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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87화 (87/351)

87화.  < 스태플레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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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도시라기보다는 시골 같군요.”

도심지에 왔는데, 꼭 시골 읍내 같은 분위기였다.

건물은 다들 높이가 낮았고, 낡았다.

돌아다니는 사람은 제법 많지만 옷차림부터가 크랙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도심지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제대로 된 주차장도 없는 호텔이었다. 그래도 이 근방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그래봐야 10층에 불과했지만.

버스가 멈추고 다들 차에서 내렸다. 버스는 호텔 옆 도로에 그냥 주차해 버렸다.

도로변에는 그런 식으로 주차한 차들이 종종 보였다. 하나같이 낡은 차였다. 개중에는 과연 저게 굴러가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망인 차도 있었다.

일행이 막 호텔로 들어가려는 순간,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타타타탕!

콰앙!

반태수는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제법 먼 곳이었는지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총소리는 물론이고 뭔가 폭발하는 소리까지 들렸는데도 도심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닌다는 점이었다.

"놀라셨죠? 여긴 총소리가 일상이라서 다들 별로 신경 안 씁니다. 코앞에서 싸움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아마 아무도 안 놀랄 겁니다.”

오스윈 프리든의 말에 반태수가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대단한 도시에 왔군요.”

"대단하다기보다는 혼란스러운 도시죠. 수백 개의 세력이 땅따먹기 하듯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일행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대화를 나눴다.

"수백 개의 세력이 전쟁 중이라는 겁니까?”

반태수의 물음에 오스윈 프리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쟁까지는 아니고 약간의 다툼 정도입니다. 물론 그 다툼에 총칼과 폭탄을 동원하긴 하죠.”

아무리 들어도 그 정도면 전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싸움에 총칼과 폭탄을 동원하는 게 어떻게 약간의 다툼이란 말인가.

"여긴 싸움이 제법 자주 일어나는 도시입니다. 다들 거기에 적응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삽니다.”

반태수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정부는 아예 개입을 안 하는 겁니까? 그리고 도시를 다스리는 가문이 이런 상황을 반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좀 이상하군요.”

오스윈 프리든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도시에는 시정부가 없습니다.”

반태수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시정부가 없다니. 그럼 여긴 무법도시 아닌가.

"그리고 도시를 다스리는 가문도 없습니다.”

시정부도 없고 도시를 다스리는 가문도 없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져도 이상할 건 없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면 양호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최소한 사람들이 저렇게 평온하게 다니고 있으니까.

보통은 이런 식이면 다들 지옥에서 살아갈 텐데 말이다.

반태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세계의 모든 도시가 5대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줄 알았다.

한데 이 도시, 스태플레톤은 마치 5대 가문의 영향력 밖에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오스윈 프리든은 묘한 눈으로 반태수를 바라봤다.

"사실 이 도시는 제법 유명합니다.”

"여기가 유명하다고요?”

"예. 잘 알려져 있거든요. 다큐멘터리도 여러 개 있습니다. 시청률도 좋았죠. 이 도시, 아주 자극적이잖습니까.”

오스윈 프리든의 말을 안드렐라 윌렉스가 받았다.

"저도 그 다큐멘터리 전부 봤어요. 처음 봤을 때는 정말 흥미로웠죠. 뭐, 그 뒤로는 너무 자극만 찾아서 좀 식상해졌지만.”

반태수는 이 도시의 의미를 바로 짐작했다.

여긴 본보기 같은 도시다. 5대 가문이 다스리지 않는 도시가 어떻게 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마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이용될 것이다.

그리고 이용가치가 남아있는 한, 5대 가문은 이 도시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유지하라고 은밀히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외부인이 이 도시에 잘 오려고 하지 않겠군요.”

반태수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생각보다 여기 찾아오는 사람이 제법 됩니다. 뭐, 다른 도시에 비하면 바닥이긴 하지만.”

"여기서 사업 같은 걸 하는 모양이죠? 너무 위험해서 잘 안 될 거 같은데……."

"사업이 아니라 관광입니다.”

"예?”

반태수가 놀란 눈으로 오스윈 프리든을 바라봤다. 이런 위험한 도시에서 관광이라니.

"다큐멘터리가 성공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스태플레톤에서 자체적으로 관광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대단하네요.”

