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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108화 (108/351)

108화.  < 마력차단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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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긴 하네.”

호텔에서 바꿔준 방은 최고급이라는 말에 걸맞았다.

한쪽 벽이 통째로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져 전망을 감상하기 좋았다.

따로 세 개의 방이 있었는데, 각 방에 있는 침대도 보통이 아니었다. 마법이 부여된 마도구였다.

물론 반태수가 개발한 3종 세트에 비하면 좀 모자라지만.

아무튼 넓기도 넓고, 내부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최고급이었다.

물론 반태수는 사실 이렇게까지 넓은 방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반태수는 창가에 서서 야경을 보며 오늘 고스탁 메르서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일단 연구는 완성할 것이다.

아마 이걸 끝내고 나면 자신이 걸어가는 마법의 길에 무언가 변화가 생길 거라는 예감과 기대감이 들었다.

문제는 5대 가문이었다.

그들이 굳이 반태수에게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되도록이면 그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자신이 이 마력차단 마법을 완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다 털어버렸다.

일단 어떤 방식으로 감시하는지 확인을 한 다음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호텔 진짜 이상해.”

호텔만 이상한 게 아니라 그 방에 묵겠다고 줄을 선 마법사들도 이상했다.

아무래도 이 도시에 마법 연구소가 많아서 그런 것 같은데, 반태수는 그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법사가 벽을 넘으려면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수련을 하고 실전 경험을 쌓아야지, 남이 벽을 넘은 방에서 잔다고 그게 될 리가 있나.

게다가 몸에서 빠져나간 노폐물은 대체 왜 모아놓는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았다.

‘그냥 갖다 버리라고 할 걸 그랬나?’

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다. 그걸 가져다 뭘 할 생각인지는 몰라도 더 이상은 머릿속에 남겨두지 않기로 했다.

머릿속을 깨끗이 비운 반태수는 오늘 고스탁 메르서와 함께 만든 술식들을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어제도 영감을 많이 받았지만, 오늘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제처럼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어제는 그동안 반태수가 쌓아왔던 것이 많았기에 영감을 통해 벽을 넘었고, 오늘은 그저 영감만 받았으니까.

하지만 그 영감을 통해 새로운 술식을 만들거나 기존에 쓰던 마법에 새로운 술식을 첨가해서 마법을 변형시킬 수 있었다.

반태수가 가장 관심 있게 살펴본 것은 기존에 연구하던 유물이었다.

위상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해 슬슬 감이 잡히고 있었다.

가만히 선 채로 한동안 머릿속으로 연구를 진행하던 반태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연구를 중단했다.

약간의 진전은 있었지만 아직 한참 모자라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이제부터 고스탁 메르서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막힌 것들이 뚫릴 테니까.

반태수는 한참동안 좋은 기분으로 도시의 야경을 즐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반태수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연구소로 출근했다.

아침밥은 호텔에서 먹었고, 아마 점심은 어쩔 수 없이 연구소에서 먹어야 할 듯했다.

감시자가 있을지 모르니 너무 튀면 좋지 않다.

아마 저녁도 연구소에서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밥을 먹고 연구를 더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감수하기로 했다.

연구실에 도착하니 마티아스 파사르가 보였다. 또 밤을 샜는지 눈이 퀭했다. 정말 저러다가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마법사니까 알아서 하겠지.’

마법사에게는 마력도 있고 마법도 있다.

마력을 이용해 피로를 풀 수도 있고, 피로 회복을 돕는 마법도 있다.

그러니 아마 알아서 할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반태수가 가볍게 인사를 했지만 마티아스 파사르는 모른 척 하던 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차피 큰 관심이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후, 고스탁 메르서가 도착했다.

"오, 자네 왔군. 그럼 바로 연구를 진행할까?”

반태수가 살짝 질린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보자마자 연구부터 시작하자고 할 줄은 몰랐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페이스 조절을 하시죠. 어제처럼 일찍 그만두는 것보다는 조절해서 오랫동안 연구하는 게 효율이 더 높을 겁니다.”

"아…… 그렇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내가 마음이 좀 급했군. 솔직히 급할 이유가 없는데.”

고스틱 메르서는 빙긋 웃으며 반태수에게 턱짓을 했다.

"그럼 나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겠나?”

