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09화 (109/351)

109화.  < 연구소의 감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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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도청기 하나 발견.’

고스탁 메르서의 연구실에 도청기가 하나 있었다. 마력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기술로만 만든 도청기였다.

한데 그 크기가 워낙 작아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걸 영역화가 걸러낸 것이다.

생뚱맞은 곳에 전자장비가 있어서 확인했더니 도청기였다.

반태수는 평소에 빠져나가선 안 될 것 같은 대화가 오갈 때는 음파를 차단해 놓기에 저 도청기로 알아낼 수 있을 만한 것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도청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도 있었다.

카메라 역시 순수 기술로만 만들어진 초소형 카메라였다.

연구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는 장소에 굉장히 절묘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역시 그동안 조심하길 잘했다.

반태수는 찾은 김에 연구소 전체를 차근차근 공들여서 스캔했다.

그리고 전자장비를 들고 어딘가로 이동 중인 운영실장을 발견했다.

전자장비를 분석해보니 연구실에 있던 도청기와 똑같았다.

반태수는 운영실장이 어디로 가는지 유심히 살펴봤다.

운영실장은 분명히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이었다. 게다가 몸에 마도구 같은 건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응? 밖으로 나가네?’

운영실장은 연구소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공원으로 들어간 운영실장은 반태수의 눈에 익은 곳으로 향했다.

‘저긴…….'

예전 고스탁 메르서와 반태수가 따로 얘기를 하던 곳이었다.

큰 나무가 있고, 그 아래 벤치가 놓인 바로 그 장소 말이다.

그는 벤치 아래에 가져간 도청기를 붙였다.

반태수의 표정이 살짝 묘해졌다.

저 장소는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걸까?

반태수과 고스탁 메르서가 저기에 간 건 딱 두 번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왜곡을 걸어서 아무도 못 보게 조치를 했다.

그런데도 저기를 알아냈다는 건 멀리서 자신들을 감시했다는 뜻이다.

저 나무 아래로 두 사람이 들어가는 걸 확인한 모양이다.

도청기를 설치한 운영실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연구소로 돌아왔다.

반태수는 연구실에 앉아 있다가 운영실장이 연구소에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연구실을 나섰다.

운영실장이 엘리베이터에 타는 걸 확인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운영실장의 방은 바로 위층이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렸다.

안에 타고 있던 운영실장이 반태수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오랜만입니다.”

반태수는 그렇게 인사하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맨 꼭대기 층을 눌렀다.

"같은 건물에 있는데도 좀처럼 볼 기회가 없네요.”

반태수의 말에 운영실장이 빙긋 웃었다.

"워낙 열심히 연구에 몰두하시지 않습니까. 솔직히 한 달 동안 한 번도 못 만나는 마법사분도 있습니다."

"하긴, 그렇죠.”

엘리베이터가 한 층 올라가더니 멈췄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운영실장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내 문이 닫혔고, 엘리베이터가 다시 위로 올라갔다.

반태수는 옥상으로 갔다.

아까 운영실장과 만난 김에 마법으로 마킹을 해두었다.

그냥 마킹이 아니라 위상을 뒤집어서 영향력만 드러나게 한 마킹이었다.

마킹 역시 개선해서 영역화와 연계해서 쓸 수 있었다.

위치만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마킹을 중심으로 좁은 영역화를 펼쳐 원거리에서 정보를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반태수는 일단 감시자를 알아냈고, 그를 역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옥상에서 공원을 내려다보니 경치가 제법이었다.

연구소에서 먼 쪽에는 호수까지 조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경치를 구경하면서 운영실장을 감시했다.

그는 한창 서류를 보며 업무에 열중하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그걸로 무언가를 했다.

영역화를 통해 전자장비를 사용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전자장비가 스마트폰이라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뭘 하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영역화에 시야확보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직 거기까진 손대지 못했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추가 술식이 너무 복잡해서 영역화에 정교하게 끼워 넣기가 어려웠다.

이 역시 손봐야 할 것 중 하나였다.

그때 운영실장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젠장, 이 의미 없는 짓을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지? 고스탁 메르서는 철저한 연구 마법사라서 하는 일이라곤 진짜 연구밖에 없는데.

역시 방금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보고했던 모양이다.

누구에게 보고했는지는 대충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 고스탁 메르서에게 연구를 맡긴 5대 가문 사람일 것이다.

일단 지금 당장 반태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심하는 것뿐이었다.

반태수는 앞으로 연구소 밖 공원에서 고스탁 메르서와 대화를 나눌 때는 장소를 계속 바꾸기로 했다.

