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 복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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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보네요.”
반태수의 말에 승무원들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뭘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해서 왔습니다."
살라자 샤마쉬의 지시도 있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몸은 어떻습니까?”
반태수는 영역화로 그들의 몸 상태를 확인했지만, 그래도 물어봤다.
부상이 상당했다. 뼈도 몇 개 부러지고 내장도 상했다.
그리고 검은 연기를 뒤집어 쓴 승무원은 화상까지 입었다.
"포션은 안 가져왔습니까?”
승무원들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비행선에 보관하는 포션이 있긴 한데, 잘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아마 포션을 가져왔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첫 부상자를 포션으로 치료하면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서 갑각 트롤과 싸웠을 테니까.
세 사람이 같은 자리에 연달아 총을 명중시키면 분명히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었으리라.
"솔직히 좀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동굴에 마수가 이렇게 많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습니다.”
예전에 살라자 샤마쉬와 함께 갔던 동굴에서 나온 마수는 정말 보잘 것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동굴폭포는 마수가 서식하기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난데없이 갑각 트롤이, 그것도 언데드가 나타날 줄이야.
반태수는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간단히 응급치료만 해드리죠. 괜찮겠습니까?”
승무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치료마법을 쓰실 수 있습니까?”
그 격한 반응에 오히려 반태수가 살짝 당황했다.
치료마법 쓰는 게 뭐 어렵단 말인가. 물론 치료마법을 제대로 쓰려면 인체에 대한 공부가 필수다. 의학도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마법사라면 그 정도 공부야 기본적으로 해두는 것이 상식 아닌가.
하지만 승무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반태수는 기본보다 훨씬 깊이 있게 공부해서 치료 마법의 효율도 굉장히 높았다.
일단 화상을 입은 승무원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이미 영역화를 통해 그의 상태를 면밀히 파악했기에 치료는 어렵지 않았다.
반태수는 정확히 필요한 조치에 해당하는 술식을 계산해 마법진을 그렸다.
샤아아아.
허공에 떠오른 마법진이 빛 가루로 흩어지며 승무원에게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화상 때문에 너덜거리는 피부가 모조리 떨어지더니 뽀얀 새살이 돋아났다.
그것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광경일 뿐이었다. 내부에는 더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러진 뼈가 붙었고, 상한 내장이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응급 치료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뛰어난 치료였다.
반태수는 다음 부상자를 치료했다. 그 사람은 더 쉬웠다. 화상을 입지는 않았으니까.
마법진이 떠오르고 부서지며 빛 가루가 승무원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말끔히 치료가 마무리 되었다.
"대충 응급치료는 끝났으니 돌아가서 포션이라도 한 병씩 마시면 될 겁니다.”
비행선에서 보관하는 포션이 어떤 종류인지는 반태수도 이미 확인했다.
제법 괜찮은 수준의 포션이었다.
예전 칼덴 제약에서 만든 포션보다 더 효과가 뛰어났고 부작용도 거의 없었다.
그런 포션이니 한 병쯤 마셔두면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자잘한 상처나 부상의 흔적들이 말끔히 정리될 것이다.
승무원들이 쭈뼛쭈뼛 일어났다. 그리고 반태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반태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수 사체들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승무원들은 즉시 대답했다.
"나중에 전부 회수하겠습니다. 필요하시면 크랙톤으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저희 쪽에서 대금을 지급하고 구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냥 마수 사체도 아니고 언데드가 된 마수의 사체이니 연구 가치가 있었다.
그러니 살라자 샤마쉬도 충분히 구입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만일 그게 아니라고 해도 승무원들은 얼마든지 저 사체를 판매할 자신이 있었다.
"그럼 판매하는 걸로 하죠.”
"최대한 빨리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비행선 창고에 여유 공간이 많으니 저 사체를 전부 실어도 자리가 넉넉히 남는다.
반태수는 할 얘기를 다 끝내자 담담히 말했다.
“그럼 이제 가죠.”
먼저 동굴 입구를 향해 발을 옮기자, 승무원들이 얼른 뒤따랐다.
