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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124화 (124/351)

124화.  < 감시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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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윈 프리든은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일정표를 내려다봤다.

태블릿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일정표를 보다가 손가락을 놀려 화면을 위로 올렸다.

화면이 스크롤되며 아래에 감춰진 일정들이 쭉쭉 나타났다.

그는 황당과 당황이 섞인 눈으로 고개를 돌려 페일라 린치필드를 바라봤다.

그녀 역시 오스윈 프리든과 똑같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일정표는 아예 달랐다. 각자의 가문이 보유한 유적에 따로따로 일정을 정했기 때문이다.

"반 마법사님, 정말 이 일정대로 하실 겁니까?”

오스윈 프리든이 반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옆에 있던 페일라 린치필드도 답을 바란다는 듯 반태수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열렬한 눈빛을 받은 반태수는 자신의 태블릿을 확인했다.

오스윈 프리든의 일정과 페일라 린치필드의 일정이 더해져 훨씬 촘촘한 일정표가 되어 있었다.

"일정이…… 좀 빡빡하긴 하죠?”

"좀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저희야 반반 나눠서 가면 된다지만 반 마법사님은……."

이대로라면 개인 시간이 몽땅 사라질 판이다.

반태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부품을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일정을 짜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서두를 일은 아니었다.

아직 무슨 부품인지도 모르고 분석도 안 해봤다.

아공간 팔찌보다 보안 수준이 높은 유물이니 분석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일정을 조금 느슨하게 다시 잡을까요?”

페일라 린치필드가 얼른 대답했다.

"네! 그런데 정말로 이 모든 유적을 다 확인하실 건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 다 똑같으니까요."

사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반태수도 지금 신이 나서 일정을 짰지만, 실제로 첫 번째 유적에 들어가 자신의 가설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맞으면 뒤의 일정이 유지되는 거고, 틀리면 굳이 일정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일단 다 확인은 해보고 싶습니다.”

"반 마법사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야죠.”

페일라 린치필드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태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페일라 린치필드와 오스윈 프리든을 바라봤다.

자신이 뭘 하든 지지해주고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안드렐라 윌렉스 양은 안 오셨네요. 바쁜가?”

대답은 페일라 린치필드가 해주었다.

"요즘 좀 일이 있어요.”

"일?"

"누군가 안드렐라 가문의 뒤를 캐고 있거든요. 특히 안드렐라 양은 주요 타겟이 된 것 같아요.”

반태수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짓자, 페일라 린치필드가 대답을 이어갔다.

"굉장한 실력자들이에요. 우리 가문이랑 프리든 가에서 우연히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거예요.”

"그럼 안드렐라 양은 지금 그들을 쫓고 있는 겁니까?”

"주위를 확인하고 있는 거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섣불리 돌아다니기가 곤란해졌어요.”

실력자들이 가문의 배후를 캐고 있는데 주요 타켓이 된 안드렐라 윌렉스가 함부로 돌아다니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뒤를 캐는 자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전에는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죠. 저나 오스윈이나 가문에서 실력자들을 경호원으로 붙여주거든요. 그들 덕분에 윌렉스 가문을 조사하는 놈들을 찾았으니까요.”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반 마법사님께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반태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오스윈 프리든을 쳐다봤다.

"안드렐라 양 때문에 윌렉스 가문을 돕던 와중, 그들이 윌렉스 가문의 뒤만 캐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냈습니다.”

“윌렉스 가만 조사하는 게 아니라고요?”

"예. 엄대협의 뒤도 캐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쪽은 제가 직접 나서서 쫓아내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일시적일 것이다. 아마 기회를 봐서 엄대협에게 다시 붙을 테고, 그때는 처음처럼 쉽게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잡았어야 하는데,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노련한 놈들이라서 쉽지가 않습니다.”

"엄대협한테 조심하라고 해야겠군요.”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윌렉스 가문의 저택도 몇 번이나 털렸습니다.”

"저택을 털었다고요? 도둑질도 합니까?"

오스윈 프리든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에서 쓰레기 하나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들어와서 무언가를 하고 나간 거죠.”

뭘 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도청기나 초소형 카메라 같은 것들을 설치했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반태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윌렉스 가문의 저택까지 털었다면, 자신의 집도 안전하지 않다. 자신의 집 게스트 하우스 중 하나에 엄대협이 살지 않나.