아마 공원 안에 도청장치가 제법 늘어날 것이다.

***

도청기는 고스탁 메르서의 사무실과 숙소에도 있었다.

그리고 고스탁 메르서가 이용하는 화장실과 자주 지나다니는 복도에까지 있었다.

운영실장은 퇴근 후에 그렇게 모인 모든 도청자료를 낱낱이 확인해, 혹시 특별한 일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는 자신이 역으로 감시당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즉, 반태수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뜻이었다.

반태수는 오늘 고스탁 메르서를 공원으로 데리고 갔다.

평소에 가던 장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자 고스탁 메르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반태수가 괜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군소리 없이 따라갔다.

"이 공원에 이런 곳도 있었군.”

반태수가 데려간 곳은 가볍게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몇 가지 운동 장비가 있고, 운동하다가 쉴 수 있도록 마련된 벤치도 보였다.

벤치 위에는 햇빛이나 비를 가릴 수 있도록 천막까지 펼쳐져 있었다.

반태수는 고스탁 메르서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여긴 위가 가려진 장소, 그리고 영역화를 통해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장소였다.

“자, 그래서 할 말이 뭔가?”

고스탁 메르서는 과연 반태수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며 물었다.

이렇게 밖에서 얘기할 때는 좀 민감한 주제를 꺼냈다. 예를 들어 5대 가문이라거나.

그래서 이번에도 그와 비슷할 거라 예상했다. 한데 반태수의 질문은 고스탁 메르서의 예측에서 한참이나 벗어났다.

"운영실장이 연구소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운영실장?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네. 전임 운영실장이 굉장히 오랫동안 있었고, 지금 운영실장은 새로 왔으니까. 아마 2년이 좀 넘었을 걸세. 한데 왜 그러나?”

"기간이 애매하네요.”

애초에 노리고 들어왔을 가능성과 나중에 매수되었을 가능성, 둘 다 열려 있었다.

고스탁 메르서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는 끈기 있게 반태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운영실장이 도청장치와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고스탁 메르서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도청장치라니?”

반태수는 지극히 담담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우리가 연구할 때 쓰는 연구실에 도청장치와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고, 교수님이 쓰는 사무실, 숙소, 화장실, 그리고 자주 다니는 복도에도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고스탁 메르서가 멍하니 반태수를 바라봤다.

"그걸 운영실장이 설치했단 말인가? 자네가 확인했나?”

“네.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대화를 나눴던 공원의 벤치 밑에도 도청장치를 붙이더군요.”

"그래서 여기로 왔군.”

"그런 셈이죠. 아마 여기에도 곧 도청장치를 설치할 겁니다.”

"허!”

고스탁 메르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그동안 자네가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군. 내가 틀렸던 거였어. 그나저나 운영실장이 대체 나한테 뭘 캐내려고 그런 짓을 한 건지 모르겠군.”

"뒤에 5대 가문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쪽에서 의례히 하는 감시 아닐까요? 어쨌든 교수님은 5대 가문의 의뢰로 연구를 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고스탁 메르서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5대 가문이 마음먹고 감시하려고 한다면 굳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쓸 리가 없네. 솔직히 그 사람이 나한테 연구를 의뢰한 거라고 보기에도 어렵고, 그냥…… 가벼운 장난 같은 거겠지.”

이번엔 반태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5대 가문이 아니라고? 게다가 고스탁 메르서는 저 말에 제법 확신을 담았다. 정말로 저렇게 믿고 있다는 뜻이다.

"스마트폰이고 우리가 쓰는 태블릿이고 전부 5대 가문이 만드는데, 굳이 도청기를 따로 설치할 이유가 없지 않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도청할 수도 카메라로 찍을 수도 있는데.”

“5대 가문이 정말로 그렇게 정보를 모으는 겁니까?”

왠지 스마트폰 쓰기가 두려워진다.

"허허허! 그건 나도 모르겠군.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겠나? 인력과 장비가 얼마나 많이 들어갈 텐데.”

그건 또 그렇다.

데이터라는 건 모은다고 끝이 아니다. 거기서 의미 있는 것을 뽑아내야 제대로 된 정보가 되는 것이다.

그걸 하려면 막대한 인력과 그 데이터를 모아둘 어마어마한 저장장치가 필요하다.

모든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부터 그걸 뽑아낸다고 생각하면 도시 몇 개 정도 되는 데이터센터를 지어도 모자라지 않을까?

"그래도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걸세. 그럴 일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스탁 메르서의 말에 반태수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그럼 교수님 생각에는 뒤에 누가 있는 것 같습니까?”

"뒤에 누가 있다는 건 확신하는 모양이군.”