반태수는 하늘을 훌쩍 날아 비행선으로 향했고, 승무원들은 아까 여기로 올 때처럼 벽을 타고 달려서 갔다.
***
찔리는 일이 있어서인지 승무원들의 태도는 전보다 훨씬 친절해졌다.
아니, 이젠 숫제 반태수가 비행선의 진짜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모셨다.
마수의 사체는 승무원들이 알아서 가져왔다.
그리고 살라자 샤마쉬에게 연락해서 사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의향을 물었다. 그는 모든 사체를 자신이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대금은 비행선을 돌려줄 때 받기로 했다.
마수동굴에 다녀온 날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느긋하게 한 다음 듀라디스로 출발했다.
돌아가는 데 이틀이 걸리니, 열흘의 일정이 모두 끝난 것이다.
반태수는 돌아가는 이틀 동안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차분히 정리했다.
유적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하지만 단지 얻기만 했을 뿐, 그것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반태수는 돌아가는 이틀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침실에서 보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비행선은 다시 바르캄스테드 연구소의 옥상에 착륙했다.
옥상에는 살라자 샤마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반태수가 비행선에서 내리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돌아왔군. 어떤가, 여행은 즐거웠나?”
"덕분에 의미 있는 여행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반태수의 말에 살라자 샤마쉬가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하하. 좋았다니 다행이로군. 여행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 모르겠군. 비행선의 체계가 워낙 내 위주로 맞춰져 있어서."
"굉장히 편했습니다.”
반태수는 살라자 샤마쉬의 표정을 보며 감탄했다.
사실 살라자 샤마쉬는 비행선 내부를 전부 감시하고 있어서 자신이 뭘 어떻게 했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렇게 모른 척 연기를 하는데, 그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만일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면 깜빡 속았을 것이다.
"비행선이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하면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건 어떻겠나? 온다면 일단 선물로 저 비행선을 주지.”
굉장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신경 써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아마 살라자 샤마쉬 밑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항상 그를 따라다녀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저자 밑으로 가선 안 된다.
살라자 샤마쉬는 5대 가문이니까.
그리고 자신은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으니까.
"이거 정말 아쉽군.”
하지만 표정에는 일말의 아쉬움도 남아있지 않았다.
반태수는 그걸 보고 만일 자신이 저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살라자 샤마쉬의 관심이 오히려 식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저 비행선, 탐나지 않나?”
살라자 샤마쉬가 은근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히 탐나죠. 타보니 알겠더군요. 정말 멋진 비행선입니다.”
살라자 샤마쉬가 환하게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래서 말인데, 아까 내가 한 제안, 다시 생각해보게.”
반태수는 그래도 안 된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살라자 샤마쉬는 반태수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당장 결정할 필요 없으니 시간을 두고 잘 생각해보게. 어떤 것이 진짜 자신을 위한 일인지. 그리고 5대 가문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러죠.”
반태수는 일단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안 그러면 또 비슷한 말을 할 것 같아서였다.
'보기보다 집요하네.’
살라자 샤마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그가 원한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생각이 정리되면 연락하게.”
살라자 샤마쉬는 그 말을 남기고 비행선에 탑승했다. 그는 막 비행선에 들어가기 직전, 반태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마수 사체에 대한 대금은 계좌로 넣어주지.”
그는 찡긋 윙크를 하고는 비행선 안으로 쑥 들어갔다. 이내 비행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태수는 허공에 떠오르는 비행선을 올려다봤다.
비행선은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굉장한 속도로 날아가 금세 사라져 버렸다.
반태수는 돌아서서 옥상 입구로 향했다.
이제 진짜 돌아갈 시간이다.
***
살라자 샤마쉬는 승무원들로부터 자신이 보지 못했던 공백기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사실 보고서는 이미 받았다. 하지만 마수동굴에 갔던 세 명의 승무원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세 승무원들은 각자 열심히 기억을 짜내서 당시의 일을 세세하게 보고했다.
