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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106화 (106/351)

106화.  < 마력차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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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아스 파사르는 퀭한 눈으로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결국 밤을 꼴딱 샜다.

그런데도 아직 반도 채 못 봤다.

술식이 어찌나 복잡한지 그걸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하물며 이해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이걸 전부 해결하려면, 그러니까 다 외우고 이해하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 같았다.

그것도 오늘처럼 꼴딱 방을 새 가면서 한다면 말이다.

‘한데 그놈은 이걸 고작…….'

얼마나 걸렸는지 시간을 재보지 않아서 모른다. 하지만 30분을 넘기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아니, 30분이 뭔가 그보다 훨씬 짧다.

"이걸 정말 다 이해했을까?”

왠지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랬다면 고스탁 메르서가 다른 연구실로 데려간 다음에 파탄이 났어야 한다.

한데 그렇게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스탁 메르서 혼자 돌아왔다.

마티아스 파사르는 대체 무슨 상황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웬 미친놈 하나가 와서 물을 다 휘저어 놓는구나.”

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밀었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이걸 빨리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이 전부인 것을.

커피를 물처럼 마시고 나니 흩어졌던 집중력이 그나마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마티아스 파사르는 이를 악물고 다시 술식에 집중했다.

그때, 연구실 문이 열리며 고스탁 메르서가 들어왔다.

"일찍 나왔군? 어? 설마 여기서 밤을 샌 건가?”

마티아스 파사르는 충혈된 눈으로 고스탁 메르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게. 내가 말했지 않나. 서두르지 말라고.”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평소에도 자주 하던 일입니다.”

"정말 괜찮겠나?”

"예.”

고스탁 메르서는 마티아스 파사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반태수를 찾았다.

"반 마법사는 아직 안 나온 건가?”

"예. 어제부터 지금까지 계속 안 보입니다.”

고스탁 메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긴, 시간이 좀 걸리겠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모습에 마티아스 파사르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건 뭐지? 출근 시간을 지키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건데, 그냥 저러고 넘어간다고? 대체 반 그놈이 뭔데?’

"그럼 계속 고생 좀 하게.”

고스탁 메르서는 그 말을 남기고 연구실과 이어져 있는 자신의 방으로 가 버렸다.

마티아스 파사르는 이를 악물고 다시 집중했다.

아직 자신은 연구보조조차 아니다. 이걸 다 해결해야 비로소 연구보조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집중했을까.

간신히 세 장의 술식을 암기했을 때, 연구실 문이 열리며 집중이 깨졌다.

마티아스 파사르는 눈살을 찌푸리며 연구실 입구를 바라봤다.

반태수가 막 들어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12시 30분이었다.

반태수는 들어오자마자 마티아스 파사르에게 말했다.

"밥 먹으러 안 갑니까? 난 먹고 들어왔으니 다녀오시죠.”

그러고 보니 하마터면 점심을 거를 뻔했다.

이곳 연구소의 식당은 점심을 11시 30분부터 2시까지만 운영한다.

마침 고스탁 메르서도 밥을 먹으려는지 방에서 나왔다.

"응? 자네 왔군. 허어. 정말로 혼자서 해냈나? 처음부터 평범한 마법사가 아닌 줄은 알았지만, 진짜 대단해.”

고스탁 메르서는 반태수를 보자마자 대번에 반태수가 벽을 하나 부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아마 저 분위기를 수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아무튼 이제 밥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지.”

"아, 전 먹고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호텔에서 먹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요.”

마티아스 파사르는 반태수의 대답에 입을 쩍 벌렸다. 자신이라면 절대 저런 식으로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연구원 중에 고스탁 메르서에게 저렇게 대답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

"호텔이 더 맛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여긴 건강을 위한 식사를 제공한다네. 몸을 생각하면 여기서 먹는 게 나을 걸세."

반태수가 빙긋 웃었다.

"전 맛이 더 중요해서요.”

건강은 음식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챙기면 된다. 예를 들어 운동이라거나, 아니면 마력이라거나.

"뭐, 좋을 대로 하게. 그럼 자네는 어떤가?”

마티아스 파사르는 자신을 보며 묻는 고스탁 메르서의 말에 얼른 대답했다

"전 여기서 건강을 챙기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좋은 자세로군.”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연구실을 나섰다.

