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19화 (119/351)

119화.  < 폭포의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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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어둠 속을 천천히 걸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감각까지 먹통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마력에 대한 감각도 무언가가 교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저 천천히 걷기만 했다.

반태수는 1분쯤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아무래도 여길 통과하려면 그저 걷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즐긴 만큼 얻게 되리라.

반태수는 문에 새겨져 있던 글귀를 떠올렸다.

뭘 즐기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제 슬슬 알겠다.

일단 마력에 대한 감각을 끌어올렸다.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이 주변에 흐르는 마력을 샅샅이 훑었다.

아직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마력에 대한 감각을 계속 교란하고 있었지만,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 이상, 그것에 휘둘리는 일은 없었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호수가 있는 동공에서 마력의 흐름을 역산해 그곳에 펼쳐진 빛 마법을 찾아냈다.

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곳에 흐르는 마력을 역산하는 것이 좀 수월했다.

한 번 해봤다고 속도도 훨씬 빨라졌고, 마력의 흐름을 되짚어 나가는 것도 훨씬 편해졌다.

호수가 있던 동공과 달리 여기에는 마법이 하나만 펼쳐진 것이 아니었다.

일단 마력에 대한 감각을 교란하는 마법을 찾아냈다.

호수가 있던 동공에 펼쳐진 마법과 마찬가지로 공간 전체에 균일하게 마법이 적용되고 있었다.

마법을 찾아냈으니 그걸 해제해야 한다.

해제하는 방법은 마법 자체를 없애거나, 아니면 정확히 반대가 되는 성질의 마법으로 중화해 버리면 된다.

마법 자체를 없애려면 마법을 이루는 술식의 근원을 없애야 한다.

보통 마법의 근원은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마법을 찾아내면 그걸 토대로 근원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데 이곳에 펼쳐진 마법은 근원을 정말 교묘한 방법으로 감췄기에 쉽게 찾아낼 수 없었다.

이러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되는데, 반태수는 왠지 그러기 싫었다. 아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벌써부터 막혔다고 쉬운 길로 돌아가면 나중에 정작 이것이 필요할 때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끈기 있게 근원을 찾았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감탄을 거듭했다.

근원이 되는 마력을 어찌나 교묘하게 감췄는지 처음 찾아낼 때는 정말 애를 먹었다. 한데 그렇게 찾아낸 것이 속임수라는 걸 알아냈을 때는 황당하고 짜증이 나기보다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솜씨다. 보통 실력과 머리로는 결코 이런 걸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하긴, 기억에 있던 그 마법사의 실력이라면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겠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절벽에 동굴을 파서 글을 쓴 사람이다. 그것도 고작 몇 시간 만에.

그런 마법사가 작정하고 만들면 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략이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었으리라.

아무튼 그렇게 뒤틀린 근원을 찾아가는 건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 와중에 얻을 건 확실히 얻었고.

어쨌든 지금 반태수가 하는 건 마법을 다루는 기술이다. 그러니 꼬인 흔적을 풀어내면 풀어낼수록 기술 숙련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반태수는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근원이 되는 마력을 찾았고, 그걸 없앨 수 있었다.

근원이 되는 마력을 흩어버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보통은 그저 힘으로 없앨 수 있는데, 이건 그렇게 간단히 되지 않았다.

거기에도 꼼꼼하게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래서 그 마법까지 해체했다.

"무슨 감각 교란 마법 하나 해체하는 데 이렇게 힘이 들어서 이걸 언제 다 하냐.”

반태수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사실 지금 굉장히 즐거웠다.

에전 유물을 분석하거나 보안 마법을 뚫을 때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성취감도 훨씬 좋았고.

그렇게 반태수는 그곳에 있는 모든 감각 교란 마법을 하나하나 해체해 나갔다.

하나씩 해체할 때마다 감각이 하나씩 돌아오는데, 그 역시 재미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해체한 것이 시각 교란 마법이었다.

눈앞이 확 밝아지면서 주변 광경이 보였다.

정말 작은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두 평이나 될까?

반태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길 1분이나 걸었는데도 벽에 닿지 않았다. 한데 그건 어떻게 했는지 아예 모르겠다.

감각 교란 마법에 그런 건 없었으니까.

그저 감각 교란 마법을 다 해체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다.

반태수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내디뎠다.

금세 반대쪽 벽, 아니, 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역시 생각대로였다.

"진짜, 어마어마하네.”

엄청난 마법사가 만든 유적에 들어왔다. 반태수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다음 방으로 가기 위한 문을 확인했다.

유적 입구에 있던 것과 똑같은 마법진이 문에 있었다.