집에 보안 마법을 곳곳에 심어 두어서 적당히 안심하고 있었는데, 오스윈 프리든이 실력자라고 말할 정도의 놈들이 활동한다니,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우리 쪽도 대응해서 조사 중이지만, 좀처럼 꼬리가 잡히지 않습니다. 정말 대단한 놈들입니다.”

반태수는 오스윈 프리든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엄대협의 뒤를 캐고 안드렐라 윌렉스의 뒤를 캔다. 공교롭게도 둘 다 자신과 관계된 사람이다.

"혹시 듀마이어 공방 쪽은 어떻습니까?”

오스윈 프리든의 눈이 커다래졌다.

"안 그래도 말씀 드리려 했는데, 그들 역시 누군가 뒤를 캐고 있습니다. 같은 놈들로 추정됩니다.”

반태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놈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캐고 있다.

오스윈 프리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노리는 것이 반 마법사님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네요. 한데 과연 누굴까요?”

그럴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떠오르는 거라고는 기껏해야 나서스 가문 정도인데, 그들의 힘이 과연 프리든 가와 린치필드 가보다 더 대단할 것 같지는 않다.

아마 그들이었다면 벌써 결론이 나왔을 것이다.

‘혹시 타노로스인가?’

하지만 타노로스는 반태수를 주시할 이유가 없다.

발드릭을 겪었기에 그들이 어떤 식으로 영입 제안을 하는지 파악했다.

저렇게 심할 정도로 주변을 파고들지는 않는다. 개인에 대한 조사는 좀 하겠지만.

‘설마 살라자 샤마쉬는 아니겠지?’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조사할 정도는 아니었다.

딱 영입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정도 규모로 조사를 진행한다고? 그럴 리가.

"활동하는 자들 수가 어느 정도쯤 되는 것 같습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최소 30명 이상입니다.”

"어쩌면 그 두 배가 넘을 수도 있어요.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선 자들이니까요.”

오스윈 프리든의 표정이 살짝 짜증이 떠올랐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우리 가문이나 나를 노리면 좀 더 적극적으로 가문의 힘을 끌어올 수 있을 텐데, 이놈들이 선을 너무 명확하게 지켜서 뭘 할 수가 없군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선을 조금만 더 넘으면 5대 가문에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는데.”

그 말을 들은 반태수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그런 일로 5대 가문에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는 겁니까?”

"네. 기본적으로 저희는 5대 가문의 수족이나 다름없으니까요. 5대 가문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확실하게 챙기고 있으니 그쪽에서도 그 정도 편의는 챙겨줍니다.”

저 말을 들으니 왠지 살라자 샤마쉬가 떠올랐다.

굳이 그가 이런 일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봤는데, 아무래도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

‘대체 왜?’

살라자 샤마쉬는 대체 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는 걸까?

반태수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안다. 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마법사이리라.

하지만 딱 그뿐이다.

반태수가 보기에 5대 가문은 그 정도 마법사를 우습게 여길 정도로 대단한 힘을 보유했다.

인적 자원도 그렇지만 가진 유물의 수와 수준이 아예 달랐다.

살라자 샤마쉬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가진 수많은 유물을 확인하고 상당히 놀랐다.

굉장히 수준 높고 강력한 유물을 둘둘 두르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아공간 유물도 있었다. 반태수가 가진 팔찌보다는 좀 모자랐지만.

아무튼 그런 자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집착한단 말인가.

반태수는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살라자 샤마쉬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습니까?”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두 사람의 입이 쩍 벌어졌다.

5대 가문 사람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살라자 샤마쉬는 5대 가문 내에서도 좀 특별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놀랐을 것이다.

"이번에 연구보조 의뢰를 받아서 가지 않았습니까. 그 연구를 의뢰한 사람이 그분이더군요.”

반태수의 말에 두 사람이 신기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살라자 샤마쉬는 아직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저 소문만 전해 들었다.

잠시 놀란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탄성을 흘렸다.

"아……!”

상황을 이해한 것이다.

"그럼 설마 지금 이 일을 벌이는 것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무겁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살라자 샤마쉬가 나섰다면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해진다.

아무리 애써도 그들을 잡을 수 없었던 것, 반태수의 주변을 전부 캐면서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는 방치했던 것, 그리고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굳이 무력 충돌을 최대한 피했던 것까지.