"어딘가에 보고하는 것도 확인했으니까요.”

"허, 진짜 일 하나는 잘 하는 사람인데……."

고스탁 메르서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뒤를 캐는 사람을 연구소에 남겨둘 수는 없었다.

"내 생각에 운영실장을 움직인 건 타노로스 같군.”

“아……!”

생각해보니 하는 짓이 5대 가문보다는 타노로스에 더 가깝긴 하다.

도청장치고 카메라고 마력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안 쓴 장비였다.

5대 가문이 뒤에서 지원한다면 최소한 유물 몇 개 정도는 지급하지 않았을까?

운영실장은 마력이 들어간 장비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배후를 타노로스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혹시 우리 연구를 5대 가문에서 후원한다는 사실을 운영실장이 알고 있습니까?”

“그 일은 자네와 나, 둘 외에는 아무도 모르네. 우리의 대화를 혹시 도청했다면 모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반태수는 그에 관한 얘기를 할 때, 분명히 음파를 차단했으니까.

왜곡까지 걸었으니 멀리서 입모양으로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운영실장은 모르지만 타노로스에서는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걸 타노로스에서 눈치를 챘다면 운영실장이 왜 이러는지 좀 이해가 되는군요.”

고스탁 메르서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내 연구가 5대 가문과 관련되었다는 걸 알고 그 정보를 빼내려는 건가?”

"무슨 생각인지는 저도 모르죠. 솔직히 타노로스 놈들을 이해하기에는 제가 지나칠 정도로 정상적인 사람인지라."

그리고 아직 운영실장의 배후가 타노로스인지 5대 가문인지, 그것도 아닌 전혀 다른 자들인지 확신하지 못한 상황이기도 하고.

"그럼 이제 어째야 하나? 자네가 발견한 도청기와 카메라를 전부 제거하고 운영실장을 자르면 되나?”

"그럼 오히려 더 은밀하게 접근할 겁니다. 그냥 우리가 조심하는 편이 낫습니다. 연구가 끝날 때까지는.”

저들이 고스탁 메르서를 감시하는 건 약점을 잡기 위해서일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함정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저들의 목적이 뭔지는 몰라도 교수님과 관계된 건 분명합니다. 그러니 일단은 연구를 진행하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죠."

"그럴 수밖에 없겠군.”

반태수와 고스탁 메르서는 일단 연구실로 돌아갔다.

***

그 뒤로 반태수와 고스탁 메르서는 조심하면서 연구를 진행했다.

대화를 할 때도 내용을 신경 썼다.

연구에 대한 중요한 내용을 말할 때는 반태수가 음파 차단 마법을 써서 정보를 교묘하게 가렸다.

반태수는 꾸준히 운영실장을 감시했는데,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었다.

그는 매일 스마트폰을 이용해 어딘가에 보고하고, 그때마다 투덜거렸다.

그리고 반태수와 고스탁 메르서가 갔던 곳에 열심히 도청장치를 설치했다.

반태수는 일부러 장소를 계속 바꾸면서 고스탁 메르서를 데리고 공원 곳곳을 다녔다.

나중에는 마티아스 파사르까지 데리고 다녔다. 산책이라는 명목을 붙여서.

운영실장은 결국 연구실 일행이 산책을 나갈 때마다 홀로 짜증을 부렸다.

공원에 가서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 계속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태수는 그걸로 끝내지 않았다. 고스탁 메르서의 동선을 복잡하게 꼬아 버린 것이다.

그동안은 굉장히 단순한 동선이었다. 한데 이제는 화장실도 여러 곳을 번갈아 이용하고, 연구소 내에 마련된 휴게실도 전부 다닌다.

그럴 때마다 연구소 내에 설치되는 도청장치의 수가 늘어났다.

반태수가 이러는 이유는 운영실장이 가진 도청장치의 수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도청장치가 다 떨어지면 결국 요청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때 배후를 좀 더 정확히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그러는 와중에 연구가 끝났다.

드디어 마력차단 마법을 완성한 것이다.

마법이 완성되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진짜 제대로 마법이 펼쳐지는지, 원하는 성능이 나오는지 확인해야 한다.

마법을 테스트하는 자리에는 연구에 참여한 세 사람만 함께 하기로 했다.

그래서 장소고 시간이고 전부 비밀이었다.

아니,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곧 정할 거라는 말만 운영실장의 귀에 살짝 들어가도록 흘렸을 뿐이다.

운영실장은 그걸 결정하기 위해 논의하는 장소가 공원 어딘가라고 확신했다.

도청장치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쓴 것보다 훨씬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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