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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136화 (136/351)

136화.  < 전투의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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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대협은 진짜 죽을 맛이었다.

처음은 괜찮았다. 심문도 생각했던 것보다 술술 진행되었고.

포로로 잡힌 타노로스의 조직원들은 무슨 짓을 당했는지 웬만한 질문에는 막힘없이 세세히 털어놓았다.

몇 가지 꺼림칙한 질문에는 머뭇거렸지만, 살짝 겁을 주는 것만으로도 화들짝 놀라 다 털어놓았다.

어떤 말에 가장 겁을 먹는지도 알아냈다.

‘마법사 반’이라는 말만 나오면 뭐든 프리패스였다.

엄대협은 미리 준비한 질문을 빠짐없이 전부 했고, 그에 관한 정보를 빡빡하게 뽑아냈다.

딱 나흘 동안 그렇게 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양의 정보를 얻었다.

물론 그 정보가 쓸 만하냐, 그렇지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아무튼 그렇게 충실한 나흘의 시간이 지나자, 그 뒤로는 편안한 생활이 기다렸다.

더 이상 심문할 것도 없고, 그저 저들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지라 차나 마시고 간식이나 먹으면서 용병들이랑 농담 따먹기나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문제가 생긴 건 딱 열흘 째부터였다.

누군가 포로들을 탈취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다행히 아예 긴장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닌지라 용병들이 그자를 쫓아냈다.

고작 한 명이었는데, 그놈을 쫓아내기 위해 용병 두 명이 부상을 입었다.

듀마이어 방패를 들고 있었는데도 다쳤다. 그 정도로 습격한 자의 실력이 대단했다는 뜻이다.

아니, 대단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단순한 총인 줄 알았는데, 거기에 한 방 맞으면 아무리 방패로 막아도 충격을 다 흡수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다.

그런 식으로 방패 다섯 개가 망가지고, 그 와중에 두 명이 부상을 입은 것이다.

첫 번째는 그렇게 비교적 무사히 지나갔다.

한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고작 한 놈이었다.

한데 그 한 놈을 막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멀리서 저격을 하는 건 그럭저럭 막을 만했다.

저격이 날아오는 방향만 확인하고 방패 뒤로 숨으면 되니까.

아니, 애초에 저격에 당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엄폐물을 준비했고, 그걸 적절히 이용해 항상 저격 포인트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한데 놈의 공격 방식은 저격만이 아니었다.

첫 날처럼 기습적으로 공격해 날뛰진 않았지만 거리를 둔 상태로 이쪽에 지속적으로 타격을 줬다.

주로 쓰는 건 특이한 폭탄이었다.

방향을 설정해 한 쪽 방향으로만 폭발력이 집중되는 폭탄이었는데, 거기 걸리면 듀마이어 방패고 뭐고 다 박살 난다.

폭발 방향이 한정되어 있어서 그 방향만 피하면 되는데, 어디로 터질지 예측이 불가능해서 그냥 막는 수밖에 없었다.

엄대협은 그 폭탄이 원거리에서 조작해 방향까지 설정이 가능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방향을 파악해 피하는 선택지를 아예 없애버렸다.

엄대협은 듀마이어 방패를 용병들에게 추가로 지급했다.

예비로 남겨두었던 듀마이어 방패를 전부 지급해 버린 것이다.

그걸 이어 붙여서 1차로 충격을 흡수하고 남은 충격을 두 번째 방패로 막아내는 방식을 택했다.

공격을 한 번 당할 때마다 방패 하나가 날아갔지만, 그래도 막아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저런 폭탄을 무한정 쏟아내지는 못할 테니까.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바꾸니 더 이상 폭탄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 차례나 방식을 바꿔서 공격을 했는데, 엄대협은 머리를 쥐어 짜내다시피 해서 대응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주변에 함부로 지원요청이나 보급을 요청하기도 만만치가 않았다.

처음에 한 번 시도했다가 저놈이 어떻게 알았는지 중간에서 잘라먹는 바람에 피해만 커졌다.

그래도 꾸역꾸역 막아낸 덕분에 약속한 시간을 거의 채웠다.

피해가 제법 누적되었기에 멀쩡한 용병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 버틸 수는 있었다.

지금 엄대협과 용병들은 포로를 가둬둔 창고에서 최대한 버티는 중이었다.

다른 창고들은 벌써 다 박살 나서 무너졌다.

"하, 저놈 진짜 장난 아니네."

"그러게. 위험한 행동은 첫 날 빼고는 없어. 계속 거리를 두고 이쪽 피만 말리고 있어.”

엄대협은 용병들을 이끄는 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게 대체 며칠 째야?”

"나도 모르겠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그나저나 이거 끝은 있는 거야?”

"이쪽에서도 공격을 하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니.”

