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33화 (133/351)

133화.  < 유적 돌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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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반태수를 바라봤다.

솔직히 살라자 샤마쉬 얘기를 할 때만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자신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지만 딱히 와 닿지 않았다고 할까.

하지만 오늘 반태수가 말한 데드릭 벨크리스는 두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데드릭 벨크리스는 가신 가문에서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

제멋대로인데다가 잔인하고 난폭하고 목표가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사람이다.

자기는 그저 목표를 위해 벌이는 일인데, 그게 주변에 굉장한 민폐를 끼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데 그런 데드릭 벨크리스와 뭘 어떻게 했다고?

"진짜 그분과 싸웠습니까?”

오스윈 프리든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죽자고 덤비는데 어떻게 합니까. 싸워야지.”

"그런데 반 마법사님이 이겼다고요? 그분을요?”

이번엔 페일라 린치필드의 물음이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좀 하시던데, 저한테는 안 되죠.”

두 사람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대단한 마법사라는 건 안다. 그건 그동안의 성과가 말해주니까.

오스윈 프리든은 반태수와 함께 유적도 탐사했다.

페일라 린치필드는 거대 마수를 함께 사냥했고.

반태수는 깜짝 놀랄 만한 역량을 보여줬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게 데드릭 벨크리스와 싸워서 이길 정도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에게 있어서 데드릭 벨크리스는 그런 존재였다. 까마득한 벽 같은 존재. 아니,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는 사람 같은 존재.

반태수가 그런 존재를 강제로 같은 세상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그리고 전에 특수비행선 타보고 싶다고 했죠?”

반태수의 물음에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눈을 크게 떴다.

두 사람은 설마설마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반태수는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며 씨익 웃었다.

"지금 정비 중인데, 그거 끝나면 같이 한 번 타보죠. 이제 얼마 안 남았다더군요. 오늘 중으로도 가능할 거 같습니다.”

"정말요? 비행선을 구하셨어요?”

페일라 린치필드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반태수에게 상체를 확 기울이며 물었다.

진짜 기대되는 모양이다.

"정확히는 살라자 샤마쉬님이 쓰던 비행선이죠. 저한테 주기로 했어요.”

두 사람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살라자 샤마쉬의 비행선은 정말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페일라 린치필드가 그 비행선은 꼭 한 번 타봤으면 좋겠다고 말했겠는가.

"정말…… 그 비행선을 받기로 하신 건가요? 정말로요?”

"네. 굳이 따지자면 거래죠. 대가로 기술 하나를 전수해 줬고요.”

반태수는 별로 숨기는 것 없이 두 사람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계속 교류를 나누다보니, 슬슬 이 두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다.

아마 그건 저 두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두 사람만큼은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만일 이 자리에 안드렐라 윌렉스가 함께 있었다면 점혈 얘기까지는 안 했을 것이다.

어쩌면 데드릭 벨크리스의 얘기도 안 했을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이건 참 신기한 일이다.

이면세계에서 반태수와 가장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사람은 엄대협이다.

가장 많은 일을 함께 한 것도 엄대협이고.

한데 아직도 엄대협에 대한 믿음은 절반 정도다.

그가 하는 말의 절반만 진짜라고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여긴다.

한데 오스윈 프리든이나 페일라 린치필드가 얘기를 하면 일단 믿고 본다.

그건 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반태수의 말을 거의 무조건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반태수는 새삼스럽게 그 부분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과는 거리가 좀 있지 않은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확실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조심해야 한다.

‘뭐, 저렇게까지 날 위해 뭐든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해가 될 일을 할 리 없으니 어느 정도는 믿어도 괜찮겠지만.’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중에 그 영감님이랑 일 하나 같이 할 거 같은데, 그 전에 우리 일정을 좀 빠르게 쳐냈으면 좋겠습니다.”

일정 얘기를 하자 두 사람의 눈 밑에 갑자기 다크서클이 내려앉았다.

