을 만들어낸 것이다. 게다가 구조나 운용 방식이 5대 가문이 만드는 비행선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마법이 곳곳에 적용된 비행선과 이 비행선이 비슷하다는 건 제법 놀라웠다.
하지만 마법이 가미되지 않은 비행선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약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 비행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하다.
한데 연료도 반태수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물질이었다.
단순한 항공유나 휘발유, 혹은 경유가 아니었다.
아니, 이게 과연 석유에서 나온 연료이긴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마법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기에 단순한 기름이 아니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진짜 제대로 알아내려면 연료를 확보해서 전문 장비를 이용해 분석해야 한다.
‘그나저나 이놈들은 뻑하면 자폭을 하니. 이 비행선도 혹시 그런 게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간신히 확보했는데 자폭으로 다 날아가 버리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래서 혹시 폭발물이 있는지 확인해봤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긴, 얼마 전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잡은 타노로스의 조직원도 몸에서 폭발에 관한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폭발했었다.
아마 여기도 그런 식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폭발물을 설치해 놨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일단 이 비행선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려면 비행선이 날아가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연료탱크와 이어진 곳을 차근차근 파악했다.
그 끝에 엔진이 있을 테니까.
엔진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엔진을 아예 망가뜨릴 생각은 없었다.
이 엔진 역시 나중에 분석하고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될 테니까.
그 연구를 반태수가 직접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다.
그리고 맡기려면 믿을 만한 연구원을 영입해야 한다.
‘뭐 하나 하려고만 하면 일이 커지네.’
연구원은 어디서 영입한단 말인가.
문득 지구가 떠올랐다. 이걸 지구로 가져가서 연구하면 좀 편하지 않을까?
물론 비밀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니 지구에 다녀온 지 너무 오래됐는데?’
벌써 몇 달이나 지났다.
‘이번 일 마무리 하면 한 번쯤 다녀와야겠네.’
다들 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연료 탱크에서 엔진으로 이어진 관을 절단 마법으로 잘라 버렸다.
그냥 자르고 끝이 아니라, 잘린 부분까지 확실히 마무리했다. 구멍을 아예 막아버린 것이다.
연료가 새지 않을 테니 폭발 위험도 높아지지 않는다.
일단 이걸로 비행선이 도망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엔진을 무력화 시켰는데, 비행선이 갑자기 진동했다.
그리고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엔진이 안 돌아가는데 이렇게 위로 날아간다고?’
꽈앙!
압축 공기가 폭발하며 비행선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반태수는 얼른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영역화로 비행선 전체를 훑어도 비행선을 띄우기 위한 동력이 없었다.
더구나 이 비행선은 철판 큐브까지 위에 얹고 있다.
그러니 보통 동력으로는 날아오를 수 없다.
‘꼭 부유마법이 걸린 것 같은데?’
5대 가문에서 만드는 비행선처럼 말이다.
하지만 분명히 이 비행선에 적용된 건 5대 가문의 비행선에 적용된 부유마법보다 한 수 위다.
저 무거운 철판 큐브를 머리에 이고도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정도니까.
‘아니지. 이 철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 확인하지 않았어.’
물론 그건 나중에 확인하면 된다. 지금은 이 비행선이 날아오르지 못하게 막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도 영역화를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마 앞으로도 속성을 잘 조합하면 더 쓸 만한 무언가가 나올 것이다.
영역화를 열심히 파고들던 반태수는 비행선 내부에 있는, 전혀 비행선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찾아냈다.
그건 일종의 보석이었다.
어른 주먹만 한 보석이 비행선 곳곳에 있었다.
영역화를 정말 세밀하게 조절하면 일정한 지역에서 작동하는 힘을 체크할 수 있다.
드디어 비행선의 비밀이 풀렸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부유석?’
하늘로 날아오르는 힘을 가진 보석이 존재했다.
물론 그냥 날아오르는 건 아니다. 전기가 필요했다. 전압과 전류를 통해 부유하는 힘의 크기를 정할 수 있었다.
‘진짜 신기한 거 많네.’
그리고 타노로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원인을 알았으면 결과를 뽑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반태수는 보석과 연결된 전선을 전부 절단마법으로 끊어버렸다.
그걸로 이 비행선과의 싸움은 끝났다.
***
반태수는 비행선을 무력화시키자마자 안에 타고 있던 타노로스의 조직원부터 확보했다.