마티아스 파사르는 식당으로 가면서 문득 아까 봤던 반태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왠지…… 어제 봤을 때랑은 좀 느낌이 다른데? 내가 착각한 건가?’

***

반태수는 연구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연구실 주변이 온통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창을 통해 보는 경치가 상당했다.

반태수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제는 그동안 벽을 넘을 때와는 좀 색다른 경험이었다.

쏟아지는 영감을 정리한 것만으로 벽을 넘었는데, 왠지 지금까지 넘은 벽 중에 가장 높고 두꺼운 벽을 넘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는 고스탁 메르서가 연구하던 방향이 반태수가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방향과 어느 정도 일치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동안 꾸준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조사하면서 많은 것들이 쌓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이번 일 덕분에 반태수는 객관적이면서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할 수 있었다.

일단 코어는 이면세계 마법사들의 것과 비교를 불허한다.

반태수의 코어는 아주 특별했다.

이면세계 마법사들이 아무리 서클을 높여도 코어 자체의 성능은 반태수의 것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이면세계 마법사들의 코어는 일단 마력을 생성하지도 못한다.

반면 반태수의 코어는 스스로 마력을 생성한다.

마력에 대한 감각과 컨트롤 능력은 고스탁 메르서보다 훨씬 뛰어나다.

안 그래도 격차가 있었는데, 이번에 벽을 넘으면서 그 차이가 더 커졌다.

마지막으로 마법에 대한 지식은 고스탁 메르서보다 약간 위에 있는 정도다.

반태수는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법지식을 통해 마법을 익혔다.

그 마법지식은 기본에 충실하면서 반태수가 그 분야를 깊게 파고들수록 더 깊이 있는 지식을 내준다.

그래서 반태수는 새로운 마법을 접할 때마다 그걸 얼마나 파고들지 정해야 했다.

그 기준을 확실하게 정하는 것만 해도 제법 오래 걸렸다. 3년은 넘게 걸린 듯하다.

아무튼 그런 상태인데, 여기서 고스탁 메르서의 지식을 살짝 엿본 것이다.

반태수가 정했던 깊이의 기준은 이면세계에서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반태수가 따로 공부한 다양한 방면의 지식들도 영향을 미쳤다.

아무튼 지금 반태수의 마법지식 수준은 8서클을 조금 넘어서는 정도였다.

아니, 이번에 고스탁 메르서의 이론을 흡수하고 벽을 넘으면서 수준이 좀 올라갔다.

아마 조금만 더 노력하면 9서클 수준의 지식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이면세계에서 가장 경지가 높은 마법사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반태수는 문득 오늘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호텔 방에서 나오는데, 마침 청소하겠다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사람이 멈칫하는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 사람은 호들갑을 떨며 어딘가로 달려갔다.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정도 악취가 방에서 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방에 들어갈 수 있을 리 없다.

‘그나저나 오늘 출입 거부당하는 거 아냐?’

반태수가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고스탁 메르서와 마티아스 파사르가 돌아왔다.

"오래 기다렸나?”

"아닙니다.”

반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스탁 메르서를 맞이했다.

그는 마티아스 파사르를 보며 말했다.

"자네는 하던 걸 마저 하게.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 명심하고.”

“……예.”

마티아스 파사르는 잠깐 뜸들이다가 대답했다. 표정에는 불만이 살짝 어려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까 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아 다시 마법진과 술식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종이를 들었다.

그러면서 반태수와 고스탁 메르서가 하는 대화를 들으려 귀를 쫑긋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집중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든 저들의 대화 속에서 뭔가를 얻어가고야 말리라.

고스탁 메르서는 살짝 흥분한 표정으로 반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얻은 건 없나? 예를 들면 새로운 술식에 대한 영감이라거나.”

"글쎄요.”

고스탁 메르서가 빙긋 웃었다.

"내 연구를 통해 영감을 받아 벽을 넘었으니 아마 거기 관련된 술식이 떠오를 가능성이 높네. 그러니 천천히 생각을 해보게.”

"그러겠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반태수도 벽을 넘은 뒤에 관련된 술식이 더 잘 풀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가끔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새로운 마법을 만들기도 했고.

"자, 그럼 이제 우리 연구를 시작해 볼까?”

"그러죠.”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다음, 어제 술식을 보고 벽을 넘으면서 얻은 영감을 통해 깨달은 사실들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어제 술식들을 쭉 보면서 느낀 건데, 군더더기가 좀 있습니다.”

