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 마법 테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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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실장은 오늘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했다.
그는 집으로 가면서 현재 고스탁 메르서가 있는 장소에 설치한 도청장치와 이어폰을 연결했다.
그걸 들으면서 차를 몰았다.
정말 별 내용 없었다.
"정말 의미 없다. 뭔 놈의 잡담을 이렇게 오래 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도착한 운영실장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몇 가지 장치를 켠 다음, 전화를 걸었다.
- 무슨 일이지?
“도청장치가 더 필요합니다.”
운영실장의 말에 상대 쪽에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불쾌한 감정이 전화기를 통해 넘실넘실 넘어오는 듯했다.
운영실장은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고스탁 메르서가 이번 연구를 끝내고 테스트에 들어갈 모양입니다.”
- 그래서?
"한데 테스트 장소를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자들끼리 의논을 하는 모양인데, 이것들이 요즘 자꾸 공원으로 들어가서 대화를 엿들을 수가 없습니다.”
- 공원에 미리 도청장치를 잔뜩 뿌려두겠다, 이건가?
"예. 맞습니다.”
- 좋아. 보내주지. 5시간 후에 약속장소로 나와라.
“알겠습니다!”
운영실장은 전화를 끊고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소파에 축 늘어졌다.
마음 같아선 맥주라도 한 캔 마신 다음 쭉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5시간 후에 약속장소에서 만나려면 3시간 후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 3시간 동안 오늘 도청 자료를 정리해서 기존 데이터와 함께 제출해야 한다.
‘그나저나…… 너무 흔쾌히 허락했는데?’
애초에 받은 도청장치의 수가 제법 많아서 추가로 받는 것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한데 너무 간단히 승낙을 받았다.
‘설마 이번에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한 건가?’
어쩌면 이번에 고스탁 메르서가 하려는 테스트가 자신에게 맡긴 임무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답답했다.
자신에게는 앞뒤 다 잘라먹고 그저 고스탁 메르서를 감시하라는 임무만 던져줬다.
대체 뭘 찾아내라는 건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연구 자료를 빼돌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감시만 하면 되니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운영실장은 고스탁 메르서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일 정리해서 보고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쪽에서 알아서 움직일 거라 예상했는데, 오늘 한 보고가 바로 그 특별한 일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과연 그게 뭘까?
운영실장은 궁금했지만 이내 상념을 털어버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할 일은 해야 하니까.
***
‘드디어 잡았다.’
반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끈질기게 감시하면 분명히 걸려들 거라 믿었다.
상대의 정체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이제 곧 알게 되리라.
‘다섯 시간이라고 했지?’
다섯 시간 후에 약속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상관없다. 따라가면 되니까.
그러려면 일단 운영실장의 집으로 가야 한다. 근처에 숨어 있다가 운영실장이 움직이면 따라붙기로 했다.
반태수는 느긋하게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운영실장의 집으로 향했다.
적당한 장소에서 왜곡을 걸어 모습을 감췄다.
오늘은 일이 끝날 때까지 이 상태로 있어야 한다.
반태수는 운영실장이 만날 놈이 과연 누구일지 궁금했다.
일단 5대 가문일 확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지극히 낮다는 건 인정했다.
남은 건 타노로스 아니면 제3의 조직인데, 타노로스 말고 이쪽에 접근해서 이 정도로 공을 들이며 뭔가를 해보려는 조직이 어떤 게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사실 타노로스 말고 다른 조직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다른 연구소에서 견제하기 위해 뭔가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닐까, 정도가 반태수가 끄집어낼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고스탁 메르서의 의견에 따르면 그건 가능성이 정말 낮다고 한다. 심지어 5대 가문일 가능성보다 그게 더 낮을 거란다.
만일 다른 연구소가 개입되어 있다면, 그 뒤에 또 다른 조직이 있을 거라고 했다.
연구 마법사들은 이런 일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연구 말고 다른 일에 심력을 쏟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이동하던 반태수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운영실장의 집에 도착했다.
따로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이동했기 때문에 시간이 제법 걸렸다.
