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13화 (113/351)

113화.  < 살라자 샤마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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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자 샤마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스탁 메르서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빨리 성공할 줄은 몰랐군.”

"운이 좋았습니다.”

살라자 샤마쉬는 차단막에 갇힌 보라색 액체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범위를 저기로 설정한 이유가 저 나노머신 때문인가?”

고스탁 메르서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예. 일단은 맞습니다.”

"어떻게 알았나?”

"운영실장을 감시하다가 알아냈습니다.”

고스탁 메르서는 반태수와 미리 말을 맞춘 대로 대답했다.

살라자 샤마쉬가 고개를 돌려 고스탁 메르서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어딘가 묘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알아보니 좀 허술한 놈이긴 하더군.”

고스탁 메르서는 대꾸하지 않았다. 말을 많이 해봐야 이쪽의 속내만 드러난다.

지금은 반태수가 드러나지 않게 도와주고 있는 입장이니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살라자 샤마쉬의 시선이 다시 나노머신 쪽으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저 나노머신을 온전히 가져가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반태수와 어느 정도 얘기가 된 상태였다.

"저 차단막에 작은 구멍을 낼 수 있습니다.”

"호오. 그게 가능하다고?”

"예. 다만 오랫동안 유지하지는 못합니다.”

구멍은 잠깐 열렸다가 닫힐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차단막은 사라질 때까지 그냥 방치해 둬야 한다.

두 달 정도 걸릴 것이다.

"그러니까 미리 용기를 구멍에 대고 있으면 저놈이 알아서 거기로 달려들겠군.”

"예. 아마 구멍이 뚫리면 내부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공기 흐름이 변할 테니 분명히 그럴 겁니다.”

고스탁 메르서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살라자 샤마쉬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성공한다면 내가 큰 상을 내리지.”

"감사합니다.”

고스탁 메르서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자신의 일에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5대 가문의 직계 중 한 명인 살라자 샤마쉬, 말 한 마디로 자신을 짓눌러 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럼 일단 나노머신부터 수거해 볼까? 지금 당장 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살라자 샤마쉬를 호위하던 사내 한 명이 비행선 안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나노머신을 담을 용기였다.

투명한 용기였는데, 유리는 아닌 것 같았다. 뭔가 특이한 재질로 만들어진 용기였다.

뚜껑도 없었다. 이음새가 없는 그냥 통짜 원통형 용기였다.

"위치는 아무데나 상관없으니 되도록 저 나노머신이 있는 장소에 갖다 대는 게 좋습니다.”

사내는 용기를 보라색 액체가 꿈틀거리는 곳에 갖다 댔다. 그러자 차단막에 닿은 부분이 천천히 열렸다.

마치 얇은 얼음이 중간부터 녹아서 사라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괜찮지? 이번에 내가 특별히 제작한 나노머신 수급 용기일세. 연구에 돈 좀 썼지.”

살라자 샤마쉬는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연구에 돈을 투자해서 여러 결실을 맺었다.

이번에 쓴 특수 EMP도 그 중 하나였다.

고스탁 메르서는 살짝 감탄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럼 구멍을 열겠습니다.”

아마 용기의 입구보다는 작은 구멍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모든 나노머신이 알아서 용기 안으로 들어가리라.

고스탁 메르서는 복잡한 계산 끝에 술식 하나를 완성했다.

작지만 복잡한 마법진을 그렸고, 즉시 마법을 발현했다.

그 마법은 차단막과 연결되어 있었다.

샤아아아.

작은 구멍이 하나 생겼다. 정확히 보라색 액체가 있는 곳이었다.

보라색 액체는 구멍이 생기자 그 안으로 맹렬히 달려들었다.

용기의 입구가 다시 막혔다. 마치 아까 녹았던 얼음이 다시 생성되는 것처럼.

살라자 샤마쉬가 환하게 웃었다.

"이로써 완벽한 나노머신까지 손에 넣었군.”

나노머신에 대한 대응책을 세울 좋은 패들이 손에 들어왔다.

살라자 샤마쉬가 고스탁 메르서를 바라봤다.

"이번에 연구보조를 둘이나 썼다고 들었는데.”

"예. 맞습니다. 한 명은 아쉽게도 나노머신에 감염되어서……."

살라자 샤마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게. 잘 데리고 있을 테니. 걱정할 만한 일은 없을 테고. 그 마법사도 감염되고 싶어서 감염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살라자 샤마쉬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나머지 한 명에게 관심이 좀 있네. 이름이 반이라고 했던가?”

"예. 크랙톤에서 온 연구 마법사입니다. 실력이 상당합니다. 연구보조로 쓰기에는 아까울 정도입니다.”

"이번 연구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겠군?”

