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 이번 유적은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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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자신의 온몸으로 파고드는 마력을 일단 차단했다.
정말 빠르게 치고 들어왔기에 웬만한 사람은 그냥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식겁했네.’
마법사가 함부로 자신의 몸에 다른 마력을 허용해서야 되겠는가.
물론 결국은 허용하게 될 것이다. 이 마력이 위험하지 않다는 확신이 생기면.
아공간 팔찌처럼 말이다.
마법진에서 일어난 마력은 끊임없이 반태수의 몸을 침범하려고 했다.
반태수는 마력을 유심히 분석했다.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일단 심호흡을 했다.
아공간 팔찌 때처럼 할 생각이었다. 들어온 마력을 최대한 붙잡으면서 감시하는 방식 말이다.
아공간 팔찌 때와 다른 점은 몸에 침투한 마력이 여러 가닥이라는 것이었다.
그냥 여러 가닥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가닥이었다.
그래서 반태수도 굉장히 신경을 써야 했다.
처음에는 이 많은 가닥을 다 잡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한 가닥의 마력을 잡아내는 데, 몇 가닥의 마력이 필요했으니까.
그냥 속도만 늦추는 게 아니라 감시까지 해야 해서 더 힘들었다.
워낙 여러 가닥이라 동시에 감시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반태수는 그 과정을 기계적인 반복으로 만들었다. 매크로를 이용해 작업을 하듯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신은 전체적인 조율만 하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마치 관조하듯 조율하니 더더욱 효율이 좋았다. 또한 마력에 대한 색다른 수련이 되었다.
반태수는 이 모든 마력의 가닥들이 자신의 신경에 접속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요 신경에 접속해 모든 것을 컨트롤 하겠다는 뜻이다.
아까 안드렐라 윌렉스가 가상현실 운운했으니 가상현실을 만들기 위한 조치가 분명했다.
일부 마력의 실들이 머리로 뻗어 나갔다.
아공간 때의 일이 있어서 이번에도 세심히 관찰했다.
머리 쪽으로 이동한 것도 다양한 신경에 접속하기 위함이었다. 뇌에 직접 작용하는 마력도 있었고.
그 모든 것을 허용하면 환상에 빠져 제대로 된 감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반태수가 원하는 건 그저 가상현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근본적인 원리를 파악하고 싶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반태수는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머리를 굴렸다.
최근 연구하던 생체조직, 그리고 마력을 담은 무술이 머릿속에서 영감이 되어 번득였다.
무수한 술식이 휘몰아쳤다.
반태수는 자신의 마력을 뽑아 꽈배기처럼 꼬았다. 그러면서 마력을 변형시켰다.
마력으로 신경을 구성해 마법진에서 침투한 마력에 연결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신경과 또 연결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환상을 보면서 그것 자체를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반태수는 어느새 자신이 전혀 다른 세상에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이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
그리고 한 발 떨어져서 그렇게 환상에 빠진 자신을 관조했다.
관조하는 자신은 명확히 유적 안에 있는 마법진 위에 둥실 떠 있었다.
그때부터 바빠졌다. 무수한 신호가 신경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신경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파악한 반태수는 그 모든 데이터를 머릿속에 새겼다.
두뇌 하나를 온전히 데이터 수집에 할당하고, 다른 두뇌를 이용해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확인하면서 분석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뇌로 제국 병사 육성 장치를 이용했다.
아까 안드렐라 윌렉스가 말한 대로였다. 허공에 선택 버튼이 주르륵 떠올랐고, 그걸 손으로 누르면서 진행하게 되어 있었다.
반태수는 차근차근 육성 시스템을 확인했다.
배울 수 있는 무술을 배워봤고,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적들과 싸워봤다.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지만, 끝까지 다 했다.
정말 대단한 시스템이었다. 이거라면 정말로 정예병을 충분히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육성 시스템이 세운 정예병의 기준은 현재 활동하는 웬만한 능력자 이상이었다.
놀랍게도 제국의 정예병은 마력을 이용할 수 있으며 각종 무기술에 능했다. 맨손 격투는 물론이고 체력도 굉장했다.
심지어 병법에 대한 강의도 들어야 했다.
그런 식으로 훈련을 하고 테스트를 통해 정예병 칭호를 받는 것이 이 육성 시스템의 최종 목적이었다.
반태수는 그 모든 것을 확인한 다음 종료 버튼을 눌렀다.
모든 마력이 사라지고 몸이 천천히 하강해 바닥에 가볍게 내려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문은 닫힌 채였다.
