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 셰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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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건물 자체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일 승합차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면 이 위화감의 정체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가려진 곳이 있어.’
영역화를 통해서 보는 건 분명히 건물 전체다. 한데 가려진 방이 있었다. 마치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게 아닌 방이었다.
방에 아까 승합차에서 봤던 그 재료를 사방 벽과 천장, 바닥을 빈틈없이 칠해놓은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건물들도 전부 확인했다.
그랬더니 그런 식으로 감춘 방이 건물마다 최소 하나, 최대 다섯 개까지 존재했다.
예상했던 대로 이 근방의 건물들을 전부 셰딤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건물에 있는 능력자들은 셰딤의 조직원들이고.
예전 처음 이면세계에 왔을 때 싸웠던 셰딤의 조직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들이었다.
만일 그때 셰딤의 조직원들이 저 정도였다면, 미끼들만으로는 절대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었어도 어차피 미끼들만으로는 불가능했지.’
그때는 반태수가 있었기에 미끼들이 전부 생존했다. 그러니 당시 셰딤의 조직원들이 지금 저 건물에 있는 능력자들이었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어차피 싸움은 반태수가 다 했을 테니까.
그때 마수까지 잡지 않았던가.
‘가만, 그러고 보니 셰딤에서 마수 사육장까지 운영을 했었지.’
당시 USB에 있던 자료들을 떠올려 보면, 셰딤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 주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을 차단하는 특수한 물질을 개발한 것만 봐도 그렇다. 게다가 그냥 차단하는 것도 아니고 조건을 부여할 수 있었다.
안 그랬다면 승합차에 코팅한 것 때문에 승합차 내부를 반태수가 확인할 수 없었을 테니까.
승합차에 코팅한 물질은 정확히 코팅과 코팅 사이에 있는 마법진만 가렸다.
그리고 저 건물의 방에 칠한 물질은 모든 마력을 차단해 버렸고.
그러면서도 웬만한 감각으로는 차단했다는 사실 자체를 알 수 없다.
‘보통 물질이 아니야.’
이것 역시 유적에서 얻은 지식으로 만든 걸까?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건물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봤다.
처음엔 좀 쉽게 봤는데, 예상치 못한 걸 발견해서 조심스러워졌다.
다시 살펴봤지만 특이한 물질로 빈틈없이 칠해놓은 방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반태수는 그제야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건물답게 내부도 굉장히 낡았다. 곳곳에 칠이 벗겨진 부분이 보였고, 몇몇 부분은 부서지고 금이 가 있었다.
‘이거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낡은 건물이었다.
반태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보아하니 건물 전체를 뒤질 필요는 없을 듯했다. 안을 들여다블 수 없는 방만 확인하기로 했다.
반태수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이들이 왜 자신을 감시했는지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셰딤은 반태수가 알기로 이 도시에서만 활동하는 조직이 아니다.
예전 이들의 보고서를 통해 짐작한 바로는 조직 규모가 상당했다.
그래서 굳이 이 도시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는 조직이었다.
한데 다시 들어와 이렇게 기반을 만들었다.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벨리온 길드를 칠지도 모르겠군.’
예전 셰딤이 운영하던 마수 사육장은 시정부의 의뢰를 받은 벨리온 길드에 의해서 처리되었다.
그러니 셰딤 입장에서 벨리온 길드에 복수를 하는 건 제법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불어 시정부까지 압박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고.
반태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이 건물에는 가려진 방이 세 개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있는 2층에 도착했다.
건물은 낡고 어두운데 돌아다니는 사람은 제법 많았다.
비상계단에서 2층 복도로 들어서자마자 벌써 세 명이나 보였다.
크지도 않은 건물인데 세 명이나 복도에서 뭘 하고 있는지 봤더니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다.
밖에 나가지도 않고 당당하게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다니, 도심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인 모양이었다.
반태수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저들이 보고 있으면 좀 껄끄러우니까.
담배를 거의 다 피운 것 같아서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는 듯했다.
이내 사내들이 다들 흩어졌다. 각자 다른 방에서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반태수가 들어가려는 방의 문을 열었다.
반태수는 빠르게 다가가 그자가 들어가기 전에 먼저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주변을 마력으로 정리해서 바람도 일지 않았기에 사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방에 들어간 반태수는 사람이 없는 쪽에 서서 내부를 둘러봤다.
방금 들어온 사람까지 총 세 명이 있는 방이었다.
"담배 좀 작작 펴. 대체 하루에 몇 갑을 피우는 거야?”
"남이야 뭘 하든. 할 일은 확실히 하잖아.”
"자꾸 들락거리니까 정신 사나워서 그러지. 그리고 이 방에서 일할 때는 자주 들락거리지 말라는 지시, 기억 안 나?”
