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 마법 테스트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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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차단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백 개가 넘는 마법진을 동시에 운용해야 한다.
게다가 각각의 마법진마다 운용하는 방식이나 발현 속도가 달랐다.
그러니 마법사가 혼자서 그걸 다 컨트롤 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의 반태수로서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그건 고스탁 메르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미리 술식을 새긴 마도구를 준비해 마법 발현에 걸리는 부하를 적절히 분산했다.
다만 마도구에는 복잡한 마법을 부여하진 못했다. 아예 컨트롤하지 않고 그냥 마법이 흘러가게 방치할 계획이었기에 되도록 단순한 마법만 마도구의 힘을 빌렸다.
그것만으로도 부하가 확 줄어들어서 고스탁 메르서와 반태수가 나머지를 모두 감당할 수 있었다.
정교한 계산에 의해 정해진 자리에 마도구들이 놓였다.
그것들이 일제히 발동했다.
반태수와 고스탁 메르서는 정확한 타이밍에 나머지 마법들을 펼쳤고.
범위가 정해지며 마력이 물처럼 흘러 그 범위를 차르르 채웠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반태수와 고스탁 메르서의 눈이 번득이며 주변을 마력으로 가득 채웠다.
타겟을 꽉 채웠던 마력의 형질이 사르르 바뀌었다.
시뮬레이션에서 푸른 마력이 붉게 변하던 것처럼.
그리고 정확히 계산한 범위를 특별한 힘이 감싸며 경계를 만들었다.
고스탁 메르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공이다!”
반태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마력으로 차단한 곳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금 마력으로 차단한 곳은 바닥에 나노머신으로 이루어진 얇은 막이 깔린 장소였다.
정확히 그 막이 퍼져 있는 범위를 감싸 차단한 것이다.
마력차단은 그냥 단순한 차단과는 달랐다. 경계를 이루는 것은 일종의 차원을 가르는 막과 비슷했다.
안에 있는 것은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빛이 투과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마법이었다.
마법을 재현하는 것과 마법의 성질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좀 다르지만, 반태수는 이 마법의 성질에 대해 대부분 파악했다.
지금 저 차단막 안쪽이 보이는 건 빛이 투과되어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차단막 자체에 내부의 모습을 외부로 보여주는 기능이 섞여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 빛을 이용해 신호를 주고받는다거나 하는 건 불가능했다.
"자네 덕분일세.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성공하는 건 불가능했겠지.”
반태수가 아니었으면 마법 실험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스탁 메르서는 차단막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차단막 안에 갇힌 땅에서 뭔가가 촤악 솟아났다.
보라색 액체였다.
갑자기 허공에 훅 떠오른 보라색 액체에 고스탁 메르서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저게…… 대체 뭐지?"
보라색 액체는 빠르게 허공을 날아 차단막에 달라붙었다.
차단막을 뚫으려고 꿈틀거렸지만, 아무소용 없었다.
거기를 못 뚫으니 다른 곳으로 획 날아가 또 차단막에 철벅 부딪혔다.
보라색 액체는 그런 식으로 연이어 차단막을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고스탁 메르서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휙 돌려 반태수를 바라봤다.
"설마 저게 그 나노머신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자신의 아공간에 있는 보라색 액체와 똑같은 놈이다.
한데 차단했다고 해서 저렇게 날뛸 줄은 몰랐다.
하는 걸 보면 갇힌 곳에서 빠져나가려고 용을 쓰는 것 같은데, 자신이 갇혔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저건 마력차단이라서 눈으로는 구분할 수도 없고, 안에서 쏘는 전파 같은 것도 전부 차단되는데 말이다.
‘아, 그래서 그런 건가?’
너무 완벽하게 차단을 해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없게 되는 바람에 저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가 끊어지면 자동으로 발동되는 행동양식 같은 건가보다.
예를 들면 근처에 있는 생명체에 침투하라거나.
"이제 어쩌지?”
반태수가 씨익 웃었다.
"정리해야죠.”
이번엔 굳이 자신이 나설 생각이 없었다. 5대 가문에서 나온 사람이 있으니 그의 능력을 확인할 차례였다.
반태수는 빠르게 마법을 펼쳐 비행선에서 보는 글자들을 바꾸었다.
그건 이번 일을 계획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인 타노로스의 조직원이 있는 장소, 그리고 운영실장이 있는 장소였다.
당연히 관련 내용도 함께 곁들였다.
그 순간, 비행선이 빠르게 어딘가로 날아갔다.
"우린 여기서 좀 기다리죠.”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타노로스의 조직원에게 붙인 마킹을 통해 그쪽을 확인했다. 이미 영역화를 펼친 상태인지라 바로 자세한 확인이 가능했다.
