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 마수동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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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마수동굴을 제법 빠른 속도로 돌파했다.
마수동굴에 있는 마수의 수는 정확히 36마리였다. 유적에 있던 방의 수와 똑같았다.
아마 유적을 만든 다음 흥이 올라 이 마수동굴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제멋대로 사는 마법사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 이 거대한 폭포의 절벽에 동굴을 뚫어 자서전을 남긴 걸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데 거기에 자서전의 내용에 맞춰 마수동굴을 만들고, 마법사를 시험하는 듯한 유적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 더 확인해봐야 하지만, 자서전의 내용 곳곳에 무언가를 숨겨두었다.
그 역시 내용과 맞춰가며 찾아내야 한다. 아마 그 내용이 있는 부분에 위치한 동굴에 또 뮌가를 남겨뒀으리라.
그러니 내일 오전 중에 이곳을 떠나야 하지만, 나중에 반드시 다시 와야만 한다.
아무튼 여기까지 오면서 마주친 마수들은 제법 강력하긴 했지만, 반태수가 상대하기에는 별 거 없었다.
‘역시 마수가 강하려면 거대해야 하는 건가?’
지금까지 상대한 마수들 중, 예전에 잡았던 거대마수인 바늘거인 보다 강한 마수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나마 가장 마지막에 잡은 강철오거는 좀 나았지만, 그럼에도 바늘거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강철오거는 피부가 강철처럼 단단한 오거였다.
이름은 반태수가 갖다 붙인 게 아니라 강철오거의 머리 위에 홀로그램으로 떠 있었다.
정확히 19번째 마수부터 머리 위에 마수의 이름이 홀로그램으로 떠 있었다.
마수를 죽이면 사라졌고.
아직 어떤 원리로 그렇게 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아예 분석이 불가능했다. 폭포 아래 유적의 첫 번째 방에서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였던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을 만든 마법사와 자신의 격차를 확인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언젠가는 따라잡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격차가 너무 커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아무튼 마수동굴은 반태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그저 새로운 마수를 보고 경험하고 사체를 얻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리고 아공간이 꽉 차버렸다.
죽인 마수를 전부 회수하지 못했는데도 다 차버렸다. 이제 뭔가를 더 아공간에 넣으려면 안에 있는 것을 빼는 수밖에 없다.
아마 1순위가 아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요리가 될 것이다.
이 동굴 안에 요리를 놓으면 과연 마수를 보존했던 것처럼 요리도 보존될까?
반태수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보상의 방이라는 홀로그램이 떠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마수동굴에는 유적에서 봤던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뭔가가 새겨진 벽이라거나 길을 가로막은 문이나 함정 같은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뭔가 글이 필요한 곳에는 홀로그램이 있었다. 당연히 고대문자였다.
그 중에 반태수가 모르는 문자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것을 포함한 고대문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대문자는 수가 정말 많다. 한자보다 더 많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묘하게 마력적인 느낌이 들었다. 문자의 형태를 보면 어딘가 마법진과 비슷한 구석도 있다.
아무튼 마수 쪽은 별 볼일 없었지만, 고대문자라도 얻었으니 아예 허탕은 아니었다.
간만에 마법으로 전투를 해서 몸도 좀 풀었고.
보상의 방 앞에 도착한 반태수는 문을 열 방법부터 찾았다.
사실 기대는 별로 크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처리한 마수가 강했다면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수들이 너무 약했다.
36마리나 되는 마수들과 싸우면서 변변한 위기를 한 번도 못 겪었다. 아니, 약간이나마 빡센 느낌조차 없었다.
대부분의 마수가 마법 한 방, 아니면 두 방 정도에 나가 떨어졌으니까.
보상의 방이라는 홀로그램 뒤로 검은 장막이 있었다.
그냥 뚫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겪은 검은 장막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걸 열어야 한다는 뜻인데, 어떻게 열어야 할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냥 부숴야 한다.
마수와 싸우는 동굴이라서 그런지 보상의 방에 들어가는 방법도 과격하기 그지없었다.
반태수는 검은 장막에서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마법을 펼쳤다.
뭔가를 부술 때는 역시 충격파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꽈아아앙!
마력을 잔뜩 담고 거기에 증폭까지 중첩시켰기에 파괴력이 상당했다.
예상했던 대로 검은 장막이 단숨에 부서졌다.
그리고 반태수는 그와 동시에 동굴 곳곳을 막고 있던 검은 장막이 전부 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영역화를 거기까지 펼쳐놓고 있었으니까.
