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 유적 돌아보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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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동굴폭포에 있던 유적의 보상은 굉장했다.
일단 마법서가 가득한 책장을 얻었고, 진열장도 여러 개 있어서 유물도 다양하게 얻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용도를 알 수 없는 세 개의 유물이었다.
그게 뭐에 쓰는 유물인지는 모르지만, 보상의 방에서 그 유물들이 있던 위치나 품은 마력 등을 종합했을 때, 분명히 그랬다.
그리고 지금 들어온 유적은 보상이 아주 초라했다.
달랑 유물 두 개가 다였다.
중요한 건 그 두 개의 유물 역시 용도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로써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을 다섯 개 모았다.
반태수는 아공간에 보관하던 유물 세 개를 꺼내 이곳에 있는 두 개의 유물과 나란히 놓았다.
마력을 비롯해 모든 부분을 고려해 이렇게 저렇게 비교해봤지만, 유사성조차 찾지 못했다.
모양도 전부 제각각이고 대체 뭘 위해 만든 유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생각하던 바가 있기에 유물들을 몽땅 챙겼다.
아직 남은 유적이 수두룩하다. 그걸 전부 클리어 하고 보상을 챙기다 보면 뭔가 답이 보이리라.
‘이게 정말로 무언가의 부품들이라면, 다 모았을 때 뭐가 될지도 궁금하네.’
아마 결코 평범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반태수는 그렇게 이 유적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 나갔다.
보상의 방에서 밖으로 걸음을 내디담과 동시에 밝은 빛이 쏟아졌다.
빛을 뚫고 한 걸음 더 내디디니, 어느새 처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중이었고.
"생각보다 얼마 안 걸렸죠?”
반태수가 씨익 웃으며 말을 꺼내자, 두 사람이 머뭇머뭇했다.
아마 너무 빨리 나와서 반태수가 얼마 못 가고 튕겨났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그런 표정 할 거 없어요. 끝까지 갔으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끝까지 갔다고요?”
"정말입니까?”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오늘 하루 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걸 보여주려고 이런단 말인가.
이제 더 놀랄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여긴 방이 총 열여덟 개 있었습니다.”
끝에서 뭘 얻었는지는 보여주지 않았다.
"열여덟 개……."
두 사람은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죽은 유적을 돌아보기 위한 일정을 짜면서 유적에 대해 나름대로 간략하게 조사를 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방을 클리어 한 것은 12개였다.
한데 무려 18개나 되는 방을 클리어 했다니.
게다가 걸린 시간은 왜 이리도 짧단 말인가.
그러니 두 사람이 넋을 놓은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자, 다음 유적으로 가죠. 오늘 이 근처는 싹 돌아보고 싶네요.”
반태수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적 밖으로 나갔다.
이 유적에서 변한 것은 딱 하나였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유적에 있던 마력의 회오리가 사라졌을 뿐이니까.
***
반태수는 크랙톤에서 하루거리 안에 있는 모든 유적을 다 돌았다.
생각보다 수가 많았다. 무려 8개나 돌았으니까.
나중에 오스윈 프리든이 얘기해 줬는데, 생각보다 이런 형식의 죽은 유적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아무튼 하루거리의 유적은 다 살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한다.
비행선이 있으니 유적을 돌아보는 건 문제가 아닌데, 이것 때문에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를 계속 데리고 다니는 건 좀 문제가 있었다.
두 사람의 생활 자체를 박살 내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유적의 좌표만 받고 반태수 혼자서 돌아다닐 수도 없는 문제다.
오늘 돌아본 유적이야 그냥 방치 상태였지만, 가끔 그렇지 않은 유적도 있으니까.
그럴 때는 오스윈 프리든이나 페일라 린치필드의 힘이 필요하다.
‘뭐…… 일단 혼자 다녀보고, 혹시 두 사람이 필요할 일이 있는 유적은 따로 모아놨다가 한꺼번에 해결하는 식으로 갈까?’
당장은 그거 외에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보름 후에는 데드릭 벨크리스가 돌아올 텐데, 아마 그때는 바로 전투에 투입될지도 모른다.
전투를 할 생각을 하니 또 한 번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예전보다 전투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진 느낌이다.
반태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연구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안에 오늘 얻은 유물을 전부 펼쳐 놨다.
8개의 유적을 클리어 하면서 얻은 유물의 수는 모두 12개였다.