다만, 이번엔 훨씬 복잡했다. 회전축이 64개나 되었으니까.

그래도 난이도는 입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회전축이 늘어나 봐야 마법진의 수준이 똑같은데 난이도가 달라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신이 이런 퍼즐에 곤란을 겪어야 하는 일반인도 아니고.

마법사는 이보다 몇 배나 복잡한 퍼즐을 보지도 않고 머릿속으로만 맞출 수 있는 존재다. 아무리 수준이 낮은 마법사라도 그러하다.

하물며 반태수 정도 수준이면 이런 퍼즐은 퍼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반태수는 빠르게 퍼즐을 맞추고 마력을 넣어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허공에 홀로그램 마법진이 십여 개 떠 있었다.

반태수의 얼굴이 대번에 흥미로 뒤덮였다.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문이 닫혔다.

돌아보니 문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돌아갈 때도 퍼즐을 풀어야 할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퍼즐 종류도 다른 것 같고.

반태수는 다시 방 안에 떠 있는 홀로그램 마법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유적의 제어실에 있던 것과 비슷한 마법진들이었다. 그렇다면 여기도 제어 마법진이 있는 걸까?

반태수는 유심히 마법진들을 살폈지만 그런 건 없는 듯했다.

일단 마법진 하나에 마력을 흘려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뭘 어쩌란 거지?”

어쩌겠는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뿐이다.

반태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력부터 파악했다.

그러자 홀로그램 마법진이 자신이 알던 것과는 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놈들은 분석이 되네?”

반태수가 가진 제어 마법진을 비롯한 홀로그램 마법진들은 분석 자체가 되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마법진이나 마도구에서 파생된 것들이라서 그렇거나, 아니면 아직 반태수의 능력이 그걸 파악할 정도로 높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한데 여기 있는 마법진들은 분석이 가능했다.

반태수는 홀로그램 마법진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흥분하며 마법진에 달려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마법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어떻게 홀로그램 마법진이 존재하는지부터 이 마법진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고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지까지.

이걸 완벽하게 분석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그 유적에 있던 홀로그램 마법진도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걸 자신의 힘으로 구현할 수도 있을 듯했다.

반태수는 모든 홀로그램 마법진을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방에서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반태수는 마력의 실을 뽑아냈다. 그리고 술식을 구성했다.

홀로그램 마법진을 만드는 술식이었다. 담긴 기능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문을 여는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방이었다.

문을 여는 기능을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대해서는 이 공간에 있는 모든 홀로그램 마법진을 분석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홀로그램 마법진에 문을 여는 술식이 조금씩 섞여 있었으니까.

그걸 하나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

반태수는 술식을 완성했고, 홀로그램 마법진도 완성했다.

완성한 홀로그램 마법진에 손바닥을 갖다 대고 그걸 작동시켰다.

구구구궁!

돌 긁히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좌우로 열렸다.

반태수는 빠른 걸음으로 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즐거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

퍼즐 같은 마법을 풀어야 하는 방의 수는 총 36개였다.

반태수는 그 36개의 방을 모두 통과했다.

36개의 방은 전부 형식이 달랐다. 어느 하나, 같은 내용이 중복되지 않았다.

전부 새로웠고, 그 안에 적용한 마법의 종류도 다 달랐다.

중요한 건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점점 높아진다는 점이었다.

퍼즐의 방식도 마법의 수준도.

반태수는 정말 즐겁게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문제를 하나 풀어 방을 벗어날 때마다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꼈다.

그저 방에 적용된 마법과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방을 통과하느라 열심히 분석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내다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에 관한 지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36개의 방을 통과하면서 정말 많은 마법 지식을 새로 얻었다.

반태수는 집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마법 공부와 연구를 할 계획을 세웠다.

최근 얻은 것들을 전부 완벽하게 소화하려면 제법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리라.

아무튼 반태수는 36개의 방을 모두 통과하고 이제 마지막 문만 남겨둔 상태였다.

이 문이 마지막이라는 걸 안 이유는 문에 보상의 방이라고 쓰여 있어서였다.

보상의 방에 들어가기 위한 문을 여는 방법은 가장 단순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마력의 힘으로 밀어서 여는 문이었다. 한데 거기 들어가는 마력의 양이 엄청났다.

마력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를 테스트 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 순간에 내뿜을 수 있는 마력의 양, 즉, 출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테스트였다.

마력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출력이 낮으면 쓸모가 떨어진다.

어떤 마법은 출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펼칠 수 없다. 그러니 마법사에게 보유 마력의 양뿐 아니라 출력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사실 예전에는 출력 같은 건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신경 쓸 일도 없었고.