“위치를 못 잡으니 어쩔 수 없어. 첫 날처럼 달려들어 오면 좋겠는데.”

그때는 너무 당황해서 당했다. 하지만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결코 어설프게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저놈도 아는 거지. 다시 오면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는 걸.”

"쉿!"

갑자기 손가락을 입에 갖다내는 용병대장의 행동에 엄대협은 입을 다물고 싸울 준비를 했다.

엄대협은 직접적으로 싸우지는 않고, 넓은 시야로 싸움을 보면서 대응책을 찾아낸다.

그게 아니었다면 못 버텼다. 물론 그 대가로 엄대협은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고 있었지만.

용병대장이 빠르게 창고 문을 열고 고개만 내밀어서 밖을 살폈다.

그리고 경악한 표정으로 두 겹으로 개조한 듀마이어 방패를 내밀었다.

거대한 포탄이 방패에 작렬했다.

꽈아아앙!

폭발하지는 않았다. 그저 무거운 쇳덩이만 날린 것이다.

하지만 충격파가 발생해 주변을 무섭게 뒤흔들었다.

콰우우우우우!

듀마이어 방패 하나가 아예 박살 났고, 두 번째 듀마이어 방패에도 금이 쩍 갔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포탄이었다.

이런 게 하나 더 날아온다면 아마 창고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시발, 저 안에 있는 포로들 구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두 번째 포탄이 날아왔다.

용병대장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용병의 방패를 빼앗아 다시 한 번 포탄을 막아냈다.

꽈아앙!

두 번째 포탄은 첫 번째와 달랐다. 폭발과 동시에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그 연기는 포탄이 날아오던 힘에 이끌려 창고 내부로 빠르게 들어갔다.

그 순간, 엄대협이 우다다 달려와 듀마이어 방패를 앞으로 확 밀었다.

방패에서 일어난 충격파가 안으로 들어오려던 연기를 다시 밖으로 밀어냈다.

결국 안으로 들어온 연기는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은 밖으로 빠져나갔다.

용병대장은 엄대협의 임기응변에 감탄했다.

충격을 흡수해 방출할 수 있는 듀마이어 방패의 특성을 이용해 연기를 밖으로 몰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건 창고 밖 어딘가에서 이쪽을 지켜보던 타노로스의 조직원도 확인했다.

그가 아끼고 아끼던 나노머신이 엄대협을 노리고 빠르게 날아갔다.

그가 보기에 엄대협만 잡으면 나머지는 별 거 아니었다.

엄대협이 저들의 머리고, 머리가 잘린 몸은 무서울 게 없다.

나노머신들이 창고 안으로 쑥 들어갔다.

엄대협은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나노머신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촤아악!

나노머신이 엄대협을 덮쳤다.

그제야 알아차린 엄대협이 기겁하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나노머신이 자신의 몸을 파고들지 못하고 겉만 맴돈다는 걸 알아차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대협은 마음속으로 반태수에게 수십 번이나 반복해서 감사하다고 외쳤다.

그러면서도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저놈을 막아내는 건 무리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프리든 가의 도련님한테 연락이라도 해볼 걸 그랬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굉음이 울렸다.

꽈아아아앙!

소리도 크고 충격파도 만만치 않았다. 창고가 뒤흔들릴 지경이었다.

그 순간 엄대협은 자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나노머신들을 볼 수 있었다.

나노머신들을 빠르게 창고 밖으로 날아가다가 갑자기 허공에 멈췄다.

그리고 공처럼 뭉치더니 어느새 그곳으로 다가간 사람이 들고 있던 유리병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엄대협은 그 사람을 확인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반!”

반태수가 일을 다 마치고 여기로 온 것이다.

"제법 잘 버텼네.”

반태수의 말에 엄대협이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그리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반태수는 피식 웃어주고는 창고 밖으로 나갔다.

나노머신을 확보했으니 이제 진짜 타노로스의 조직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차례다.

물론 멀쩡하지는 않으리라. 데드릭 벨크리스가 작정하고 나섰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거의 곤죽이 된 사내 한 명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의외인 건 저 지경이 되었는데도 자폭하지 않은 점이다.

자폭할 틈이 없었거나, 아니면 자폭하지 않을 이유가 있거나, 둘 중 하나일 듯하다.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를 향해 다가갔다.

“봤냐? 내가 이놈 어떻게 잡았는지? 자폭할 틈도 안 주고 기절시켰지.”

반태수는 대꾸하지 않고 영역화를 통해 쓰러진 타노로스의 조직원을 살펴봤다.

몸에 자폭할 만한 장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기계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분명히 자폭할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영감님.”

“왜? 이제 좀 멋져 보이나?”

“그놈 자폭할 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야. 이렇게 기절을 시켰는데.”