반태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단하죠. 이 도시는 생각보다 잔혹합니다. 겉으로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별의 별 일이 다 벌어지고 있죠.”

오스윈 프리든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 잔혹한 일을 구경하고 직접 경험하기 위해 이 도시에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관광 상품이죠. 굉장히 비싼.”

그 말을 페일라 린치필드가 받았다. 입가에 비웃음을 달고 코웃음을 치면서.

"여긴 비밀이 새 나가기 어려운 구조거든요. 그래선 안 되는 사람들이 그러려고 오는 곳이죠.”

반태수는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대체 이 도시는 왜 버림받은 겁니까?”

버림받았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도시를 한 마디로 나타내는 데 가장 적합한 말이었다.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솔직히 알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고요. 반 마법사님이 궁금하시다면 제가 한 번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

"저도요. 저랑 같이 알아보면 아마 좀 더 빠르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러자 안드렐라 윌렉스가 얼른 끼어들었다.

"저도 한 번 알아볼게요. 아는 사람 중에 이 도시의 어떤 조직이랑 연결된 자가 있거든요.”

반태수는 좀 당황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주길 원한 건 아니었다.

"아니,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가 세 사람의 눈빛을 보고는 바로 말을 바꿨다.

하지 말라고 했다간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의욕에 불타는 눈빛이었다.

"맡겨주십시오. 반드시 좋은 정보를 찾아오겠습니다.”

오스윈 프리든의 결연한 말이 왠지 무겁게 느껴졌다.

***

반태수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짐부터 풀었다. 아니, 짐을 풀 일은 없었다. 어차피 전부 아공간에 들어 있었으니까.

오늘 일정은 없다고 했다. 그냥 방에서 잠만 자다가 적당한 시간에 식당에 가서 밥이나 먹고, 원한다면 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라운지 바에서 술을 마셔도 좋다고 했다.

고작 10층짜리 호텔이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심지어 지하에 카지노까지 있었다.

침대에 누워 이곳 스태플레톤의 정보를 좀 찾아봤는데, 여기서 제일 유명한 건 도박이었다.

별의 별 도박이 다 있었다. 몇 개의 세력이 손을 잡고서 도박장을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도시가 생각보다 크네.’

크기만으로 따지면 크랙톤보다 더 컸다. 하지만 크랙톤처럼 빡빡하게 도시를 채우지는 못했다.

크랙톤은 변두리가 좀 문제이긴 하지만 안쪽은 건물이고 사람이고 빽빽하게 들어차 있으니까.

반면 스태플레톤은 중간 중간 빈 땅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 빈 땅을 함부로 차지하려고 들었다간 큰일 난다.

그 땅에 뭔가를 하려면 그 지역을 장악한 조직과 협상을 해야 한다.

물론 이 도시에서 빈 땅을 개발할 정도로 돈과 여유가 넘쳐나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을 리 없지만.

‘무술 수련한답시고 집중했더니 이런 정보조차 알아보지 않고 여기까지 왔네.’

평소 같았으면 직접 찾아보지는 못해도 엄대협에게 알아보라고 지시라도 내렸을 것이다.

한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이게 다 무술 수련 때문이다.

심지어 엄대협에게 알리는 것도 떠나는 날 공항에서였다.

엄대협의 그 체념한 듯, 잘 다녀오라고 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쿠키랑 커피나 좀 나눠줘야겠네.’

아마 그거면 충분할 것이다.

반태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 놓인 가구들을 벽으로 옮겼다.

방이 제법 넓은지라 그렇게 하니 중앙에 그럭저럭 움직일 만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반태수는 그 중심에 서서 천천히 무술을 수련했다.

움직임에 신경을 써서 마력이 빠르고 강하게 흐르도록 유도했다.

애초에 마력에 대해 잘 아니, 마력을 쓰는 무술에 대한 원리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반태수는 근육과 뼈의 움직임을 잘 관조하면서 계속 무술을 수련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수련을 하다 보니 뇌리 한구석이 간질간질했다.

반태수는 더욱 집중했다.

이번에 두 개의 육체 강화 마법을 만들면서 육체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깊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무술을 수련할 때도 그 이해도가 엮이면서 효율이 높아졌다.

뇌리 한구석이 계속 간질간질했다.