반태수는 다시 문을 열었다. 내부에서 문을 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저 다가가서 미는 것만으로 문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반태수가 나가니, 일행들이 모여서 마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 반 마법사님, 이제 나오셨군요. 오셔서 식사부터 하십시오.”
오스윈 프리든이 얼른 사람들의 간격을 조절해 자리를 만들었다.
반태수는 얼른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육성 시스템을 했는지 어마어마한 허기가 몰려왔다.
잔뜩 먹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제가 몇 시간이나 저걸 했습니까?”
"네 시간 정도 했습니다. 계속 구경하기가 좀 그래서 밖으로 나왔는데, 얼마 안 있어 문이 다시 나타나더군요.”
그래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식사 시간이 돼서 일단 밥을 먹었다고 했다.
반태수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담담하게 말했다.
"일단 여기는 이게 전부인 것 같습니다. 제가 확인해봤는데, 여기 있는 50군데의 시스템을 전부 이용하면 50인이 한꺼번에 훈련하는 모드도 있는 것 같더군요.”
반태수의 말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역시 고대 제국. 고작 병사 훈련하는데 이런 대단한 시스템을 이용했다니.”
“50명이 동시에 집단 전술을 가상현실로 훈련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긴 하네요.”
"이걸 이용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여기까지 와야 한다는 점이다.
오스윈 프리든이 아쉬운 눈으로 50개의 문을 쭉 훑어봤다.
이걸 도시로 옮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아니면 이걸 완벽히 재현할 수 있거나.
하지만 둘 다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여기에 대해 보고하고 나면 5대 가문이 이 유적을 장악할 것이다. 그 뒤로는 아마 가신 가문에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테고.
이 유적의 가치를 생각하면 분명히 그렇게 되리라.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이 유적을 발굴하는 시간을 길게 잡는 것뿐이었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더 철저하게 확인해 보고, 저 육성 시스템을 분석할 것이다.
성과는 별로 없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오스윈 프리든이 문득 반태수를 바라봤다.
어쩌면, 아공간 팔찌의 보안을 뚫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과 분석력을 갖춘 반태수라면, 그럼 뭔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좀 쉬었다가 뭔가 더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죠.”
오스윈 프리든의 말에 다들 그를 바라봤다. 솔직히 더 찾아봐야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의 결정권자인 오스윈 프리든의 지시를 어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스윈 프리든은 능력자 중 한 명에게 지시했다.
"베이스캠프에 가서 내 결정을 전달하세요. 탐사 일정을 최대한 늘릴 거라고도 말하고.”
“네.”
능력자가 곧장 밖으로 향했다. 이미 함정을 다 해체해 놨기에 얼마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다들 오스윈 프리든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지시를 내렸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그건 다들 마찬가지였다.
너무 아쉬웠다.
이 유적에는 별다른 유물이 없었다. 오직 시스템만 있었다. 그걸 이용하거나 연구하려면 직접 여기에 오는 수밖에 없고.
"괜찮겠어?”
오스윈 프리든에게 다가간 페일라 린치필드가 물었다.
"괜찮을 거야. 이 정도는 내 권한 범위에 포함되니까.”
“그래도 5대 가문에서 걸고넘어지면 굉장히 귀찮아질 거야.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고.”
"그러니 선을 지켜야지. 위험해지지 않게.”
페일라 린치필드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알아서 잘 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닌 오스윈 프리든이니 정말 알아서 잘 할 거라고 믿었다.
어릴 때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지냈기에 그 누구보다 상대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오스윈 프리든은 페일라 린치필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잘 처신할 테니까. 그리고 혹시라도 뭔가 발견하면 정말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아.”
"걱정은 누가 걱정을 했다고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 걱정은 절대 안 할 거거든?”
두 사람이 잠시 티격태격 하는 사이 충분히 쉰 일행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몇몇은 벽을 살폈고, 몇몇은 바닥을 확인했다. 그리고 몇몇은 천장을 더듬었다.
그리고 복도를 확인하는 자들도 있었다.
다들 꼼꼼하게 어느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움직였다.
그걸 지켜보던 반태수는 잠시 자리에 앉아 머릿속을 정리했다.
아까 육성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얻은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한 번쯤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연구할 때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테니까.
***
반태수는 정리가 다 끝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리는 다 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정리한 걸 토대로 연구를 해야 하는데, 굉장히 험난할 것 같았다.