"담배를 밖에 나가서 피우는 것도 아니고 요 앞 복도에서 피우는 건데 뭘.”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 건물 내에서 흡연하게 되어 있나? 일하는 동안에는 끊는 게 어때?”
"그건 안 되겠는데.”
"하아, 말을 말자.”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감시자들 어떻게 됐어? 연락은 좀 왔나?”
"승합차 팀 도착한 거 빼고는 아직 무소식이야. 그런데 일이 그렇게 됐는데 멀쩡하겠어?”
"프리든 가가 나섰다고 했지?”
"그래.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정확히 우리 사무실만 딱 찍어서 습격했다던데?”
"승합차 팀, 뒤 밟힌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걔들 조심성, 알잖아.”
"승합차 팀만 빼고 나머지는 손절해야 할 것 같네. 빠를수록 좋겠지?”
"당연하지. 그럼 누른다?”
"눌러.”
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가 컴퓨터로 뭔가를 조작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끝."
"좀 아깝네. 도청장치며 카메라며 비싼 것들인데. 감시하던 애들도 키우는 데 제법 고생했고."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아무튼 뇌랑 심장이 곤죽으로 변했을 테니 부검을 해도 얻을 수 있는 건 없을 거야."
"그나저나 이번 감시 대상,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데? 외부에서 돌아오자마자 싹 털릴 줄은 몰랐어.”
"마법사잖냐. 집에도 아주 마법으로 도배를 해놨더만.”
"그러게. 보통 실력이 아니야. 몇 군데는 아예 문도 못 땄다던데.”
"그런데 우리, 타겟을 정확히 잡고는 있는 건가?”
"모르지. 그걸 알려고 이 지랄을 하는 거잖아.”
"차라리 그냥 혼자 있을 때 납치해 버리는 게 제일 빠르지 않나?”
"글쎄. 프리든 가에 린치필드 가까지 관심을 둔 마법사를 납치하는 게 쉬울까?”
"하긴.”
사내는 빠르게 납득했다. 이번에 감시 팀 중 하나를 박살 낸 곳도 프리든 가다.
지금 그곳에 있던 감시자들은 전부 프리든 가의 안가에 감금되어 있다.
방금 신호를 보냈으니 뇌와 심장이 박살 났겠지만.
"이거 우리가 제일 빡센 걸 맡았어.”
"내 말이.”
"벨리온 길드 쪽을 맡는 게 제일 쉽고 편했을 텐데.”
"시 정부 교란 쪽도 재미는 있겠지.”
"그렇지. 그래도 신물질 개발쪽으로 안 간 게 어디야.”
그 말에 다들 큭큭 거리며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자, 앉아 있던 사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물질 재료 때문에 이리로 다시 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나 여기 진짜 싫은데.”
"여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지부 전체가 싹 몰살당한 건 여기가 처음인데.”
"중요한 자료도 잃어버리고.”
그 말에 다들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오,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터질 거 같다. 그거 진짜 그 반인지 뭔지 하는 마법사가 갖고 있을까?”
"모른다니까! 그러니까 감시하는 거잖아!”
사내들은 답답한지 그 뒤로도 별의 별 얘기를 다 쏟아냈다.
그래서 반태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들이 찾는 건 바로 그 USB였다.
한데 굳이 USB를 되찾으려는 이유가 뭘까? 자료야 자기들도 다 갖고 있을 텐데.
‘설마 없나? 그래서 찾는 건가?’
USB에는 보고서들 말고도 사진이 잔뜩 있었다. 고대문자를 정성들여 찍은 사진이.
어쩌면 그 고대문자가 새겨진 벽이 있는 유적을 5대 가문에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도청장치랑 카메라, 또 설치해야겠지?”
"당연한 걸 뭘 물어?”
"남은 게 얼마나 있으려나?”
"많으니까걱정 말고 감시팀 어떻게 구성할지나 고민해.”
그 말을 들은 사내가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생각만 해도 깜깜하다.”
이번에 너무 많은 정보원을 잃었다. 아직 추가로 구성할 만큼 정보원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들까지 잃으면 더 이상의 정보원은 없다.
"정보원도 추가로 키워야겠는데? 바이오칩 재고가 얼마나 남았지?”
"그것도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추진해. 확실히 정보원 더 필요하겠다.”
"적당한 수준의 능력자가 필요한데…… 예전에 벨리온 길드에서 자주 써먹던 미끼들 어때?”
"그쪽 브로커들 연락처 조사해서 쫙 돌리면 되겠네.”
"하, 전에는 그 미끼들 때문에 일을 다 망쳤는데, 이젠 그 미끼들이랑 같이 일을 해야 하네.”
반태수는 이들에게 마킹을 찍었다.