"좋습니다.”

반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마티아스 파사르를 쳐다봤다. 그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깨를 한 번 으쓱 해준 반태수는 고스탁 메르서의 등을 살짝 밀면서 연구실에서 나갔다.

***

고스탁 메르서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반태수는 커피 대신 코코아를 뽑았고.

"설마 코코아를 뽑을 줄은 몰랐군.”

"커피는 웬만큼 맛있지 않으면 안 먹습니다.”

자신이 만들던 커피를 마시다가 다른 커피를 마시면 진짜 이런 걸 어떻게 먹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차라리 커피가 아닌 걸 먹는 게 낫다.

코코아를 몇 모금 마시던 반태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스탁 메르서에게 물었다.

"아, 어제 호텔에 가니 방을 최고급 스위트로 바꿔주더군요.”

"응? 아하, 벽을 넘었으니 호텔에서 영업에 들어갔군."

반태수가 신기한 눈으로 고스탁 메르서를 쳐다봤다. 반응을 보니 흔히 있는 일인 모양이다.

"원래 그런 겁니까?”

"이 도시에서는 그렇게 한다네. 뭐, 내가 보기엔 아예 말도 안 되는 건 아닐세.”

"예? 그게 말이 된다고요?”

"아무래도 벽을 넘으면 마력 흐름이 주변에 남기 마련 아닌가. 높은 벽을 넘을수록 주변에 마력의 잔재가 진하게 남기 마련이지.”

"그건 오히려 독이 될 텐데요? 다른 마법사의 마력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수준이 낮은 마법사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그 방을 이용하는 건 4서클 이하의 마법사들이라네. 사소한 자극 하나가 간절한 자들이지.”

물론 반태수는 그게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거라 여겼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면 그런 것에 매달릴 수도 있으리라.

‘뭐, 그 시간에 차라리 술식 하나를 붙들고 매달리는 게 더 낫겠지만.’

반태수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때, 고스탁 메르서가 살짝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부산물도 팔았겠군?”

반태수가 어제 일이 떠올라 기겁하며 물었다.

"그건 대체 어디에 쓰는 겁니까? 그리고 팔아요? 난 그냥 알아서 치우라고 했는데……."

"쯧쯧. 당했군. 그거 제법 비싸게 사들이는데. 아, 자네 돈 많다고 했지?”

고스탁 메르서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적당량으로 나눠 특수 유리용기 안에 밀봉해서 판매한다네. 잘못하면 냄새가 지독하니 진짜 철저하게 밀봉하지. 일종의 부적 같은 걸세.”

"그것도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고스탁 메르서가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하지만 절박하게 매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어 주겠지.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나.”

반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만 들어가죠.”

"그러지. 슬슬 연구를 시작해 볼까?”

***

그날부터 반태수는 고스탁 메르서와 함께 연구를 진행해 나갔다.

연구는 차질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원래라면 연구에 모든 걸 쏟아야 했지만, 반태수는 그럴 수 없었다.

혹시 모를 5대 가문의 감시를 확인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감시당하고 있을 때를 대비해 자신이 연구에 기여하는 비율을 속이는 작업까지 해야 했다.

감시자, 혹은 감시 장비를 찾아내기 위해 반태수가 선택한 것은 영역화였다.

영역화를 통해 훨씬 세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마법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당장 되는 일이 아닌지라, 지금은 조심하면서 영역화 연구를 병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필요성을 인식한 후부터 꾸준히 자료와 아이디어를 모아왔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니 연구 속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좀 더 폭넓은 정보, 그러니까 마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은 기계에 대한 것도 파악할 수 있기를 원했다.

예전 발드릭을 상대하면서 겪은 경험 때문이었다.

타노로스라는 놈들이 마법에 관한 능력을 가졌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마력을 완벽하게 배제하면서도 뛰어난 기술을 보유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 언젠가 그들과 엮일 때를 대비하려면 영역화부터 그에 걸맞게 손보는 것이 당연했다.

반태수는 현재 자신의 아공간에 보관 중인, 그리고 예전 발드릭이 저격으로 스윌러 벨크리스에게 주입한 보라색 액체가 아마 나노머신 비슷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래서 영역화로 그 나노머신을 잡아낼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손보는 영역화는 일단 거기까지를 목표로 달리는 중이었다.