유물이 하나만 있는 경우도 있고, 많아봐야 두 개여서 모아놓으니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한데 유물 중에서 아주 특이한 놈을 하나 얻었다.
반태수는 그 유물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단순한 철판이었다. 크기는 가로세로 1미터쯤 되고, 두께는 10센티미터쯤이니 상당한 크기와 두께다.
재질은 진짜 철은 아닌 것 같고, 무언가의 합금으로 만든 듯했다. 아마 마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볍고 튼튼하다. 그리고 묘한 마력이 표면에 흐르고 있다.
이걸 보니 조립이 끝났을 때의 물건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겠는가. 외부에 들어가는 강판 아니겠나.
아마 유적을 클리어 하다보면 이런 강판을 수없이 얻게 될 것이다.
그걸 다 이어붙이면 겉모양이 나올 테고.
호기심이 끝없이 치솟았다. 대체 이걸 다 모으면 뭐가 나올까?
반태수는 다시 아공간에 유물을 모두 넣었다.
그리고 아공간을 비우기 위해 오늘도 그 안에 든 요리로 저택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식사를 책임져 주었다.
며칠 이렇게 했더니 눈에 띌 정도로 아공간의 여유 공간이 늘어났다.
물론 다 비우려면 아직 멀었지만.
***
연구실에서 나온 반태수는 커피를 한 잔 내린 다음 소파에 앉았다.
커피와 함께 잠깐 쉬면서 이제 뭘 할지 정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한 잔 마신 뒤로 한 잔도 못 마셨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따라 커피 맛이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앉아있는데, 뭔가 묘한 느낌이 뒤통수를 간질였다.
‘이게 뭐지?’
이게 무슨 느낌인지 생각해보니 누군가 몰래 지켜볼 때 느껴지던 감각이었다.
그 얘기는 지금 자신을 누군가가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반태수는 여전히 영역화를 펼치고 있다. 저택을 중심으로 반경 300미터 정도를 감시 중인데, 그 안에는 의심스러운 것들이 없었다.
그런데 이 더러운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반태수는 소파에 앉은 채 감각을 더 날카롭게 벼렸다.
그리고 창문을 쳐다봤다.
분명히 저쪽에서 느낌이 온다.
반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밖에는 아무도 없다.
창문 밖도 저택의 안쪽이다. 나무로 조경이 된 산책로의 일부였다.
그리고 담장 너머 저 먼 곳에 도심지의 빌딩들이 보였다.
'설마.'
반태수는 소음 차단 마법을 창문에 걸었다.
얇은 마력이 창문을 가리듯 깔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감각을 건드리던 시선이 사라졌다.
이 창문을 통해 뭔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 멀리 보이는 빌딩에서.
이런 짓을 할 놈들은 타노로스 밖에 없다.
반태수는 눈에 마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몇 가지 마법을 펼쳤다.
저쪽에서 할 수 있으면 이쪽에서도 가능하다.
펼친 마법은 증폭과 확대였다. 거기에 시력 강화까지 펼치니 빌딩을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크게 볼 수 있었다.
빌딩 옥상에 저격총처럼 생긴 걸 이쪽으로 겨누고 있는 놈이 보였다.
그 옆에 두 놈이 더 있었는데, 한 놈은 노트북을 펼치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 놈은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아마 두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모양이다.
저놈들이 만일 타노로스라면 나노머신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반태수는 그들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집을 나섰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
***
반태수의 저택을 향해 저격총처럼 생긴 도청장치를 겨누고 있던 사내가 투덜거렸다.
이 도청장치는 창문의 떨림을 감지해 소리를 뽑아내는 장치였다.
"이런다고 뭔가 의미 있는 정보를 건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뭐. 이번 임무는 기본 대가가 괜찮잖아. 딱히 정보 못 얻어도 상관없지 않아? 얻으면 대박이고.”
"지겨우니까 그러지.”
"그럼 대충 하든가.”
그 말에 저격총 사내가 피식 웃었다.
"뭐야, 이제 나 그만 보고 싶은 거야? 그런데 암살 계획이 너무 어설픈데?”
타노로스에서 지급한 장비들은 사용자가 어떤 식으로 썼는지 기록된다.
아마 대충 했다간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이다.
암살 운운 했던 건 약간 과장이 섞였지만, 아예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대충 일을 처리하다가 죽은 자도 있으니까.
