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 이번 유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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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도시에서 나간 순간부터 영역화를 최대한으로 펼쳤다.
도시 밖은 언제 마수가 달려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이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역시나 도시에서 가까운 곳은 늑대 마수들이 득실거렸다.
한데 그 마수들을 일단의 무리가 토벌하고 있었다.
한두 팀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팀이 사방에 흩어져서 늑대 마수들을 토벌하는 중이었다.
솔직히 좀 의외였다. 마수 토벌 따위, 전혀 안 할 것 같았는데.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계속 그들의 행동을 살폈다.
마수를 토벌하고 가죽을 벗기고 뼈를 추렸다. 그리고 몇 가지 장기를 특수한 처리를 한 주머니에 담았다.
마력이 남은 장기들이었다. 그리고 주머니는 마력이 흩어지지 않게 고정했고.
마수를 토벌해 그 사체로 뭔가를 하려는 모양이다.
어쩌면 스태플레톤이라는 도시에 모자라는 물자를 저런 식으로 보충하려는지도 모른다.
마수 토벌 팀은 서로 마주치더라도 싸우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서로 모른 척 지나쳤고, 다들 마수 사냥에만 집중했다.
반태수는 오스윈 프리든에게 물었다.
"스태플레톤에서는 도시 주변 마수를 어떤 식으로 토벌합니까?”
"모든 조직과 세력이 돌아가면서 토벌합니다. 마수 토벌을 하지 않으면 결국은 도시가 무너진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역시 그랬다.
"그래서 서로 적대하는 세력일지라도 도시 밖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습니다. 암묵적인 규칙이죠.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거대 마수는 어떻게 처리합니까?”
오스윈 프리든이 피식 웃었다.
"저들이 거대 마수가 오는지 안 오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모르는 사이에 5대 가문에서 나서서 처리해 버리는 거죠.”
의외라는 듯한 눈으로 반태수가 쳐다보자, 오스윈 프리든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기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5대 가문이 진짜 방치하면 다 죽는다는 걸. 그리고 암중으로 거대 마수를 토벌해 주고 있다는 것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반태수는 스태플레톤이라는 도시가 굉장히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스윈 프리든은 말을 시작한 김에 앞으로의 일정도 설명해 주었다.
"일단 이틀 동안 이 속도로 이동하다가 도보로 바꿔야 합니다.”
"차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험한 땅으로 가는 건가요?”
"예. 늪지대라서 이렇게 큰 차로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건 곤란하다. 아마 이동하면서 쓸 식량이나 생필품들도 전부 버스에 실어서 가져왔을 텐데.
"그리고 가는 길에 마수를 자주 만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근방은 마수 정리가 거의 안 된 상태인지라.”
도시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마수들은 5대 가문에서 나서서 은밀히 처리한다.
물론 5대 가문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신 가문에 지시를 내려서 처리한다.
프리든 가도 예전에 한 번 이 근방에 나타난 갈기 오거 무리를 처리한 적이 있었다.
"늑대 정도는 그냥 무시하고 가도 괜찮은데, 가끔 나오는 불도마뱀은 처리해야 합니다. 내버려두면 끝까지 쫓아와서 불을 쏟아내거든요. 제법 귀찮습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수와 싸우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불도마뱀이면 불속성일 테니 얼음 마법으로 싸우면 되리라.
“늪지대로 들어가면 리자드맨이 나옵니다. 그놈들은 일단 발견하는 대로 싹 죽여야 합니다. 놓치면 우르르 몰려와서 상당히 귀찮아집니다.”
그래도 위험하다는 얘기는 안 하고 귀찮다고만 하는 걸 보면 리자드맨이라는 마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물론 이 버스를 타고 있는 능력자들의 수준이 상당하긴 하다.
이들이 나서면 굳이 반태수가 끼어들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물론 그럴 생각은 없다. 적극적으로 마법을 써서 싸울 것이다. 이런 거 하나하나가 전부 경험 아니겠는가.
"늪지대에 도착하면 거기서부터 또 하루 정도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유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가문에서 파견한 유적 조사팀이 머물고 있습니다.”
반태수는 오스윈 프리든의 설명을 들으며 영역화에 들어온 마수들을 살폈다.
아까 말했던 불도마뱀이었다.
길이는 2미터쯤 되는데 입과 피부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숨 쉬듯 불을 내뿜었다.
마치 불덩어리에 도마뱀 가죽을 씌워 놓은 것 같았다.
대단한 것이, 불도마뱀들은 이쪽 버스의 존재를 벌써 알아차렸다.
감각이 굉장히 뛰어난 마수들이었다.
반태수가 펼친 영역화와 비슷한 범위를 감각으로 커버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수는 총 37마리.
반태수는 일단 거리가 좀 있으니 그들의 정보를 좀 더 세밀히 살펴봤다.
우두머리 한 마리가 나머지를 이끌었다.
