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어디에나 그런 사람이 있다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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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설마 저 비행선이 저렇게 추락할 줄이야.
저건 착륙이 아니었다. 명백히 추락이다.
그리고 무엇이 저걸 추락시켰는지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지금 유적 주위를 감싼 저 마력이다.
직접 보지 않아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아마 굉장히 강력한 마력일 것이다.
그냥 강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뭔가 복잡한 법칙에 의해 펼쳐진 마력이리라.
대체 누가 저런 짓을 했을까?
스윌러 벨크리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자신이 머물던 막사로 향했다.
반태수는 화면을 조작해 그를 따라갔다.
막사에 들어간 스윌러 벨크리스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반태수는 화면을 분할해 막사 밖을 확인했다.
역시나 경호팀장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비축 물자를 확인 중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베이스캠프의 책임자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조만간 물자가 도착합니다. 남은 양이 제법 되니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그냥 알아서 각자 할 일만 하면 되지 왜 이런 부분까지 참견하느냐는 의미가 살짝 섞여 있었다.
하지만 경호팀장은 물러나지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책임자를 바라봤다.
"물자를 어떻게 받으실 겁니까?”
"예? 당연히 그냥 받으면 되지요. 이곳 베이스캠프까지 물자를 운송해 줍니다.”
늪지대를 통과해야 하기에 차량이 오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운송하는 물자의 양이 적은 건 결코 아니었다.
차가 가지 못하는 지형을 이동하기 위한 강화 슈트가 있다. 강화 슈트를 입으면 근력이 몇 배로 뻥튀기된다. 더구나 자세를 고정하면 지속적으로 힘을 쓸 필요가 없다.
늪지대 같은 곳에서 짐을 나르기에는 그보다 쓸 만한 것도 없었다.
강화 슈트를 몇 벌 동원하면 엄청난 물자를 나를 수 있다. 그러니 물자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경호팀장은 그 말을 듣고도 차갑게 웃었다.
"그럼 어디 가서 확인해 보시죠. 물자가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을지.”
그제야 뭔가 불안한 생각이 든 책임자가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책임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대, 대체 뭡니까? 왜 여기서 나갈 수가 없는 겁니까?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으시죠?”
경호팀장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린 버림받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마 저 하늘 높은 곳 어딘가에서 이곳을 고립시켰을 것이다.
이제 진짜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된다.
"식량 조달 방법을 고민해 봐야할 겁니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그나마 다행인 건 특수 비행선 안에 제법 많은 식량을 보관 중이라는 점이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상황에 대비한 비상식량이었다.
"그래도 범위가 제법 넓으니 그 안에 뭔가를 재배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시죠.”
경호팀장의 말에 베이스캠프 책임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을 모아서 대책을 논의해 보겠습니다.”
경호팀장은 책임자가 멀어지는 걸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이렇게 버림받은 건 스윌러 벨크리스가 맞은 총알 때문이 분명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기가 정말 쉽지 않으리라.
그는 물자를 모두 확인한 다음 베이스캠프를 천천히 둘러봤다.
전부 둘러보니 왠지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느낌?
"아!"
불현듯 떠올랐다. 있어야 할 사람 세 명이 없다는 사실을.
혹시나 해서 다시 찬찬히 확인해봤다. 하지만 그 세 사람은 언제 떠났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이걸 피한 건가? 운도 좋군.”
뭔가 좀 허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또 질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사람들인데 생각해서 뭐 하겠는가. 이걸 스윌러 벨크리스에게 어떻게 보고해야 하는지가 더 문제다.
아마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아무리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도 스윌러 벨크리스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나중에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니까.
경호팀장은 한숨을 내쉬며 스윌러 벨크리스가 머무는 막사로 향했다.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
반태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을 봤다.
이제 슬슬 얻을 건 다 얻은 듯했다.
때맞춰 오스윈 프리든에게 말을 전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 셋이 저기에 갇혔다면 아마 반태수는 저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그럼 상황이 더 복잡해졌을 테고. 아니, 어쩌면 자신이 나서도 구하지 못할 가능성까지 있었다. 그럼 더 복잡해진다.
경호팀장은 자신들이 버림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저기를 저렇게 만든 것이 5대 가문이라는 뜻이다.
솔직히 스윌러 벨크리스를 지켜보는 동안 어쩌면 5대 가문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스윌러 벨크리스는 허술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경각심이 들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5대 가문은 정말 무서운 곳이다.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마력을 움직여 유적 지대를 고립시킨 것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스윌러 벨크리스는 5대 가문의 핏줄을 이어받았다.
