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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법사다-86화 (86/351)

86화.  < 두 번째 유적 탐사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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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태수는 손목에 찬 아공간 팔찌를 벗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얼마 전, 무술 훈련을 하고 나서, 오스윈 프리든으로부터 이 아공간 팔찌에 대한 얘기, 아니, 충고를 들었다.

혹시라도 그 팔찌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아공간 팔찌의 보안을 뚫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아서 그냥 얘기해줬다. 굳이 감출 이유도 없었고.

그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절대 그 얘기를 아무한테나 하지 말라고 했다.

아는 사람은 오스윈 프리든과 페일라 린치필드, 그리고 안드렐라 윌렉스 세 명뿐이었다.

아무튼 반태수는 혹시 몰라서 원한다면 오스윈 프리든이 가진 아공간 팔찌의 보안을 뚫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보안 뚫는 법을 알려줄 수는 없다고도 했다. 그건 그냥 알려준다고 따라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

마력에 대한 굉장히 섬세한 감각을 이용해야 하는데, 냉정하게 따지면 오스윈 프리든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반태수는 가감 없이 그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오스윈 프리든은 자신이 직접 연구해서 보안을 뚫겠다고 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약간의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솔직히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오스윈 프리든이 아무 거나 막 물어볼 것 같지도 않았다.

아마 오스윈 프리든은 막히는 부분이 나와도 그걸 어떻게든 자신이 직접 뚫으려 하지, 반태수에게 의존하려 하지는 않을 듯했다.

아무튼 오스윈 프리든이 그렇게까지 걱정을 하니 어느 정도 대비는 해둬야 할 것 같아서 지금 이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반태수는 얇은 체인을 꺼내 팔찌에 둘둘 감았다.

체인이 팔찌를 촘촘하게 감고 나니, 마치 체인으로 만든 팔찌 같았다.

두께가 달라졌지만, 손목에 차기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손목에 맞도록 사이즈 조절 마법이 걸려 있었으니까.

그게 체인을 감아서 두께가 달라져도 적용이 되는지까지는 몰랐는데, 해보니 간단하게 사이즈가 변경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사이즈를 손목에 맞춰놓은 다음, 공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팔찌를 벗은 다음, 체인에 세심하게 술식을 새기기 시작했다.

반태수가 원하는 건 이 팔찌가 마도구나 유물로 보이지 않고 평범한 패션 팔찌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걸 위해 마력 차단 술식을 새겼다. 그리고 그렇게 마력을 차단하면 아공간을 쓸 수 없기에 그에 관한 조치도 취해야 했다.

거기서 써먹은 것이 최근 열심히 뚫고 분석한 보안 마법이었다.

보안 마법을 응용해서 특정한 마력 코드를 입력하면 작은 틈이 열리도록 술식을 조정했다.

반태수는 술식을 완벽하게 새긴 다음, 영역화를 통해 팔찌를 분석해봤다.

그런데도 전혀 마력에 대한 반응을 잡아낼 수 없었다.

반태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팔찌를 찼다.

이제 이 팔찌는 그냥 패션 팔찌다.

"후우."

반태수는 팔찌 작업을 마친 후, 의자에 축 늘어졌다.

"요즘 왠지 잔소리가 늘어난 기분이야.”

오스윈 프리든과 통화라도 한 번 하고 나면 살짝 진이 빠진다. 하지만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듣고 나면 다 옳은 얘기고,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고 위하는지 절절히 느껴졌으니까.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받아들여야지.

잠시 몸과 정신을 추스른 반태수는 이번에 배운 무술을 떠올렸다.

처음 기초를 배우고 마력을 움직임에 담는 것을 배울 때까지만 해도 그냥 무술을 배우는구나 싶었다. 물론 재미는 있었다. 자신의 마법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것도 있었고.

하지만 진짜는 그 다음이었다.

새로운 동작들이 추가되었는데, 실전에서 써먹기가 살짝 애매할 정도로 복잡하고 쓸데없는 움직임이 중간 중간 끼어 있었다.

대체 왜 이런 식으로 동작을 만들었을까 했는데, 막상 거기에 마력을 얹어보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그 쓸모없던 동작이 마력을 원활히 근육이나 신경에 전달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으로 분석해본 결과, 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근육과 뼈의 모양과 각도, 그리고 거기 얽힌 신경세포의 모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마력 전달 속도를 대폭 늘려주었다.

그냥 대충 나온 움직임이 아니라 굉장히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심화 과정으로 들어간 이후 반태수는 매 순간 영감이 번득였다.

이제 그 영감을 녹여서 육체 강화 마법에 잘 버무릴 차례였다.