그리고 모든 불도마뱀이 뛰어난 감각을 갖는 건 아니었다. 우두머리만 그런 능력이 있었다.
대신 우두머리는 다른 불도마뱀보다 불길이 약했다. 덩치는 더 컸지만.
아무튼 이대로라면 10분 후 불도마뱀 무리가 버스에 도착한다.
반태수는 바로 마법을 썼다. 불속성 마수니 이쪽은 얼음이다.
얼음의 정수만 압축해서 콩알만 하게 만든 얼음결정이 이동 중인 불도마뱀 상공에 우수수 나타났다.
좌표 설정을 먼저 하고 그 뒤에 추적 유도 술식을 첨부했다.
허공에서 생성된 얼음결정이 불도마뱀들을 향해 비스듬하게 쏟아졌다.
얼음결정은 불도마뱀의 피부와 근육을 부드럽게 가르고 들어가 몸의 중심에서 폭발했다.
쩌저적!
사방으로 뻗어나간 얼음가시가 불도마뱀의 내부에서 외부로 튀어나왔다.
얼음결정에 맞은 모든 불도마뱀이 똑같은 꼴이 되어 즉사했다.
방금 떠올린 술식으로 만든 마법이었는데 제법 쓸 만했다.
반태수는 앞으로도 불도마뱀이 나타나면 같은 마법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버스가 높지대 앞에 도착할 때까지 총 여섯 번의 불도마뱀 무리가 나타났고, 모두 반태수의 압축 얼음결정 마법에 의해 스러졌다.
***
버스는 커다란 나무 밑에 방치해 놓고 길을 떠났다.
오스윈 프리든은 버스에 유물 하나를 장착했다.
버스가 없으면 나중에 돌아갈 때 문제가 생기니 한동안 보호할 수 있는 유물을 장착한 것이다.
환상을 출력하는 유물이었다.
장착한 순간 주변이 높은 풀과 나무넝쿨처럼 변해버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위화감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환상이었다.
반태수는 살짝 관심을 가졌지만, 살펴볼 시간은 없었다. 빨리 이동해야 하니까.
스무 명의 일행이 늪지대로 들어섰다.
대부분 이런 일에 익숙한지 능숙하게 진형을 짜서 이동했다.
이동 중에 경계도 소홀하지 않고, 긴장도 풀지 않았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기든 곧장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췄다.
이동하면서 오스윈 프리든은 유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사실 제가 하위 조직에 넘길 유적을 확인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긴 한데, 이번 유적은 가문에서 처리해야 하는 유적입니다. 5대 가문이 주도해서 발굴하는 유적이 되는 거죠.”
"하위 유적은 어떻게 정해지는 겁니까?”
반태수는 이번 기회에 궁금한 걸 물어봤다.
“유적 조사팀이 결정하는 겁니다. 유적의 형태나 내부에 흐르는 마력의 양, 그리고 드론을 내부에 날려서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지난번에 아쉬덴 길드에 맡겼던 유적도 사실 결과를 보면 하위 유적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유적에서 얻은 유물과 유적을 지키던 변종 갑각 트롤만 봐도 결코 하위 유적이라 할 수 없었다.
"진짜 하위 유적은 정말 별 거 없습니다. 마수야 강한 놈이 있을 수 있지만, 유물은 몇 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은 유적 조사팀이 하위 유적 구분을 잘 하는 모양이네요.”
“네. 아무래도 그동안 쌓인 데이터가 많으니까요.”
오스윈 프리든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 유적은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조사팀에 따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패턴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새로운 유물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스윈 프리든은 제법 기대가 큰 모양이었다.
사실 반태수는 새로운 유적이든 아니든 큰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겪어본 유적이 하나뿐이니 어떤 유적이든 새로운 유적일 테니까.
그렇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고 있을 때, 반태수의 영역화에 마수들이 걸려들었다.
'이게 리자드맨이로구나.’
이족보행 도마뱀이라고 보면 되는데, 거대한 검을 들고 있었다.
리자드맨이 든 검은 변형되어 외부로 돌출된 뼈였다. 손에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검이 자라나 있는 셈이었다.
영역화에 들어선 놈들의 수는 스물셋이었다.
아까 본 불도마뱀이랑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개체가 하나 있었다. 덩치는 더 크고 칼은 더 작았다.
그놈의 감각이 예민한 모양이었다.
반태수의 영역화에 들어서고 얼마 있지 않아 곧장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곳곳에 늪이 있고, 늪 주위에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 있었는데, 리자드맨들은 그런 지형에 익숙한지 상당한 속도로 다가왔다.
반태수는 오스윈 프리든에게 말했다.
"리자드맨 스물세 마리가 옵니다.”
오스윈 프리든은 반태수의 말에 의문 따위 갖지 않고 일행을 향해 명령했다.
"일단 방어진 구축합니다. 리자드맨 스물세 마리, 최대한 끌어들인 다음 일제히 격살합니다. 한 마리도 놓쳐선 안 됩니다.”