이제 5대 가문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문득 마법사 전용 게시판에서 봤던 글이 떠올랐다.
글 내용만 보면 정말 무식하게 처리한 것 같았는데, 과연 이번엔 어떨지 모르겠다.
***
에트가는 고스탁 메르서 일행을 태우고 이동하던 차량이 멎었을 때, 살짝 당황했다.
너무나 낯익은 장소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자신이 사람들을 만날 때 쓰는 공터다.
도시에서 버려진 공터.
그리고 나노머신을 바닥에 깔아놓은 곳이기도 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한 것이다.
아지트는 굳이 거기에 만들지 않았다. 아니, 사실 에트가는 이 도시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여긴 목적이 있어서 왔을 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에트가는 저들이 저곳에 도착한 것이 우연이라고 여겼다.
도시에서 버려진 넓은 공터이니 마법 테스트를 하기에는 적격인 장소이기도 했으니까.
"어? 뭐야? 왜 저 놈만 놓고 가?”
차를 지키고 있으라는 말을 들었지만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저기 올 사람이 누가 있다고 차를 지킨단 말인가.
"하여간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은 그냥 지켜보면서 기회를 살펴야지.
그나마 마티아스 파사르가 일행만 노려보다시피 하고 있어서 감시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살라자 샤마쉬만 확인하면 바로 행동에 들어가면 되는데.’
솔직히 장소가 저기라서 상황 자체는 더 좋아졌다.
저곳에는 이미 나노머신이 깔려 있었으니까.
살라자 샤마쉬의 신경이 분산되었을 때, 뒤에서 덮치면 아무리 그라고 해도 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문제는 살라자 샤마쉬가 당한 후였다.
그가 가문에 피해를 끼치기 싫다고 자폭이라도 하면 말짱 꽝이다.
물론 5대 가문의 직계 중 하나를 처리했다는 공은 남겠지만, 과연 조직에서 그걸 공이라고 인정해 줄지는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냥 기회만 하나 날렸다고 여길 가능성도 있었다.
5대 가문에서 살라자 샤마쉬처럼 외부 활동이 왕성한 자는 굉장히 드무니까.
"일단…… 좀 더 잘 보이게 시신경부터 강화해 볼까?”
나노머신을 이용해서 마티아스 파사르의 시신경을 강화했다. 그리고 청각세포도 강화했다.
"멀리도 갔네.”
시신경을 강화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기대했던 것보다 효과가 떨어졌다.
청각세포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마법을 이용해 소리를 차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여튼 마법사 놈들은 겁먹은 쥐새끼처럼 조심성이 너무 많아.”
그래도 최대한 신경을 써서 그쪽을 관찰했다.
"음?"
한데 뭔가 변화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색이 좀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뭐야, 설마 벌써 마법 실험을 하는 거야? 그럼 살라자 샤마쉬는? 안 오는 건가? 아…… 이러면 곤란한데."
굉장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
솔직히 고스탁 메르서의 조심성이 지나칠 정도로 심했다. 그래서 기대를 좀 했다.
연구 마법사가 저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건,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살라자 샤마쉬일 테고.
한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금만 더 잘 보이면 뭔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눈에 힘까지 주면서 열심히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태블릿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삐이익!
에트가는 깜짝 놀라 태블릿을 확인했다. 화면 한구석에서 경고등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걸 터치하니 화면이 떠오르면서 나노머신과의 연결이 끊어졌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뭐? 이게 뭐야!”
방금 연결이 끊어진 나노머신은 공터에 깔아둔 것이다.
나노머신은 연결이 끊어지면 최대한 빠르게 숙주를 찾도록 정해져있다.
공터에 가장 가까이 있던 자들은 고스탁 메르서와 그의 연구보조 둘뿐이니 둘 중 하나의 몸으로 들어갔어야 정상이다.
한데 여전히 아무 신호도 잡히지 않는다.
신호가 끊어졌다는 것은 신호가 끊어질 만한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EMP가 터졌다거나, 아니면 신호를 완벽하게 차폐하는 용기에 담겼다거나.
나노머신과 주고받는 신호는 여러 가지다. 단순히 전파로만 신호를 주고받지 않기에 금속으로 전파를 차폐하더라도 신호가 바로 끊어지지 않는다.
만일 EMP로 인해 신호가 끊어졌다면, 나노머신이 바로 움직여 누군가의 몸으로 침입했을 것이다. 한데 그런 기미가 없다.
‘그럼 나노머신을 그놈들이 확보한 건가? 대체 어떻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인지라 얼른 대응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굉음이 울렸다.
꾸우우웅!
무언가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너무나 잘 안다.
"시발, EMP?"
EMP가 터졌다.