일단 비행선의 동력이 전부 사라져 버렸으니 위에 설치해 놓은 마력 구조물을 없애고, 비행선 주변의 땅을 마법으로 파냈다.
반태수는 그렇게 해서 찾은 문을 뜯어버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타노로스의 조직원은 비행선의 조종석에 앉아 끊어진 전선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걸 찾는 기능이 비행선에 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찾아내면 그걸 수리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설마 이 지하에 처박혀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뜯어버리고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반태수가 들어왔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반태수는 아주 손쉽게 다가가서 점혈을 걸었다.
영역화로 확인했을 때, 체내에 폭발물 같은 건 없었다. 나노머신도 없었고, 칩도 없었다.
하지만 아까 그놈도 다 없었는데 폭발했으니 이놈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뇌에서 몸으로 가는 신호 자체를 점혈로 막아 버렸다.
전신마비 상태가 되었는데도 폭발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까 그놈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폭발했으니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일단 이놈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여기까지 뚫어놓은 굴이 있으니 지상으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상으로 올라가 타노로스의 조직원을 대충 던져놓은 후, 철판 큐브 위로 뛰어내렸다.
제법 깊었다.
이 철판이 왜 이렇게 단단한지는 아까 마력을 투사하면서 대충 파악을 했다.
이놈은 구성하고 있는 모든 철판이 데미지를 고르게 나눠 받는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충격파가 터져도 그 데미지를 사방으로 분산해 큐브 전체가 데미지를 나눠 받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철판이 삼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세 겹의 철판 큐브가 데미지를 꼼꼼하게 나눠 받는 셈이다.
거기에 철판 자체도 단단하니 웬만한 충격으로는 흠집도 내지 못한다.
그 모든 출력을 넘어설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 오면 부서지겠지만.
아무튼 아까도 그랬지만, 원인을 알면 결과를 뽑아내는 건 간단하다.
반태수는 충격이 분산되지 않게 마력으로 철판 일부의 구조를 살짝 비틀었다.
큐브 전체를 바꿀 필요도 없다. 그저 사람 한 명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면 된다.
그렇게 타격 위치를 정한 다음, 분쇄 속성을 극대화하는 마법진을 수십 개 중첩했다.
그리고 발동.
꽈드드드득!
철판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목표지점이 뭉개지면서 잘게 부서졌다.
큐브 안으로 철판의 잔해가 후두둑 쏟아졌다.
"영감님, 괜찮습니까?”
반태수가 구멍에 대고 물었다.
"비켜!"
안에서 신경질이 가득한 데드릭 벨크리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반태수는 구멍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거기서 데드릭 벨크리스가 불쑥 솟아났다.
"젠장!”
데드릭 벨크리스는 자신이 여기에 갇혔던 것보다 그걸 부수고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분했다.
“대체 이걸 어떻게 뚫었지?”
데드릭 벨크리스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강하다는 건 잘 안다. 직접 몸으로 겪었으니까.
하지만 겪을수록 판단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자신과 싸울 때는 가진 힘의 절반도 쓰지 않은 거였다.
아니, 절반이 뭔가. 거기서 절반을 더 깎아도 모자랄 것 같았다.
"어떻게 됐나?”
데드릭 벨크리스는 잠시 뜸들이다가 그렇게 물었다.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고.
"상황 끝났습니다."
"하......."
데드릭 벨크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미친 듯이 싸우고 싶었는데, 내내 벽만 치다 끝났다.
"이제 정리해야죠. 영감님 혼자서는 안 됩니다. 인원이 너무 많아요. 사람 불러야 합니다.”
반태수의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위로 올라가자. 비행선부터 불러야겠다.”
두 사람은 지상으로 쭉 올라갔다.
잠시 후, 데드릭 벨크리스의 비행선이 날아왔다.
비행선은 도시를 몇 번이나 왕복하면서 필요한 사람과 물자를 날랐다.
데드릭 벨크리스가 새로 가져온 아공간 유물을 통해 거대한 기중기까지 가져왔다.
지하에 처박힌 큐브와 비행선을 꺼내야 하니까.
그렇게 뒷정리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반태수는 그걸 지켜보면서 이번 의뢰에 대한 대가로 뭘 얼마나 받아내야 할지를 생각했다.
'최대한 많이 뜯어내야지. 저 비행선은 꼭 확보하고 싶은데.......'
그러고 싶지만 저 늙은 너구리같은 데드릭 벨크리스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일단 말이나 꺼내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