반태수는 유적 탐사를 위해 떠나기 직전까지 연구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 결과 두 개의 육체 강화 마법을 만들어냈다.

***

"스태플레톤으로 가려면 오카리타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오카리타는 비행기가 많은 도시 중 하나였다. 그래서 경유지로 많이 쓰인다.

비행 거리가 허락하는 대부분의 도시와 직항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실 전용기를 쓰는 게 편한데, 마침 전용기를 전부 쓰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가게 되었습니다. 웬만하면 한두 대 정도는 돌릴 수 있는데, 이번엔 이후 한 달 이상의 일정이 전부 차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오스윈 프리든이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있으니, 확실히 대단한 가문이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으며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두 여자를 보니, 확실히 동떨어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태수는 주위를 둘러봤다.

"이거 전용기나 다름없는 거 아닙니까?”

비행기 안에 이렇게 독립적인 공간이 있을 줄은 몰랐다.

편히 쉴 수 있는 소파부터 잠을 잘 수 있는 침실까지 있었다.

간단히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 특별한 곳이 비행기 안에 있었다.

페일라 린치필드가 담담히 대답했다.

"너무 좁잖아요. 그래서 불편하고. 없는 것도 많고. 전용기면 이런 불편함은 없죠.”

그녀의 말에 오스윈 프리든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렐라 윌렉스가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프리든 가의 전용기를 꼭 한 번 타보고 싶었는데, 좀 아쉽게 됐네요. 진짜 유명하거든요. 그걸 타고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페일라 린치필드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 가문의 전용기에 비하면 삭막한 편이죠. 나중에 우리 가문의 전용기를 꼭 타보도록 해요.”

그녀는 반태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반 마법사님을 듀스트론에 초대할 계획인데, 그때 당신도 같이 오면 되겠네요.”

"정말요?”

안드렐라 윌렉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걸 지켜보던 오스윈 프리든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린치필드 가의 전용기가 너무 과한 거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정확히 적용되는 케이스 아닌가?"

"그걸 왜 네가 결정하는데? 나중에 반 마법사님께 직접 결과를 들어.”

오스윈 프리든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반 마법사님은 나랑 생각이 똑같으실 거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두 사람의 시선이 반태수에게 꽂혔다.

반태수는 여기서는 한 마디도 하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파악했다.

"아, 팔찌 이렇게 해봤는데, 어떻습니까? 티 납니까?"

반태수는 얼른 손을 올려 아공간 팔찌를 보여주며 물었다.

세 사람은 반태수의 팔찌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이내 차례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티가 나지 않는군요.”

"꼭 패션 팔찌 같아요. 스타일도 괜찮은데요?”

"나중에 저도 비슷하게 하나 만들고 싶네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페일라 린치필드의 물음에 반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뭐, 좋으실 대로.”

그 말에 페일라 린치필드가 과하게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맙습니다.”

오스윈 프리든이 얼른 끼어들었다.

"저도 하나 만들고 싶군요.”

"그러시죠.”

반태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자 안드렐라 윌렉스까지 나섰다.

"그럼 저도 괜찮겠네요?”

당연히 괜찮다고 해 주었다. 그러지 말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작 체인 칭칭 감은 팔찌가 뭐라고.

그렇게 티격태격 하는 사이 비행기가 오카리타에 도착했다.

***

"다음 비행기는 여섯 시간 후에 뜹니다.”

오스윈 프리든은 그렇게 말하며 일행을 공항 내에 있는 휴게실로 안내했다.

이 휴게실은 나서스 가에서만 쓰는 전용 휴게실이었다. 그걸 오스윈 프리든이 간단한 협상을 통해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반태수는 휴게실에 들어선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공항 안에 이런 시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까 비행기에서 겪은 건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하는 건 다 있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것이 최고급이었고, 그 최고급 시설 이용을 도와주는 직원들이 항시 대기 중이었다.

없는 것이 없었지만, 반태수는 딱히 흥미가 가는 시설이 없었다.

반태수는 그저 쉬고 싶었다.

쉬겠다고 하니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었다. 원하는 건 뭐든 다 가져다 주었으니까.

이렇게 제대로 쉰 건 오랜만이었는데, 그걸 공항에서 할 줄이야.

반태수가 피곤해 보였는지 아무도 반태수가 쉬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아니, 오히려 쉬는 데 방해가 될까봐 다들 조심했다.

덕분에 반태수는 잠깐 숙면도 취하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누운 채 머릿속으로 마법 술식을 연구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반태수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쳐다봤다. 노크를 한 사람은 반태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살며시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람을 본 반태수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키에라 나서스였다.