태블릿이 팍 하고 꺼졌고, 집안의 전등이 모조리 나가 버렸다.
전등뿐이라, 전자제품들이 전부 먹통이 되어 버렸다.
꽈앙!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벽이 부서지며 무언가가 짓쳐들어왔다.
에트가는 마력을 움직여 얼른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장비가 없는 그는 지극히 평범한 능력자일 뿐이었다.
꽈득!
숨이 턱 막혔다. 상대의 어깨가 명치에 틀어박힌 것이다.
온몸이 경직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제야 자신을 들이박은 상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온몸에 착 달라붙는 재질의 검은 옷을 입은 사내였다.
입과 코까지 가려져 있어 드러난 것은 눈뿐이었다.
검은 옷의 사내가 에트가의 목을 콱 틀어쥐었다.
"드디어 하나 잡았다.”
사내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그는 다짜고짜 에트가의 옷을 모조리 뜯어버렸다. 그리고 혹시 몸에 지니고 있는 다른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발견하는 즉시 제거했다.
그렇게 에트가를 홀딱 벗긴 다음 뒤로 휙 던졌다.
언제 들어왔는지 두 명의 사내가 똑같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들이 날아오는 에트가를 가볍게 받았다.
"구멍이란 구멍은 싹 조사해. 이빨도 하나하나 검사하고. 간신히 잡았는데 또 폭발해 버리면 안 되니까.”
두 사내 중 한 명이 살짝 고개를 숙인 다음 에트가를 들고 물러갔다.
"다른 쪽은?”
"성공했습니다. 의복을 비롯한 모든 것을 제거하고 정밀 검사 중입니다.”
"좋아. 그럼 나노머신에 당한 놈은?”
"이 도시에 만들어둔 안가로 보냈습니다. 나노머신이 어떤 식으로 인체에 작용하는지 확인하라고 지시해 뒀습니다.”
“잘했군. 그럼 모두 해결되었으니 난 다시 비행선으로 가야겠군. 그분께서 직접 내려가 보고 싶으신 모양이야.”
"당연히 그러시겠죠. 원체 호기심이 많으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 호기심이 이번에 큰 역할을 했어.”
사내의 눈이 또 한 차례 초승달처럼 휘었다.
***
고스탁 메르서는 차단막에 달라붙은 채 꿈틀거리고 있는 보라색 액체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보라색 액체는 한참 동안 사방 벽을 부술 듯 들이박더니 이제 저렇게 달라붙은 채 꿈틀거리기만 할 뿐,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 아무래도 에너지가 떨어져서 이러는 거 같은데?”
나노머신이 어떤 식으로 에너지를 수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방식이든 저 차단막 안에서는 아무소용이 없다.
모든 방식의 에너지를 차단해 버릴 테니까.
아무튼 고스탁 메르서는 신기한 눈으로 보라색 액체를 관찰했다.
그리고 반태수는 그 사이 마킹해뒀던 에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과연 5대 가문에서 그를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지 궁금했으니까.
영역화를 통해 다양한 정보가 갑자기 확 밀려 들어왔다.
‘일단 EMP 한 방, 이거 보통 EMP가 아닌데? 마력까지 썼어.’
단순히 전자장비에만 작동하는 EMP가 아니었다. 마도구도 한동안 무력화 시킬 수 있는 EMP였다.
게다가 신체에도 작동한다. 자신은 잘 못 느끼겠지만 신체의 모든 반응이 느려진다.
반태수는 EMP가 터진 이후의 상황을 쭉 확인했다.
타노로스의 조직원은 정말 무력하게 당했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운영실장도 사로잡혔다는 걸 알아냈다.
이쪽에 있던 마티아스 파사르는 이미 누군가 와서 데려간 지 오래였다.
반태수는 고스탁 메르서에게 말했다.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응? 간다고? 벌써?”
"손님 오실 거잖습니까. 전 이제 빠지는 게 낫죠.”
고스탁 메르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하게.”
"차는 놓고 가겠습니다.”
"가져가게. 나야 비행선을 타고 갈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리고 설사 비행선을 못 탄다고 해도 조금만 걸어 나가면 도로가 나오니 택시를 부르면 된다.
“그럼 차는 제가 연구소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그 다음에 호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오늘 정말 수고했네. 얼른 돌아가서 쉬게.”
반태수는 빙긋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차를 타고 그곳을 얼른 떠났다.
잠시 후, 비행선 한 대가 빠르게 날아왔다.
그리고 고스탁 메르서 근처에 천천히 착륙했다.
이내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붉은색 머리를 한 중년인 한 명이 내렸다.
그는 고스탁 메르서를 보며 빙긋 웃었다.
"오랜만이군."
고스탁 메르서는 그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