그 순간 타노로스의 조직원이 그대로 폭발했다.

꽈아아앙!

정말 큰 폭발이었다. 뼛조각과 살점이 총알처럼 사방으로 쏟아졌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폭발하는 순간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서 넓게 실드가 만들어지더니 쏟아지는 모든 뼛조각과 살점을 막아냈다.

후두두두둑!

반태수는 데드릭 벨크리스 뒤에 서는 것만으로 폭발의 여파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었다.

데드릭 벨크리스의 실드는 두 번이나 부서졌다. 부서지기 직전에 새로운 실드가 나타나 뒤쪽으로 피해를 넘기는 일은 없었다.

"지독한 놈들.”

데드릭 벨크리스는 어금니를 꽉 물고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한 놈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자폭으로 놓쳐버리자 머리가 휙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정신을 잃었는데도 자폭을 했다는 건, 자폭 시스템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겠네요.”

그 말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고개를 휙 돌려서 반태수를 바라봤다.

어찌나 눈빛이 형형한지 꼭 노려보는 것 같았다.

"알아볼 수 있는 건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

"그거야 해보지 않으면 모르죠. 이런 놈을 또 언제 만날지도 알 수 없고.”

데드릭 벨크리스가 사납게 웃었다.

"언제 만날지 알 수 없긴 왜 없어. 우리가 이제 뭘 하기로 했는데.”

"아……."

맞다. 이제부터 한바탕 싸우러 갈 예정이었다. 바로 이놈들 타노로스와.

"가서 제대로 싸우고 그놈들 싹 쓸어 담은 다음에, 알아보고 싶은 거 다 알아봐.”

데드릭 벨크리스가 내뱉는 자신감에 찬 말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저 영감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친개 같은 존재니까.

"뭐, 그건 그렇고 아까 말했던 그놈들은 저 창고에 있는 건가?”

하여튼 타노로스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대단한지 매번 느껴진다.

이 와중에 저놈들을 처죽이고 가겠다는 말 아닌가.

"맞습니다.”

반태수의 대답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움직였다.

그는 곧장 창고로 들어가 고개를 휙휙 돌리며 포로로 잡은 타노로스의 조직원들을 찾았다.

목표물을 발견한 데드릭 벨크리스의 눈에서 살기 어린 광채가 쏟아졌다.

"거기 있었구나.”

데드릭 벨크리스가 성큼성큼 포로에게 다가가자 용병들이 당황했다.

저 사람은 대체 누구기에 저렇게 당당히 포로들에게 다가간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도 데드릭 벨크리스를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방으로 쏟아내는 살기 섞인 위압감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뒤를 빠르게 따라 들어온 반태수가 용병들에게 말했다.

"의뢰 끝났습니다. 이제 전부 나가시면 됩니다.”

용병들은 반태수의 말에도 머뭇거렸다. 그들을 고용한 사람은 엄대협이다. 그러니 반태수의 말을 들어도 될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용병대장은 반태수가 엄대협과 얘기하는 걸 들었다. 그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용병들에게 지시했다.

"다들 즉시 밖으로 나간다. 서둘러!”

아무래도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면 나중에 분명히 귀찮고 위험한 일이 달라붙을 것 같았다.

용병대장의 어조에 담긴 감정을 느꼈는지 용병들이 빠르게 창고를 벗어났다.

그 와중에 데드릭 벨크리스는 벌써부터 일을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폐부를 입으로 토해내는 듯 처절한 비명이 창고를 뒤흔들었다.

용병들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

"그래서 뭐 좀 알아낸 거 있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데드릭 벨크리스가 씨익 웃었다.

"그런 게 있을 리 없잖나. 알면서 왜 물어?”

역시 심문을 빙자한 고문을 가하고 다 죽여 버린 모양이다.

“그놈들은 몽땅 사라져야 해. 세상을 위해서.”

반태수는 속으로 그놈들이나 영감님이나 크게 다른 거 같지 않다고 중얼거렸다.

아직 그런 말을 면전에 하기에는 덜 친해졌다.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테고.

"아무튼 정보 좀 모아 오셨습니까? 타노로스 놈들이 어디 모이는지 정도는 알아 오신 거죠?”

데드릭 벨크리스가 씨익 웃었다.

"알아왔지. 기대해도 좋아. 아주 규모가 크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반태수는 피가 끓어올랐다.

“어딥니까?”

"다필드. 여기서 내 비행선으로 닷새 정도 날아가면 도착하는 도시지. 그놈들은 그 도시 근처에 있어.”

"도시 근처라고요? 그럼 도시 밖에서 지내는 겁니까?”

"도시 밖에서 사는 놈들이랑 손을 잡은 거지.”

반태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드디어 도시 밖에서 산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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