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 셰딤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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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르르르.
건물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무너지면 안 되기에 반태수는 마법을 정말로 세심하게 썼다.
반태수가 준비한 마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건물을 흔들어 무너뜨리는 마법. 일종의 지진 마법과 비슷했다.
두 번째는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마법이었다.
건물을 그냥 무너뜨려 버리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는다.
그래서 무너지기 전까지 지탱하는 마법을 추가한 것이다.
지금은 건물의 골조에 마력이 가득 들어차서, 건물이 흔들리긴 하고, 벽에 금이 가고 시멘트 덩어리가 뚝뚝 떨어질 수는 있어도 건물이 무너질 일은 없었다.
하지만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거란 사실은 오직 마법을 쓴 당사자인 반태수만 알고 있다.
건물에 있는 사람들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줄 알 것이다.
그 결과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셰딤이 쓰는 여섯 채의 건물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전부 셰딤의 조직원들이었다.
일반인은 연구 조직원, 능력자는 전투 조직원.
반태수는 뭐 하고 있느냐는 듯한 눈으로 윌톤을 쳐다봤다.
윌톤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쪽에서 잘 보이도록 다급히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가 데려온 프리든 가의 능력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건물에서 나오는 자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윌톤이 데려온 능력자의 수는 백 명이 넘었다. 그래서 아무도 도망칠 수 없었다.
70명 정도가 셰딤이 쓰던 건물을 중심에 두고 넓게 포위망을 구축했고, 30명 정도가 직접적으로 전투를 벌이며 셰딤의 조직원들을 제압했다.
싸우지 않고 도망치려는 자들이 제법 많았지만, 프리든 가의 포위망은 결코 어설프지 않았다.
반태수는 그걸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오스윈 프리든에게 맡기는 게 정답이었다.
어느새 그 많은 셰딤의 조직원들이 전부 잡혔다.
그리고 그 순간, 여섯 채의 건물들이 일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꽈르르르릉!
골조를 지탱하던 마력이 일시에 사라지니 그대로 폭삭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그 순간, 다들 깜짝 놀라 무너지는 건물을 바라봤다.
그건 셰딤의 조직원들도, 프리든 가의 능력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섯 채나 되는 건물이 무너지면서 일어난 먼지가 마치 짙은 안개처럼 주위에 쫙 퍼졌다.
반태수는 즉시 마법으로 대응했다.
화아아악!
갑자기 상승기류가 생겨나더니 먼지들이 회오리치며 위로 쭉 빨려 올라갔다.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난 시야 때문에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일어난 모든 먼지를 싹 빨아들인 상승 기류는 계속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방향을 살짝 틀어 도시 밖으로 향했다.
아마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먼지의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건물이 무너지고 먼지가 회오리치며 사라지는 특이한 광경 때문에 상황 자체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금방이었다.
프리든 가의 능력자들은 사로잡은 셰딤의 조직원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부하들을 지휘하던 윌톤이 다시 반태수에게 다가왔다.
"다 잡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윌톤의 눈빛 깊은 곳에 있는 못마땅함은 여전했지만, 태도는 아까보다 좀 더 공손해졌다.
아까도 공손했지만 뭔가 가식이 넘쳤다면, 지금은 가식이 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방금 반태수가 마법으로 벌인 일을 보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가신 가문에서 오래 활동했다지만 반태수 같은 마법사는 보기 힘들었으리라.
어떤 마법사가 한꺼번에 건물 여섯 채를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미리 뭔가 준비를 했다고 해도 놀랄 지경인데, 윌톤이 보기에 반태수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즉, 순수한 마법 실력으로 방금 그 일들을 해낸 것이다.
"데려가세요. 심문이든 뭐든 알아서 하시고.”
윌톤이 눈살을 찌푸렸다.
"전 이들이 셰딤이라는 것밖에 모릅니다. 그리고 셰딤은 얼마 전, 크랙톤 변두리에서 마수 사육장을 운영하다가 무너졌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들이 그 셰딤의 잔당이라는 말입니까?”
"마수 사육장을 운영하던 놈들이 셰딤의 지부 중 하나겠죠. 이들은 그 바로 위에 있는 놈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윌톤은 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프리든 가까지 나설 이유가 있었을까? 그저 시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잡아들이면 충분한 것 아니었을까?
그의 표정을 대충 읽은 반태수가 피식 웃었다.
"데려가서 잘 심문해 보세요. 뭘 건질 수 있는지, 그쪽 능력 한 번 보죠.”
이렇게 떠먹여 주는데도 못 먹으면 무능한 거다.
반태수는 얼른 돌아가 보라는 듯 손을 휙휙 내저었다. 굳이 더 상대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오스윈 프리든이 자기 오른팔쯤 된다고 했으니 아마 무능하진 않겠지.