반태수는 바로 보상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검은 장막을 넘어도 그냥 동굴의 통로였는데, 이번에는 제법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공간의 중심에 시커먼 덩어리가 하나 보였다.
기묘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크기도 제법 켰다.
‘저건 뭐지?’
아무리 봐도 보상 같지 않은 생김새였다.
검은 덩어리의 꿈틀거림이 조금 더 커지더니 위쪽이 불쑥 솟아났다. 거기에는 마치 눈처럼 생긴 것이 붙어 있었다.
눈이 잠시 은색으로 빛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검은 덩어리가 위로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이내 검은 덩어리는 사람의 형체가 되었다.
반태수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결론을 내렸다.
"저놈 마수 같은데?”
아니 무슨 보상의 방에 마수가 있단 말인가. 사기 당한 기분이었다.
물론 마수동굴을 돌파했다고 해서 꼭 보상을 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크워어어어!
인간의 모습이 된 검은 덩어리가 느닷없이 포효했다.
한데 그 포효에 마력이 담겨 있었다.
"찌릿찌릿한데?”
마력의 파동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미리 내구력 강화를 걸어두었기에 별 이상은 없었다.
‘마비 속성이네.’
놀랍게도 소리에 담긴 마력에 마비 속성이 부여되어 있었다.
아마 적절한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은 방금 그 포효 때문에 한순간 몸이 굳을 것이다.
마수는 포효하자마자 반태수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의 포효가 어떤 효능을 지녔는지 알고 공격에 이용하는 것이다.
반태수는 즉시 실드를 펼치고 바닥의 마찰력을 없앤 후, 옆으로 미끄러지듯 쭉 이동했다.
꽈앙!
반태수가 있던 자리가 마수의 주먹질에 움푹 들어갔다.
옆으로 이동한 반태수는 빠르게 다음 마법을 펼쳤다. 가장 익숙한 관통과 침습이 가미된 전격 마법이었다.
꽈르르릉!
마수의 몸에 벼락이 작렬했다.
하지만 마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태수를 향해 돌진했다.
꽈앙!
마수의 주먹이 실드를 강하게 후려쳤다. 그 한 방에 실드가 깨져버렸다.
물론 실드는 한 겹이 아니었기에 하나쯤 깨진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실드가 너무 쉽게 깨진 거 같은데?’
마수의 주먹질이 강하다는 건 알겠다. 바닥을 내리쳤을 때 바닥이 움쭉 들어갈 정도였으니까.
대충 그게 어느 정도 파괴력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정도로는 반태수의 실드를 부술 수 없다. 원래라면 말이다.
‘저 마수, 뭔가 특별한 힘이 있어.’
방금 전격을 맞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든 걸 봐도 그렇고 좀 이상하긴 하다.
마수는 반태수에게 달려들며 마구 주먹질을 했다. 되는 대로 주먹을 뻗는 느낌이었다.
한데 그때마다 실드가 박살 났다.
꽝! 꽝! 꽝! 꽝!
반태수는 기겁하며 실드를 더욱 많이 쌓았다. 그리고 빠르게 이리저리 이동했다.
이미 이 공간의 바닥은 전부 마찰력이 사라진 상태였다. 반태수는 그 위를 빠르게 미끄러지며 마수와 멀어졌다.
한데 마수는 마찰력이 없는데도 미끄러지지 않고 잘도 달렸다.
‘설마 마법이 안 통하는 건가?’
일단 영역화는 확실히 작동 중이다. 한데 좀처럼 마수의 정보를 빨아들일 수가 없었다.
반태수가 확인할 수 있는 건,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생물인지 무생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반태수는 현재 두뇌에 할당한 것들을 전부 정지했다. 그리고 모든 두뇌를 가동해서 마법을 펼쳤다.
36개의 마법진이 허공에 그려졌다.
내구력 약화가 열두 개, 강력분쇄가 열두 개, 절단이 열두 개였다.
마법진이 순차적으로 발동했다. 가장 먼저 내구력 약화를 넣어야 하기에 순서를 둔 것이다.
36개의 마법이 마수에게 쏟아졌다.
강력분쇄가 마수의 몸에 작렬했다. 마수의 표면에서 작은 폭발이 퍽퍽 일어났다.
뒤이어 약간 더 큰 폭발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하지만 마수는 조금도 영향을 안 받는 것처럼 여전히 반태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마수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걸 분명히 잡아냈다.
영역화 덕분이었다.
