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 동굴폭포 >
====================
살라자 샤마쉬는 흔들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펼쳐진 광경을 음미하듯 바라봤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마치 타오르듯 지평선에 펼쳐졌다.
이 도시, 듀라디스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블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빌딩이었다.
도심지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위치한 150층짜리 초고층 빌딩.
살라자 샤마쉬가 소유한 건물 중에서 그가 아끼는 건물 중 하나였다.
이 빌딩은 오직 저 지평선에 깔리는 노을을 보기 위해 지었다.
물론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지만, 지은 목적 자체는 그랬다.
살라자 샤마쉬는 반태수에게 비행선을 빌려준 뒤부터 여기서 지냈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돌아다녔기에 열흘 정도 이렇게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내 노을이 희미해졌다.
살라자 샤마쉬는 흔들의자 옆 작은 테이블에 놓아둔 태블릿을 집었다.
몇 가지 조작을 하며 이리저리 확인하던 그의 눈가가 살짝 꿈틀거렸다.
"음? 이제 다른 데로 가려는 모양이네?”
사실 그동안 좀 어이가 없었다. 기껏 비행선을 빌려놓고는 도시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만 했으니까.
하루나 반나절 정도 그랬으면 이해했을 것이다. 한데 그걸 무려 나흘이나 계속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한데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비행선의 조종실에서 목적지 좌표를 입력하니까.
그리고 그 입력값은 고스란히 살라자 샤마쉬에게로 전송된다.
"동굴폭포?”
살라자 샤마쉬가 발견한 절경 중 하나였다.
그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특별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을 즐긴다.
굳이 특수 비행선을 타고 이리저리 쏘다니는 이유 중 하나였다.
"나흘이나 도시 주위를 뱅뱅 돌다가 난데없이 동굴폭로라……."
저 비행선으로 동굴폭포까지 가려면 쉬지 않고 비행해도 최소 이틀은 걸린다.
남은 대여 기간은 6일이니 오가는 일정을 제외하면 이틀정도 동굴폭포에 머물 수 있다.
"하긴, 거기 있는 동굴들 중에 혹시 보물이 있을 수도 있지.”
수십 킬로미터 길이에 높이는 수백 미터나 되는 거대한 폭포다.
그 폭포 뒤에 몇 개인지도 모를 무수한 동굴이 있다.
자신이 확인한 건 고작 십여 개 정도에 불과했다. 확인한 곳에는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식까지 했다.
가끔 생각나면 들러서 몇 개씩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괜찮은 걸 발견하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동굴탐험은 즐거우니까.
매일 그 짓을 한다면 지겹겠지만, 어쩌다 한 번씩 하면 기분전환이 된다.
인공의 손길이 닿은 동굴들. 처음 그걸 발견했을 때,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고대 유적과 관계된 장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반태수와 동굴폭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비서가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비서는 살라자 샤마쉬에게 다가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살라자 샤마쉬의 태블릿에 자료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떴다.
확인해보니, 반태수에 대해 조사한 내용이었다.
조사가 생각보다 늦어져서 살라자 샤마쉬를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이다.
"의외로군. 보통 이 정도 마법사에 대한 정보 뽑아내는 데 반나절 정도면 충분했던 것 같은데.”
"최근 정보는 그렇습니다만…… 과거를 아예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살라자 샤마쉬의 눈이 번득였다.
"아예 알아낼 수가 없었다고?”
"예. 알아보느라 시간을 제법 썼습니다만…… 결국 실패하고 더 늦추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최근 정보만 정리했습니다.”
살라자 샤마쉬는 좀 놀랐다.
자신이 비서에게 지시한다는 건 5대 가문의 정보망을 이용할 권한을 준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데 그걸 이용하고서도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다고?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살라자 샤마쉬는 일단 보고서부터 확인했다.
정확히 반태수가 벨리온 길드의 미끼로 활동한 것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행적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호오, 가신 가문이랑도 만나고 있었군? 프리든, 린치필드, 나서스라…… 그리고 이 윌렉스는 크랙톤의 지배가문이고.”
제법 능력이 있는 마법사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가신가문과 엮여 있는 줄은 몰랐다.
그동안 반태수가 한 일들을 쭉 확인하던 살라자 샤마쉬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역시 흥미로운 마법사야.”