능력자들은 오스윈 프리든의 명령에 일제히 움직였다.
아무리 상황이 의심스러워도 일단 명령이 떨어지면 이행한 후에 생각해야 한다.
반태수는 자신이 마법을 쓰면 리자드맨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함께 유적을 탐사할 이들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리자드맨들이 나타났다. 일행을 보자마자 달려들었는데, 그냥 막 덤비는 것이 아니라 포위하듯 진형을 짜서 달려들었다.
능력자들은 단단히 방어진을 짠 채로 리자드맨의 공격을 막았다.
리자드맨들이 일행을 포위한 채 격렬히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전투의 텐션이 확 올라갔을 때, 방어진 내부에서 기회를 노리던 능력자들과 마법사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각자의 무기로 리자드맨을 공격했는데, 굉장히 효율적이면서도 강력한 공격으로 순식간에 리자드맨의 빈틈을 찔렀다.
공격하던 리자드맨들의 진형이 빠르게 무너졌다. 쓰러지는 리자드맨이 여럿 나왔다.
그때 바닥에서 얼음이 꽃처럼 피어나며 솟아올랐다.
얼음은 정확히 리자드맨만을 노렸다. 아주 정교한 마법이었다.
그렇게 리자드맨이 절반 정도 쓰러지자, 능력자들이 진형을 바꿨다.
이젠 역으로 포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포위하기 전에 무섭게 몰아쳐 한 번 더 피해를 강요하고는 빠르게 진형을 완성했다.
리자드맨은 한 마리도 도망치지 못하고 모두 목숨을 잃고 바닥에 누웠다.
이쪽의 피해는 전무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상당한 실력이었다. 또한 오스윈 프리든의 마법 실력도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일단 술식 계산이 빨랐다. 물론 반태수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긴 했지만.
일행은 쉬지도 않고 바로 출발했다. 이 정도 전투로는 체력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강행군을 이어갔다.
그 뒤로 몇 차례나 리자드맨 무리를 만났고, 그때마다 훌륭하게 싸워서 모두 전멸시켰다.
그리고 반태수는 한 번도 전투에 개입하지 않았다.
한참 이동하다보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그들은 빠르게 잠자리와 식사를 준비했다. 다들 이런 경험이 많은지 굉장히 능숙했다.
텐트도 훌륭했고, 음식도 훌륭했다.
식사 후 바로 잠을 잤고, 새벽에 일어나 출발했다.
그렇게 강행군을 한 끝에 정오가 지날 무렵 유적에 도착했다.
***
유적은 거대한 돌무더기 속에 있었다.
돌무더기의 일부를 제거해 유적 입구만 딱 드러난 상태였다.
유적 조사팀은 돌무더기에서 좀 떨어진 곳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해 두었다.
생각보다 인원이 많았다. 이 많은 사람이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신기할 정도로. 게다가 절반은 일반인이었다.
반태수는 멀리서 유적을 보고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대체 저기 있는 유적은 어떻게 찾아낸 겁니까?”
원래는 돌무더기였다고 했다. 그럼 아예 입구도 가려져 있는데, 대체 어떻게 찾은 걸까?
“일단 이 유적은 5대 가문에서 준 정보를 토대로 찾은 겁니다.”
반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5대 가문이 유적을 독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런 유적을 찾아낼 정도니 말이다.
"도시 밖으로 마수 토벌을 나간 사람들이 찾기도 하고, 가신 가문이나 도시를 지배하는 가문에서 따로 유적 탐색 팀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도시 안에서 우연히 발견되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유적을 찾기 위해 모든 도시와 가문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다.
반태수는 새삼 5대 가문이 유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발굴 자체는 가신 가문에 맡겨 버린다.
‘생각보다 5대 가문의 인원이 많지 않은 건가?’
반태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일행 전부가 유적 입구를 향해 이동했다. 아직 정오가 살짝 지났을 뿐이니 바로 탐사를 시작하면 될 듯했다.
반태수는 일단 유적 입구에 서서 전체적인 모습을 슥 훑어봤다.
돌무더기의 일부가 치워진 곳에 유적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는데, 아치형으로 된 문의 가장자리에 양각된 고대문자가 보였다.
‘제국의 정예병을 양성하기 위한 훈련장.’
그러니까 제국의 병사 훈련소라는 뜻이다.
반태수는 과연 이 유적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훈련소에 있을 만한 유물이 뭐가 있을까?
"일단 드론으로 확인한 바로는 30미터 전방까지는 통로입니다. 그리고 30미터가 되는 지점에 함정이 있습니다. 빛이 번쩍하면서 드론이 파괴되었습니다. 화면으로 추측키로, 전격 마법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일행을 따라온 유적 조사팀의 팀장이 오스윈 프리든에게 보고했다.
오스윈 프리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슬슬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