"예. 이렇게 연구가 빨리 마무리된 것도 전부 반 마법사 덕분입니다. 술식 계산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릅니다.”

막상 반태수에 대해 말하다보니 칭찬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말하고 나서도 아차 했다. 좀 더 신중하게 말을 골랐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그 마법사는 지금 어디 있나?”

"테스트 때문에 너무 피곤해 보여서 돌려보냈습니다.”

살라자 샤마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테스트는 성공적이었으니 이제 남은 건 술식을 정리하는 것뿐인가?”

"예. 최대한 빨리 술식을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좋아. 기대하지. 그건 그렇고 이제 연구실로 돌아갈 건가?”

"예. 그래야지요.”

"그럼 내가 태워주지. 비행선에 타게.”

살라자 샤마쉬의 말에 고스탁 메르서가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고는 비행선에 올라탔다.

그 뒷모습을 보던 살라자 샤마쉬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고스탁 메르서를 아주 구워삶아 놨네. 더 궁금해지는데?”

***

반태수는 호텔로 돌아와 에트가에게 붙인 마킹을 확인했다.

에트가는 지금 온갖 치욕과 고통은 다 당하는 중이었다.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 전부 무언가를 꽂은 채, 치아를 하나씩 검사 받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폭발물이나 독극물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마력 스캐너까지 동원해 마법을 이용한 장치가 있는지도 확인하는 중이었다.

반태수는 영역화의 범위를 넓혀봤다. 장소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에트가 주변에서 그의 몸을 검사하는 자들은 마치 우주복 같은 복장으로 온몸을 빈틈없이 가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나노머신이 튀어나올 때를 대비한 모양이었다.

장소는 제법 컸고, 한쪽 벽이 통짜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리 밖에는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검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상당히 큰 건물이었다.

영역화를 더욱 확장해 범위가 건물을 벗어날 정도가 되었다.

한데 그와 비슷한 모양의 건물들이 주변에 여러 채 있었다.

영역화를 더 확장했다.

높다란 담장이 나왔다. 담장이 둘러싼 안쪽에 있는 건물들은 전부 비슷한 용도로 만든 듯했다.

안에 설치한 장비나 구조가 다들 비슷했다.

근처에 있는 건물 하나에서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다.

‘운영실장이네.’

운영실장 역시 에트가와 비슷한 몰골이었다.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 전부 무언가를 꽂은 채 무언가를 당하고 있었다.

아마 나노머신과 관련된 실험이리라.

영역화를 더 확장하고 싶었지만, 위상을 뒤집은 상태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만큼 이곳의 영역이 넓었다.

반태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영역화의 위상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러자 빠르게 영역이 확장되었다.

주변 지형을 비롯해 건물의 모양과 위치를 빠르게 파악했다.

그때 안쪽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력 반응이다! 타노로스 놈이 마법을 썼어!”

반태수는 그 외침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저들이 말하는 마법이라는 것은 분명히 영역화다.

위상을 원래대로 되돌리자마자 알아차린 걸 보면 마법 감지 시스템이라도 깔려 있는 모양이다.

반태수는 얼른 다시 위상을 뒤집었다.

마력 반응이 싹 사라지면서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당황하며 우왕좌왕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일단 주변 지형은 머릿속에 기억해 뒀다.

찾고자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리라.

반태수는 영역화를 취소하고 감시를 중단했다.

아마 저곳에서 나노머신을 연구하려는 모양이다.

연구단지 규모를 보니 준비한 지 꽤 오래 된 듯했다.

아무튼 저들은 마력차단으로 가둬놓은 나노머신까지 손에 넣을 테니 다양한 실험을 통해 나노머신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시간이 지나 저들이 이것저것 분석한 결과를 만들어냈을 때, 슬쩍 가서 데이터만 빼와도 된다.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목에 찬 아공간 팔찌를 쓰다듬었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연구를 하겠지만.’

나노머신 연구는 이면세계에서 할 생각이 없었다.

연구하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여기서 그걸 꺼낸단 말인가.

그건 지구에 가서 할 것이다.

결코 신호를 보낼 수 없을 테니까.

오늘은 이쯤하고 쉬어야겠다. 반태수는 침대에 누웠다.

잠을 자려는 건 아니다. 아직 저녁도 안 먹었다. 오늘은 저녁도 푸짐하게 먹고 가볍게 술도 곁들일 것이다. 그래도 되는 날이다.

지금은 밥 먹으러 가기 전까지 잠시 누워있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누워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반태수는 반사적으로 영역화를 펼쳤다.

원래는 항상 펼쳐놓는데, 마킹한 쪽을 살핀다고 이쪽을 소홀히 했다.

영역화 안에 많은 사람들이 포착되었다.

평소에는 이 정도로 사람이 많지 않다. 명백히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반태수의 경각심이 높이 치솟았다.