"한데 이 유적을 정말 전부 다 확인하실 겁니까?”

오스윈 프리든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일단 몇 개만 확인하고, 뒷일은 그 다음에 다시 생각하죠. 제 예상이 맞는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굳이 다 확인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렇죠?”

두 사람의 안색이 조금 더 밝아졌다.

"그럼 오늘 당장 가까운 유적부터 확인하시죠.”

오스윈 프리든의 말에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일정을 좀 조정해도 되지 않을까요? 이제부터 우리 이동 수단은 비행선이 될 텐데.”

"아……!”

두 사람의 표정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비행선을 타는 건 좋은데, 그 때문에 일정이 더욱 빡빡해질 테니까.

"그럼 몇 시쯤 출발할까요?”

페일라 린치필드의 물음에 반태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저기 오네요.”

반태수가 보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 두 사람은 저 멀리서 날아오는 비행선을 볼 수 있었다.

비행선은 근처의 공터에 가볍게 내려섰다.

보통의 비행선과는 차원이 다른 착륙이었다. 아마 저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면 비행선이 착륙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바로 간다고요?”

"아무 준비도 없이?”

두 사람이 당황하자, 반태수는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죽은 유적인데, 무슨 준비가 필요합니까?”

“아니, 그래도……."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유적에 간 적이 없어서 몸에 밴 습관적인 불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유적, 마력 흐름으로 문제를 푸는 방식의 유적이라면서요. 거기에 무슨 준비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래도 마력 흐름을 파악하는 유물이라도 몇 개 가져가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 유물도 있습니까?”

반태수가 흥미로운 눈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유물을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 유적은 정확히 자신의 실력으로만 통과할 수 있다. 다른 유물의 힘을 빌린다고 해서 유적 통과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마력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걸 역산해서 술식을 계산할 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파악을 해봐야 자신의 역량 밖의 문제라면 어차피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마력 컨트롤을 도와주는 유물도 있습니다.”

이건 좀 혹했다. 하지만 반태수는 이번에도 유물을 쓰는 걸 포기했다.

유적 제작자의 의도는 마법사의 실력 향상인데, 굳이 유물까지 써서 그 의도를 망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뭐, 그런 거 안 써도 다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어떤 유적이 나오든 동굴폭포의 유적보다는 못할 것 같았다.

"아무튼 일단 유적부터 보죠.”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비행선으로 다가갔다.

비행선 밖에는 익숙한 얼굴의 승무원들이 기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반태수를 보자마자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도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이제 이 비행선을 이용해 이면세계 곳곳을 날아다닐 것이다. 그러면서 새 비행선도 따로 제작할 계획이다.

자기 혼자만 이동할 때를 대비한 비행선을.

아마 이 비행선보다 성능이 훨씬 좋으리라. 편의성은 좀 떨어지겠지만.

반태수는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부터 비행선에 태웠다.

두 사람은 비행선에 들어가자마자 신기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그 유명한 살라자 샤마쉬의 비행선에 탔으니 감회가 남다르리라.

반태수가 비행선에 타고 승무원들도 전부 탑승하자, 비행선이 하늘로 떠올랐다.

"어디로 갈까요?”

승무원의 질문에 반태수가 오스윈 프리든을 쳐다봤다.

오스윈 프리든이 유적의 좌표를 승무원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후, 비행선은 첫 번째 유적을 향해 날아갔다. 여기서 두 시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는 장소였다.

비행선에서 내린 반태수는 유적이 어딘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앞에 거대한 돌산이 있었는데, 돌산 아래쪽에 제법 큰 입구가 보였다.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입구였는데, 입구 가장자리를 빙 둘러 고대문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나아간 만큼 얻으리라.’

동굴폭포의 유적과는 좀 달랐다. 거기에는 즐긴 만큼 얻을 거라고 쓰여 있었다.