"그런데 난 이 일을 하면서 진짜 윗대가리는 본 적이 한 번도 없네. 너희는 안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중간에서 장사하는 놈만 계속 보고 있지.”
"그건 다들 마찬가지야. 진짜 수뇌부를 보려면 최소 중계자는 돼야지.”
"그 중계자들이 과연 진짜 수뇌부랑 만난 적이 있을까?”
"그야 모르지. 그래도 가능성은 높지 않나?”
세 사람은 그렇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면서도 하던 일에는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 말이 없네. 대체 안에서 뭘 하는 건지……."
"도청 말고 카메라를 받아왔어야 하는 건데.”
"받으면, 설치할 자신은 있고?”
반태수의 저택에 설치했던 카메라와 도청장치는 싹 털렸다.
그래서 다시 투입하려는데, 그때부터는 저택에 칩입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졌다.
결국 이런 식으로 다른 방식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팀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안에 들어가서 한 번 보고 싶네.”
“큭큭큭. 그러게. 그런 수가 있었네.”
"다른 팀은 어쩌고 있는지 알아?”
"우리처럼 도청하는 애들도 있고, 직접 미행하겠다고 준비하는 애들도 있고, 뭐 다양하지.”
물어본 사람은 도청장치를 든 놈이었고, 대답한 사람은 두 사람을 지키려고 사방을 주시하던 자였다.
한데 갑자기 적막이 맴돌았다. 아무도 말을 안 하는 것이다.
너무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도청장치를 든 사내가 투덜거렸다.
"이거 집에 있는 거 맞아? 아까 들어가는 거 확실히 봤지?”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어?”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식은땀이 났다. 얼른 몸을 굴리며 뒤를 확인하려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발.”
아무래도 큰일이 날 모양이다.
***
반태수는 그들을 굳이 다른 데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당장 필요한 정보는 다른 조직원들의 위치였다. 그러니 여기서 정보를 얻고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이 옥상에서 잡은 세 사람은 능력자였다.
그래서 점혈을 썼다.
점혈은 그저 단순히 몸을 마비시키는 효능만 가진 건 아니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제법 다양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상처를 지혈할 수도 있고, 심지어 마력을 이용해 회복을 도울 수도 있다.
그리고 눈과 귀를 막을 수도 있고, 감각을 닫아버릴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점혈을 이용해 고통을 주는 것도 가능했다.
반태수는 일단 소리부터 차단했다. 여기서 나는 소리가 외부로 나가면 곤란하다.
그리고 세 사람에게 다짜고짜 점혈을 써서 고통부터 심어주었다.
"으아아악!”
세 사람이 일제히 비명을 터트렸다. 이건 그냥 참을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이 아니었다.
반태수는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점혈을 이용해서 주는 고통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잘 됐다. 고통이 심하면 더 빨리 입을 열 테니까.
‘하긴, 심할 수밖에 없긴 하네. 신경을 건드리는 거니까.’
기절하고 싶어도 기절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반태수는 3분쯤 방치했다가 점혈을 풀었다.
세 사람이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반태수를 바라봤다.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타노로스?”
세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타노로스 맞습니다!”
반항하거나 뭔가 수작을 부릴 생각 같은 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만일 다시 그 고통을 겪으라면 차라리 자살을 택하고 말리라.
하지만 지금은 몸도 마비되어 있어서 자살을 할 수도 없었다.
턱의 악력도 확 줄어들어서 말만 할 수 있지 혀를 깨물 힘도 없었다.
"동료들 위치.”
반태수의 말에 다들 멈칫했다.
그 순간 또 한 차례 점혈이 그들의 몸을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악!”
뭐라고 빌지도 못했다. 그저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확히 30초 후 점혈이 사라졌다.
세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간절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즉시 동료들의 위치를 아는 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저기 있는 30층 빌딩 옥상에 세 명 있습니다!”
"저 저택에서 이어진 도로에 세 명 있습니다!”
세 사람을 열심히 아는 걸 떠들었다. 말이 멈추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정보를 내뱉었다.
다시는 그 끔찍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반태수는 그들의 말을 다 들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보고 오지. 거짓말이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세 사람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그놈들이 혹시 자리를 바꿨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그건 보면 알겠지.”
반태수의 몸이 마치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덜덜 떨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동료가 근처에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발, 잘못 걸렸어.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임무 거르는 건데!’
무서워서 겉으로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그렇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