특히 듀마이어 방패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보고서에는 듀마이어 방패에 관한 내용이 비교적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는데, 진짜 설명대로라면 정말 대단한 마도구였다.
실전에 대한 데이터도 쭉 정리되어 있었는데, 듀마이어 방패를 쓴 이후 마수 사냥에서의 피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게 다가 아니다.
각종 전투에 관한 정리를 보니, 웬만한 5서클 마법사로는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러니 5서클이 아니라는 뜻이다.
살라자 샤마쉬는 최소 7서클이라고 판단했다.
아무튼 이런 대단한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뚝 떨어졌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심스러웠다.
"타노로스와의 접점은 이 발드릭이라는 놈 하나뿐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발드릭이 포섭을 위해 접근한 걸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타노로스에서 키우지는 않았다는 뜻이지? 그거 확실한가?”
세상에 100%가 어디 있겠나. 밝혀지지 않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을 줄 알고 확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비서는 확신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확실합니다.”
살라자 샤마쉬는 반태수에 대한 보고서를 다시 한 번 읽으며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과거를 전혀 밝혀낼 수 없다니, 정말 궁금하군. 혹시 도시 밖에서 살던 건 아니고?”
"그 부분도 염두에 두긴 했습니다만…… 정황 상, 가능성이 좀 낮습니다.”
"신분증을 만든 것도 얼마 안 되었던데, 그럼 변두리에서 계속 마법 연구만 하면서 살았던 걸까?”
"아무리 연구만 했어도 최소한의 흔적은 드러나야 합니다. 한데 흔적이 아예 없습니다.”
살라자 샤마쉬가 헛웃음을 흘렸다.
"하, 이거 참. 이 정도로 관심이 생긴 사람은 정말 오랜만인데?”
살라자 샤마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다른 세상에서 넘어왔다면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긴 하는데…….'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쪽 세상에는 마법사가 나올 수 없지. 이쪽으로 넘어오면 능력자가 되니까.’
더구나 반태수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라면 더더욱 그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살라자 샤마쉬의 직감은 계속 그쪽을 찔렀다.
‘뭐…… 그럼 가볍게 조사만 해볼까?’
이건 비서에게 맡길 수 없는 종류의 조사다. 이건 좀 더 가문 깊숙한 곳의 인물에게 맡겨야 한다.
아직 비서가 알아선 안 되는 정보니까.
"그 정도면 됐으니까 이제 주변 인물에 대해 조사해.”
"가신 가문까지 포함할까요?”
"그건 안 되지. 아무리 가신 가문이라고 해도 함부로 뒤를 캐면 좀 그렇잖아. 가신 가문은 빼고 그 윌렉스인가 하는 가문까지 캐는 걸로 하지.”
"예. 바로 조사하겠습니다.”
앞으로 비서가 할 조사는 그동안 반태수와 한 번이라도 엮였던 모든 인물과 조직을 포함할 것이다.
비서는 그 모든 인물과 조직을 아주 낱낱이 파헤쳐 완벽한 보고서를 작성하겠다고 다짐을 거듭했다.
***
반태수를 태운 비행선은 동굴폭포를 향해 날아갔다.
듀라디스에서 동굴폭포까지는 꼬박 이틀을 비행해야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이동한다는 가정 하에.
비행선의 특수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행선의 연료는 마력이다. 마법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다.
반태수는 가는 내내 비행선에 쓰인 마도구들을 머릿속에 열심히 넣으면서 분석했다.
일단 분석은 설렁설렁 했다. 두뇌를 하나 할당하긴 했지만 분석보다는 기억에 더 집중했다.
비행선의 핵심은 부유 마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마법들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른 모든 마법들이 부유 마법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연결에는 전자장비까지 동원되었다.
그래서 반태수는 전자장비까지 분석해야 했다.
정확히는 전자장비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재현할 때는 꼭 전자장비를 쓰지 않아도 된다.
반태수는 그 모든 걸 마법으로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비행선에 적용된 마법이 워낙 많고, 마도구로 쓴 부품도 많아서 그 모든 것의 보안을 뚫고 술식을 확인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같은 계열의 부품들은 보안도 비슷해서 뚫는 시간을 좀 줄일 수 있고, 적용한 술식은 결이 같기에 분석도 좀 수월해서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이 너무 많아서 도시 주위를 빙빙 돌던 나흘에 동굴폭포까지 이동하는 이틀을 더해도 일을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반태수는 걱정하지 않았다. 남은 건 돌아가면서 하면 되니까.