당시의 일이라고 해봐야 마수동굴에서 언데드 마수들과 싸운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반태수의 활약이 들어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함과, 다친 자신들을 고쳐준 치료 마법까지.
살라자 샤마쉬는 보고를 모두 들은 후 물었다.
“크랙톤에 몇 명이나 있지?”
그러자 바로 옆에 석상처럼 서 있던 비서가 대답했다.
“크랙톤에는 별 관심을 안 두셔서 정보원만 열 명쯤 있습니다. 실력은 중급입니다.”
“그래? 그럼 전력을 좀 보강해야겠군.”
“어느 정도로 보강할까요?”
"최대한으로.”
"도시 몇 군데의 중요도를 낮추고 인력을 빼오면 최대 70명 까지는 가능합니다.”
"좋아. 70명. 딱 적절하군.”
살라자 샤마쉬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크랙톤에 있는 모든 정보원들에게 반 마법사를 지켜보라고 해.”
"예. 반 마법사와 관계된 모든 것을 꾸준히 지켜보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살라자 샤마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건 그렇게 처리하고. 혹시 평소와 조금이라도 다른 게 있으면 즉시 보고하라고 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살라자 샤마쉬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네. 정말 재미있겠어. 부디…… 그쪽에서도 재미있는 정보가 들어오면 좋겠는데......."
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
반태수는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진짜 늘어지게 잤다.
크랙톤에 도착한 후, 꼬박 하루를 잤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피곤이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침대에서 일어난 반태수는 커피부터 내렸다.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맛이 더욱 각별했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반태수는 아공간을 열어 이번 유적에서 얻은 네 개의 유물을 꺼냈다.
뭔지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
한데 계속 보고 있으니, 왠지 이 유물들이 무언가의 일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점점 생각이 굳어졌다.
"이거 진짜 부품인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구성하는 부품일까?
그건 이 부품을 전부 모아보지 못하면 알 수 없다.
갑자기 흥미가 확 일어났다.
이 부품을 전부 모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과연 무엇이 만들어지는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부품을 얻을 방법이 없다.
동굴폭포의 유적 같은 곳은 흔치 않을 테니까.
‘오스윈 프리든한테 물어볼까?’
부품을 찾을 수 있는 유적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동굴폭포의 유적과 비슷한 형식의 유적에 대해 물어보면 된다.
‘그나저나 지구에 다녀온 지도 제법 오래됐네.’
조만간 한 번 다녀오긴 해야 한다.
카페가 잘 돌아가는지도 보고, 연구실이 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또 뭘 해야 하지?’
반태수는 생각보다 지구에 가서 할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오스윈 프리든부터 만나고 다시 생각하자.’
반태수는 지구에 관한 일을 뒤로 미뤘다.
***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유적 말입니까?”
오스윈 프리든은 신기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페일라 린치필드도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실 돌아다니는 정보가 거의 없는 유적인데.”
반태수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그런 유적이 있긴 있다는 거군요.”
"예. 있습니다. 게다가 생각보다 수가 많습니다.”
"수가 많다고요?”
"예. 게다가 대부분 방치되어 있습니다. 물론 아무나 못 들어가게 조치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찾는 사람은 없겠지만.”
반태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오스윈 프리든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유적, 제가 구경해도 됩니까?”
"우리 가문에서 관리하는 유적이라면 얼마든지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페일라 린치필드가 얼른 끼어들었다.
“저도요. 우리 가문에서 관리하는 유적은 보여드릴 수 있어요.”
반태수가 반짝이는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두 사람이 빙긋 웃으며 동시에 말했다.
"얼마든지요.”
반태수의 눈이 커졌다.
"얼마든지요?”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버려진 유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원하시는 만큼 볼 수 있습니다.”
반태수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얼른 일정부터 잡죠.”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는 그런 반태수의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은 일정을 잡으면서 점점 굳어갔다.
"어…… 하나만 구경하시는 게 아니네요?”
페일라 린치필드는 질린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런 형식의 버려진 유적을 몽땅 보겠다는 듯, 열정적으로 일정을 잡고 있었다.
왠지 얼마든지라는 말을 괜히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