아무리 여기가 오카리타고, 이곳이 나서스 가의 전용 휴게실이라고 해도 설마 이렇게 나타날 줄은 몰랐다.

키에라 나서스가 안으로 스윽 들어오며 말했다.

"내가 전화 잘 받으라고 했죠?”

반태수는 순간 무슨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솔직히 전화를 좀 씹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몇 번은 받아줬다. 보자마자 저런 말을 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키에라 나서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녀는 뒤를 힐끗 확인하고는 얼른 문을 닫았다.

아마 오스윈 프리든이나 페일라 린치필드가 있는지 확인한 듯하다.

"잘 받았는데……."

키에라 나서스의 이마에 힘줄이 팍 돋아났다.

"잘 받았다고요? 제가 열 번 전화하면 한 번 받았잖아요. 받을 때마다 퉁명스럽긴 또 어찌나 퉁명스러운지. 서러워서 하마터면 울 뻔 했거든요?”

눈물이 있긴 한지 의심스러웠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다는 것쯤 잘 알고 있었다.

반태수는 슬금슬금 몸을 일으켰다. 간만에 편히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불청객의 방문을 받으니 다시 피로가 몰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표정 하지 말아요. 이것만 주고 바로 갈 거니까.”

키에라 나서스는 반태수에게 사뿐사뿐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쇼핑백을 내밀었다.

"자요.”

반태수는 그걸 받지 않고 쇼핑백과 키에라 나서스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게 뭡니까?”

"유물이요. 두 개 골랐잖아요.”

"아……!”

"일정 좀 미리 말해줬으면 이렇게 서두를 필요 없었잖아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쇼핑백을 더 내밀었다.

"뭐해요? 안 받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반태수는 쇼핑백을 받으며 그렇게 말했다.

키에라 나서스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네요. 그럼 계속 쉬어요. 유적 탐사 하려면 미리 체력 좀 비축하는 게 좋으니까.”

키에라 나서스는 그 말을 끝으로 휙 돌아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반태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쇼핑백 안에 든 유물을 꺼냈다.

두 개의 상자가 들어 있었다. 굉장히 고급스러운 상자였다. 재질은 금속이었고.

반태수가 고른 두 개의 유물 중 하나는 반지였고, 다른 하나는 총이었다.

뚜껑을 열어 안에 반지와 총이 든 것을 확인한 다음 다시 뚜껑을 닫고 아공간에 넣었다.

이걸 제대로 확인하는 건 유적 탐사가 끝나고 다시 크랙톤으로 돌아간 뒤의 일이었다.

반태수는 다시 자리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았다.

***

스태플레톤으로 가는 비행기가 출발했다.

반태수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아까 키에라 나서스가 보낸 문자를 확인 중이었다.

제법 긴 문자 여러 개를 연달아 보냈는데, 요약하면 돌아갈 때 오카리타에 들르면 바로 연락하라는 거였다.

만일 연락을 안 하면 자기가 불안해서 크랙톤으로 이사를 갈지도 모르겠다는 섬뜩한 얘기까지 덧붙였다.

다른 때는 몰라도 이번에는 꼭 연락하겠다고 머릿속에 단단히 기억해뒀다.

크랙톤에서 오카리타까지 가는 것보다 오카리타에서 스태플레톤으로 가는 길이 훨씬 가깝다.

하지만 스태플레톤으로 가는 비행기 자체가 별로 없어서 비행하는 시간보다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아무튼 비행기가 뜬 지 채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스태플레톤에 도착했다.

반태수 일행은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들어섰다.

"어떻습니까? 느낌이.”

오스윈 프리든의 물음에 반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낙후된 느낌이네요?’’

크랙톤이나 오카리타의 공항과는 상당히 달랐다.

규모도 작았고, 시설도 낙후되었다. 지은 지 굉장히 오래 된 공항 같았다.

공항 내에 편의시설도 별로 없었다. 그 흔한 커피숍 하나 없었다.

딱 비행기에 관한 시설만 있는 공항을 보는 듯했다.

공항에서 나가자, 승합차나 버스들이 쭉 줄지어 있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황무지가 쫙 펼쳐져 있었다.

생각했던 도시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행은 가까이 있는 버스에 탔다. 늘어선 버스 중에는 그나마 가장 상태가 나았다. 겉보기로는.

이내 버스가 출발했다.

보아하니 프리든 가에서 준비한 버스였다.

창밖을 통해 도시의 전경이 보였다. 공항을 출발한 지 한참 되었는데도 황무지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낡은 건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여기부터가 진짜 스태플레톤인 모양이었다.

버스는 쭉쭉 달려 도심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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