이번에 얻은 것들은 생체조직 연구뿐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좀 더 확실하고 깊이 연구하고 싶었다.
아무튼 그건 유적 탐사가 끝나고 돌아간 뒤에야 할 일이고, 이제는 여기서 할 일을 해야 한다.
오스윈 프리든이 일정을 최대한 길게 잡아놨으니 앞으로도 종종 육성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더 다양한 데이터와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여기 또 뭔가 다른 것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고.
‘그러고 보니…… 이 유적에는 그 고대문자가 없네. 비밀번호 역할을 하던.’
전에 들어갔던 유적이 특별했던 모양이다.
내심 여기도 그 비슷한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좀 아쉽긴 했다.
반태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영역화를 펼쳤다. 좌우뿐 아니라 위아래로도 충분히 넓게 펼쳐서 모든 정보를 빨아들이고자 했다.
한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영역화가 뻗어나가다가 막힌 것이다.
한두 군데에서 막힌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막혔다.
천장도 못 뚫었고, 바닥도 못 뚫었다. 당연히 벽도 못 뚫었고.
오직 복도로만 쭉쭉 뻗어나갔다.
아무튼 영역화가 막혔다는 건, 거기에 마력을 차단하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다른 공간이 감춰져 있는 건가?’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바닥을 벽에 대고 마력을 진득하게 투사했다.
벽에는 그저 마력 차단의 술식이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그걸 뚫고 안으로 더 마력을 밀어 넣으니 단단한 돌이 나타났고, 그게 쭉 이어졌다.
마력 차단을 뚫고 나니, 영역화가 쭉쭉 뻗어 나갔다.
여긴 땅속 어딘가였다.
‘아까 유적 입구가 있던 곳과 전혀 다른 곳인가?’
반태수는 벽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반대쪽 벽도 똑같은 방식으로 살펴봤다. 그리고 역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번엔 바닥이었다. 천장은 좀 번거로우니 나중에 하기로 했다.
그리고 왠지 느낌이 바닥을 살피고 나면 천장은 굳이 안 살펴도 될 것 같았다.
마력을 쫙 뿜어내 얇게 폈다. 그렇게 하늘하늘한 천처럼 변형된 마력이 바닥 전체를 덮었다.
일단 마력 차단 술식이 있기에 바로 뚫어버렸다. 방금 두 번이나 똑같은 걸 뚫었기에 보자마자 무자비하게 뚫어버릴 수 있었다.
그걸 뚫자마자 굉장히 복잡한 마법 술식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하나 나타났다.
'보안 마법이네?’
왜 바닥에 보안 마법이 설치되어 있을까?
보안 마법은 일단 뚫어야 한다. 반태수는 빠르게 술식을 분석했다.
상당히 복잡했지만, 그래도 아공간 팔찌보다는 쉬웠다.
반태수는 신중하고 세심하게 보안을 뚫었다.
그러자 그 아래에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이 유적 아래에 다른 공간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저길 어떻게 들어가지?’
직감적으로 땅을 판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설프게 접근하면 공간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었다. 이건 보안 마법을 분석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보안 마법이 공간 내부에 있는 몇몇 마법진과 연결되어 있었다.
술식을 무작정 훼손한 순간 연결된 마법진이 발동해 내부를 소멸시키는 작용을 하는 듯했다.
그러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반태수는 공간 안으로 마력을 흘려 넣었다. 한데 보내는 족족 전부 튕겨냈다.
이럴 때 공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그냥 바로 공간을 뛰어넘어 아래로 내려갈 수 있을 것 아닌가.
'아니지. 공간이동을 막는 술식이 새겨져 있으면 곤란하지.’
아무튼 그냥은 못 들어간다. 반태수는 마력을 추가로 소모해 천장까지 확인했다.
‘역시.’
천장에도 뭔가가 있었다. 마력 차단을 뚫고 들어가니 지하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복잡한 술식으로 구성된 마법진이 있었다.
보안 수준은 지하와 비슷했지만, 아예 다른 보안 마법이었다.
반태수는 빠르게 보안을 뚫고 그 다음을 확인했다.
보안 마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연결되어 있나?’
마법진 자체는 독립적이었다. 그 어떤 곳에도 마력이 연결되지 않았다.
한데 반태수는 왠지 천장의 마법진이 지하공간과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마법진에 마력을 연결했다.
그리고 더 조심스럽게 마법진을 작동했다. 보안이 뚫렸기에 조금만 살펴보면 마법진을 작동하는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천장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지하로 이동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