사실 차보다 더 빨리 이동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5시간 동안 버텨야 하는데 서두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운영실장의 집 근처에 도착한 반태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한참 기다리니 운영실장이 집에서 나왔다.
반태수는 얼른 움직여 그의 차량 지붕에 올라갔다. 사실 아예 차에 탈까도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내 차가 출발했다.
반태수는 지붕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았다. 버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마법을 이용했으니까.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다. 한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도 차가 여전히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더 이동했을까. 이내 차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것이다.
정말 인적 드문 곳이었다. 여긴 공원도 뭣도 아니었다. 그냥 방치된 공터였다.
굉장히 넓었고, 몸을 숨길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저 멀리 별처럼 점점이 빛을 뿌리고 있는 도시의 빌딩들이 까마득하게 멀리 보였다.
차를 세운 운영실장은 스마트폰을 꺼내 앱 하나를 실행했다. 현재 위치와 목표가 되는 위치를 표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네비게이터와는 달랐다. 근처가 아니면 작동하지 않기에 이 공터까지 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운영실장은 다시 차를 움직였다.
스마트폰을 보며 방향을 가늠해 조금씩 핸들을 틀던 운영실장은 이내 방향을 제대로 잡았는지 직진으로 쭉 이동했다.
"하여간 올 때마다 찾느라 고생한단 말이야.”
그래도 스마트폰을 보면서 위치를 찾을 수 있으니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운영실장은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20분쯤 일찍 도착했다.
아마 그는 정확한 약속시간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반태수는 영역화부터 펼쳤다.
혹시 근처에 전자장비나 기계장치가 있는지, 그리고 마력을 이용한 장비가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만일 상대가 타노로스라면 분명히 전자장비를 쓸 것이다.
그리고 예전 발드릭과 싸우면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함부로 땅에 발을 디뎌선 안 된다.
어쩌면 차량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을 감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여기서 내리면 안 된다.
반태수는 일단 영역화를 통해 주변 땅속을 훑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차량을 중심으로 땅 밑에 아주 빽빽하게 무언가가 있었다.
영역화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정확한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한데 분명히 뭔가가 있긴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얇은 막이 바로 아래에 쫙 펼쳐져 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마 그 두께를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옆에서 보면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얇았다.
반태수는 그것이 예전 발드릭에게 왜곡을 건 자신이 들키게 된 원흉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더 아래로 확장했다.
예전 발드릭과 싸웠을 때를 생각하면 이 아래에 아지트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아무리 아래로 영역화를 내려도 딱히 뭔가를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 저 얇은 막만 미리 깔아둔 모양이다.
반태수는 이제 영역화를 아래에서 회수해 주변으로 넓게 확장했다.
혹시 몰라 위상을 뒤집었기에 생각보다 멀리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반경 300미터 정도는 커버할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누군가 영역화의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마력을 품은 능력자였다.
그리고 몸 곳곳에 전자장비가 가득했다.
마도구는 하나도 없는 걸로 봐서 타노로스일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아니, 아까 바닥에 깔린 얇은 막을 확인했을 때부터 타노로스라고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렸다.
그자는 운영실장이 있는 곳을 향해 똑바로 다가갔다.
운영실장은 그자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얼른 달려가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약간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마법 테스트를 하는 건 확실한 정보겠지?”
"물론입니다. 연구가 끝났고, 그래서 마법을 테스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비밀로 했다고?”
"예. 왜 그런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동안은 이런 식으로 정보를 감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사내가 씨익 웃었다.
"뭔가 감추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이지.”
“고스탁 메르서는 마법 연구밖에 모르는 자입니다. 감출 것도 없고, 감추고자 하는 생각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건 네 판단인가?”
"제 판단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연구소에 있던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내린 판단이기도 합니다.”
사내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그런 사람은 감출 게 없을 것 같나?”
사내의 어조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운영실장은 말을 아꼈다. 저렇게 확신을 갖고 있다면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걸 받아라.”
사내는 품에서 작은 금속 큐브를 꺼냈다.
