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마법사다-102화 (102/351)

102화.  < 연구보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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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며칠 동안 푹 쉬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두뇌를 나눠서 하던 연구도 전부 중단했다.

그리고 그저 쉬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신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혹은 독서를 하며 오전을 여유롭게 보낸다. 가끔 커피와 쿠키를 간식으로 먹으면서.

점심 식사는 가볍게 하고 오후에는 산책을 나간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도 하고 크랙톤 내에 있다는 물 좋은 곳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늦으면 밖에서 저녁을 먹는다. 일찍 집에 돌아오면 집에서 먹고.

저녁에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다가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이런 일상을 며칠 동안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던 스트레스나 정신적 피로가 조금씩 풀렸다.

그렇게 며칠을 쉬었을까. 드디어 반태수가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

연구실 한쪽에 커다란 유리벽이 있었는데, 그 유리벽에 마법진 하나가 붙어 있었다.

원격 제어장치였다.

반태수는 이제 원격 제어장치의 사용법에 대해서는 거의 통달하다시피 했다.

워낙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들여다봤기 때문에 이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격 제어장치를 손에서 떼어내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반태수는 그렇게 떼어낸 원격 제어장치를 연구실에 새로 조성한 유리벽에 붙였다.

유리벽을 크게 만든 이유는 왠지 원격 제어장치 같은 마법진이 더 생길 것 같아서였다.

잠시 원격 제어장치를 쳐다보던 반태수는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원격 제어장치는 볼 만큼 봤다. 이제 더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

진짜 제대로 연구하려면 직접 유적에 가야 한다.

가서 유적을 하나하나 해체하듯이 분석해서 술식을 뽑아내야 한다.

그 술식을 연구하다보면 제법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유적이 고립되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일단은 커피지.”

반태수는 커피부터 내렸다.

커피를 만드는 김에 양을 대폭 늘렸다. 어른 키만 한 통을 몇 개나 준비해서 그걸 커피로 다 채워버렸다.

커피를 내리면서 쿠키도 구웠다.

정말 무지막지한 양의 쿠키를 만들었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커피를 내리고 쿠키를 굽다보니 머릿속이 또 한 차례 말끔히 비워졌다.

산처럼 쌓인 쿠키와 3개나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통에 담긴 커피가 모두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아공간이 있으니 편하긴 하다.

문제는 용량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안에 든 음식이었다.

정말로 많다. 이미 조리가 끝난 음식들인지라 더더욱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음식을 버리거나 아니면 새 아공간을 구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아공간 마법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신만의 아공간을 여는 것이다.

그냥 마법을 익히는 것과 그렇게 익힌 마법을 팔찌에 부여해 마도구로 만드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다.

마법을 익혀 자신이 쓰는 것이 훨씬 쉽다.

그러니 굳이 아공간 팔찌를 완벽하게 분석한 다음 복사하듯 똑같이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냥 안에 있는 술식만 뽑아서 익히면 그만이다.

물론 그것 역시 난이도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문제.

커피와 쿠키를 아공간에 담은 반태수는 근처 의자에 앉아 비로소 커피와 쿠키를 즐겼다.

그러면서 이제 뭘 할지 고민했다.

반태수는 지금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나 투자해 아무것도 안 하고 쉬지도 않았을 테고.

반태수는 커피를 마시고 쿠키를 씹으면서 자신이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봤다.

‘5대 가문의 힘을 봐서 그런가?’

5대 가문뿐 아니라 타노로스의 힘도 약간이나마 겪었다.

어쩌면 너무 벽이 거대해서 약간의 무력감이 찾아온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말고는 답이 없다. 그렇다면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고치면 된다.

그걸 고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이건 자존감의 문제니 성취감을 느낄 만한 일을 여러 개 처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어차피 5대 가문이든 타노로스든 당장 반태수와 엮여서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일단 안 보이는 곳에 미뤄두고 차근차근 성장하면 된다.

사실 굳이 거대한 벽을 보면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반태수는 시간만 있으면 세상 그 누구보다, 아니, 그 어떤 조직보다 강해질 자신이 있었다.

꾸준히 연구하다보면 벽을 넘을 것이고,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식이 떠오른다.

다양한 고대문자를 접하면 문자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고대문자로 이루어진 지식과 정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런 사기적인 능력을 가졌는데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뭐…… 그 마력 장벽은 정말 대단하긴 했지.’

아마 그건 사람의 능력이라기보다는 마도구의 능력일 것이다. 어떤 유물을 쓰지 않았을까?