"얼른 가보세요. 얘들 조직 크니까 너무 방심하지는 마시고.”
윌톤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부하들에게 얼른 마무리 하라고 손짓했다.
이제 이들을 안가로 옮겨서 심문을 해봐야겠다.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태수는 윌톤이 프리든 가의 능력자들과 멀어지는 광경을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지켜봤다.
잠시 후, 그곳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다들 떠나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만 사방에 알려 있었다.
이제 반태수가 움직일 차례가 왔다.
반태수가 굳이 지금까지 기다린 이유는 딱 하나였다.
건물과 함께 무너진 서버를 가져오기 위함이다. 그 서버에는 셰딤의 연구와 관련된 데이터가 기록되어 있었다.
반태수는 서버가 있던 건물로 향했다.
폭삭 주저앉은 건물의 잔해 속에 잘 보존된 서버가 있을 것이다.
서버는 건물의 지하에 있었으니 일단 건물의 잔해를 치워야 한다.
단순히 땅을 파내는 건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서버가 상하면 안 되니, 신경을 좀 써야 한다.
이럴 때 유용한 것이 영역화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지하 어디쯤에 서버가 있는지, 상태는 어떤지, 또 주변 상황은 어떤지에 대해 전부 파악했다.
그리고 자신이 마법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가 없는지 영역화를 사방으로 쫙 펼쳐서 확인했다.
위험한 곳이라서 그런지 근처에 사람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아마 셰딤이 쓰던 여섯 채의 건물도 그냥 무단으로 쓴 것이 분명했다.
여기 건물들에 주인이나 제대로 있을지 모르겠다.
반태수가 보기에 여긴 다른 변두리에 비해 훨씬 위험한 지역이었다.
저렇게 마수가 침입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반태수는 담장을 훌쩍 넘어 달려오고 있는 늑대 모양의 마수를 보며 손을 휙 내저었다.
퍽!
마력을 뒤집어 쓴 늑대가 다시 담장 밖으로 날아갔다.
제법 멀리까지 날아간 다음에야 바닥에 떨어졌고, 당연히 즉사했다.
아마 저 사체는 다른 마수가 와서 씹어 먹으리라.
저 멀리서 어슬렁거리던 늑대 마수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조짐이 보였다. 아마 사체를 먹으려는 모양이다.
반태수는 일단 그쪽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서버부터 확보하기로 했다.
어차피 영역화를 펼쳐둔 이상, 마수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반태수는 마력의 실을 뽑아 마법진을 그렸다. 일단 괜히 2차 붕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아래쪽을 단단히 받쳐줄 필요가 있었다.
강화 마법이 펼쳐졌다.
서버가 있는 곳에 마력이 스며들어가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 땅을 움푹 파냈다.
꽈드드득!
건물 잔해가 있던 곳이 땅 아래로 움푹 파였다. 그곳에 있던 잔해와 흙은 허공으로 떠올라 도시 밖으로 날아갔다.
반태수가 마력으로 내던진 것이다.
아마 마법사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턱이 빠져라 놀랐으리라.
마력에 강력한 물리력을 부여한 상태로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는 건 정말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반태수는 섬세하게 서버 바로 위까지만 파냈다. 그런 세밀한 조절은 더더욱 어렵다.
그렇게 한 차례 땅을 깊숙하게 파낸 반태수는, 그래서 생겨난 구덩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력을 움직여 바닥을 살살 긁어내니 기울어진 채 땅에 박혀 있는 서버가 보였다.
여섯 채의 건물에서만 쓰는 서버라서 그런지 사실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법 데이터의 양이 많기 때문에 아예 작은 규모도 아니었고.
높이 2미터 정도의 장식장 모양의 박스 안에 장비가 층층이 쌓여 있었는데, 그런 박스가 여섯 개 있었다.
반태수는 조심스럽게 마력을 움직여 서버가 든 박스를 하나씩 꺼냈다.
밖으로 나온 서버는 바로 아공간에 넣었다.
아공간은 여기 오기 전에 넉넉하게 공간을 비워 두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아공간에 있던 요리를 충분히 꺼내서 대접한 것이다.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섯 끼를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양의 요리를 꺼내서 차린 다음, 모두를 불렀는데, 다들 그 많은 양에 기겁을 했다.
저택을 관리하는 사람들과 요리사도 있지만, 저택을 경호하는 사람이 그들보다 훨씬 많았다.
그래서 인원이 제법 많았기에 아공간을 상당히 비울 수 있었다.
물론 그래봐야 이렇게 서버들을 넣으니 다시 용량이 간당간당해졌지만.
반태수는 여섯 개의 서버 박스를 아공간에 넣은 후, 다시 그곳을 무너뜨리고 근처에 있던 건물 잔해를 가져와 덮었다.
그렇게 흔적을 지운 뒤에야 그곳을 떠났다.