고스탁 메르서의 눈이 번득였다.

"군더더기? 어서 말해보게.”

반태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커다란 태블릿에 마법진을 슥슥 그렸다.

고스탁 메르서는 그 마법진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자신이 연구했던 마법진이니 당연했다.

반태수는 완성한 마법진을 옆으로 슥 밀어서 치우고 두 번째 마법진을 그렸다.

그걸 본 고스탁 메르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음?"

원래는 처음 그린 마법진과 저 마법진 사이에 마법진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셋이 순서대로 있어야 제대로 된 술식이 이어진다.

한데 반태수는 그 중간에 있는 마법진을 생략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면……."

고스탁 메르서가 뭔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마법진의 모양이 자신이 만든 것과는 약간 달랐기 때문이다.

이내 마법진이 완성되자 고스탁 메르서가 탄성을 흘렸다.

“아아아! 그렇군!”

저렇게 술식을 변형하면 중간에 낀 마법진이 아예 필요가 없다.

고스탁 메르서의 머릿속에 영감의 폭풍이 몰아쳤다.

저런 식으로 하면 빼도 될 마법진이 너무나 많았다.

지금 머릿속으로 그 모든 걸 정리하는 중이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고스탁 메르서는 감탄이 어린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대체 그런 발상은 어떻게 하는 건가? 정말 놀랐네. 또 뭔가 알아낸 건 없나?”

반태수는 빙긋 웃으며 몇 가지를 더 짚어줬다.

그 때마다 고스탁 메르서의 얼굴에 드리운 감탄이 점점 더 짙어졌다.

이건 지금까지 한 연구의 효율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향후 연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자네 정말 이 연구소에서 정식으로 연구할 생각 없나?”

고스탁 메르서가 두 번째로 제안을 했다. 하지만 처음 제안할 때와는 눈빛과 표정이 아예 달랐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일단 지금 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반태수의 대답은 그때와 똑같았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티아스 파사르의 눈빛에 담긴 질시는 더욱 깊어졌다.

"이제 뒷부분 술식을 이어보죠.”

반태수의 말에 고스탁 메르서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커다란 태블릿 위에 함께 마법진을 그리면서 서로 술식을 주고받았다.

빠르게 마법진들이 완성되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했을까, 고스탁 메르서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중얼거렸다.

"내가 혼자서 만든 마법진들도 전부 새로 만들고 싶군.”

반태수와 함께 술식을 나누며 만든 마법진들은 지금까지 고스탁 메르서가 만들어 온 마법진들과 약간 결이 달랐다.

아무래도 반태수의 특색이 마법진에 스며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한데 그게 훨씬 더 좋았다.

"어려울 거 없죠.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할까요?”

반태수가 워낙 대수롭지 않게 말해서 고스탁 메르서는 하마터면 그냥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안 될 말이지. 그럼 자네는 괜히 애를 써야 하지 않나. 어차피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텐데.”

"그래도 효율은 훨씬 높아질 겁니다. 전체적인 마법의 구조도 좀 더 간단해질 테고. 결과적으로 성공률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정말 그래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당연히 된다. 아니, 오히려 이쪽에서 그러자고 말하고 싶었다.

고스탁 메르서와 함께 마법진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반태수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마법은 공부도 연구도 수련도 오직 혼자서 해왔다.

한데 이렇게 둘이서 함께 마법을 연구하는 것은 굉장히 새롭고 재미있었다.

물론 이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점점 익숙해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계속 신선함이 주는 영감을 받을 수 있으리라.

아무튼 두 사람은 이 마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새로운 마법진이 쌓여갔다.

반태수의 술식 계산 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속도가 엄청났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동안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거나 다름없는 상태로 마법진을 완성해 나갔다.

집중력이 먼저 깨진 사람은 고스탁 메르서였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기에 체력이 모자라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가 반태수보다 훨씬 못했다.

"아쉽군.”

고스탁 메르서는 태블릿에서 손을 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가 한계인 모양이었다.

반태수는 잠시 고스탁 메르서가 숨 돌릴 시간을 준 다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한데 이 마법, 어디서 보셨습니까?”

고스탁 메르서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 마법을 자신이 봤다는 사실을 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아니, 이 마법이 원래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고스탁 메르서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반태수는 더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고스탁 메르서의 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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