"이게…… 뭡니까?”
운영실장의 물음에 사내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스마트폰.”
운영실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사내에게 건넸다. 사실 이 스마트폰도 처음 조직에 들어왔을 때, 이 사내에게 지급 받은 것이었다.
사내는 스마트폰에 큐브를 꽂았다.
그러자 큐브의 뚜껑이 열리더니 안에서 보라색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그 액체는 허공을 유영해 스마트폰을 칭칭 감더니 스마트폰 케이스처럼 변해 뒷면에 달라붙었다.
운영실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저게 뭐란 말인가.
사내는 스마트폰을 휙 던져주었다.
그것을 받은 운영실장이 얼른 물었다.
“이게 뭡니까?”
사내는 대답 대신 자기 할 말만 했다.
"그 테스트에 함께 연구한 자들은 전부 참석한다고 했지?”
"예. 고스탁 메르서가 말한 대로라면 그렇습니다.”
"같이 연구한 건 연구보조라고 했지? 어느 정도 수준이지?”
“5서클입니다. 나머지 한 놈은 서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준은 비슷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내는 운영실장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눈짓하며 말했다.
"그게 바로 나노머신이다.”
"예? 정말입니까?”
운영실장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자신도 드디어 나노머신을 갖게 된 것이다.
"사용법은 스마트폰에 있으니 잘 숙지해라.”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그 연구보조 중 한 명에게 나노머신을 주입해.”
“아예 고스탁 메르서에게 주입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연구 마법사라지만 8서클이다. 우습게보면 곤란해. 자칫 그가 눈치라도 채면 모든 계획이 무너진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만 해."
"예. 알겠습니다.”
운영실장은 한껏 흥분한 상태였다. 자신이 드디어 타노로스라는 조직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명심해. 들켜선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
"예. 알겠습니다.”
"도청장치는 전부 회수해라. 나중에 들켜서 곤욕 치르지 말고.”
"예."
사내가 차를 향해 턱짓했다.
"가봐.”
"예.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운영실장은 정중히 인사한 후,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 위에 있던 반태수는 오만한 눈빛으로 서 있는 사내에게 마킹을 붙였다.
이내 차가 출발했다.
반태수는 사내에게 붙인 마킹을 중심으로 좁은 영역화를 펼쳤다.
이제 운영실장은 필요 없다.
저 놈이 다음 목표가 되었다.
***
운영실장은 다음 날부터 호시탐탐 나노머신을 주입할 기회를 노렸다.
나노머신을 주입하는 건 어렵지 않다. 목표를 설정하고 발사하기만 하면 빠르게 날아가 알아서 스며드니까.
다만 그 과정을 들켜선 안 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나노머신은 보라색 액체로 이루어져 있어서 날아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러니 최대한 접근해서 상대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쏴야 한다.
애초에 고스탁 메르서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기에 그가 처음 노린 사람은 반태수였다.
최근 왠지 자주 마주치는 것 같아서 접근해 보고자 했다.
한데 막상 뭔가를 해보려고 하니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반태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고스탁 메르서와 함께 보내고, 따로 떨어져 있다고 해도 쉽게 빈틈을 드러내지 않았다.
섣불리 시도했다간 들킬 가능성이 너무 높아서 결국 포기하고 마티아스 파사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티아스 파사르는 빈틈 투성이였다.
반태수를 노렸던 과거의 자신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결국 운영실장은 아무도 모르게 마티아스 파사르에게 나노머신을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도청 장치와 초소형 카메라들을 싹 수거했다.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워낙 여기저기 뿌려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정하고 나서니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부 회수할 수 있었다.
모든 임무에 성공한 운영실장은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고스탁 메르서는 드디어 마법 테스트를 위해 반태수와 마티아스 파사르를 데리고 연구소를 나섰다.
미리 준비한 차에 두 사람을 태운 고스탁 메르서는 연구소를 한 번 쳐다본 다음 차에 탔다.
이내 차가 어딘가로 출발했다.
이제 이 연구를 진짜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