문 앞에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경호원으로 보였다. 상당한 능력자였다.

그리고 한 사람은 뭔가 느낌이 묘한 사람이었다. 다양한 마도구를 장착하고 있었는데, 영역화가 뚫지 못하는 강력한 보안 마법이 주위를 두르고 있었다.

조금 더 신경 쓰면 보안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왠지 찾아온 사람의 정체를 알 것 같아서였다.

잠시 고민했다.

‘그냥 도망칠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건, 이미 다 털렸다는 뜻이다.

아마 크랙톤으로 돌아가도 또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훨씬 귀찮아질 테고.

반태수는 침대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아직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일단 언제든 마법을 쓸 수 있도록 준비했다. 물론 내구력 강화를 몸에 거는 것도 잊지 않았고.

철컥.

문을 여니 바로 앞에 붉은 머리를 한 중년인이 보였다.

"반갑군. 난 살라자 샤마쉬라고 하네.”

반태수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얼른 떠오르지 않아 잠시 뜸을 들이다가 저 사람이 한 것처럼 자기소개를 했다.

"반입니다.”

"들어가도 되나?”

"들어오시죠.”

어차피 안 된다고 했어도 들어왔을 것이다.

살라자 샤마쉬는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그의 뒤로 두 명의 경호원이 절도 있는 자세로 서서 반태수를 바라봤다.

한 명은 반태수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고, 다른 한 명은 사방으로 신경을 분산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미리 대비하는 모양이다.

반태수는 살라자 샤마쉬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혹시 내가 누군지 알겠나?”

"글쎄요. 잘 모르겠지만, 보통 분은 아니신 것 같군요.”

살라자 샤마쉬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마치 다 알지만 모른 척 해주겠다는 듯한 미소였다.

"내가 이번 연구의 의뢰자네.”

"아, 그렇군요. 연구를 누군가의 의뢰로 하는 건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은 모르쇠로 나간다. 하지만 표정과 눈빛을 보아하니 하나도 안 먹힌 모양이다.

살라자 샤마쉬는 담담히 하고자 하는 말을 했다.

“고스탁 메르서는 아주 뛰어난 연구 마법사지. 인성도 훌륭하고 연구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그리고 아주 순수하지."

살라자 샤마쉬는 반태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속인다거나 함정을 파서 무언가를 얻어낸다거나 하는 일에는 서툴기 그지없지.”

그래서 이번 일의 설계자가 따로 있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난 자네라고 믿고 있는데, 아닌가?”

반태수는 더 이상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제가 약간 도움을 드리긴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는지 살라자 샤마쉬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나한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네. 그래서 보상을 하려고 해.”

"그냥 어쩌다 보니 결과가 이렇게 나왔을 뿐입니다. 굳이 따로 보상을 안 챙겨주셔도 됩니다.”

상대가 가신가문 정도만 되었어도 좋다고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5대 가문이라고 하니 왠지 내키지 않았다.

"자네를 귀찮게 하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그냥 간단한 보상을 주려고 찾아왔을 뿐이야.”

살라자 샤마쉬가 그렇게 말하고 턱짓을 했다.

그러자 계속 반태수만 보고 있던 경호원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고급스러운 조각으로 장식된 적당한 크기의 상자였다.

재질은 나무였는데, 보통 나무가 아닌 듯했다.

경호원이 반태수에게 공손히 상자를 내밀었다.

반태수는 그것을 받아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금속카드가 가득했다. 재질은 백금으로 보였다.

카드 하나를 꺼내 확인해보니 금속으로 만든 수표였다.

예전에 봤던 황금수표와 똑같은 모양인데, 재질과 금액만 달랐다.

‘10억?’

하나에 10억짜리 백금수표였다. 그것이 상자에 가득했으니 대충 봐도 300억은 훌쩍 넘었다.

"고작 그걸로 보상을 마무리할 생각은 없네. 혹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게. 적당한 수준이면 들어주지. 음…… 크랙톤에 있는 적당한 건물 한 채를 받는 건 어떤가?”

반태수는 순간 멈칫했다. 지금 이 돈을 고작이라고 표현했으니 건물의 가격은 이보다 훨씬 비쌀 것이다. 어쩌면 중심지에 있는 수십 층짜리 건물일지도 모른다.

5대 가문이라더니 스케일이 다르시다.

하마터면 그러겠다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었다.

"비행선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살라자 샤마쉬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걸 대가로 받고 싶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살라자 샤마쉬가 피식 웃었다.

"열흘 정도 내 비행선을 빌려주지. 조종사와 승무원들도 빌려줄 테니 마음껏 타보게."

반태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마터면 벌떡 일어날 뻔했다.

이래저래 이번 의뢰는 얻어가는 것이 참으로 많은 기분 좋은 의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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