만일 사람의 능력이라면 정말 대단한 자다. 한 지역을 마력으로 분리해 버릴 수 있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역시 사람이 아니라 도구의 힘에 무게추가 실린다.

지속성 때문이다.

반태수는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한가. 더 중요한 건 이제부터 뭘 하느냐다.

반태수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마법사 전용 웹이 떠올랐다.

우선순위가 밀려서 한동안 아예 들어가보지도 않았다.

한데 지금이라면 제법 괜찮지 않을까?

거기에 있는 의뢰 중에서 할 만한 것들만 골라서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회복되지 않겠는가.

지금은 높은 곳을 바라보며 달릴 때가 아니라 좀 쉬어갈 때다.

"그러니까 딱 맞아.”

반태수는 마법사 전용 스마트폰을 꺼냈다.

곧장 마법사 전용 웹을 실행시켰다.

익숙한 화면이 떴다. 생각해보니 이와 비슷하지만 좀 더 화려한 것을 지구에서 봤다.

위자드넷.

누가 봐도 마법사 전용 웹의 레플리카다.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 하나. 지구인이 마법사 전용 웹을 쓰고 있다. 그것도 아주 높은 레벨로 활동 중일 것이다.

그가 지구에서 위자드넷을 만들었으리라.

반태수는 오랜만에 게시판들을 훑어봤다.

딱히 특별한 내용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냥 오랜만에 왔으니 한 번 대충 살펴보는 정도였다.

한데 몇 개의 페이지를 넘기며 글 리스트를 쭉 훑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이 있었다.

‘타노로스로 추정되는 사람이 죽는 걸 봤다?’

제목이 제목인 만큼 조회수가 어마어마했다. 달린 댓글도 엄청났다.

얼른 글을 확인했다. 그리고 인상을 팍 썼다.

너무나 허무맹랑했다.

"내가 죽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머리를 움켜쥐고 들어 올렸는데, 그놈이 폭발해서 죽어 버렸다고? 남은 머리통을 던지고 떠나? 미친 놈인가?”

내용이 너무 허무맹랑했다.

밑에 달린 댓글도 대부분이 욕설이었다. 미친놈부터 시작해 별의 별 다양한 욕이 끝도 없이 달려 있었다.

반태수는 반사적으로 글 쓴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마법사 전용 웹에서 본명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확인하고 싶었다. 이런 글을 쓰는 자는 대체 어떤 닉네임을 쓰는지.

“데드릭 벨크리스…… 벨크리스?”

갑자기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반태수는 홈 화면으로 돌아가 평범한 인터넷 앱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데드릭 벨크리스를 검색해봤다.

단 하나도 검색되지 않았다.

벨크리스를 검색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마치 일부러 막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또 혼란스러워졌다. 벨크리스라면 5대 가문 중 하나 아닌가. 반태수도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보통 사람들도 모를 가능성이 높고.

왠지 이 글을 쓴 사람은 본명을 썼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 사람이 타노로스의 조직원을 죽인 걸까?

‘벨크리스…… 그럼 죽은 타노로스의 조직원은 설마 발드릭인가?’

반태수는 다시 마법사 전용 웹으로 돌아갔다.

생각해보면 이 마법사 전용 웹도 5대 가문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운영도 그들이 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5대 가문 사람이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물론 저기 글을 쓴 데드릭 벨크리스라는 사람은 진짜로 좀 이상한 것 같지만.

반태수는 게시판의 다른 글을 살펴보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애썼다.

저기서 벗어나려고 이 짓을 하는 건데, 이상한 글을 읽는 바람에 시작하자마자 틀어져 버렸다.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반태수는 바로 거기서 나와 의뢰 게시판으로 갔다.

"이거 불안해서 제대로 활동 할 수 있으려나?”

투덜거리면서도 게시물의 제목부터 신중하게 살폈다.

여기서 의뢰를 고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뭔지 알 수 없는 의뢰는 전부 걸러내야 한다. 그리고 허위 의뢰도 가려야 하고.

그나마 의뢰 게시판에는 하루에 올라오는 글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워낙 오랫동안 게시판이 유지되었는지라 쌓인 글이 만만치 않게 많았다.

물론 오래된 글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반태수가 찾으려는 건 유효한 의뢰니까.

최신 글부터 차근차근 살피면 된다.

반태수는 집중해서 의뢰 글을 확인했다.