이제 승합차에 타고 있던 놈들에게 찍은 마킹은 제거해도 될 듯했다.
그리고 다른 감시자들에게 찍은 마킹도 마찬가지다. 다들 죽었으니 마킹이 필요 없지 않은가.
반태수는 기존 마킹을 하나하나 제거했다.
이제 마킹도 정리했으니 슬슬 이 방에서 나갈 때가 되었다. 반태수는 즉시 방에서 나갔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들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거 쪽으로 마음이 한참 움직였다.
반태수는 곧장 건물에 있는 다른 방 두 개를 확인했다.
역시나 감시 임무를 맡은 놈들이 모여 있었다.
반태수는 더 이상 이 건물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빠르게 건물에서 빠져나온 반태수는 이제 근처에 있는 다른 건물로 향했다.
미리 영역화를 통해 이 근처 건물들을 싹 조사했다.
셰딤이 쓰는 건물은 총 여섯 채. 다들 7층 이상이었다.
저 중에 신물질 연구를 하는 곳이 있다.
어쩌면 남은 방이 전부 신물질 연구과 관계되었는지도 모른다.
반태수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건물을 차례대로 하나씩 확인했다.
역시나 기대대로 나머지는 전부 연구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일반인이었다. 그들은 정신없이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신물질을 개발하는 팀과 이미 개발한 신물질을 개선하는 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미 개발한 신물질은 마력을 차단하는 물질이었다. 승합차와 연구팀이 쓰는 방에 적용한 바로 그 물질 말이다.
신물질을 개발하기 위해선 방대한 실험 데이터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었다.
그 방대한 실험 데이터는 반태수가 잘 써주기로 했다.
아무튼 또 연구할 거리가 늘었다.
한데 반태수는 이 신물질을 통해 자신의 마법을 성장시킬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 중이었다.
그리고 신물질을 얻기 위해 승합차의 강판을 뜯어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신물질 샘플이 방마다 수북하게 쌓여 있었으니까.
그것들은 싹 가져가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 있으면 다 버려질 테니까.
반태수는 건물들 중에서 서버를 설치해 놓은 건물로 갔다.
이들은 자체 서버를 운영하면서 연구자료를 전부 서버에 보관했는데, 아직 외부로 온라인 선을 연결하지는 않은 듯했다.
만일 서버에서 데이터만 뽑아가려면 암호도 알아야 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냥 서버를 통째로 가져가기로 했다.
반태수는 서버 전체에 마법을 걸었다. 나중에 건물이 무너지더라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함부로 서버를 건드릴 수 없도록 말이다.
당장 아공간에 넣어도 되지만, 그럼 셰딤 놈들이 변화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게 할 일을 다 마치고, 신물질 샘플까지 잔뜩 챙긴 반태수는 유유히 건물에서 나갔다.
밖으로 나온 반태수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잠시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 건물은 다 부숴버릴 것이다. 그 안에 있던 장비들과 샘플들을 망가뜨리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자료가 저장된 서버는 가져가고.
그럼 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반태수는 주변으로 소리가 나가지 않게 잘 차단한 다음 전화기를 꺼냈다.
이런 건 원래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 오스윈 프리든 같은 사람 말이다.
반태수는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오스윈 프리든은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시간 동안 그냥 기다리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반태수는 미리 계산을 해두었다.
무너뜨려야 할 건물을 정하고 무너뜨릴 방식을 정했다. 그리고 정교하게 술식을 계산했다.
이제 오스윈 프리든이 보낸 사람들만 도착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자 검은 그림자가 반태수 옆에 슬며시 다가왔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주변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기에 누군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갑자기 옆에서 불쑥 솟아나니 살짝 놀랐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스윈 님의 오른팔, 윌톤이라고 합니다. 반 마법사님이시죠?”
"맞습니다.”
"시키실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든 맡겨 주십시오.”
윌톤의 말과 태도는 굉장히 정중했다. 하지만 반태수에게는 그의 눈빛 깊은 곳에 있는 못마땅함이 보였다.
윌톤은 왠지 오스윈 프리든이 반태수에게 계속 휘둘리는 것처럼 보였다.
몇 번 오스윈 프리든에게 간언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본인이 즐거워서 하는 일인데 어쩌겠는가.
그 감정이 눈빛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저 건물들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전부 잡으면 됩니다.”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무너뜨리려고 찍어 놓은 건물들을 하나하나 정확히 가리켰다.
"사람들이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라는 겁니까? 그냥 들어가서 잡는 게 더 편할 것 같습니다만......."
"이제 다들 나올 겁니다.”
반태수는 그렇게 말한 다음, 미리 준비해 뒀던 마법을 발동시켰다.
우우우웅!
나직한 진동음이 울렸다.
그리고 은밀한 마력이 지정한 건물을 향해 빠르게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