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 동굴폭포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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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갑자기 떠오른 지식 때문에 하마터면 마법이 풀려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새로 떠오른 지식은 고대문자였다.
지금까지 없던 전혀 새로운 문자들이었다.
그리고 절벽에 있는 각 동굴을 선으로 그어 이으면, 새로운 고대문자의 모양이 되었다.
동굴을 이용해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대단하다.’
개인이 한 짓인지, 아니면 조직이 한 짓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정말 보통 미친 것이 아니다.
모든 동굴을 선으로 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각 동굴마다 선을 이어야 할 동굴이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일단 그것부터 파악해야 한다.
제대로 선을 이으면 정확한 고대문자가 된다.
그것이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미친 짓인가.
구멍을 뚫어서 메시지를 남길 생각을 했다는 것도 미친 짓이지만, 그걸 하필 저런 거대한 폭포 뒤에 만들었다는 것도 미친 짓이었다.
심지어 각 동굴을 깊게 파기까지 했다.
어쩌면 안이 복잡한 동굴도 있을지 모른다.
저렇게 많은 동굴을 뚫으려면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 매달렸을까?
반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일단 누군가 이걸 만들었으니, 자신은 그걸 해석해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만, 꼭 그러고 싶었다. 뭐라고 썼을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어쩌면 저 글을 다 읽으면 이 안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태수는 위로 휙 올라가 다시 비행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거대한 바위섬에 내려선 반태수는 빠르게 비행선에 탑승했다.
근처에서 잠시 폭포를 구경하고 있던 승무원들과 조종사들이 의아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얼른 비행선으로 달려갔다.
비행선에 가장 먼저 탄 승무원이 반태수에게 다가갔다.
반태수는 승무원을 보자마자 말했다.
"비행선을 다시 움직이죠.”
"예? 여길 떠나는 겁니까? 그럼 바로 듀라디스로 돌아갈까요?”
반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돌아가는 시간은 예정대로 이틀 후입니다. 지금은 폭포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예? 폭포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신다고요?”
승무원은 그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가 손가락을 들어 폭포가 시작되는 곳, 그러니까 고대문자로 이루어진 글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켰다.
"일단 저쪽 끝으로 비행선을 이동한 다음 폭포의 중간 높이에서 최대한 천천히 반대쪽 끝을 향해 날아가면 됩니다.”
승무원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종실에 전달하겠습니다.”
"전 3층에 있을 겁니다.”
"예. 지시하고 저도 바로 3층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승무원은 그렇게 말하고 얼른 조종실로 달려갔다.
반태수는 잠시 승무원을 보다가 몸을 돌려 3층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향했다.
***
반태수는 비행선의 3층, 그러니까 비행선 지붕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아직 비행선은 폭포 끝에 도착하지 못했다. 가는 중이었다. 얼마 안 있어 도착하겠지만.
가는 동안 반태수는 폭포 말고 나머지 방향에 뭐가 있는지 확인했다.
울창한 숲이 쫘악 펼쳐져 있었다. 폭포를 둘러싼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숲을 관통하듯 폭포와 이어진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광경 역시 폭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다만 처음 폭포를 봤을 때 확 다가왔던 그 압도되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사실 폭포가 너무 굉장해서 그런 거지, 숲과 강도 충분히 대단했다.
반태수가 그렇게 풍경을 구경하고 있을 때, 승무원이 3층으로 올라왔다.
"정확히 지시했으니 원하시는 대로 폭포를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승무원의 말에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반태수는 아까 승무원들과 조종사들이 비행선 밖에서 자유롭게 쉬던 모습이 떠올라 살짝 미안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폭포 뒤 절벽에 써 놓은 글을 빨리 확인해야 그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반태수는 글 안에 반드시 무언가 힌트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내 폭포 끝에 도착했다.
반태수가 미리 지시했던 대로 폭포 끝에 도착한 비행선은 폭포 높이의 중간쯤으로 내려갔다.
"비행선이 폭포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졌으면 좋겠군요.”
"예.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승무원을 그렇게 말하고는 조종실에 연락해 반태수의 말을 전했다.
비행선이 아주 천천히 폭포에서 멀어져갔다.
반태수는 적당한 간격에 도착한 순간 멈추라고 했고, 비행선은 즉시 멈췄다.
"딱 좋네요. 이대로 천천히 폭포를 따라 움직이면 됩니다.”
비행선은 반태수가 원하는 대로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반태수는 열심히 머릿속으로 동굴을 이리저리 이었다.
처음에는 비행선이 천천히 가고 있는데도 문자를 구성하기가 벅찼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빠르게 문자를 그릴 수 있었다.
고대문자로 이루어진 절벽의 글귀를 읽어나가던 반태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뭐야, 이건.’
내용이 정말 어이없었다.
이 절벽에 동굴을 뚫은 자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자화자찬하는 내용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제정신이 아닌 놈 같았고, 과연 이런 글을 읽어서 뭔가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하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끝은 봐야하지 않겠는가.
반태수는 꾹 참고 계속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읽은 모든 글을 머릿속에 새기듯 기억했다.
글은 세로읽기였는데, 수백 미터에 걸쳐 쓰였기 때문인지 제법 내용이 많았다.
반태수가 굳이 모든 글귀를 기억하려는 것은 혹시 내용에 무언가가 있지 않고 암호나 퍼즐처럼 글 자체에 무언가를 감춰놓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얼굴이 살짝 달아오를 정도로 자신에 대한 찬사를 이어가던 내용이 30%쯤 지나자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때부터 자신이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에 대한 내용이 시작되었다.
반태수가 굳이 그걸 구분한 이유는 그때부터 마법에 대한 이론과 지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굉장한 마법사였다.