그 다음은 당연히 영역화를 공격에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애초에 영역화는 정보수집은 물론이고 그걸 이용해 다양한 일을 하려고 설계한 마법이었다.

그러니 기초는 닦여 있었다. 그 위에 공사만 하면 된다.

아무튼 그렇게 영역화를 연구하면서 은근슬쩍 마티아스 파사르를 연구에 끼워 넣었다.

물론 그가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일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엄청났다.

이 연구에 대해 잘 모르는 누군가가 보면 마티아스 파사르가 셋 중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많은 일을 하는 줄 알 것이다.

그걸 위해 반태수는 마티아스 파사르가 정해진 시간 안에 마무리할 수 있는 수준의 작업을 계속 제공해야 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다.

연구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반드시 도움이 될 만한 작업이어야 했다.

그러니 마티아스 파사르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연구의 흐름을 관조하면서 고스탁 메르서와 동시에 진행하는 연구의 속도까지 고려해서 작업 지시를 내려야 한다.

반태수는 그것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도록 설계를 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그렇게 연구 진행을 조율하는 과정이 반태수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꼭 마법 연구만이 마법을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다양한 경험은 분명히 마법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반태수가 그랬다.

특히 속도가 전혀 맞지 않는 두 사람이 작업하는 흐름을 관조하며 조율하는 것이 영역화의 연구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튼 반태수 덕분에 마티아스 파사르는 굉장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작업할 때마다 진도가 팍팍 나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고스탁 메르서는 좀 아쉬운 기분이었다.

좀 더 빠르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반태수가 왜 이러는지 알기에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다.

굳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데 그걸 말릴 이유는 없었다.

아마 이런 식이면, 이 연구가 끝난 후 대부분의 공은 고스탁 메르서가 가져가게 된다.

반태수는 술식을 잔뜩 얻어갈 테고.

그리고 마티아스 파사르는 논문에 이름 한 줄을 올리게 될 것이다.

마력차단에 관한 연구는 그렇게 차근차근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반태수가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훨씬 더 필요했다.

반태수는 열흘을 예상했는데, 최소한 보름, 하다가 막히기라도 하면 한 달을 넘을 수도 있을 듯했다.

***

연구소에서 일을 한 지 보름이 지났다.

그 정도면 연구가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중간에 술식이 몇 번 꼬여서 기간이 늘어나 버렸다.

하지만 5일 정도면 연구가 끝날 것이다.

유적과 베이스캠프 전체를 감싸 분리해 버리던 그 마력차단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유물로 쓰는 것과 마법사가 직접 마법을 펼치는 것은 전혀 다르겠지만.

아마 이걸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단 마법 자체가 너무 복잡했다. 아무리 줄이고 합치고 단순화 시키고 별 짓을 다 해서 술식을 줄여도 거의 백 개에 가까운 마법진을 동시에 발현해야 한다.

그걸 해낼 수 있는 마법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8서클인 고스탁 메르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반태수도 긴가민가했다. 두뇌를 풀가동하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막상 한다고 생각하니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그나마도 이번에 벽을 넘어서 그런 생각이라도 해보는 거지 그 전이었다면 어림도 없었다.

이번에 벽을 넘으면서 두뇌 하나를 더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걸 이용하면 아마 어찌어찌 되지 않을까?

아무튼 마력차단 연구는 그런 식으로 진행 중이었지만 영역화의 업그레이드는 얼마 전에 끝났다.

이제 굳이 마력이 묻지 않아도 각종 기계장치나 전자장비들을 감지해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마력을 훨씬 세심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범위가 넓어진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거기에 더불어 다른 마법사나 마법 장비가 영역화를 감지하지 못하게, 패턴을 이루는 마력을 뒤트는 데에 성공했다.

위상공간의 응용이었다.

패턴의 위상을 뒤집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영향력만 남긴 것이다.

물론 위상을 뒤집어서 쓰려면 아무래도 영역화의 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곳 연구소와 주변 공원 일부를 덮는 것 정도는 충분했다.

반태수는 영역화의 업그레이드가 끝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감시자 찾기에 나섰다.

처음 며칠 동안은 없는 줄 알았다.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쓸데없는 의심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감시자 찾기에 나선 지 나흘 째, 결국 누군지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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