하지만 이면세계에 온 이후부터 꾸준히 출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왔다. 수련도 계속 했고.

또한 벽을 넘을 때마다 출력이 확 늘어났다.

그러니 이제 그 정도면 이런 문 정도는 밀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반태수는 문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심호흡을 몇 차례 했다.

아무리 자신 있어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반태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후, 코어에 있는 마력을 확 뽑아냈다.

거대한 마력이 반태수가 손으로 짚은 문을 향해 밀려들어갔다.

쩌어엉!

뭔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산산이 부서졌다.

부서진 문의 파편은 정말 작은 알갱이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알갱이들은 반태수가 쏟아낸 마력과 섞이며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샤아아아.

하얀 아지랑이가 솟아났다. 그리고 마치 원래부터 문이 없었다는 듯 입구가 뻥 뚫려 버렸다.

뚫린 입구를 통해 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반태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안에는 거대한 책장이 있었다. 그리고 책장에는 두꺼운 책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반태수는 홀린 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고대 유적에서 나온 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런 건 전부 5대 가문에서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에 볼 방법도 없었다.

한데 여기 이렇게나 많이 있다니.

일단 한 권 뽑았다.

"화염 마법에 관한 기초 이론서.”

책장을 넘기니 고대어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대충 읽어보니 정말 화염 마법의 기초에 대한 설명이었다. 한데 제법 깊이가 있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반태수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기초 이론인데 말이다.

그저 기초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만한 부분을 더욱 깊이 있게 파고들고 새로운 관점으로 통찰하는 내용이 곳곳에 있었다.

반태수는 책을 탁 덮고 그것을 책장에 꽂았다.

그 다음 책장 째로 아공간에 넣었다.

아공간 용량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좀 비우든가 정리하든가, 아니면 새 아공간 팔찌를 구하든가 해야겠다.

물론 가장 선택할 확률이 높은 건 정리였다.

안에 요리가 정말 많았으니까.

그것만 다 먹어도 용량이 아주 넉넉해질 것이다.

책장을 아공간에 넣고 방안을 둘러봤다. 책장이 처음 눈에 들어온 순간, 그대로 꽂혀 버리는 바람에 다른 데로 눈 돌릴 틈도 없었다.

방안에는 적당한 크기의 진열장이 몇 개 있었다. 그리고 그 진열장에 유물이 진열되어 있었고.

한데 하나같이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들이었다.

일단 모양부터가 특이했다. 형태를 통해 용도를 추측할 수가 없었다.

하나는 파이프를 여러 개 붙인 듯한 모습이었다. 파이프의 굵기는 전부 달랐고, 모양이 다른 것도 있었다. 기역자나 디귿자로 구부려 놓은 것들도 보였다.

그런 것들을 이리저리 잘 꿰맞춰서 붙여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짜 제대로 된 유물인 건 확실했다. 일단 마력 반응부터가 엄청났다.

지금까지 반태수가 본 어떤 유물보다 대단했다. 심지어 아공간 팔찌보다도.

당연히 보안 수준도 아공간 팔찌 이상이었다.

다른 유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알 수 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고, 마력 반응이나 보안 수준이 엄청났다.

일단 보안을 뚫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대문자로 된 두 번째 보안까지 뚫은 다음 술식을 분석하는 수밖에.

언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반태수는 진열장도 전부 챙겼다. 유물의 수는 여섯 개였다.

"근데 이거 중간에 못 뚫고 돌아갔으면 어떻게 되었으려나.”

즐긴 만큼 얻는다고 했다. 그럼 이 중 일부를 얻게 되는 걸까?

"그럴 리가.”

보아하니 이곳은 전부 뚫는 사람에게만 주는 보상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보상은 중간에 감춰져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아마 쉽게 찾을 수 없도록 잘 감춰져 있으리라.

"그것도 나중에 다시 와서 찾자. 일단 이 유적은 여기까지.”

반태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적에서 나갔다.

돌아가는 길은 아주 수월했다.

문의 퍼즐을 풀어야 했지만 그거야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반태수는 빠르게 유적에서 나가 호수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 비행선이 착륙한 바위섬에 내려섰다.

마침 한창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법 늦은 시간이었는데, 반태수를 기다리다가 준비를 늦게 시작한 모양이었다.

"아, 오셨습니까.”

승무원이 반태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식사 준비가 거의 끝났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보아하니 시간 맞춰서 준비를 하고 반태수가 안 오니 다시 준비하는 일을 반복한 듯했다.

반태수는 속으로 정말 어지간하다는 생각을 하며 식사를 했다.

성과가 커서 그런지 밥도 정말 맛있었다.

이제 조금 쉬었다가 오후 일정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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