그걸 시원하게 해소하면 무술이 한 단계 더 발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느낌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열심히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반태수의 수련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중간 중간, 밖에서 총소리와 폭탄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크랙톤과는 다른 도시다.

***

다음날 아침.

반태수는 일행과 약속했던 대로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는 당연히 했다. 어제 무술 수련을 하느라 저녁을 걸렀기에 아침은 푸짐하게 먹었다.

로비에는 오스윈 프리든이 먼저 나와 있었다. 그리고 능력자 열다섯 명, 마법사 한 명이 함께 있었다.

아마 이번 유적 탐사에 같이 갈 동료들인 모양이었다.

다들 굉장히 공손하면서도 딱딱한 자세로 서 있었다. 저러고 있다가 몸이 굳어서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반태수가 다가가자 오스윈 프리든이 환하게 웃었다.

"반 마법사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먹었습니다. 여기 조식이 상당히 괜찮네요.”

오스윈 프리든이 빙긋 웃었다.

"신경을 좀 썼습니다. 이 호텔, 우리 가문에서 운영하는 호텔입니다.”

그 말에 뒤에 있던 능력자들이 놀란 눈으로 오스윈 프리든과 반태수를 번갈아 바라봤다.

설마 그 얘기를 외부인에게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여기를 다스리는 가문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스리지 않을 뿐입니다. 다른 가신 가문에서도 스태플레톤에 조직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가문의 이름은 감추고요.”

반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끼어들어서 도시에 대한, 혹은 이 도시를 거쳐 가는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이 호텔 주변이 프리든 가의 영역이겠군요.”

"네. 제법 규모가 큰 편입니다. 아무래도 규모가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활동에 제약이 심하니까요.”

둘이서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나타났다.

페일라 린치필드와 안드렐라 윌렉스였다.

"자, 이제 다 모였으니 슬슬 출발하죠.”

***

반태수는 버스 창밖으로 스태플레톤의 전경을 구경했다.

도로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런 걸 관리하는 것이 시정부의 일인데, 여긴 시정부가 없으니까.

도로 정비는 각 구역을 장악한 세력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세력마다 보유한 힘이나 재력이 다르니 도로 정비에 신경을 쓸 정도로 여유가 있는 세력이 아니라면 방치할 수밖에 없다.

가다보니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반태수는 그걸 보고는 반사적으로 버스에 내구력 강화를 걸었다.

양 측에서 총을 쏘는 각도를 보니, 자칫하면 이쪽으로 총알이 날아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눈 먼 총알 몇 개가 버스에 맞았다.

팅! 팅! 팅!

내구력 강화 덕분에 총알은 버스에 흠집도 내지 못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총알이 날아온 쪽을 보며 인상을 썼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 한바탕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은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싸우는 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나중에라도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스태플레톤에서는 얕잡아 보이는 순간 끝이다.

아마 저들도 이쪽에 총알이 튀었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총에 맞고도 그냥 지나가면 얕보이는 건 순식간이다.

그때, 버스 안에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반태수는 지금 마력을 움직이는 사람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오스윈 프리든이었다.

그의 코어에서 마력의 실이 쏟아져 나와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반태수는 영역화를 통해 술식을 분석해봤다.

화염 계열의 마법이었다.

‘호오. 역시 다른 마법사랑은 좀 다르네.’

지금까지 반태수가 본 마법사들은 좌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 아니, 좌표를 설정하기 위한 술식 계산이 너무 느렸다.

그래서 바로 앞에 좌표를 설정하고 마법을 펼쳤다. 마치 술식을 암기라도 한 것처럼.

한데 오스윈 프리든은 달랐다.

일단 좌표가 저쪽에서 싸우는 자들 바로 위였다. 거기에 거대한 불덩이를 만든 것이다.

꽈아아아앙!

불덩이가 바닥에 내리꽂히며 큰 폭발을 일으켰다.

싸우던 자들 중 절반 정도가 불길에 휩싸였다.

버스는 그런 일이 있든 말든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쭉쭉 나아갔다.

싸우던 자들이 불을 끄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리고 몇몇은 따로 떨어져 나와 버스 쪽을 노려보며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누구도 버스를 향해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공격했다가 돌아올 후폭풍이 걱정되었으니까.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누구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서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내 버스가 도시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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