강력분쇄와 절단이 작렬할 때마다 마수의 몸에서 미약한 마력 반응이 일어났다.
마력 반응이 일어난 순간만큼은 영역화로 마수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아주 깊은 곳까지는 안 된다. 그저 표면의 정보만 읽었을 뿐이다.
워낙 드러난 순간이 짧았는지라 충분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하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아무튼 마법이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이제 출력을 좀 높일 차례다.
아까 전격 마법을 맞았을 때는 마력 반응이 없었으니 저 마수는 전격에 아주 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물이었다.
이번에 벽을 넘을 때 폭포에서 영감을 받아서 그런지 물 마법이 대폭 성장했다.
물은 잘 쓰면 강력한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태수의 주위에 백여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전부 같은 마법이었다.
마법이 발동하자 백 개가 넘는 물줄기가 마수를 향해 쏘아졌다.
그냥 물줄기가 아니었다. 아주 빠르고 강력했다. 그리고 가늘었다. 게다가 마력까지 담겨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물줄기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품었다.
바늘보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빠르고 강력하게 쏘아졌다. 마수의 몸을 꿰뚫어 버릴 기세로.
쩌저저저저저정!
반태수에게 달려들던 마수가 백여 개의 물줄기를 맞으며 뒤로 밀려났다.
아까보다 훨씬 강력한 마력 반응이 나타났다.
물줄기에 맞은 자리에서 마력이 불꽃처럼 일어난 것이다.
반태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몸 자체가 아예 마력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데?’
단순한 마력은 아니었다. 무언가 기묘한 것과 융합된 특이한 마력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저 마수는 전체가 마력 덩어리였다. 방금 영역화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랬다.
한데 대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고 판단을 하는 걸까?
마법이 작용한 걸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마법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반태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무수한 마법진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발동하는 것을 반복했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끊임없이 마수에게 쏟아졌다.
마수는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 보려고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물줄기를 피할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도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마수의 행동이 달라졌다.
갑자기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바닥으로 촤르륵 쏟아졌다. 처음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마수는 물줄기를 맞으며 바닥에 착 달라붙은 채 몸을 부풀렸다. 마치 풍선처럼 커다래진 몸은 이내 터져 버렸다.
퍼엉!
마수의 몸이 기체로 변해 공간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 버리니 더 이상 물줄기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즉시 마법을 펼쳤다.
화르르르르륵!
새하얀 불이 일어나 공간 전체를 꽉 채워 버렸다. 심지어 반태수의 몸도 불길에 휩싸였다.
물론 미리 조치했기에 불에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뜨겁지도 않았고.
반태수야 그렇지만 마수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 평범한 불이었다면 기체가 된 마수를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태수가 일으킨 새하얀 불은 그냥 불이 아니라 마력이 깃든 불이었다.
키아아아아아아!
마수의 비명이 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
새하얀 불은 그러고도 1분 정도 공간을 태운 뒤에야 사라졌다.
반태수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주위를 찬찬히 둘러봤다.
영역화에는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한참동안 살핀 뒤에야 반태수는 마수가 사라졌다고 여겼다.
오늘 싸움은 나중에 반드시 복기하기로 했다. 별로 마음에 든 전투가 아니었다.
아무튼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뭔가 좀 억울했다. 보상의 방에서 지금까지 싸웠던 마수들이 어린애라고 느낄 정도로 강력한 마수가 나왔으니 말이다.
"음?"
반태수는 자신의 발치에 떨어져 있는 새까만 보석 하나를 발견했다.
그 보석에서는 방금 싸웠던 검은 마수와 비슷한 느낌이 났다.
반태수는 조심스럽게 보석을 집었다.
안에 아주 막대한 마력이 담겨 있었다. 감각이 그걸 포착한 순간 온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막대한 마력이었다.
이 보석이 아까 그 검은 마수의 근원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안에 있는 마력의 특성이 아까 그 마수와 똑같았으니까.
반태수가 볼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리가 없다.
이 보석에는 마력 말고 무언가가 더 있었다. 그건 마법사의 직감이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른다.
아마 이곳의 보상은 이 보석인 듯했다.
반태수는 보석을 아공간에 넣었다. 보석이 작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일단락하고 나니, 살짝 피곤했다.
반태수는 적당한 곳에 앉아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저녁 먹을 시간은 아니었다.
마지막 마수 빼고 나머지 마수들을 워낙 수월하게 잡아서 시간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태수는 여기서 좀 쉬다가 비행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 전에……."
자신을 따라 동굴에 들어온 승무원들이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크게 확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