반태수를 따라 내린 두 사람이 양 옆에 나란히 서서 유적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안에 들어가면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평범한 동굴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스윈 프리든의 말을 받아 페일라 린치필드가 설명을 이었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수십 년 전만 해도 이런 유적까지 전부 관리를 철저히 했는데, 이젠 대부분 방치 중이에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고 판명이 났거든요.”

죽은 유적이라고 부를 만했다. 반태수가 보기에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진짜 평범한 동굴이었다. 입구 둘레에 양각된 고대문자만 아니라면.

"여긴 네 번째 방까지 클리어하고 다섯 번째 방에서 실패했습니다. 보상으로 받은 유물은 자동으로 실드를 펼치는 팔찌였고요.”

이 유적은 프리든 가에서 관리하던 유적이었다. 들여다본 지 3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런 유적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반태수는 일단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동공이 나타났다. 원래는 길게 안쪽으로 동굴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냥 막힌 공간 하나 있는 게 전부였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벽에 뭔가 새겨진 글귀나 그림도 없었고.

방치하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아마 저들에게는 저기 동공 중앙에 홀로그램처럼 떠 있는 고대문자가 안 보일 테니까.

그건 암호였다.

암호가 있다는 건 암호를 통해 뭔가 잠긴 걸 풀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잠긴 것은 이 유적 안에 있을 테고.

반태수는 찬찬히 둘러봤다. 그리고 마력의 흐름도 차분히 살폈다.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그걸 찾아낸 사람이 이미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으리라.

‘찾았다.’

생각보다 금방 찾았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다른 곳과 마력 흐름이 확연히 달랐으니까.

반태수는 입구에서 정면인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 벽에 마력이 모여 회오리치는 곳이 있었다. 워낙 미약하고 마력 회오리가 가끔 사라지기도 하고 근처 다른 곳에서 나타나기도 해서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척 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반태수는 뒤로 돌아섰다.

"오늘 여기서 본 건 비밀로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그 말에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뭘 할지 모르지만 비밀을 지키는 건 어려울 게 없었다.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얼마든지 비밀을 지켜줄 텐데, 그들이 생각하기에 별로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반태수는 두 사람의 태도를 본 다음 다시 돌아서서 마력 회오리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리고 자신의 마력으로 그걸 손가락에 흡착시켰다.

손끝에서 마력 회오리가 돌아갔다.

반태수는 그걸로 벽에 글을 썼다.

홀로그램으로 떠 있는 이 유적의 암호를.

다섯 글자의 암호를 완벽하게 쓴 순간, 벽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졌던 통로가 다시 나타났다.

뒤에서 구경하던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는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렸다.

죽은 유적이 다시 살아나다니!

반태수는 놀라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금방 다녀오죠.”

두 사람이 말릴 틈도 없이 반태수가 진짜 유적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열렸던 통로가 다시 막혔다.

이제 반태수가 중간에 막혀서 유적 클리어에 실패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쩌지?”

"어쩌긴. 그냥 모른척해야지.”

오스윈 프리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문제될 일이 없긴 하다.

어차피 이 유적은 반태수가 한 번 쓰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는 셈이다.

"그럼…… 진짜 일정대로 그 유적들을 전부 돌아야 한다는 거네.”

두 사람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하기로 했으면 해야지.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서 좀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죽은 유적을 다시 살려서 들어가는 걸 코앞에서 지켜봤다.

‘대체 반 마법사님은 무슨 보상을 받아서 나오실까?’

두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반태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

반태수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유적을 돌파해 나갔다.

각 방에서 마력의 흐름을 잡아내고 그걸 역산해 술식을 만들어내면 방이 클리어 된다.

총 18개의 방이 있었는데, 각 방을 통과하는데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어떤 방은 1분 만에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난이도는 동굴유적에 비해 확연히 낮았다.

그래서 기대도 별로 크지 않았다.

이내 마지막 방을 클리어 하고 보상의 방으로 들어갔다.

보상의 방에는 동굴유적과 달리 하나의 진열장이 있었고, 그 안에 두 개의 유물이 들어 있었다.

반태수는 유물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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