이제 정리를 할 차례다.
***
윌톤은 셰딤의 조직원들을 안가에 몰아넣은 다음, 오스윈 프리든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반태수가 저들을 심문해 보라고 했지만, 솔직히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스윈 프리든에게 판단을 넘긴 것이다.
그가 하라고 하면 진행할 생각이다.
연구원들과 능력자들을 따로 구분해서 감금했는데, 능력자들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구속을 제법 단단하게 했다.
‘그나저나 뭘 심문하라는 거지? 설마 본거지를 파악하라거나, 뭐 그런 건 아닐 테고…….'
저런 말단 조직원들을 심문해봐야 얻어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껏해야 크랙톤 내에서 활동할지도 모를 조직원 몇 명 정도의 정보, 혹은 여기서 무슨 일을 계획했는지 정도가 다였다.
무슨 일을 계획했는지는 알아내면 좋겠지만, 솔직히 윌톤은 그것도 별 거 없으리라 짐작했다.
한데 대체 왜 뭔가 대단한 거라도 얻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태수의 능력은 인정할 만했다. 건물 여섯 채를 동시에 무너뜨리다니. 그리고 그 회오리는 또 어떻고.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에이! 진짜.”
윌톤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휙 돌려 셰딤의 조직원들을 가둬놓은 곳으로 향했다.
***
심문의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윌톤은 한숨을 쭉 내쉬었다. 오스윈 프리든이 왜 그렇게 반태수에게 휘둘리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셰딤이라는 놈들은 보통 큰 조직이 아니었다.
윌톤이 보기에 정말로 심문 결과가 맞는다면 타노로스에 버금갈 정도의 범죄 조직이었다.
심지어 이놈들은 연구까지 한다.
이미 몇 가지나 되는 신물질을 개발했다고 한다. 그것도 마력과 관계된 신물질을.
윌톤은 연구원들로부터 좀 더 깊이 있는 정보를 뽑아내기로 했다.
저들은 이미 신물질 개발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를 했던 자들이다.
그러니 다시 그걸 연구해서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게다가 그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 하나를 얻었다.
그들이 감시하고 있던 목표 중 하나가 반태수라는 점이었다.
셰딤에서는 예전 이곳에서 마수 사육장을 운영했는데, 그에 관한 정보가 마수 사육장이 무너지면서 함께 사라졌다고 했다.
그들이 그 정보를 가졌다고 의심하는 건 벨리온 길드와 시정부, 그리고 반태수였다.
윌톤은 이 소식을 오스윈 프리든에게 보고하려다가 멈칫했다.
만일 셰딤의 정보를 반태수가 갖고 있다면, 그걸 이용해 오스윈 프리든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흔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반태수에 대한 조사를 먼저 해야 한다. 오스윈 프리든이 반태수를 조사할 리 없으니까.
윌톤은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굴렸다.
자신이 부릴 수 있는 건 지금 데리고 있는 백 명 정도 되는 능력자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저들을 이용해 조사를 할 수는 없다. 윌톤의 능력자들은 싸우는 사람들이지 정보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자들이니까.
그나마 심문은 할 수 있었지만, 누군가의 뒤를 캐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윌톤은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누가 없을까?’
프리든 가의 정보조직은 윌톤이 쓸 수 없다. 그건 아무에게나 허락된 힘이 아니다. 프리든 가에서도 몇 안 되는 존재만이 부릴 수 있는 조직이었다.
윌톤의 고민이 깊어졌다.
***
반태수는 셰딤과의 일을 마무리하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사실 오스윈 프리든에게 연락해서 잠깐 만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오스윈 프리든도 셰딤으로부터 정보를 뽑아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건드리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오스윈 프리든이 셰딤의 조직원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뽑아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낼 기반이 다져진 다음에 연락을 하는 게 나으리라.
그렇게 제법 기분 좋은 상태로 느긋하게 걷고 있는데, 영역화 안으로 누군가 성큼 들어왔다.
반태수는 깜짝 놀랐다.
그가 가진 마력의 양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능력자였다.
그뿐 아니라 그가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도 굉장했다.
‘대체 유물을 몇 개나 갖고 있는 거야?’
심지어 입고 있는 옷도 유물이다.
저 정도로 많은 유물을 가진 사람은 지금까지 살라자 샤마쉬가 유일했다.
‘설마 5대 가문 사람인가?’
반태수는 살짝 긴장한 채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가 똑바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에 목표가 자신이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내 그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한 인상을 가진 중년인이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래서 몸의 근육이 잘 보였다.
근육도 끝내줬다. 그냥 무거운 걸 들어서 만든 근육이 아니었다.
‘무시무시하네.’
마력도 무서운데 근육도 무섭다. 그리고 유물도 무섭다.
"반?"
중년인의 물음에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누구십니까?”
중년인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데드릭 벨크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