아마 5대 가문에서도 중요한 인물의 아들이겠지.
한데 그런 아들을 단칼에 버렸다.
반태수가 보기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해야 되니까 한 것이다.
안 그래도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자들인데, 저렇게 냉철하고 단호하기까지 하다.
목표 앞에서 사사로운 일은 전부 잘라내 버릴 수 있는 자들이다.
그 마음가짐이 더 무서웠다.
‘그럼…… 저 유적에서 벌어진 일을 5대 가문에서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인가?'
만일 그렇다면 5대 가문과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타노로스는 나름대로 잘 싸우고 있는 듯하다.
‘그럼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진짜 복잡하다. 5대 가문과 엮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주 뼈저리게 느꼈다.
‘그나저나 이후에 그들이 프리든 가를 어떻게 할지가 좀 걱정되긴 하네.’
반태수는 베이스캠프에서 벌어지는 일을 계속 확인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제법 고민한 끝에 계속 확인하기로 했다.
스윌러 벨크리스를 중심으로 영상을 녹화하면 될 듯했다.
"용량이 얼마나 되려나.”
이게 컴퓨터로 녹화하는 게 아니라 원격 제어장치 내부에 있는 시스템을 통해 녹화하는 거라서 그런 세세한 걸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뭐, 용량 모자라면 알아서 지우거나 덮어쓰겠지.’
반태수는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오스윈 프리든 일행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그 뒤의 일은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반태수는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신경을 계속 곤두세우고 있었더니 정말 피곤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쯤하고 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반태수는 억지로 일어나 마법 3종 세트가 걸린 침대로 향했다.
다른 건 몰라도 잠은 꼭 이 침대에서 자야 한다.
***
오스윈 프리든 일행이 돌아왔다.
그들의 상태는 비교적 괜찮았다. 적어도 반태수가 보기에는 그랬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세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 마법사님 덕분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이들도 나중에 그 유적 지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들었다. 그리고 만일 거기 계속 있었다면 갇혔을 거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반태수는 그들만 빠져나온 것이 뭔가 문제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5대 가문에서는 그 유적에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다.
오스윈 프리든 일행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괜찮을까요?”
반태수의 물음에 오스윈 프리든도 확신이 안 서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거기 있든 말든 상관이 없는 듯하니.”
그곳을 차단한 목적은 스윌러 벨크리스를 가두기 위함이었다.
그 때문에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봉변을 당한 것이다.
5대 가문은 누가 휘말리든 말든 그런 사소한 걸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아, 제가 커피랑 쿠키를 좀 가져왔습니다. 드시면서 천천히 얘기를 나누죠.”
반태수가 일행에게 커피와 쿠키를 대접했다.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예전에 왔던 그 계곡의 카페였다.
앞으로 이들을 한꺼번에 만날 일이 있으면 항상 여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편하니까.
일행은 반태수가 나눠준 쿠키와 커피를 천천히 먹고 마시며 맛과 향을 즐겼다.
굳이 지금 이걸 꺼낸 이유는 커피와 쿠키를 통해 마음을 좀 진정시켰으면 해서였다.
아무리 이들이 대단하다고 해도 기껏해야 20대의 청년들일 뿐이다.
그런 무서운 일을 겪었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으니 마음이 불안한 건 당연했다.
그래서 반태수는 커피와 쿠키를 모두 먹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 주었다.
세 사람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특히 오스윈 프리든은 평소의 그 냉철한 표정을 완벽하게 되찾았다.
"마음을 아예 놓아선 안 되겠지만…… 아마 별 일 없을 겁니다.”
그의 말에 페일라 린치필드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5대 가문이 신경 쓰기에는…… 우리가 너무 하찮아요.”
안드렐라 윌렉스는 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지만 딱히 두 사람의 말을 부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냥 두 사람을 따라가면 된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감춘다고 해도 5대 가문이 마음먹으면 뭐든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오스윈 프리든은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
"이걸 통해 얻는 정보만 해도 보통이 아니죠.”
반태수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오스윈 프리든을 쳐다봤다.
그 모습에 나머지 두 사람이 웃었다.
"역시 반 마법사님.”
"통신회사요. 몇 개 있을 것 같아요?”
안드렐라 윌렉스의 질문에 반태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하나입니까?”
어느 도시를 가든 로밍을 할 필요가 없어서 통신망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긴 했다.
한데 설마 통신사가 하나뿐일 줄이야.
반태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그럼 스마트폰 제조회사도 하나뿐입니까?”
"아뇨. 한 세 군데 되죠.”