그건 앞부분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부분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업적에 대한 내용에서는 그가 무시무시한 괴물과 싸운 이야기나, 전쟁에 참여했던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어떤 식으로 싸웠고, 어떤 마법을 어떻게 썼는지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마법이나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일을 하면, 그에 관한 부연설명을 굉장히 자세히 기록했다.
반태수 입장에서는 그 부연설명이 진짜 핵심이었다.
심지어 부연설명 안에는 술식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반태수는 더욱 집중해서 글을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꼭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한데 중간에 섞인 부연설명이 저 황당무계한 내용을 진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술식과 마법에 대한 지식은 진짜였으니까.
글을 읽다보니 고대문자에 대한 지식이 조금씩 더 떠올랐다.
그리고 절벽에 쓰인 마법과 지식, 술식에서 파생된 다양한 지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걸 받아들이느라 자연스럽게 두뇌를 하나 더 할당했다. 그리고 폭포의 중간을 지났을 때, 또 하나의 두뇌를 할당해야 했다.
방대한 양의 마법 지식과 술식이 폭발적으로 떠올라서 그걸 분류하고 기억에 새기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런 반태수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승무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뭘 보기에 저렇게 집중하는 걸까’
반태수는 한 번도 폭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 자세로 저렇게 오랫동안 서 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폭포의 풍경을 감상하는 건 아닌 듯했다. 그런 걸 저렇게 집중해서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승무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반태수가 보는 쪽을 바라봤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가 해서였다.
한데 아무리 봐도 그저 쏟아지는 물밖에 없었다.
승무원은 너무 궁금해서 슬그머니 움직였다. 반태수 앞으로 가면 너무 눈에 띄니 나란히 서는 정도로 만족했다. 옆모습만 봐도 표정은 보이니까.
반태수의 표정을 확인한 승무원이 속으로 생각했다.
‘딱 공부할 때 저런 표정 나오는데.’
누가 봐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다. 저건 집중해서 공부하는 표정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반태수의 눈꺼풀이 살짝살짝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조금 더 관찰한 끝에 반태수가 폭포의 위 아래를 훑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따라해 봤다.
당연히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나저나…… 이제 고작 절반 왔네.’
승무원은 지루한 표정으로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봤다.
반태수가 뭐라도 하면 덜 심심할 텐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니 더 지루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니까.
승무원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나란히 선 채로 오래 있다가 반태수가 돌아보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승무원은 어떻게든 지루함을 참아내려고 반태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주위를 자주 둘러봤다.
그래도 광활한 숲과 거대한 강, 무지막지한 폭포를 보고 있으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어느새 폭포의 끝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승무원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반태수와 폭포를 번갈아 바라봤다.
남은 폭포가 점점 줄어드는 걸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반태수를 보니 여전히 폭포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움직인 거잖아.’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뛰어난 마법사가 된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드디어 폭포의 끝에 도착했다.
이 긴 동굴폭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동한 것이다. 그것도 느린 속도로.
승무원은 기대감 넘치는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이제 아래로 내려갈 시간이다.
한데 반태수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마치 아직 다 안 끝난 것처럼.
승무원은 초조함과 의아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자신이 반태수를 부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뭔가 문제가 생겼으면 조치를 해야 하니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아니, 반태수를 향해 사방에서 바람이 쏟아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승무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
저게 뭘까 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태수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승무원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왈칵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반태수의 몸에서 새까만 진액이 좌르륵 쏟아졌다.
바람을 타고 지독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으윽!"
갑자기 날아든 악취에 코를 잡았다.
그리고 그제야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마법사가 성장할 때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폭포를 보면서 벽을 넘은 거야?’
승무원은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이내 반태수가 민망한 표정으로 승무원을 쳐다봤다.
"저는 잠시 폭포에 다녀오겠습니다.”
반태수는 그 말을 남기고 훌쩍 날아 폭포로 뛰어들었다.
쏟아지는 물이 반태수의 몸에 묻은 진액을 빠르게 밀어냈다.
승무원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얼른 아래에 연락해 청소 도구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방금 반태수가 서 있던 자리에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진액이 잔뜩 있었다.
***
"축하드립니다. 정말 귀한 구경을 했습니다.”
승무원의 말에 반태수가 또 한 번 민망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청소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청소야 항상 하는 일이니까요. 마법사가 벽을 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다니 제가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반태수는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입고 있던 옷은 버렸다. 승무원이 새 옷을 준비해 줘서 그걸로 갈아입었고.
옆에서 수발드는 사람이 있으니 편하긴 정말 편했다.
한데 자신을 바라보는 승무원의 눈빛이 너무 과하게 반짝거려서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오늘은 이만 자야겠네요. 아무래도 정리할 시간도 좀 필요하고요.”
"아! 그러십시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이제 듀라디스로 돌아갈까요?”
"아뇨. 아직 하루 더 남았으니 내일까지 폭포를 좀 더 살펴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면 아까 그 바위에 비행선을 착륙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잠자리를 마련해 드릴 테니 밖에서 주무셔도 됩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위험할 일도 없는 듯했고.
"그럼 그럴까요?”
승무원이 과하게 기뻐하며 얼른 준비하겠다고 가버렸다.
반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비행선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이내 비행선이 아까 그 거대한 바위에 착륙했고, 반태수와 승무원, 조종사들이 전부 내렸다.
잠자리는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생각보다 안락했다. 바람은 막고 하늘은 다 보이도록 세팅이 되어 있었다.
마도구를 쓴 것이다.
‘하여간 5대 가문이 대단하긴 대단하네.’
이런 야외에서의 잠자리를 위해 마도구를 만들다니 말이다.
반태수는 침대에 누웠다. 하늘에는 엄청나게 많은 별이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쉬는 것도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생각날 때마다 비슷한 방식으로 쉬어봐야겠다.
반태수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