"그래서 어떤 분입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오스윈 프리든이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잠시 머릿속으로 살라자 샤마쉬에 대한 것들을 정리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전 아직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방랑벽이 워낙 심하신지라 만나기 어려운 분이니까요. 하지만 소문은 많습니다. 특이하신 분이니.”

"그럴 거 같았습니다. 비행선이 아주 끝내주더군요.”

두 사람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타보셨습니까?”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부러움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소문이 자자한 비행선인데 그걸 타보셨다니 부럽군요.”

"저도요. 꼭 한 번 타보고 싶었는데.”

반태수가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갑자기 얘기가 딴 데로 튀었다.

오스윈 프리든은 빙긋 웃고는 아까 하던 설명을 마저 했다.

"그분은 5대 가문 내에서도 특이합니다.”

5대 가문은 굉장히 폐쇄적이다.

가문 사람들은 외부로 잘 나가지 않으며, 혹시 나간다 해도 정체를 감춘다.

그들은 정체를 감추더라도 충분히 특혜를 받고,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제도적으로 시스템을 잘 마련해 뒀기 때문이다.

가신 가문과 만나지만 않으면 되는데, 그 정도야 5대 가문 입장에서는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한데 5대 가문에서도 별종들이 몇 있다. 굳이 자신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자들이다.

예전 유적에 갇힌 스윌러 벨크리스가 그랬다.

그리고 오늘 이름이 나온 살라자 샤마쉬도 그렇다.

물론 둘을 비교하는 건 살라자 샤마쉬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겠지만.

살라자 샤마쉬는 특수 비행선을 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가문과 연계하지 않은 혼자만의 사업을 벌이기도 하고,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느긋하게 쉬기도 한다.

"그분이 발견한 여행지가 정말 많죠. 책도 내셨습니다.”

특별한 장소의 사진과 기행문을 엮어 만든 책이었다. 베스트셀러다.

"그분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좋은 분이라고 합니다. 항상 친절하고 아랫사람들을 잘 챙겨준다더군요.”

어쨌든 들은 얘기일 뿐이다. 그래서 반태수가 본 살라자 샤마쉬가 어떤지 정말 궁금했다.

진짜 소문대로의 사람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면모가 있는지, 그리고 요즘은 뭘 하는지.

"그나저나 이러면 그냥 눈 뜨고 당해주는 수밖에 없겠군요.”

반태수의 말에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두 사람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이제는 지금까지처럼 활발하게 감시자들을 추적하기가 난감해졌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면서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 확실한 거 아니잖습니까. 좀 더 확실해진 다음에 노선을 바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좀 움직여보죠.”

반태수는 그렇게 두 사람을 다독이고는 조금 서둘러 자리를 파했다.

두 사람은 너무 일찍 헤어져서 굉장히 서운해 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해해 주었다.

반태수는 얼른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감시 도구들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

영역화를 업그레이드 해놓길 정말 잘했다.

반태수는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근처에서 도청장치와 초소형 카메라를 여러 개 찾아냈다.

‘하, 이걸 어째야 하는 거지?’

집 근처에 설치된 도청장치와 초소형 카메라는 그 구조가 굉장히 익숙했다.

'이거 연구소 운영실장이 쓰던 거랑 똑같은 건데…… 그럼 타노로스였던 건가?’

타노로스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듀라디스에서 타노로스 놈들을 상대할 때도 최대한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했다.

대부분의 일은 살라자 샤마쉬가 했고, 그를 움직이는 데 고스탁 메르서를 이용했다.

그리고 반태수를 의심할 만한 자들은 채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잡혀서 갇혀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주변에 도청장치와 카메라가 있다는 것은 그들이 뭔가 감을 잡았거나, 아니면 혹시 몰라 그냥 찔러보는 것, 둘 중 하나이리라.

반태수는 일단 그걸 제거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정원에도 제법 많은 도청장치와 초소형 카메라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한 가지 종류가 아니라 두 가지 종류의 도청장치와 카메라가 섞여 있었다.

예상은 맞았다. 살라자 샤마쉬도 자신을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뭘 알고 싶어서 저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반태수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도 곳곳에 도청장치와 카메라가 있었다.

이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의심해 봐야 하는 순간이 왔다.

반태수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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