"아, 그렇군요.”
"한데 그 세 군데가 전부 5대 가문 소유입니다.”
반태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통신사와 스마트폰 제조사가 전부 5대 가문 소유이고, 이걸 통해 막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니.
"생각보다 5대 가문이 장악한 것들이 제법 됩니다. 비행선도 5대 가문이 독점한 분야 중 하나죠. 에너지도 마찬가지고요."
들을수록 점입가경이다. 대체 저런 가문을 상대로 싸우면서 그럭저럭 버티는 타노로스는 어떤 놈들이란 말인가.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겠군요. 어차피 털리게 되어 있으니 마음이라도 편하게 사는 게 낫겠습니다.”
그 말에 세 사람이 빙긋 웃었다.
방금 자신들도 그런 결론을 내렸으니까.
그들은 의도적으로 스윌러 벨크리스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자 때문에 함께 갇혀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가문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에 더 안타깝고 마음에 깊이 남았다.
"유적 일도 마무리 되었는데 반 마법사님은 뭘 하실 계획이십니까?”
오스윈 프리든의 물음에 반태수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연구에 집중할까 합니다.”
반드시 해야 할 연구가 잔뜩 쌓였다.
그러니 그걸 하면서 앞으로 뭘 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지구에도 한 번 다녀오고.
***
발드릭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이제 이 도시를 뜰 때가 되었다.
의뢰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리고 자신은 무사하다.
이제 대가를 받을 차례였다.
최상급 아지트와 다목적 비행선, 거기에 막대한 포인트와 돈까지.
이 총과 총알을 돌려주는 건 좀 아깝지만, 나중에 돈과 포인트를 모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물건이니 괜찮다.
발드릭은 약속장소인 공원에 도착했다.
원래 자신의 아지트가 있던 바로 그 공원이었다.
바닥이 엉망진창이었다. 아마 누구도 여길 공원이라고 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공원 가장자리에 몇 그루 남은, 반이 넘게 잘린 나무들이 예전에 공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흔적이 되어주었다.
"얼른얼른 와라. 왜 안 오냐.”
발드릭이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빨리 거래를 마무리하고 도시를 뜨고 싶었다.
저 멀리서 차량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발드릭은 그걸 보고는 히죽 웃었다. 그놈의 차다. 몇 번이나 봤으니 확실하다.
드디어 온 것이다.
차량이 공원으로 들어와 발드릭 앞에 멈췄다.
헤드라이트가 너무 밝아서 차에 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발드릭이 막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무언가가 위에서 훅 떨어졌다.
꽈앙!
온몸에 착 달라붙는 새까만 옷을 입은 사내였다.
그는 몽땅 뭉개져 버린 차량 지붕에 서 있었다. 방금 떨어지면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 발드릭을 바라봤다.
발드릭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나는 걸 느꼈다.
사내가 뭉개진 차를 내려다보며 무심히 중얼거렸다.
"비었군. 약삭빠른 놈.”
말이 끝나자마자 사내의 모습이 훅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발드릭 옆에 나타났다.
사내는 어느새 발드릭의 머리를 꽉 쥐고 있었다.
키는 발드릭과 비슷한데 손이 어찌나 큰지 머리가 전부 손에 들어갔다.
사내는 그 상태로 발드릭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비명도 나오지 않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피라미 하나로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데.”
사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발드릭과 눈을 마주쳤다.
발드릭은 공포에 질려 버렸다.
그 순간, 발드릭이 갖고 있던 모든 장비, 그러니까 총과 총알을 비롯해 그가 갖고 다니던 태블릿과 스마트폰, 그리고 손목에 두르고 있던 나노머신까지 몽땅 폭발해 버렸다.
꽈아아아앙!
발드릭의 몸은 산산조각 났고, 폭염이 검은 옷을 입은 사내를 휘감았다.
화아악!
갑자기 화염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사내의 눈에서 시퍼런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하, 이 버러지 같은 놈들.”
사내의 모습은 폭발이 일어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 타격도 입지 않은 것이다.
사내는 손에 남은 발드릭의 머리 일부분을 휙 던져 버리고는 천천히 걸어 공원에서 나갔다.
잠시 후, 근처에서 비행선 하나가 하늘로 훅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광경을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발드릭과 거래를 하던 자였다.
"무섭네. 역시 차에 타지 않길 잘했어.”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가문의 피가 이어진 사람은 꾸준히 지켜본다는 걸 알아냈으니, 남는 장사를 한 건가? 하여튼 무시무시한 가문이야."
사내가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