이렇게 되고 보니, 살라자 샤마쉬가 비행선을 열흘 정도 빌려주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만일 정말로 몇 시간 구경만 하고 말 거였으면 부유 마법진 말고는 거의 얻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게 열심히 분석하고 기억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동굴폭포에 도착했다.
***
"와아!”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비행선의 3층에서 내려다보는 동굴폭포는 심장을 짓누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엄청난 유량의 물이 굉음을 내지르며 쏟아진다.
그리고 쏟아지는 물 뒤에 마치 점처럼 콕콕 찍힌 무수한 동굴이 보였다.
마법의 경지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육체도 좋아졌다.
시력이나 청력, 그리고 근력이 향상되었다.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이 워낙 많아서 보통 사람이라면 그 뒤를 꿰뚫어보기 어렵겠지만, 반태수는 제법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오길 잘했네요.”
반태수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뒤에는 승무원 한 명이 서 있었다.
혹시 시킬 일이 있을지도 몰라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그 승무원은 반태수에게 비행선을 타고 어디에 갈 수 있는지 설명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반태수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승무원도 기분이 좋아졌다.
"제법 장관이지요? 저도 이제 두 번째입니다만, 또 이렇게 압도당하네요.”
반태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아마 나중에 다시 와도 같은 감정을 느끼리라.
"세계수도 이런 느낌입니까?”
"세계수는 이것과는 좀 느낌이 다릅니다. 뭐랄까…… 굉장하긴 한데 압도당하기보다는 포근하다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승무원은 그렇게 말하고 얼른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승무원들도 전부 그렇다고 했습니다.”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라는 뜻이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짝 고민했다.
세계수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벼락숲도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곳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다.
"혹시 세계수하고 벼락숲이 어디쯤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승무원이 부드러우면서도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좌표를 기록해 뒀습니다. 여기도 좌표를 기록했기에 바로 올 수 있었죠. 2층으로 내려가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다른 곳들의 좌표도 혹시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기본적으로 반태수의 마음을 움직인 건 세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곳에 대한 흥미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아마 그 좌표를 찍기 위해 살라자 샤마쉬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비행선에서 보냈을 것이다.
그런 정보를 알려주겠다는데, 관심이 없어도 일단 받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나중에 그것들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당장 내려가죠. 좌표 필요합니다. 언제 또 이런 비행선을 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승무원은 반태수와 함께 아래로 내려간 다음, 조종실로 향했다.
조종실의 메인 컴퓨터에 필요한 좌표는 전부 기록되어 있었다.
반태수를 살라자 샤마쉬와 똑같이 대하라고 했기에 조종사들도 흔쾌히 좌표 리스트를 뽑아서 건넸다.
물론 이에 관한 살라자 샤마쉬의 언질이 따로 있었기에 챙겨준 것이기도 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살라자 샤마쉬는 고작 비행선 열흘 빌려주는 것만으로는 보상이 한참이나 모자란다고 여겼다.
좌표의 공개는 그래서 취한 조치 중 하나였다.
사실 살라자 샤마쉬는 은근히 반태수가 비행선을 탈취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게 훨씬 더 재미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튼 좌표를 받은 반태수는 슬슬 비행선에서 내려 저 폭포 뒤에 있는 동굴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비행선은 천천히 폭포 위쪽에 착륙했다.
그곳에는 마치 섬처럼 거대하고 평평한 바위가 박혀 있었는데, 비행선을 착륙하기에 딱 좋았다.
비행선의 문이 열리고 반태수가 내렸다.
살라자 샤마쉬는 여기에서 어떻게 폭포 뒤에 있는 동굴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반태수에게는 아주 간단했다.
반태수는 가볍게 날아오른 다음 폭포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냥 날아서 간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승무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뛰어난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날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할 줄은 몰랐다.
반태수는 승무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폭포 뒤에 있는 동굴 중 어디로 들어갈지 고민했다.
허공에 뜬 채 동굴들을 찬찬히 살펴보는데, 뭔가 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동굴이 있는 위치는 정말로 중구난방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뭔가 규칙이 있을 것 같았다.
반태수는 뒤로 쭉 물러났다. 폭포를 맞으며 그곳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좀 더 멀리서 동굴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새로운 지식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