‘뭔가 예전이랑은 분위기가 좀 달라진 거 같은데?’

예전이라고 해봐야 고작 몇 달 전이었다.

그때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정보를 뭉개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데 지금은 좀 분위기가 달라졌다. 좀 더 명확한 글이 늘어났다.

진짜 별의 별 의뢰가 다 있었다.

그 모든 의뢰의 공통점은 마법사와 관계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같은 마법사가 보는 건데 이런 허드렛일을 시킬 사람을 왜 여기서 구하는 거야?”

잡일꾼을 구하는 어이없는 의뢰도 상당히 많았다.

정말 생각이 없는 놈이거나, 아니면 장난이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게 게시물을 하나하나 확인하던 반태수는 고르고 고르고 또 골라서 흥미가 이는 의뢰 하나를 찾아냈다.

마력을 이용한 공간 차단 술식에 관한 연구보조 구함.

글 제목이 그거였고, 내용을 확인하니 무려 8서클 마법사의 연구보조를 구한다고 한다.

그 아래에 달린 댓글을 보면 대부분이 조롱뿐이었다.

마법사의 정보는 생각보다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렇기에 8서클 마법사가 몇 명이나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많지 않다는 건 다들 확신한다.

마법사 자체가 귀할 뿐더러 그 귀한 마법사를 만난다고 해도 대부분이 3서클 이하다.

어쩌다 4서클 마법사라도 본다면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반태수야 하는 일도 그렇고 실력도 그렇고 나름 잘 풀려서 마법사들을 여럿 만났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본 마법사 중에서 가장 높은 건 5서클이었다.

6서클조차 아직 못 본 것이다.

아마 프리든 가에서 봤던 웬델 프리든이 마법사였다면 6서클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능력자였다.

아무튼 그런 상황인데 무려 8서클이라니.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더구나 여긴 장난처럼 글을 올리는 자들이 넘쳐나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반태수는 이 글의 제목을 본 순간부터 끌렸다. 마력을 이용한 공간 차단이라니. 딱 유적에서 본 그거 아닌가.

확실히 그 정도 일을 하려면 8서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반태수는 이면세계의 마법사들이 만드는 코어에 대해서 이제 제법 많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

서클을 하나 늘릴 때마다 마법적 역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서클을 하나 늘리는 일은 반태수가 제법 높은 벽을 넘었을 때와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

이 정도가 되면 혹시 아공간 술식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의뢰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의뢰 신청서는 게시판의 기능 중 하나로, 게시물에서 바로 작성해서 보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보내고 나면 지금까지 몇 명이 신청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2237명?”

반태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댓글이 욕, 비아냥거림, 조롱에 되도 않는 개그가 전부이기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을 줄 알았다.

한데 이렇게 많이 지원했을 줄이야.

게시물이 올라온 건 며칠 전이었다.

고작 그 정도 시간에 이렇게 많은 댓글이 달리고 이렇게 많은 마법사가 지원했다는 뜻이다.

잠깐 게시판을 좀 더 살펴보다가 다시 아까 그 게시물로 갔다. 그리고 신청자를 확인했다. 몇 명이나 더 늘었나 보려고 재미 삼아 확인한 것이다.

한데 수가 확 줄어 있었다.

"왜 81명으로 줄었지?”

이유가 뭐겠는가. 다 쳐낸 거지.

그때 갑자기 쪽지가 도착했다. 마법사 전용 웹에서만 쓰는 쪽지였다.

"뭐지?”

쪽지를 확인하니 화면에 제법 복잡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한데 술식 몇 군데가 비어 있었다.

그걸 보니 왜 숫자가 확 줄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들 이 문제를 받고 푸는 걸 실패한 것이다.

아마 남은 81명도 조만간 정리되리라.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면 말이다.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였다. 물론 이보다 훨씬 어려운 술식을 주로 연구하는 반태수에게는 껌을 씹는 것보다 쉽지만.

반태수는 마력을 이용해 빈 술식을 채웠다.

보아하니 쪽지를 펼친 순간부터 시간까지 체크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 빨리 풀수록 유리하겠지.

남은 81명 중, 아니 그 이후에도 계속 지원자가 추가될 테니 더 많은 마법사들이 이 문제를 접할 것이다. 그 중에서 이걸 풀어낸 사람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

그래서 굳이 여유부리지 않았다.

술식을 모두 채운 반태수는 가장 아래에 있는 제출 버튼을 눌렀다.

이제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반태수의 입가에 흥미가 가득 담긴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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